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파보네

Claudio Pavone
이탈리아 이탈리아인 1920–2016 ○ 자연사

저항의 도덕과 전쟁의 복합성을 해명한 역사가

『내전』에서 그는 저항을 애국전쟁이면서 내전이고 계급전쟁인 투쟁으로 분석했다.

클라우디오 파보네는 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기록관리자로, 파시즘과 저항, 국가기구의 연속성을 연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지스탕스에 참여한 경험은 그의 역사 인식과 연구 주제에 깊이 반영되었다. 대표작 『내전』은 1943~1945년의 투쟁을 애국전쟁, 이탈리아인 사이의 내전, 계급전쟁이 겹친 과정으로 분석해 저항의 정치적 선택과 도덕적 긴장을 학술 논쟁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국가중앙기록보존소의 정비와 이탈리아 국가기록보존소 안내서 편찬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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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내전’ 범주의 복권과 그 논쟁

파보네의 『내전』이 지닌 학술적 의의는 주로 범주 자체의 복권에 있다. ‘내전’이라는 규정은 1943~1945년 당시에는 파르티잔과 살로 공화국 파시스트 양측이 모두 사용했으나, 전후 반파시즘 진영, 특히 공산주의자들이 점차 이 표현을 밀어내면서 사실상 신파시즘 계열의 논객들만이 쓰는 말이 되었다. 이들은 ‘내전’을 이탈리아인 상호 살육의 책임을 파르티잔에게 돌리는 선전 도구로 삼았다. 그 결과 이탈리아 사학계는 이 시기를 독일 침략자에 맞선 ‘해방전쟁’으로만 서술하고, 파르티잔 투쟁의 애국적 성격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파보네는 1985년 학계에서 오랜 만에 ‘내전’ 범주를 다시 제기했고, 1991년 저서에서 이를 분석의 중심에 놓았다. 그는 이 개념이 어느 한쪽 진영의 선전물이 아니라,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 사이의 충돌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해석 범주라고 보았다. 저서는 ‘해방전쟁·내전·계급전쟁’이 겹친 과정이라는 분석으로 1943~1945년을 다루었으며, 전투원들의 동기와 행동, 기대와 목표를 중심에 두어 사학의 초점을 정당 노선에서 ‘도덕’으로 옮기려 했다.

이 제기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옛 파르티잔 지휘관 누토 레벨리는 저서를 “저항운동에 쌓여 있던 온갖 수사를 벗겨준 놀라운 작업”이라 칭송하면서도 ‘내전’ 규정은 거부했고, 파르티잔 조르조 보카도 ‘내전’ 개념을 과장이라며 물리쳤다. 반면 비토리오 포아는 ‘내전’을 부정하는 것은 저항운동의 반파시즘적 성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파보네의 테제를 지지했다. 공산주의 파르티잔 출신 줄리오 세니가는 이를 “저항운동의 이상적 가치를 격하하고 왜곡하는 요란하고 부적절한 제목”이라 비판했고, 신파시즘 계열의 조르조 피사노는 “이제 내전을 저쪽이 말하니 나는 더 말하지 않겠다”고 반응했다. 파보네는 이러한 거부 반응 자체를 ‘내전’이라는 말이 전후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읽었다. 그는 팔미로 토글리아티의 1944~1955년 저작집에 ‘내전’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망각’의 흔적을 찾았고, 1946년의 사면 조치가 오히려 1945년 4월 25일 이후까지 이어진 내전의 현실을 전제했다고 지적했다. 이 논쟁은 이후 이탈리아 사학과 역사 대중화 전반에서 ‘내전’ 규정이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역사의 공적 이용을 둘러싼 이념 대립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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