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당 의장에서 ‘부르주아’로 몰려 처형된 창당 공신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체포된 그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하루도 못 되어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1919년 몽골인민당 창립에 참여했고, 1921년 혁명 뒤 초대 중앙위원회 의장과 재무장관을 지내며 초기 인민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1922년 총리 보도를 숙청·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제한된 자본주의와 소련 고문 축소를 주장하다 코민테른 좌파와 충돌했고,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부르주아로 몰려 하루 만에 체포·총살됐다. 그 숙청이 당을 비자본주의 노선과 공화국으로 돌려세우는 분수령이 됐다.
다른 이름: 솔린 단잔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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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24
정치·당 지도
- 중앙위원회 의장1921–1924
경력 연표
- 1919‘동(東) 후레’ 그룹 결성, 몽골인민당 창당 참여
- 1920모스크바 방문 대표단으로 레닌 접견
- 1921제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의장 선출 (3–9월)
- 1921–1922재무장관
- 1922보도 총리의 숙청·처형 주도
- 1923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
- 1924제3차 당대회에서 ‘부르주아’로 규탄·처형
관련 역사 사건
1924년 당대회와 처형
1924년 8월 몽골인민당 제3차 대회에서 단잔은 몽골의 독자적 발전 노선을 옹호했다. 몽골 역사사전은 그가 당의 독립성과 국가 발전 노선을 지키려 했다고 설명하며, 대회 도중인 8월 26일에서 27일로 넘어가는 밤 내무기관에 체포됐다고 기록한다. 28일 당대회와 정부의 합동회의는 24시간 안에 사건을 조사하고 형을 집행할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단잔은 재판 판결 없이 ‘혁명 반역’ 혐의로 처형됐다. 이는 단순히 당내 노선 논쟁의 종결이 아니라, 국가적 독립과 발전 방향에 관한 논쟁이 강제력과 사법 절차의 부재 속에서 억압된 사건이었다. 몽골 대법원은 1992년 단잔과 함께 체포된 바바산을 사후에 무죄 복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