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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사전미국 민주당

우드로 윌슨

Woodrow Wilson

14개조와 국제연맹을 내걸었으나 상원 비준을 얻지 못한 미국 대통령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과 뉴저지 주지사를 거쳐 1912년 대통령이 되었고, 취임 첫해 연방 관료 조직에 인종 분리를 들여왔다. 1917년 4월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을 이유로 참전을 요청했고, 1918년 1월 14개조로 국제연맹과 민족자결의 구상을 내놓았다. 파리 강화회의에서 연맹 규약 기초를 이끌었지만 연맹을 위해 독일에 대한 여러 요구를 양보했다. 1919년 10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타협을 거부해 상원의 조약 비준이 무산되었다. 같은 시기 파머 습격의 「적색 공포」가 벌어졌다. 191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24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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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2–1910프린스턴 대학교 총장
  • 1911–1913뉴저지 주지사
  • 1913–1921미국 대통령
  • 191814개조 발표
  • 1919파리 강화회의, 국제연맹 규약 기초 위원회 의장

코델 헐

Cordell Hull
미국 국가기관 미국 미국인 1871–1955 ○ 자연사

자유무역과 국제기구를 밀어붙인 미국 외교가

1941년 11월 26일, 그는 일본 대사에게 「미일 간 합의의 기초로 제안된 개요」를 전달했다.

코델 헐은 미국의 자유무역과 다자적 국제질서를 설계한 민주당 정치가이자 외교가였다. 그는 1930년대 무역장벽 완화와 선린정책을 추진했지만, 외교정책의 최종 결정권을 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자주 긴장했다. 1941년 일본과의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정리한 11월 26일 합의안 개요를 전달했으며, 이는 전쟁 직전 외교의 마지막 문서가 되었다. 전후에는 국제연합 창설을 이끈 공로로 1945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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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3–1897테네시주 하원의원
  • 1907–1921미국 연방 하원의원
  • 1921–1924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 1923–1931미국 연방 하원의원
  • 1931–1933테네시주 연방 상원의원
  • 1933–1944미국 국무장관
  • 1945국제연합 샌프란시스코 회의 대표

윌리엄 N. 해스켈

William N. Haskell
미국 국가기관 미국 미국인 1878–1952 ○ 자연사

기근 한복판의 국제 구호 지휘관

1921년 10월 모스크바의 해스켈은 후버에게, 굶주림이 겨울에 절정에 이르러 1,600만 명을 덮칠 것이라고 타전했다.

윌리엄 N. 해스켈은 미 육군 장교로서 전후 국제 구호 행정과 군사 지휘를 결합한 인물이었다. 허버트 후버의 임명으로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소련 러시아에서 미국구호행정의 작전을 이끌며, 기근 속 식량·의료품의 대규모 배급을 조직했다. 그의 임무는 볼셰비키 관료의 통제와 협조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구호의 속도와 행정적 책임을 조정하는 일이었다. 이후 뉴욕 주방위군과 미국 민방위 조직을 지휘하며 군과 국가 행정에서 긴 경력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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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미 육군사관학교 졸업, 기병 장교
  • 1905육군참모대학 졸업
  • 1906–1907필리핀에서 미군 작전 복무
  • 1916–1917뉴욕 주방위군 제69보병연대 임시 대령
  • 1918–1919미 원정군 포병 복무, 임시 대령 및 공로훈장 수훈
  • 1919–1921ARA 아르메니아 사절단장
  • 1921–1923ARA 소련 러시아 지부장, 러시아 기근 구호 지휘
  • 1926–1940뉴욕 주방위군 사령관, 소장
  • 1944–1945미국 민방위국장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미국, 얄타에서 마지막 힘을 쥐어짠 4선 대통령

얄타에서 돌아온 루스벨트는 1945년 3월 1일 의회 연설에 앉아서 임했다. 걸을 수 없는 대통령이 평생 숨겨온 장애를 처음으로 공개한 순간이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관통한 미국의 32대 대통령으로, 4선에 오른 유일한 대통령이다. 뉴딜로 연방정부의 역할을 재정의했고 진주만 공격 이후 연합국을 이끌며 독일 우선 전략을 관철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그는 소련의 대일 참전과 유엔 창설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 외교력을 집중했고 스탈린과의 개인적 관계에 신뢰를 걸었으나, 이미 심부전과 고혈압으로 쇠약해져 있었다. 회담 두 달 뒤 뇌출혈로 사망했으며, 얄타 합의는 유엔을 낳고도 동유럽을 넘겨주었다는 비판 속에 냉전기 내내 논쟁의 중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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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2뉴욕주 하이드파크의 부유한 명문가에서 출생
  • 1913–1920해군 차관보, 제1차 세계대전 중 해군 확장 주도
  • 1921소아마비 진단, 하반신 영구 마비
  • 1929–1932뉴욕 주지사, 대공황 대응 실업구제 정책 선도
  • 1933–1945제32대 대통령, 뉴딜·제2차 세계대전 지휘
  • 1943.11테헤란 회담, 스탈린과 첫 대면
  • 1945.02.04–11얄타 회담, 소련의 대일 참전·유엔 안보리 틀 합의
  • 1945.04.12그루지야주 웜스프링스에서 뇌출혈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