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를 정지시키고 조국전선 일당 독재를 세웠으며 1934년 나치 쿠데타 중 암살된 오스트리아 총리
니더외스터라이히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전선에서 37개월 복무했다. 니더외스터라이히 농민연맹에서 일하며 농업 정책 전문가로 이름을 얻었고, 1931년 농림장관, 1932년 5월 연방 총리가 되었다. 1933년 3월 의회를 정지시키고 긴급명령으로 통치했으며, 공산당과 나치당에 이어 사회민주당까지 금지하고 이탈리아 파시즘을 본뜬 조국전선 일당 독재를 세웠다. 1934년 2월 내전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짓밟았고, 3월 무솔리니·굄뵈시와 로마 의정서에 서명했다. 1934년 7월 25일 나치 쿠데타 시도 중 총리 관저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그란사소에서 무솔리니 앞에 선 장면은 실제 지휘권보다 선전의 공로가 더 크게 기록된 순간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스코르체니는 Waffen-SS 장교로서 나치 독일의 사보타주와 특수작전을 지휘했다. 1943년 그란사소 작전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위치를 찾고 SS 분견대를 이끌어 현장에 참여했지만, 작전 전체의 계획과 지휘는 공수부대 장교 하랄트 모르스와 쿠르트 슈투덴트의 몫이었다. 나치 선전은 그를 ‘무솔리니의 구출자’로 내세웠고, 그는 헝가리 정권 전복과 아르덴 공세의 위장작전에도 관여했다. 전후 전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스페인에서 극우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