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표도로비치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Роман Фёдорович фон Унгерн-Штернберг

몽골을 해방하고 칭기즈 칸 제국의 부활을 꿈꾼 백군의 광신적 군벌

나의 이름은 증오와 공포에 둘러싸여 있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무엇이 역사이고 무엇이 신화인지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러시아 제국의 발트 독일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스스로 칭기즈 칸의 후예임을 믿은 백군 장군. 시베리아에서 그리고리 세묘노프 휘하의 아시아 기병사단을 이끌며 붉은 군대와 싸우다 1920년 몽골로 넘어갔다. 1921년 2월 중국 점령군을 몰아내고 복드 칸의 신정 군주제를 복원시켜 '다르한 호쇼이 친 왕'의 작위를 받았으나, 유대인과 볼셰비키 동조자에 대한 잔혹한 숙청으로 공포 통치를 펼쳤다. 같은 해 8월 몽골인 부대에 붙잡혀 붉은 군대에 넘겨진 뒤 노보니콜라옙스크에서 6시간의 재판 끝에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몽골에서의 권력 장악과 백색 군벌의 패배

운게른은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 지휘관 세묘노프와 함께 활동했지만, 1920년 8월 세묘노프와 결별하고 아시아 기병사단을 이끌고 몽골로 들어갔다. 그해 가을 우르가(오늘날 울란바토르)를 두 차례 공격했다가 패퇴했다.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고 몽골의 자치를 지지한 세력, 특히 복드 칸의 지원을 얻은 뒤 1921년 2월 다시 공격해 중국군을 몰아내고 복드 칸의 군주권을 복원했다. 몽골은 군주국으로 선포되었으며 복드 칸은 운게른에게 다르한 호쇼이 친 왕의 칭호를 내렸다.

그러나 이 군사적 승리는 몽골 독립을 위한 일관된 민족주의 노선과 같지 않았다. 심문 기록에 실린 운게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몽골의 주권을 목표로 삼지 않았고, 몽골을 만주 군주가 이끄는 더 넓은 군주제 질서의 일부로 상상했다. 복드 칸은 그의 대륙 제국 구상에 동의하지 않았다. 운게른의 부대와 비밀경찰은 러시아인과 유대인을 비롯한 주민들을 살해했고, 군 내부의 가혹한 처벌과 폭력은 불만을 키웠다.

1921년 6월 운게른은 시베리아의 반볼셰비키 세력을 지원하려 했으나 적군과 몽골 인민군에 패했다. 적군은 7월 우르가에 진입했다. 러시아 쪽으로 후퇴한 그의 부대에서는 반란과 이탈이 일어났고, 몽골인 병사들은 그에게 협력하기를 거부했다. 운게른은 8월 20일 소련군에 붙잡혀 노보니콜라옙스크(오늘날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재판을 받고 9월 15일 총살되었다. 그의 패배는 몽골에서 백군 군사 개입의 종말을 알렸지만, 몽골의 정치적 미래를 두고 벌어진 투쟁까지 끝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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