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샤를 앙투안 드제

Louis Charles Antoine Desaix
프랑스 제1공화국 국가기관 프랑스 프랑스 1768–1800 ✕ 마렝고에서 전사

프랑스 혁명 전쟁의 장군, 마렝고에서 전사한 지휘관

1800년 3월 유럽으로 돌아와 이탈리아 방면군에 배속되었고, 6월 14일 마렝고에서 오스트리아군이 우세하던 시점에 도착해 세 연대를 적 중앙에 투입했다. 승리 직전에 총탄에 맞아 죽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의 장군이다. 1768년 오베르뉴의 아야쉬르시울에서 태어나 에피아 사관학교에서 교육받고 왕립군에서 복무했다. 1792년 가족 대부분이 이민했으나 그는 이를 거부하고 라인군에 들어갔으며, 라우터부르크 전투의 공로로 준장이 되었다. 라인군과 1795~1796년 원정에서 복무하며 모로의 퇴각을 엄호했고, 잉글랜드 방면군 사령관을 지냈다. 이집트 원정에서는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의 공격을 맞았고 상이집트 원정으로 현지 주민에게 ‘정의의 술탄’이라 불렸다. 1800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마렝고에서 부데 사단과 함께 반격을 이끌었고 승리 직전에 전사했다. 프랑스 혁명 전쟁의 위대한 장군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다른 이름: 드제 드 베구 · 정의의 술탄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마렝고 전사와 사망 경위를 둘러싼 엇갈린 기록

1800년 6월 14일 드제가 마렝고에서 전사했다는 사실은 사료가 일치하지만,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록마다 엇갈린다. 프랑스어 위키백과는 그가 돌격 도중 심장을 관통한 총탄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적으면서, 그가 후방에서 들린 포성 때문에 되돌아왔는지 반대 명령을 받고 돌아왔는지는 양쪽 모두 지지자가 있다고 밝힌다. 영어판은 그가 승리의 순간 머스킷 총탄에 맞아 죽었다고만 서술한다.

사망 정황에 대한 당대와 후대의 서술은 더 분분하다. 프랑스어판은 발터 스콧이 머리에 맞은 총탄으로, 《성헬레나 회상록》이 포탄으로, 나폴레옹의 회고록이 심장에 맞은 총탄으로 각각 죽였다고 전하는가 하면, 마티유 뒤마 장군과 그의 추도사를 쓴 시몽 데프레오, 시신을 방부 처리한 데카이롤은 가슴에 맞은 총상으로 죽였다고 전한다. 그가 죽으며 제1통령에게 자신이 후세에 남을 만큼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는 말도 확정된 것이 아니다. 데카이롤은 그가 아무 목격자도 없이 쓰러졌다고 단언했고, 목격자였던 부리엔은 너무 큰 혼란 속에서 죽음의 정황이 확인될 수 없었다고 증언했으며, 프랑스어판은 그가 말을 할 수 있었는지, 그 말을 받아 적을 수 있었는지 스스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엇갈림은 드제의 죽음이 곧바로 전설로 가공되었기 때문에 생겼다. 마렝고의 승리는 나폴레옹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했고, 드제의 전사는 그 승리에 바쳐진 인물의 죽음으로 기념되었다. 1983년 클레르몽페랑 미술관 전시회는 드제를 ‘자신도 원하지 않은 영웅’으로 제시하고, 그를 둘러싼 전설이 보나파르트에게만 이익이 되는 선전 전술로 정교하게 유지되었다고 평가했다. 사망 경위를 둘러싼 분분한 기록들은 그 전설이 만들어진 과정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