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르멜

Nathalie Le Mel
프랑스 프랑스 1826–1921

프랑스 제본공이자 파리 코뮌의 여성 연합 활동가

브르타뉴 브레스트 출신인 르멜은 파리에서 제본공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1865년 제본공 노동자들의 남녀 동일임금 쟁취에 기여했고, 국제노동자협회에 가입해 외젠 바를랭과 협동조합 식당 라 마르미트를 운영했다. 1871년 파리 코뮌 때 여성 연합의 지도적 활동가로 바리케이드에서 싸웠다. 체포된 뒤 루이즈 미셸과 함께 누벨칼레도니로 유형되었으며 1880년 사면으로 파리로 돌아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여성연합과 노동 조직

르멜은 1871년 4월 13일 결성된 파리 방위와 부상자 구호를 위한 여성연합에서 엘리자베트 드미트리예프와 함께 주요 조직자로 활동했다. 5월 6일 연합 중앙위원회 집행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여성 노동자 호소문에 이름을 올렸으며, 재판 전 심문 기록에 따르면 연합 안에서 사회 문제를 맡았다. 5월 17일자 《관보》는 그녀가 노동자 직종들을 결집하려는 노동 조직 조사·조직 위원회의 집행위원이었다고 기록한다. 이 활동은 그녀가 코뮌 기간 여성의 무장 동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사회적 요구와 직종별 조직화에도 관여했음을 보여준다.\n\n정부군이 파리로 진입한 ‘피의 주간’ 동안 르멜은 바티뇰에서, 이어 피갈 광장에서 부상자를 돌보고 연방군의 저항을 독려했다. 1872년 9월 10일 제4군사재판소는 그녀에게 요새화된 장소로의 유형을 선고했다. 친구들이 그녀를 대신해 사면 청원을 냈지만, 르멜은 1873년 8월 편지에서 본인이 청원하지 않았으며 몰래 낸 청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녀는 1873년 8월 10일 루이즈 미셸 등과 함께 누벨칼레도니로 떠났고, 1879년 사면되어 프랑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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