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 의회 의장 지낸 사회당 우파, 네그린 정부 전복하고도 마드리드에 남았다
「대다수, 민중은 떠날 수 없습니다. 나는 늘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왔고, 그들과 함께 남을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입니다」, 사회당 기관지 《라 보스》에, 1939년 3월
마드리드 대학 철학 교수로 출발해 1925년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뒤를 이어 사회당(PSOE)과 UGT를 이끈 마르크스주의 수정파였다. 제2공화국 제헌의회 의장(1931)을 지내며 온건한 의회주의 노선을 고수했고, 1934년 10월 무장봉기에 반대하며 당내 주류에서 밀려났다. 내전 발발 후에도 마드리드에 남아 평화 협상을 모색했고, 1939년 3월 카사도 대령의 네그린 전복에 합류해 국방평의회 외무담당이 되었으나 프랑코는 무조건 항복만을 받아들였다. 다른 평의회 구성원들이 망명하는 날에도 홀로 마드리드에 남아 '노동자들과 늘 함께 살아왔으니 그들의 운명을 함께하겠다'고 말했고, 프랑코 군사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아 카르모나 감옥에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912PSOE·UGT 입당; 마드리드 대학 논리학 교수 임용
- 1917혁명적 총파업 위원회 참여, 종신형 선고 후 1918년 사면
- 1925–1931PSOE·UGT 의장;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에 협조 노선
- 1931–1933제2공화국 제헌의회 의장
- 193410월 무장봉기에 반대, UGT 의장 사임
- 1937.05조지 6세 대관식 공화국 대표로 런던 방문, 이든과 평화 중재 모색
- 1939.03카사도 쿠데타 합류, 국방평의회 외무담당
- 1939.03–1940.09프랑코군에 체포, 군사재판서 30년형 선고, 카르모나 감옥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