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과 반공을 앞세운 8월 4일 독재자
“그렇다면 전쟁이다.”
그리스의 군인 출신 정치가로, 왕정과 반의회주의를 결합한 권위주의적 국가 질서를 추구했다. 1936년 국왕 게오르기오스 2세의 지지로 의회를 정지하고 8월 4일 체제를 세워 정당과 파업을 금지하고 좌파를 탄압했다. 동시에 국가 개입과 청년 조직을 통해 사회를 동원하려 했으며, 그의 체제는 파시즘과 권위주의적 보수 독재의 성격을 함께 지닌 것으로 논쟁되어 왔다. 1940년 이탈리아의 최후통첩을 거부해 전쟁을 이끌었지만, 1941년 독일 침공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다른 이름: 요안니스 메탁사스 · 이오안니스 메탁사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6–1941 정부·행정 · 그리스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890그리스 육군 공병 소위
- 1899–1903베를린 전쟁대학 유학
- 1910–1912육군장관 겸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의 부관
- 1912–1913발칸 전쟁 작전참모 및 런던 회의 군사고문
- 1922–1936자유사상당 창당 및 국회의원
- 1926–1928알렉산드로스 자이미스 내각 교통장관
- 1932–1933파나기스 찰다리스 내무장관
- 1936–1941그리스 총리, 8월 4일 체제 지도자
관련 역사 사건
북부 국경 요새화와 1940~41년 전쟁
메탁사스는 집권 후 북부 국경의 방어선 구축을 밀어붙였다. 불가리아의 재무장에 대비해 그리스-불가리아 국경을 따라 지은 이 요새선은 그의 이름을 따 메탁사스 선으로 불렸고, 관측소와 포좌, 기관총 진지로 이어지는 터널들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계획은 1935년에 세워졌고 1936년 케르키니에서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원래 노선을 오르메니온까지 연장하려던 계획은 1940년 그리스가 전쟁에 휘말리면서 완성되지 못했다. 전쟁 발발 당시 요새선은 트라키아의 코모티니까지 155km에 이르렀고, 21개의 독립 요새 복합체 가운데 최대 규모인 루펠 요새는 6.1km 구간을 차지했다.
1940년 10월 28일 밤, 이탈리아 대사 에마누엘레 그라치는 메탁사스의 자택을 찾아 전략 거점의 점령권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메탁사스는 외교 언어인 프랑스어로 그렇다면 전쟁이다(Alors, c'est la guerre)라고 맞받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이탈리아군이 알바니아 방면에서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그리스-이탈리아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스군은 방어에 성공한 뒤 반격으로 이탈리아군을 밀어내고 북부 이피로스로 불리던 남부 알바니아의 넓은 지역을 점령했다. 그러나 메탁사스는 1941년 4월 독일의 그리스 침공을 보지 못했다. 그는 같은 해 1월 29일 키피시아 자택에서 사망했으며, 사인으로는 후두암, 후두 농양, 인두 봉소염으로 인한 불치의 독혈증 등이 거론되어 왔다.
그의 요새선은 그의 사후에 시험대에 올랐다. 1941년 4월 6일 새벽 독일 제18산악군단과 제30군단이 메탁사스 선을 공격했으나, 콘스탄티노스 바코풀로스 준장의 지휘 아래 그리스군은 사흘간 격렬히 저항했다. 다만 요새선은 트라키아 서부의 루펠 요새 동쪽으로 155km 방어선에 머물렀고, 대부분의 그리스군은 알바니아 전선에서 이탈리아군과 교전 중이어서 수비 병력은 적었다. 독일군은 유고슬라비아 방면으로 우회해 4월 9일 테살로니키를 점령했고, 이에 따라 동부 마케도니아 집단군이 항복하면서 요새선 전투도 끝났다. 메탁사스 선을 공격한 빌헬름 리스트 독일 장군은 그리스 병사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해 무기를 넘기면 전쟁기를 가진 채 부대를 떠날 수 있도록 했고, 자기 부하들에게 그리스 병사들에게 경례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