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적 배경

조선

6 명

해당 인물

이동휘

이동휘
비소련 혁명가 대한제국 조선 1873–1935 ○ 병사

일제에 맞서 볼셰비키 혁명과 민족해방을 접목시킨 조선 공산주의의 선구자

임종 직전 "나는 조선의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소. 동무들은 반드시 고려소비에트공화국을 성립하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대한제국 장교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전향하여 조선 민족해방운동에 마르크스주의를 최초로 접목시킨 공산주의 선구자. 1918년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무장독립노선을 추진했으며, 이승만과 결별 후 고려공산당(상하이파)을 이끌며 민족해방과 계급혁명의 결합을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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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5–1902한성무관학교 졸업, 육군 참령·강화도 진위대장
  • 1906–1911신민회 조직, 보창학교 설립, 105인 사건 투옥
  • 1913–1917연해주·북간도 망명, 대전무관학교 설립 및 독립군 양성
  • 1918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창당, 위원장
  • 1919–1921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 1921고려공산당(상하이파) 창당
  • 1922–1935코민테른 연락, MOPR 원동지역 한인 책임자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킴

Александра Петровна Ким
비소련 혁명가 러시아 제국 조선 1885–1918 ✕ 처형

러시아 혁명에 투신한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자

1918년 9월 16일, 아타만 칼미코프의 백군에게 끌려나가 총살당하기 직전 그녀의 마지막 외침: '자유와 독립을 조선에!'

시베리아 한인 이주민의 딸로 태어나 1916년 볼셰비키에 입당한 최초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다. 레닌의 지시로 극동에 파견되어 하바롭스크 소비에트 외무인민위원을 지내고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창당했으며, 조선인 적위대를 조직해 백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1918년 33세로 처형당한, 러시아 혁명과 조선 독립운동을 잇는 상징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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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6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볼셰비키) 입당
  • 1917하바롭스크 볼셰비키 지부 서기 겸 극동 인민위원회 외무인민위원
  • 1918.4한인사회당(이후 조선공산당의 전신) 공동 창당
  • 1918.6–8조선인 적위대 및 국제 적위대 조직, 백군·일본군에 맞서 전투
  • 1918.9.4백군과 일본군에 체포됨
  • 1918.9.16하바롭스크에서 백군 코사크에 의해 처형됨

여운형

여운형
비소련 혁명가 조선 조선 1886–1947 ✕ 암살

레닌·쑨원과 만나고 좌우합작을 택한, 분단 직전 조선의 마지막 통일주의자

“혁명가는 침상에서 죽는 법이 없다. 나는 거리에서 죽을 것이다.” 수차례 테러를 겪으며 자식들에게 남긴 말.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백의사의 총에 쓰러졌다.

1918년 신한청년당을 결성,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2·8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창립에 참여하고,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트로츠키와 면담했으며 쑨원의 권유로 중국국민당에 가입했다. 1945년 8월 총독부로부터 평화적 치안권 이양을 받아내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조선인민공화국 부주석이 되었다. 1946~47년 김규식과 좌우합작운동을 이끌며 통일정부를 추진했으나, 극우단체 백의사에 암살당했다. 남북 모두가 공식 추모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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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 결성, 당수 취임
  • 19192·8독립선언 주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 1920–1922고려공산당 상하이파 입당; 모스크바 원동피압박민족대회 참석, 레닌·트로츠키 면담
  • 1925–1929쑨원 권유로 중국국민당 입당, 국공합작 참여
  • 1933–1936조선중앙일보 사장; 조선체육회 회장
  • 1944비밀결사 건국동맹 결성, 전국 조직화
  • 1945.8–9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공화국 부주석
  • 1946–1947좌우합작운동 전개, 근로인민당 위원장

김산

김산
비소련 혁명가 조선 조선 1905–1938 ✕ 처형 · 1983년 복권

일제하 조선 독립과 중국 혁명을 오가며 싸운 국제주의 사회주의자, 《아리랑》의 주인공

“나는 죽어서도 조선의 독립과 내가 평생 믿어온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소.” — 옌안에서 님 웨일즈에게 남긴 말

