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비셔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이튼과 옥스퍼드를 거쳐 1885년 하원에 들어갔고, 러시아의 인도 위협을 경고하는 여행기를 썼다. 1899~1905년 인도 총독으로 행정 개혁을 폈지만, 1905년 벵골 분할로 민족주의를 갈라놓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재임 중 대기근이 겹쳤다. 1차 세계대전 중 로이드 조지의 전시 내각에 들어갔고, 1919년 10월 외무장관이 되어 소련-폴란드 경계안인 커즌선에 이름을 남겼다. 세브르 조약을 설계했고, 1922년 로잔 회의에서 연합국 수석 협상자로 튀르키예의 국경을 정했다. 1923년 총리 자리를 놓쳤고 1925년 죽었다.
네빌 체임벌린은 전간기 영국의 보수 정치가로, 국내 행정 개혁과 재무 정책을 거쳐 총리가 되었다. 그는 독일과의 전쟁을 피하고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려 했지만, 그 전략은 나치 독일의 팽창을 억제하지 못했다. 1938년 뮌헨 협정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양도를 받아들인 그의 정부는 소련이 제안한 집단안보 구상에도 충분히 호응하지 않았고, 이 선택은 1939년 외교 위기와 독소 불가침조약으로 이어진 국제적 조건의 일부가 되었다. 폴란드 침공 뒤 전쟁을 선포했으나 1940년 노르웨이 전투 논쟁 속에서 사임했다.
1944년 10월 모스크바 회담에 대한 처칠의 회고록 서술이다. "나는 반쪽짜리 종이에 백분율을 적어 스탈린에게 밀어 보냈다. 스탈린은 푸른 연필로 체크 표시를 해 돌려보냈다." 소련 당국은 1958년 이를 부인했다.
영국의 정치가·군인·저술가. 1874년 블레넘 궁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도·수단·보어전쟁에서 복무한 뒤 1900년 의회에 입성했고, 자유당 정부에서 통상장관·내무장관·해군장관을 지냈으나 갈리폴리 원정 실패로 물러났다. 1924~1929년 재무장관을 지냈고, 1940년 5월 총리가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다. 1945년 선거에서 패한 뒤 야당 당수가 되어 1946년 '철의 장막'을 경고했으며, 1951~1955년 다시 총리를 지냈다.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1965년 사망했다. 제국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였으며 인도 자치에 반대한 인물로서 평가가 갈린다.
1942년 고르고포타모스 작전 뒤 그는 철수하지 않고 그리스에 남아 저항세력과 카이로를 잇는 사절단을 세웠다.
크리스토퍼 몬터규 우드하우스는 영국 육군 장교이자 SOE·MI6 요원, 그리스 정치사 연구자였다. 그는 점령기 그리스에서 ELAS와 EDES를 잇는 영국 군사사절단을 조직하고 지휘하며 저항운동과 전후 국가질서 사이의 접점을 만들었다. 동시에 그의 활동은 군사 협력이 영국의 왕정 복귀와 영향권 정책으로 기울 수 있었던 긴장을 보여준다. 훗날 의원과 저술가로서 그리스 현대사를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