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적 배경

몰도바

6 명

해당 인물

그리고리 이바노비치 코톱스키

Григорий Иванович Котовский
비소련 혁명가 소련 몰도바 1881–1925 ✕ 살해

제정 무법자에서 소비에트 내전 영웅으로 전환한 베사라비아의 붉은 로빈 후드

1917년 5월 오데사 오페라 극장에서 '카르멘' 공연 중 사형수에서 풀려난 코톱스키가 등장하자 관객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는 무대에 올라 혁명 연설을 했고, 경매에 부쳐진 그의 수갑과 족쇄는 1만 루블에 낙찰되었다.

베사라비아 출신 혁명 지휘관. 제정 시기 빈민 편의 약탈자로 명성을 쌓고, 내전에서 붉은 기병대를 이끌며 몰다비아 자치공화국 수립에 기여했다. 생전에 소비에트 민속의 전설이 되었으며 1925년 피살.

상세 이력 보기
  • 1905–1916베사라비아와 오데사에서 무장 강도단 지도자, 반복적 체포·탈옥; 1916년 사형 선고 후 종신형으로 감형
  • 19172월 혁명으로 사면; 루마니아 전선에서 복무, 게오르기 십자훈장 수훈; 좌익 사회혁명당 입당
  • 1918–1919티라스폴 분견대 기병대 지휘, 오데사 소비에트 공화국 방어; 오비디오폴 군사위원, 제45소총사단 제2여단장
  • 1920적기훈장 수훈, 러시아 공산당 입당; 소비에트-폴란드 전선에서 기병여단 지휘
  • 1921제17체르보노예카자크기병사단장; 마흐노·안토노프 봉기 진압 중 중상; 명예혁명무기·두 번째 적기훈장 수훈
  • 1922–1924제2기병군단장; 몰다비아 ASSR 수립 기여; 세 번째 적기훈장 수훈
  • 1924–1925소련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겸 우크라이나·몰다비아 중앙집행위원회 위원;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보리스 다비도비치 캄코프

Борис Давидович Камков
좌익 반대파 소련 몰도바 1885–1938 ✕ 처형

좌파 사회혁명당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이론가, 볼셰비키 연정에서 7월 봉기까지

"혁명적 사건이 벌어지는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도덕적 평가를 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의 자리는 혁명과 함께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 1917년 11월 PLSR 제1차 대회

좌파 사회혁명당(PLSR)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이론가. 볼셰비키와 연정을 구성했으나,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 반대로 1918년 7월 봉기를 주도했다. 진압 후 유배를 거듭하다 1938년 처형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04에스에르 전투조직 가입; 체포되어 투루한스크로 유배
  • 1907해외 탈출, 제네바·파리에서 망명 활동;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부 졸업 (1911)
  • 1915치머발트 국제사회주의 회의 참석; 반전 국제주의자 활동
  • 1917.4–11귀국 후 PLSR 공동 창립;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 상임위원, 국제부장
  • 1917.11제헌의회 의원 선출 (페트로그라드 수도선거구, 에스에르 9번 명부)
  • 1918.4PLSR 중앙위원회 상임간부회 의장으로 선출
  • 1918.7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 반대, 7월 봉기 주도; 진압 후 지하 활동
  • 1920–1937반복적 체포·유배 (첼랴빈스크, 트베리, 보로네시, 아르한겔스크); 경제학자로 생계 유지
  • 1938VKVS에서 사형 선고, 8월 29일 콤무나르카에서 처형; 1992년 사후 복권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라조

Сергей Георгиевич Лазо
군사 · 국방 소비에트 몰도바 1894–1920 ✕ 일본군에 체포되어 화형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세운 볼셰비키 혁명가

홀로 무장해제한 채 러스키섬 사관생도들 앞에 선 라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러시아 땅을 위해 우리는 죽을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몰도바 보야르 가문 출신의 러시아 제국군 장교로 1917년 혁명에 합류하여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이끈 볼셰비키 군사 지도자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자바이칼 전선 사령관으로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백군과 싸웠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지하활동과 유격전을 거쳐 1920년 1월 봉기를 조직해 콜차크의 극동 통치를 무너뜨렸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동료들과 함께 증기기관차 화실에서 불태워졌으며, 소련에서 가장 널리 기념된 내전 순교자 중 한 명이다.