평북 용천 출신. 1919년 3·1운동 참가 후 일본·중국으로 건너가 1922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황포군관학교와 중산대학에서 수학하고 1927년 광저우 봉기에 홍군 측으로 참전했으며, 1936년 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창설했다. 1937년 옌안에서 미국 언론인 님 웨일즈와 22차례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아리랑》(1941)은 조선 독립운동사의 생생한 증언으로 남았다. 1938년 캉성의 보안기관에 의해 '트로츠키스트·일본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었고, 1983년 중국 공산당에 의해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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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3·1운동 참가, 일본 경찰에 3일간 구금
  • 1921일본 도쿄 유학 후 중국으로 이동
  • 1922중국 공산당 입당
  • 1923공산청년동맹 가입, 잡지 《혁명》 간행
  • 1925–1927황포군관학교·중산대학 수학, 광저우 봉기 참전
  • 1936상하이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 창설, 조선 혁명가 대표로 선출
  • 1937옌안 항일군정대학 강사, 님 웨일즈와 인터뷰
  • 1938캉성 보안기관에 체포, 간첩 누명으로 처형

허가이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헤가이

Алексей Иванович Хегай
비소련 혁명가 소비에트 고려인 1908–1953 ✕ 숙청 후 의문사

조선로동당 창립 핵심 조직자이자 초기 '소련파'의 지도자

1948년 3월 제2차 당대회에서 허가이는 돌연 연단에 올라 이미 사과한 간부들을 향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사과는 공허한 말일 뿐"이라고 질타했고, 이 발언은 당내 규율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소비에트 고려인 혁명가로, 1945년 소련 점령 당국의 파견을 받아 평양에 도착한 후 조선로동당 창립의 핵심 조직자로 활동했다. 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겸 제2부위원장으로서 소련식 간부당 노선을 추진했으며, 한국전쟁 중 60만 당원 중 45만 명을 검증·제명하는 대대적 당 정비를 주도했다. 대중당을 구상한 김일성과 당 조직 노선을 둘러싸고 충돌해 1951년 실각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기 '소련파'의 부상과 몰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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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전연방공산당(볼셰비키) 입당
  • 1932극동지역 콤소몰 서기
  • 1937당에서 숙청·제명,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 1939당적 회복, 우즈베키스탄에서 당 간부로 복귀
  • 1946북조선로동당 정치위원회 위원, 조직국장
  • 1948북조선로동당 부위원장 겸 검열위원장
  • 1949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비서 겸 제2부위원장
  • 1951김일성과 충돌 후 전직 해임, 부수상으로 좌천
비소련 혁명가 조선 고려인 1913–1976 ✕ 교통사고로 사망

소련에서 온 고려인 장군,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남일 대장과 해리슨 중장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18부의 정전협정문에 서명했다. 3년 전쟁을 멈춘 10분, 그는 조선의 얼굴이었다.

러시아 극동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1937년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로 옮겨갔으며 소련군 장교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베를린 공방전에 참전했다. 1946년 조선 북부로 파견되어 김일성의 측근으로 부상했고, 한국전쟁 발발 후 인민군 총참모장을 맡았다. 1951년부터 2년간 판문점 휴전회담 공산측 수석대표로서 협상을 이끌었고 1953년 7월 27일 조선인민군 대표로 정전협정에 서명해 전 세계에 조선의 얼굴로 알려졌다. 전후 외무상·부수상을 지내며 소련파 고려인 동료들이 숙청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았으나, 1976년 원인 불명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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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1946소련에서 교사·교육 공무원으로 근무, 소련군 대위로 독소전 참전
  • 1946–1950조선 북부 파견, 교육성 부상까지 승진
  • 1950–1953조선인민군 총참모장, 휴전회담 공산측 수석대표
  • 19537월 27일 정전협정 조선인민군 측 서명
  • 1953–1959외무상
  • 1957–1976내각 부수상
  • 1966–1972철도상·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
  • 1972–1976정무원 부총리·국가경공업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