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용어 사전영국 보수당

조지 커즌

George Nathaniel Curzon

인도 총독을 지내고 외무장관으로 커즌선과 로잔 조약 협상을 이끈 보수당 정치가

더비셔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이튼과 옥스퍼드를 거쳐 1885년 하원에 들어갔고, 러시아의 인도 위협을 경고하는 여행기를 썼다. 1899~1905년 인도 총독으로 행정 개혁을 폈지만, 1905년 벵골 분할로 민족주의를 갈라놓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재임 중 대기근이 겹쳤다. 1차 세계대전 중 로이드 조지의 전시 내각에 들어갔고, 1919년 10월 외무장관이 되어 소련-폴란드 경계안인 커즌선에 이름을 남겼다. 세브르 조약을 설계했고, 1922년 로잔 회의에서 연합국 수석 협상자로 튀르키예의 국경을 정했다. 1923년 총리 자리를 놓쳤고 1925년 죽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885하원 의원
  • 1899–1905인도 총독
  • 1916전시 내각, 상원 원내대표
  • 1919–1924외무장관
  • 1922–1923로잔 회의 연합국 수석 협상자

네빌 체임벌린

Neville Chamberlain

전쟁을 피하려다 전쟁의 문을 연 유화정책의 설계자

1938년 뮌헨에서 돌아온 그는 협정을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선언했다.

네빌 체임벌린은 전간기 영국의 보수 정치가로, 국내 행정 개혁과 재무 정책을 거쳐 총리가 되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고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려 했지만, 그 전략은 나치 독일의 팽창을 억제하지 못했다.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양도를 받아들인 그의 정부는 소련이 제안한 집단안보 구상에도 충분히 호응하지 않았고, 이 선택은 1939년 외교 위기와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이어진 국제적 조건의 일부가 되었다. 폴란드 침공 뒤 전쟁을 선포했으나 1940년 노르웨이 전투 논쟁 속에서 사임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1–1915버밍엄 시의원, 도시계획위원회 의장
  • 1915버밍엄 시장
  • 1916–1917국가복무국장
  • 1923–1924보건부 장관, 재무장관
  • 1924–1929보건부 장관
  • 1931–1937재무장관
  • 1937–1940영국 총리
  • 1938–1939뮌헨 협정과 대독 유화정책 주도
영국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영국 영국 (영국계·미국계 혼혈) 1874–1965 ○ 뇌졸중

백분율 합의로 유럽을 스탈린과 나눈 영국의 전시 총리

1944년 10월 모스크바 회담에 대한 처칠의 회고록 서술이다. "나는 반쪽짜리 종이에 백분율을 적어 스탈린에게 밀어 보냈다. 스탈린은 푸른 연필로 체크 표시를 해 돌려보냈다." 소련 당국은 1958년 이를 부인했다.

영국의 정치가·군인·저술가. 1874년 블레넘 궁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도·수단·보어전쟁에서 복무한 뒤 1900년 의회에 입성했고, 자유당 정부에서 통상장관·내무장관·해군장관을 지냈으나 갈리폴리 원정 실패로 물러났다. 1924~1929년 재무장관을 지냈고, 1940년 5월 총리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다. 1945년 선거에서 패한 뒤 야당 당수가 되어 1946년 '철의 장막'을 경고했으며, 1951~1955년 다시 총리를 지냈다.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1965년 사망했다. 제국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으며 인도 자치에 반대한 인물로서 평가가 갈린다.

상세 이력 보기
  • 1940–1945연합내각 총리 (제1차)
  • 1951–1955총리 (제2차)
  • 1945–1951야당 당수
  • 1939–1940해군장관
  • 1924–1929재무장관
  • 1911–1915해군장관
  • 1910–1911내무장관
  • 1908–1910통상장관
  • 1921–1922식민지부 장관
  • 1919–1921육군·공군 장관
  • 1917–1919군수장관

앤서니 이든

Anthony Eden

전쟁과 탈식민화의 영국 외교가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네 연합국 외무장관이 본회의 의장을 교대로 맡았고, 이든도 그 의장단에 포함됐다.

앤서니 이든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연맹과 집단안보를 중시한 영국 보수 정치가였다. 그는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부상 속에서 세 차례 외무장관을 지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윈스턴 처칠의 핵심 외교 보좌역으로 소련 및 연합국과의 전후 질서를 협상했다. 1945년 얄타 회담과 샌프란시스코 국제기구회의에서 영국을 대표하며 전후 국제기구 형성에 참여했지만, 총리 재임 중 수에즈 침공을 추진해 영국 제국의 한계와 미국 의존을 드러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5–1919영국 육군 장교, 서부전선 복무
  • 1923–1957워릭·리밍턴 지역 하원의원
  • 1931–1934외무차관
  • 1935–1938외무장관
  • 1940–1945외무장관, 전쟁내각 각료
  • 1945얄타 회담 및 샌프란시스코 회의 영국 대표
  • 1951–1955외무장관
  • 1955–1957영국 총리, 보수당 당수

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

Christopher Montague Woodhouse

저항과 제국의 경계에 선 그리스 전문가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작전 뒤 그는 철수하지 않고 그리스에 남아 저항세력과 카이로를 잇는 사절단을 세웠다.

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는 영국 육군 장교이자 SOE·MI6 요원, 그리스 정치사 연구자였다. 그는 점령기 그리스에서 ELAS와 EDES를 잇는 영국 군사사절단을 조직하고 지휘하며 저항운동과 전후 국가질서 사이의 접점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의 활동은 군사 협력이 영국의 왕정 복귀와 영향권 정책으로 기울 수 있었던 긴장을 보여준다. 훗날 의원과 저술가로서 그리스 현대사를 해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39영국 왕립포병대에 입대
  • 1941크레타 저항조직 지원을 위한 SOE 임무 수행
  • 1942고르고포타모스 작전의 하를링 부대 부지휘관
  • 1942–1943영국 군사사절단에서 ELAS·EDES와 연락
  • 1943–1945그리스 주재 연합군 군사사절단 지휘
  • 1945–1946아테네 영국대사관 2등서기관
  • 1959–1974옥스퍼드 하원의원, 보수당 정부 각료직 수행
  • 1976『그리스를 위한 투쟁』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