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풀헨시오 바티스타

Fulgencio Batista
쿠바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쿠바 쿠바인 1901–1973 → 혁명으로 축출 · 망명

선거와 군부 사이에서 권력을 전환한 쿠바 지배자

1959년 1월 1일, 반군이 수도로 진격하자 바티스타는 대통령직을 버리고 쿠바를 떠났다.

풀헨시오 바티스타는 가난한 농촌 출신의 군인·정치가로, 1933년 하사관 반란 뒤 쿠바 정치를 좌우했다. 1940년에는 새 헌법 아래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사회개혁과 연합국 지원을 추진했지만, 1952년 선거 패배가 예상되자 쿠데타로 권력을 되찾았다. 그의 두 번째 통치는 헌정과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미국 자본 및 하바나의 조직범죄와 결탁한 권위주의 정권이었으며, 불평등과 탄압은 무장 저항을 키웠다. 1959년 쿠바 혁명으로 축출된 그의 망명은 이후 미·쿠바 대립이 심화되는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1쿠바 육군 사병
  • 1923–1933농촌경비대 속기사 하사
  • 1933–1940쿠바 육군 참모총장, 실권자
  • 1940–1944쿠바 헌정 대통령
  • 1948–1952쿠바 상원의원
  • 1952–1959쿠바 대통령, 군사독재자
  • 1959–1973망명 생활, 포르투갈·스페인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쿠바 국가기관 공산주의 쿠바 쿠바 1926–2016 ○ 자연사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고 47년간 제국주의에 맞선 지도자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 몬카다 재판 변론(1953)

서반구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쿠바 혁명가. 몬카다 병영 습격으로 바티스타 독재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고, 1959년 게릴라전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47년간 미국의 봉쇄와 압력 속에서도 사회주의 쿠바를 지켜냈다.

상세 이력 보기
  • 1953몬카다 병영 공격 —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
  • 1954법정 최후진술을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다》로 비밀 출간
  • 1956–1959그란마 호 상륙, 시에라마에스트라 게릴라전
  • 1959바티스타 정권 전복 — 혁명정부 수립
  • 1961–1962피그스만 격퇴, 미사일 위기
  • 1976–2008국가평의회 의장
  • 2008–2016라울에게 이양, 2016년 사망

아르날도 토마스 오초아 산체스

Arnaldo Tomás Ochoa Sánchez
쿠바 국가기관 공산주의 쿠바 쿠바 1930–1989 ✕ 총살형

아프리카 원정군을 지휘한 쿠바의 장군

1977년 에티오피아 주둔 쿠바 원정군 사령관으로서 소련 군사고문단과 함께 소말리아군을 격파한 지지가 전투를 지휘했다. 사료는 지지가 탈환 시점을 1978년 3월 4일과 3월 5일로 각각 기록한다.

아르날도 오초아 산체스(1930~1989)는 쿠바 혁명군(FAR)의 사단장이자 쿠바 공화국 영웅이었다. 카코쿰 출신으로 1958년 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제2열에 들어가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싸웠고, 피그스만 침공을 막았으며 쿠바 공산당 중앙위원을 20여 년 지냈다. 1975년 루안다에서 FNLA에 맞섰고 1977년 에티오피아 주둔 쿠바 원정군 사령관으로 오가덴 전쟁을 지휘했다. 1984년 영웅 칭호를 받았으나 1989년 마약 밀매와 반역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7월 13일 총살형에 처해졌다. 사료는 둘째 이름을 토마스와 테오도미로로, 사망 당시 나이를 58~59세와 57세로 각각 기록한다.

상세 이력 보기
  • 1958카밀로 시엔푸에고스의 제2열에 들어가 시에라 마에스트라에서 싸웠다.
  • 1961피그스만 침공에서 2506여단과 교전했다.
  • 1975루안다에서 앙골라 민족해방전선(FNLA)에 맞서 싸웠다.
  • 1977–1978에티오피아 주둔 쿠바 원정군 사령관으로 오가덴 전쟁을 지휘했다.
  • 1984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쿠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 1987–1988앙골라 주둔 쿠바 군사사절단을 이끌며 쿠이토 쿠아나발레 전투에 참전했다.
  • 1989마약 밀매와 반역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어 7월 13일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