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빅토로비치 파우케르

Карл Викторович Паукер
소련 러시아 1893–1937 ✕ 처형

스탈린의 경호를 맡은 작전국장

1936년 12월 체카 기념 만찬에서 파우케르는 지노비예프 처형을 재연했다. 두 동료에게 끌려가 무릎 꿇고 "제발 스탈린 동지를 불러주시오!"라 애원했고, 스탈린은 포복절도했다.

렘베르크 출신 유대인 이발사·분장사로, OGPU·NKVD 작전국장과 스탈린 개인 경호 책임자를 지내며 대숙청기 체포·처형을 관장했다. 스탈린의 신임을 받았으나 1937년 암살 모의 혐의로 체포돼 총살됐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탈린과의 관계

파우케르는 1924년부터 스탈린의 개인 경호 책임자를 맡으며 소련 지도부에서 가장 은밀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전직 이발사·분장사였던 그는 스탈린의 면도를 직접 담당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스탈린은 다른 누구도 자신의 목에 면도칼을 대지 못하게 했다.

파우케르는 스탈린의 취향과 습관을 세밀히 연구했다. 알렉산드르 오를로프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스탈린이 키가 더 커 보이길 원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뒤축 안쪽에 굽을 숨긴 특수 구두를 고안했으며, 외투도 항상 발목까지 내려오게 주문했다. 스탈린은 그에게 캐딜락과 링컨 승용차 두 대를 선물했고, 파우케르는 정치국 위원들에게 희귀한 물품과 진미를 공급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는 스탈린의 유머 감각을 자극하는 광대 역할도 겸했다. 유대인 억양을 살린 흉내와 과장된 제스처로 크렘린의 술자리를 이끌었고, 크렘린의 어린이 크리스마스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데드 마로즈' 역을 맡았다. 스탈린의 아들 바실리는 편지로 파우케르에게 잉크를 부탁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고, 조카 키라 알릴루예바는 "파우케르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유대인처럼 아이들을 좋아했고,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신임과 친밀함은 1937년 4월 그가 '스탈린 암살 음모' 혐의로 체포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스탈린은 후일 "파우케르가 얼마나 충성스러워 보였는지... 그런데도 내가 야고다 자리에 임명하지 않자 곧바로 트로츠키주의자에게 붙었다"고 말했다. 8월 14일, 스탈린·몰로토프·즈다노프·예조프가 서명한 '특별 절차' 명령에 따라 파우케르는 루뱐카 지하실에서 총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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