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의 보안 총독
1937년 8월 11일, 예조프가 류시코프의 전보를 스탈린에게 전달하자, 스탈린은 여백에 직접 써넣었다. "데리바스를 체포해야 할 것이다. 스탈린." 몰로토프와 보로실로프가 '찬성'을 덧붙였고, 데리바스는 다음 날 체포되었다.
볼셰비키 체키스트 출신으로 1929년부터 극동 OGPU-NKVD 전권대표를 맡아 대일 방첩 작전과 BAM 강제노동 건설을 지휘했다. 8년간 '극동의 총독'으로 불렸으나 대숙청에 휩쓸려 1938년 처형됐다.
경력 연표
- 1923–1927GPU·OGPU 비밀국장
- 1927–1929OGPU 비밀작전총국 제1부국장
- 1929–1934극동변경주 주재 OGPU 전권대표
- 1933–1934BAM 건설 책임자
- 1934–1937극동변경주 NKVD 관리국장 겸 극동군 특별부장
- 1937–1938체포,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마키-미라주 작전
1930년대 소련 극동에서 전개된 대일(對日) 방첩 작전으로, 데리바스가 총괄 기획과 지휘를 맡았다. 일본은 1920년대 중반부터 북만주와 소련 국경에 첩보망을 구축하고 극동 침공을 준비했으나, 소련은 내전 직후라 극동 방어 병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데리바스 휘하의 OGPU 극동 기관은 일본군의 공격 의지를 꺾기 위해 소련 방어력이 압도적이라는 허상을 심어주기로 했다.
작전의 핵심은 이중간첩 라자리 이즈라일렙스키(위장명 레오니트 오스트롭스키, 암호명 '레토프')였다. 사할랸(헤이허)의 일본 영사관 주변에서 영세 무역상으로 위장한 그는 일부러 일본 헌병대의 주목을 끌었고, 1924년 주사할랸 일본 정보 책임자 구마자와 사다이치로에게 포섭되었다. 이후 13년간 이즈라일렙스키는 정교하게 조작된 소련군 배치 정보를 일본 측에 흘렸다.
1934년 작전의 정점으로서 '대특파원'이라는 가공의 소련 고급장교를 창조해 「극동군 소총대대 편제 및 병력 수에 관하여」라는 가짜 보고서를 일본 측에 전달했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일본 참모본부가 소련 극동군 전력을 추산한 결과, 공격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전은 1937년까지 지속되었고, 관동군은 독소전 기간 내내 소련 극동에 대한 전면 공격을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숙청은 작전을 비극으로 끝냈다. 공동 입안자 보리스 보그다노프, 블라디미르 네이만, 니콜라이 실로프는 1938년 '일본 간첩' 혐의로 처형되었고, 이즈라일렙스키도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았다. 데리바스 자신도 작전을 지휘한 지 1년 만에 같은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 작전의 전모는 2000년대 초 하바롭스크 FSB 관리국이 비밀해제하면서 비로소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