상세 이력 보기
  • 1916제국군 소위 임관, 크라스노야르스크 제15시베리아소총연대 배속
  • 1917크라스노야르스크 소비에트 군인부 의장; 전러시아 소비에트 제1차 대회 대표
  • 1917–1918이르쿠츠크 군사사령관; 첸트로시비리 위원
  • 1918자바이칼(다우리아) 전선 사령관 — 세묘노프 백군 격파
  • 1918–1919블라디보스토크 지하활동; 극동지역당 위원
  • 1919프리모리예 유격대 총사령관
  • 1920블라디보스토크 봉기 조직; 극동임시정부 군사평의회 부의장

이오나 에마누일로비치 야키르

Иона Эммануилович Якир
군사 · 국방 소련 몰도바 1896–1937 ✕ 처형

키예프 군관구를 개혁의 실험실로 바꾼 내전 영웅

체포 후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과 당신에 대한 사랑의 말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썼다. 스탈린은 여백에 '악당이자 매춘부'라고 적었고, 보로실로프는 '완벽히 정확한 정의'라고 덧붙였다.

키시뇨프 유대인 약사 가정에서 태어나, 차르 시대 입학 제한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 내전 중 오데사에서 지토미르까지 적진 400km를 돌파한 전설적 남부집단군 사령관이었다. 이후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으로 기계화·공수 실험과 종심작전 교리 발전을 주도한 군사 개혁의 핵심 인물로, 1935년 콤안다름 1계급이 되었다. 1937년 투하쳅스키 사건으로 총살, 1957년 복권.

상세 이력 보기
  • 1917–1918베사라비아 소비에트 집행위원, 루마니아군에 맞서 붉은 부대 지휘
  • 1918–1919제8군 혁명군사평의회 위원, 남부전선에서 크라스노프 코사크군과 교전
  • 1919제45소총사단장·남부집단군 사령관 — 오데사→지토미르 400km 적후 탈출
  • 1921–1924크림군 사령관,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 우크라이나·크림군 부사령관
  • 1924–1925군사교육기관 총국장, 『보옌니 베스트니크』 편집장
  • 1925–1935우크라이나 군관구 사령관 — 기계화·공수 실험, 독일 참모 교육 이수
  • 1935–1937키예프 군관구 사령관, 국방 군사평의회 위원, 콤안다름 1계급
  • 1937/19575월 체포, 6월 12일 총살, 1957년 사후 복권

이반 이바노비치 보듈

Иван Иванович Бодюл
사회주의권 지도자 소련 몰도바 1918–2013 ○ 자연사

브레즈네프의 측근으로 20년 가까이 몰도바를 통치한 공화국 제1서기

모스크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이온 드루처에 대해, 보듈은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가 고향에 돌아오면 첫 번째 가로등에 목을 매달아주겠다."

몰도바 공산당 제1서기로 20년 가까이 재임한, 소련 공화국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자 중 하나다. 브레즈네프의 측근으로서 농업 공화국이었던 몰도바에 기계제조·전자·식품가공 등 신산업을 도입하고 유럽 최대 규모의 과수원과 축산단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어 억제, 교회 폐쇄 등 강압적 러시아화를 추진했으며, 작가 이온 드루처에게 '고향에 돌아오면 첫 가로등에 매달겠다'고 위협했다. 1980년 소련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전임되었고, 퇴임 후인 2003년 몰도바 공화국 훈장 수여는 작가 8명의 훈장 반납을 촉발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7–1938콜호즈 수석 농업기사
  • 1942–1946붉은군대 수의장교 (제127근위포병연대 → 제59근위소총사단 → 제10근위소총군단)
  • 1946–1951몰도바 SSR 각료회의 농업 담당 보좌관·감사관
  • 1951–1956키시뇨프·볼론티롭카·올라네슈티 지역당위 제1서기
  • 1956–1959CPSU 중앙위 고등당학교 수료 후 중앙위 조직당업무부 지도원
  • 1959–1961몰도바 공산당 중앙위 제2서기
  • 1961–1980몰도바 공산당 중앙위 제1서기
  • 1980–1985소비에트연방 각료회의 부의장

발렌틴 보듈

Valentin Bodiul
경제 운영 몰도바 몰도바인 1951–2020 ○ 코로나19로 사망

반알코올 캠페인 당시 포도밭 파괴를 증언한 크리코바 와인 공장장

'주말마다 도끼를 들고 나가 포도나무를 베도록 강요받았고', 포도밭을 지키려 한 이들은 '14~15년형을 받았다.'

몰도바의 와인 기술자이자 기업인으로, 1987년부터 2016년까지 29년간 크리코바 와인 콤비나트의 총책임자를 지냈다. 반알코올 캠페인 당시 수석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노동자들이 주말에 도끼로 포도나무를 베도록 강요받았고, 포도밭을 지키려 한 이들은 14~15년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73슨제레이 와인 공장 기술자
  • 1974–1975드러게네슈티 와인 공장장
  • 1975–1978슨제레이(라조프스키) 구 콤소몰 지구위원회
  • 1978–1983몰도바 콤소몰 중앙위원회 총무과장
  • 1983–1985몰도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지도검열원
  • 1985–1987크리코바 와인 공장 수석 엔지니어
  • 1987–2016크리코바 와인 콤비나트 총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