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그루지야 서부 구리아에서 태어나 바르샤바 수의학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고, 1890년대 그루지야 최초의 합법 마르크스주의 단체 메사메 다시를 이끌었다. 1903년 멘셰비키 편에 섰고 1906년 제1대 국가 두마 의원이 되었다. 1917년 트빌리시 소비에트와 그루지야 민족회의를 이끌었고, 1918년 5월 독립 선포 회의를 주재한 뒤 7월 그루지야 민주공화국 정부 수반이 되어 토지개혁과 사회 입법을 이끌었다. 1921년 붉은 군대의 침공으로 프랑스에 망명해 망명정부를 이끌다 1953년 파리 근교에서 숨졌다.
1881년 마르트빌리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대학 시절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들어가 멘셰비키가 되었고, 1907~1912년 제3대 국가 두마 의원을 지냈다. 1917년 11월부터 1918년 3월까지 자캅카스 인민위원부 의장을 지냈고, 이어 자캅카스 세임 정부에서 전쟁장관을 맡았다. 1918년 5월 그루지야 독립선언서에 서명했고, 그루지야 민주공화국에서 외무장관·법무장관과 정부 부의장을 지냈다. 1921년 3월 프랑스로 망명했고, 1953년부터 1954년 파리에서 숨질 때까지 망명정부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