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온 안토네스쿠

Ion Antonescu

루마니아를 추축국의 대소 전쟁에 몰아넣고 트란스니스트리아의 학살을 명령한 「지도자」, 1946년 질라바에서 처형되다

1944년 8월 23일 오후, 왕궁에 불려온 안토네스쿠가 국왕의 즉각 휴전 요구를 거부하자 미하이는 미리 정한 신호로 경비병을 불러 그를 체포했다. 그날 밤 국왕의 라디오 연설이 휴전을 알렸고, 루마니아군은 독일군에게 총구를 돌렸다.

피테슈티의 군인 집안에서 태어난 기병 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로 머러셰슈티 방어전 계획에 참여했고 파리·런던 주재 군사 담당관과 1933~34년 참모총장을 지냈다. 1937~38년 고가 정부의 국방장관을 맡았으나 카롤 2세와 대립해 1940년 비스트리차 수도원에 연금되었다. 1940년 여름 베사라비아·북트란실바니아 상실로 왕정이 흔들리자 9월 4일 전권을 가진 총리가 되어 이틀 뒤 카롤 2세를 퇴위시키고 스스로 「지도자」를 칭했으며, 철위단과 함께 국민군단국가를 세웠다가 1941년 1월 군단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1940년 11월 삼국동맹에 가입하고 1941년 6월 독일과 함께 소련을 침공해 베사라비아와 북부 부코비나를 되찾고 드네스트르 너머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점령했다. 이아시 포그롬과 오데사 학살, 트란스니스트리아로의 강제 이송으로 루마니아 관할에서 28만에서 38만에 이르는 유대인과 1만 명이 넘는 로마인이 죽었다고 2004년 비젤 위원회는 결론지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두 개 군을 잃은 뒤 강화의 길을 찾았으나 1944년 8월 23일 미하이 국왕에게 체포되어 소련으로 넘겨졌고, 1946년 5월 부쿠레슈티 인민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6월 1일 질라바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44년 8월 23일 쿠데타와 체포

1943년 스탈린그라드에서 루마니아 제3·4군이 궤멸한 뒤 안토네스쿠는 서방 연합국과의 별도 강화를 모색했으나, 연합국은 소련과의 정전협정을 선행 조건으로 요구했고 그는 이를 거부했다. 1944년 봄 붉은 군대가 드네스트르 강을 돌파하고 부쿠레슈티에 대한 연합군 폭격이 이어지자, 국민농민당·국민자유당·사회민주당·루마니아 공산당은 6월 국민민주블록으로 결집했다. 공산당 측 음모의 중심인물은 에밀 보드너라슈와 루크레치우 퍼트러슈카누였고, 6월 13~14일 밤 카레아 모쇼릴로 103번지에서 미하이 국왕 측근들과 첫 접촉이 이루어졌다. 왕 측은 독일 대사 킬링거와의 교섭안을 내놓았으나 공산당은 나치와 게슈타포에 계획을 노출시킬 위험을 들어 이를 위험하고 순진한 방책으로 일축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국왕이 총사령관으로서 독일에 무기를 돌리고 안토네스쿠를 궁으로 불러 연합국과의 정전협정에 서명하게 하며 거부하면 즉석에서 체포한다는 구상이었고, 이는 군부 대표들과 왕의 고문들의 동의를 얻어 국왕의 승인을 받았다.

8월 23일 국왕은 안토네스쿠와 외무장관 미하이 안토네스쿠(혈족이 아님), 콘스탄틴 서너테스쿠 장군을 불렀다. 한 시간가량 이어진 담담한 대화에서 안토네스쿠는 전선 상황을 보고했고, 국왕이 전쟁에서 이탈해 연합국 및 소련과 정전협정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자 그는 독일이 협정을 무효화할 것이라며 소련과의 정전협정에 특히 반대하며 서명을 거부했다. 국왕이 즉석에서 조치를 명하면서 대령 한 명과 병사 네 명이 들어와 총리를 체포했고, 그날 밤 10시 국왕은 라디오 방송으로 안토네스쿠의 축출과 연합국 및 소련과의 정전협정 수용을 선포했다. 국왕은 군에 독일의 공격을 방어하도록 명령하고 루마니아군을 연합국 편에 세우겠다고 제의했다. 새 총리 서너테스쿠는 안토네스쿠를 공산당 활동가들에게 인계했고, 그는 1944년 9월 1일 소련 측에 넘겨져 모스크바로 이송되어 부총리 미하이 안토네스쿠,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 게오르게 알렉시아누, 국방장관 콘스탄틴 판타지, 헌병대 사령관 콘스탄틴 바실리우, 부쿠레슈티 경찰국장 미르체아 엘레프테레스쿠와 함께 SMERSH의 감시 아래 놓였다. 1945년 5월 독일 항복 직후 이들은 루뱐카 감옥으로 옮겨져 심문을 받았고, 1946년 봄 부쿠레슈티로 송환되어 질라바 감옥에 수감되었다. 쿠데타는 연합국의 즉각적인 승인이 없이는 불완전한 조치여서, 1944년 9월 12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소련은 루마니아를 여전히 적국으로 취급하며 약 14만 명의 루마니아군 포로를 잡았고 그중 13만 명가량이 소련 영내 수용소로 끌려가 많은 이들이 죽었다. 같은 날 서명된 협정 제14조에 따라 루마니아 인민법정 두 곳이 설치되어 전쟁범죄 혐의자를 재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