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체제 초의 국방장관
1968년 8월 18일,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최종 결정한 정치국 회의에서 그레치코는 '이 침공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더라도 감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병대 사병으로 남북전쟁에 뛰어든 후 정규 군사교육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서 카프카스 방어·키예프 해방·프라하 진격을 지휘한 야전 지휘관이었다. 1967년 소련 국방장관에 올라 사망할 때까지 소련군 사상 최대 규모의 재래식 증강을 주도했으며, 1968년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직접 기획하고 집행한 핵심 책임자였다. 1973년에는 정치국 정위원으로 선출되어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도화했다.
경력 연표
- 1941–1945독소전에서 군·전선 지휘관으로 성장, 카프카스와 우크라이나 작전 지휘
- 1953–1957동독 주둔 소련군 총사령관
- 1957–1960지상군 총사령관
- 1960–1967바르샤바조약군 총사령관
- 1967–1976국방장관, 브레즈네프 시대 군사력 확대를 대표
관련 역사 사건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과 프라하의 봄 진압
1967년 4월 국방장관에 취임한 그레치코는 이듬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주도한 '프라하의 봄' 개혁 운동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그는 1968년 8월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작전명 '다뉴브')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한 핵심 인물이었다. 침공을 결정하는 정치국 회의에서 그레치코는 '이 침공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더라도 감행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휘하 지휘관들에게 '체코슬로바키아는 우방국이다. 우리는 형제들에게 가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침공을 정당화했다. 1968년 8월 20일 밤, 소련·폴란드·헝가리·불가리아·동독 5개국 연합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전격 점령했고, 둡체크의 개혁 노선은 분쇄되었다. 그레치코는 침공 이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196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 아이스하키팀이 세계선수권에서 소련을 꺾자 프라하 거리에서 터져 나온 시민들의 환호를 '반혁명적 시위'로 규정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방장관 마르틴 주르를 소환해 격렬히 항의하며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