이승만

이승만

무력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정전협정 서명을 거부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1950년 7월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공세로 전환, 힘겨운 적진을 뚫고 승리의 북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합니다.'

이승만은 조선 말기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립운동가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제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공을 국시로 삼고 국가보안법 제정 등 강력한 반공 체제를 구축했으며, 38도선 이북으로의 무력 북진통일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한국전쟁 중에도 정전을 거부하고 1953년 반공 포로 2만 7천 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해 휴전 교섭을 흔들었으며, 정전협정 서명을 끝내 거부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으로 하야한 뒤 하와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객사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한국전쟁 정전 반대와 반공 포로 석방

한국전쟁 중 이승만은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전쟁을 끝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회담에 대한민국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고, 정전 회담 장소 인근에 공습을 지시했으며, 1953년에는 송환을 원하지 않는 포로 약 2만 7천 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했다. 이 조치는 포로의 처리 문제를 둘러싼 협상과 정전 교섭을 위태롭게 하려는 것이었고,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 지휘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정전협정은 결국 체결되었지만 이승만은 서명하지 않았다. 이 행위는 정전 교섭이 전쟁 종결을 향해 가던 중 이루어졌으며, 미국 내 일부 의원은 이를 지지했지만 미국의 군사 지휘관들은 전쟁의 추가 희생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맞서 학생과 시민이 전국적으로 항의했고, 4·19혁명의 승리로 이승만은 사임했다. 이 국면은 그가 강경한 반공·북진통일 노선을 고수한 방식과, 이에 대한 국내 대중운동의 도전을 함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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