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해방운동의 이데올로그, MPLA 창립자
1977년 5월 27일 분파주의 사건 당시 니투파의 「변론 13개 테제」는 라라를 '사회민주주의자'이자 MPLA의 우경화를 이끈 인물로 비난했다. 이후 대규모 숙청의 책임은 네투의 명령 아래 라라와 이쿠 카헤이라 등에게 귀속된다.
본명 루시우 호드리구 레이테 바헤투 드 라라, 별칭 치웨카. 앙골라의 혁명가·물리수학자이며 MPLA 창립 구성원이자 지도자다. 1955년 앙골라 공산당에 들어갔고 1956년 12월 MPLA 강령에 창립 서명자로 참여해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의 주된 이데올로그가 되었다. 1962년 조직·간부 담당 서기, 1964~65년 사무총장을 지냈다. 1975년 11월 헌법을 공포하고 아고스치뉴 네투를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시켰다. 네투 사망 후 1979년 9월 10~20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고, 2003년 건강상 이유로 정계를 떠났다. 1977년 5월 27일 분파주의 사건 이후의 대규모 숙청 책임은 역사가와 증언자들이 네투의 명령 아래 라라·이쿠 카헤이라 등에게 귀속시킨다.
경력 연표
- 1949–1958리스본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해 1952년 졸업하고, 1954년 코임브라 대학에 들어가 물리화학을 배우다 1958년 학업을 중단했다.
- 1955–1956앙골라 공산당에 입당하고 포르투갈 공산당과 함께 활동했으며, 1956년 12월 MPLA 강령에 창립 서명자로 참여했다.
- 1959정치경찰 PIDE의 추적을 피해 리스본을 떠나 동·서독과 이탈리아, 튀니지, 모로코를 거쳐 코나크리에 MPLA 최초의 해외 사무소를 마련했다.
- 1962–19651962년 12월 제1차 전국회의에서 조직·간부 담당 서기와 중앙위원에 선출되었고, 1964~65년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1964년부터 당의 실질적 2인자였다.
- 1974–19751974년 11월 8일 MPLA 대표단을 이끌고 루안다에 들어갔고, 1975년 11월 10일 헌법을 공포하고 아고스치뉴 네투를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시켰다.
- 1977–19851977년 12월 10일 MPLA 중앙위원회에 재선되어 네투에 이어 정치국 서열 2위 및 당 부총재로서 조직과 이데올로기 부문을 맡았고, 1985년 주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에 의해 정치국에서 제외되어 중앙위원으로 남았다.
- 1979네투 사망 후 9월 10~20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고, 9월 11일 제2차 MPLA 대회를 소집해 9월 20일 주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의 선출을 이끌었다.
- 1975–2003독립 직후부터 2003년까지 앙골라 의회 의원을 지냈고, 2003년 11월 건강상 이유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국방부는 2004년 그를 육군 대장으로 예편시켰으나 본인은 이 계급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