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 초대 총서기를 지내고 국제 중재 운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자유당 하원의원
1828년 페어럼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목수가 되었고, 1852년 런던으로 와서 노동조합 조직가로 이름을 얻었다. 1864년 오저와 함께 세인트마틴 홀 집회를 소집했고, 1865년 인터내셔널 총서기로 뽑혔으나 1867년 여성에게 가입 자격을 주기로 하자 물러났다. 마르크스의 존중을 받았지만 노동자 혁명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1868년 처음 하원에 도전한 때부터 국제 분쟁의 중재를 주장했고, 1885~1895년과 1900년부터 죽을 때까지 해거스턴 선출 자유당 하원의원이었다. 국제의회연맹과 국제중재연맹을 함께 세웠으며 190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07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08년 폐렴으로 죽었다.
다른 이름: 윌리엄 랜들 크리머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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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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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1867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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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1869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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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1908
영국 국가기관하원의원대표
입법·국가 대표 -
1885–1908
입법·국가 대표
경력 연표
- 1864세인트마틴 홀 집회 소집
- 1865–1867인터내셔널 총서기
- 1885–1895해거스턴 선출 하원의원
- 1900–1908해거스턴 선출 하원의원
- 1903노벨 평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