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6월 봉기 때 생탕투안 바리케이드에 올라 중재하려다 총에 맞아 숨진 파리 대주교
1793년 생롬드타른에서 태어나 생쉴피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818년 사제가 되었다. 뤼송과 아미앵, 파리 교구의 총대리를 지냈고, 1840년 파리 대주교가 되었다. 루이 필리프 정부에 비판적이었으나 1848년 제2공화국을 받아들였고, 정치에 나서기보다 노동자 지구에 새 본당을 열고 신학 교육을 다시 세우는 데 힘썼다. 1848년 6월 국립작업장 폐쇄에 맞선 봉기를 카베냐크가 무력으로 짓밟자, 6월 25일 카베냐크의 경고를 무릅쓰고 평화의 표시로 푸른 나뭇가지를 들고 포부르 생탕투안 입구의 바리케이드에 올랐다.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총격이 오갔고 그는 빗나간 총탄에 맞아 6월 27일 숨졌다. 총탄을 쏜 쪽이 봉기자인지 정부군인지는 지금도 주장이 엇갈린다.
다른 이름: 드니오귀스트 아프르
주요 활동과 소속
-
1818–1848
가톨릭교회파리 대주교대표
종교
경력 연표
- 1818사제 서품
- 1823–1839뤼송·아미앵·파리 교구 총대리
- 1840–1848파리 대주교
- 18486월 봉기 중 바리케이드에서 피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