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무장해제한 채 러스키섬 사관생도들 앞에 선 라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러시아 땅을 위해 우리는 죽을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몰도바 보야르 가문 출신의 러시아 제국군 장교로 1917년 혁명에 합류하여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이끈 볼셰비키 군사 지도자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자바이칼 전선 사령관으로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백군과 싸웠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지하활동과 유격전을 거쳐 1920년 1월 봉기를 조직해 콜차크의 극동 통치를 무너뜨렸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동료들과 함께 증기기관차 화실에서 불태워졌으며, 소련에서 가장 널리 기념된 내전 순교자 중 한 명이다.
체포 후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과 당신에 대한 사랑의 말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썼다. 스탈린은 여백에 '악당이자 매춘부'라고 적었고, 보로실로프는 '완벽히 정확한 정의'라고 덧붙였다.
키시뇨프 유대인 약사 가정에서 태어나, 차르 시대 입학 제한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1917년 볼셰비키에 입당, 내전 중 오데사에서 지토미르까지 적진 400km를 돌파한 전설적 남부집단군 사령관이었다. 이후 키예프 군관구 사령관으로 기계화·공수 실험과 종심작전 교리 발전을 주도한 군사 개혁의 핵심 인물로, 1935년 콤안다름 1계급이 되었다. 1937년 투하쳅스키 사건으로 총살, 1957년 복권.
모스크바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작가 이온 드루처에 대해, 보듈은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가 고향에 돌아오면 첫 번째 가로등에 목을 매달아주겠다."
몰도바 공산당 제1서기로 20년 가까이 재임한, 소련 공화국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자 중 하나다. 브레즈네프의 측근으로서 농업 공화국이었던 몰도바에 기계제조·전자·식품가공 등 신산업을 도입하고 유럽 최대 규모의 과수원과 축산단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루마니아어 억제, 교회 폐쇄 등 강압적 러시아화를 추진했으며, 작가 이온 드루처에게 '고향에 돌아오면 첫 가로등에 매달겠다'고 위협했다. 1980년 소련 각료회의 부의장으로 전임되었고, 퇴임 후인 2003년 몰도바 공화국 훈장 수여는 작가 8명의 훈장 반납을 촉발했다.
'주말마다 도끼를 들고 나가 포도나무를 베도록 강요받았고', 포도밭을 지키려 한 이들은 '14~15년형을 받았다.'
몰도바의 와인 기술자이자 기업인으로, 1987년부터 2016년까지 29년간 크리코바 와인 콤비나트의 총책임자를 지냈다. 반알코올 캠페인 당시 수석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노동자들이 주말에 도끼로 포도나무를 베도록 강요받았고, 포도밭을 지키려 한 이들은 14~15년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