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하우

Richard Howe
영국 국가기관 그레이트브리튼/영국 잉글랜드계 1726–1799 ○ 병사

영국 해군 제독, 1794년 6월 1일 해전의 승리자

1794년 6월 1일, 하우는 해협함대를 지휘하여 곡물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프랑스 함대를 상대해 7척을 나포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영광의 6월 1일’로 불리는 이 해전은 사이트의 프랑스 혁명 전쟁 사건 문서와 직접 연결된다.

영국 왕립해군 장교이자 정치인. 172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하고 7년 전쟁 중 1759년 키브롱 만 해전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 독립 전쟁기에는 북아메리카 방면 해군 사령관 겸 평화위원을 지냈다. 1783년과 1783년 12월부터 1788년까지 해군본부 수석위원을 맡았고,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는 해협함대를 지휘하여 1794년 6월 1일 전투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다. 1797년 스피트헤드 해군 반란에서 진압이 아닌 직접 설득으로 12시간 만에 평화를 회복했다. 1799년 8월 5일 사망했다.

다른 이름: 제1대 하우 백작 리처드 하우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미국 독립 전쟁기의 해군 지휘와 평화 사절 임무

1776년 리처드 하우는 북아메리카 방면 함대 사령관으로서 해안 봉쇄를 맡았으나, 병력 부족과 육군 지원을 위한 함정 차출 때문에 봉쇄는 효과를 내지 못했고 프랑스의 보급품과 군수품이 미국으로 밀수되었다. 그는 식민지 주민에게 동정적이었고, 동생인 육군 장군 윌리엄 하우와 함께 화해를 모색하는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776년 9월 스태튼아일랜드 평화 회의에서 왕실을 대표했지만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 이후 뉴욕 점령 작전과 1777년 필라델피아 작전에서 해군 지원을 제공했으며, 1778년 프랑스 함대와 대치한 뒤 미국 지휘에서 물러났다. 하우 형제가 의회에 요구한 미국에서의 활동에 관한 조사는 1779년 결론 없이 끝났다. 이 경력은 해군 봉쇄와 군사 작전뿐 아니라 전쟁 중 화해 시도가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충돌을 해결하지 못한 과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