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국가적 배경

쿠바

5 명

해당 인물

폴 라파르그

Paul Lafargue
비소련 혁명가 프랑스 쿠바 1842–1911 ✕ 자살

『게으를 권리』를 쓴 마르크스의 사위,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 국회의원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나는 무자비한 노년이 내게서 모든 즐거움을 하나씩 빼앗아 가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 유서, 1911년 11월 25일

쿠바 출생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쥘 게드와 프랑스 노동자당(POF)을 창당했으며, 경제결정론을 역사적 방법론으로 체계화했다. 말년에는 장 조레스의 개혁주의에 맞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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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4–1865파리에서 의학 공부, 프루동주의 무정부주의자로 제1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가입
  • 1866–1868런던으로 이주, 마르크스 가문과 교류; 제1인터내셔널 총평의회 위원, 스페인 담당 서기
  • 1868카를 마르크스의 둘째 딸 라우라 마르크스와 결혼
  • 1871–1872파리코뮌 탄압 후 스페인 마드리드로 망명, 『라 에만시파시온』으로 마르크스주의 선전, 아나키스트와 투쟁
  • 1880쥘 게드와 프랑스 노동자당(POF) 공동 창당; 『게으를 권리』 초고를 『레갈리테』에 연재
  • 1882–1891파리로 귀환, POF 이론가로 활동; 파업·선거 투쟁 주도하며 수차례 투옥
  • 1891릴 선거구에서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 하원의원 당선 — 수감 중 선거운동
  • 1890s–1905조레스의 개혁주의와 논쟁하며 정통 마르크스주의 수호; 『경제결정론』, 『소유의 기원』 등 주요 저작 출간
  • 1908–1911툴루즈 통일대회 참석 후 정계 은퇴; 회고록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나의 추억』 집필

풀헨시오 바티스타

Fulgencio Batista
반혁명 세력 쿠바 쿠바인 1901–1973 → 혁명으로 축출 · 망명

선거와 군부 사이에서 권력을 전환한 쿠바 지배자

1959년 1월 1일, 반군이 수도로 진격하자 바티스타는 대통령직을 버리고 쿠바를 떠났다.

풀헨시오 바티스타는 가난한 농촌 출신의 군인·정치가로, 1933년 하사관 반란 뒤 쿠바 정치를 좌우했다. 1940년에는 새 헌법 아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사회개혁과 연합국 지원을 추진했지만, 1952년 선거 패배가 예상되자 쿠데타로 권력을 되찾았다. 그의 두 번째 통치는 헌정과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미국 자본 및 하바나의 조직범죄와 결탁한 권위주의 정권이었으며, 불평등과 탄압은 무장 저항을 키웠다. 1959년 쿠바 혁명으로 축출된 그의 망명은 이후 미·쿠바 대립이 심화되는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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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쿠바 육군 사병
  • 1923–1933농촌경비대 속기사 하사
  • 1933–1940쿠바 육군 참모총장, 실권자
  • 1940–1944쿠바 헌정 대통령
  • 1948–1952쿠바 상원의원
  • 1952–1959쿠바 대통령, 군사독재자
  • 1959–1973망명 생활, 포르투갈·스페인

훌리오 안토니오 메야

Julio Antonio Mella
비소련 혁명가 쿠바 쿠바 1903–1929 ✕ 암살

25세에 암살된 쿠바 공산당의 학생 창립자, 반제국주의 순교자

1928년 12월, 멕시코시티의 격렬한 당 회의에서 비탈리가 메야에게 소리쳤다 — "잊지 마라: 인터내셔널에서 나가는 길은 둘뿐이다, 제명되거나 죽거나!" 한 달 후 메야는 거리에서 암살당했다.

쿠바 공산당을 공동 창립한 학생운동 지도자로, 아바나 대학에서 반제국주의 학생투쟁을 조직하고 카를로스 발리뇨와 함께 1925년 쿠바 최초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을 세웠다. 마차도 독재에 쫓겨 멕시코로 망명한 후에도 혁명운동을 이어가다 1929년 25세의 나이로 암살당했으며, 쿠바 혁명 좌파의 상징적 순교자로 카스트로 세대에게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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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아바나 대학 법학부 입학 — FEU 공동 창립, 서기 역임
  • 1923FEU 회장 취임 — 제1차 전국학생대회 주최, 호세 마르티 인민대학 설립
  • 1924아바나 공산주의 그룹 가입, 반제국주의 동맹 쿠바 지부 결성
  • 1925카를로스 발리뇨와 함께 쿠바 공산당 창당 — 중앙위원; 체포 후 18일 단식투쟁
  • 1926대학 제적, 당에서 2년간 제명 — 온두라스·과테말라 거쳐 멕시코시티로 망명
  • 1926–1927쿠바 혁명적 망명자 협회(ANERC) 창립 — 『쿠바 리브레』 등에 기고
  • 1927브뤼셀 식민지 억압 반대 세계대회 참석 — 모스크바에서 국제노조인터내셔널 4차 대회 참관
  • 19291월 10일 멕시코시티에서 귀가 중 총격 암살 — 향년 25세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사회주의권 지도자 쿠바 쿠바 1926–2016 ○ 자연사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47년간 제국주의에 맞선 지도자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 몬카다 재판 변론(1953)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 혁명가. 몬카다 병영 습격으로 바티스타 독재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고, 1959년 게릴라전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47년간 미국의 봉쇄와 압력 속에서도 사회주의 쿠바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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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몬카다 병영 공격 —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 1954법정 최후진술을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로 비밀 출간
  • 1956–1959그란마 호 상륙, 시에라마에스트라 게릴라전
  • 1959바티스타 정권 전복 — 혁명정부 수립
  • 1961–1962피그스만 격퇴, 미사일 위기
  • 1976–2008국가평의회 의장
  • 2008–2016라울에게 이양, 2016년 사망

라울 카스트로

Raúl Castro
사회주의권 지도자 쿠바 쿠바 1931– ○ 생존 (정치 은퇴)

몬카다에서 대통령까지, 반세기 동안 쿠바 혁명의 2인자로 군림한 조직자

피델은 대체 불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그를 대체하지 않는 한.” — 대학생 연설, 2006년

7·26 운동 창립 멤버로 몬카다 병영 습격(1953)과 그란마 상륙에 참가했으며, 프랑크 파이스 동부전선 사령관으로서 오리엔테에 게릴라 해방구를 건설한 쿠바 혁명의 핵심 지휘관. 1959년부터 2008년까지 혁명무력부 장관을 지내며 현대 국가 사상 최장기 국방장관을 기록했고, 쿠바의 군사·보안 기구를 구축하고 공산당 제도화를 주도했다. 2008년 형 피델의 뒤를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과 2011년 당 제1서기에 취임, 신중한 시장 개혁을 추진하며 2018년과 2021년 차례로 퇴진하기까지 반세기 넘게 쿠바 혁명의 없어서는 안 될 2인자로 군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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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몬카다 병영 습격 참가 — 13년형, 22개월 복역
  • 1956그란마 호 상륙 — 시에라마에스트라 게릴라전
  • 1958사령관 승진, 프랑크 파이스 동부전선 개척
  • 1959–2008혁명무력부(MINFAR) 장관 — 사상 최장기 국방장관
  • 2006–2008피델 투병 중 권한대행
  • 2008–2018국가평의회 의장 겸 각료회의 의장
  • 2011–2021쿠바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 2021당 제1서기 퇴임 — 정치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