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장피에르앙드레 아마르

Jean-Pierre-André Amar

여성 결사 금지를 보고한 일반안전위원회 위원

1793년 10월 30일 일반안전위원회를 대표해 보고하며 여성이 정치 결사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국민공회는 여성 클럽과 민중 결사를 금지했다.

그르노블의 법률가로 1792년 이제르 대표로 국민공회에 선출되어 산악파에 앉았고, 루이 16세 처형에 찬성했다. 1793년 일반안전위원회 위원이 되어 바디에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위원으로 꼽혔다. 10월 브리소파 의원들을 기소하는 보고를 맡았고, 10월 30일에는 여성의 클럽과 민중 결사를 금지하는 보고를 해 채택시켰다. 이 조치는 혁명기 여성의 정치 활동을 크게 제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동인도회사 사건을 조사했다. 테르미도르 뒤 투옥되었다가 사면되었고, 바뵈프의 평등파 음모에 연루되었으나 무죄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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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2이제르 대표로 국민공회에 선출되어 산악파에 앉았다.
  • 1793일반안전위원회 위원이 되었고, 10월 3일 브리소파 의원 기소 보고를 했다.
  • 179310월 30일 여성 클럽과 민중 결사를 금지하는 보고를 해 채택시켰다.
  • 1794동인도회사 사건 조사 보고를 맡았고, 로베스피에르는 그 보고를 비판했다.
  • 1795–17971795년 투옥되었다가 사면되었고, 평등파 음모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조르주 클레망소

Georges Clemenceau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와 파리 강화회의 때 프랑스 총리로 헝가리에 가혹한 조건을 밀어붙인 급진파 정치가

방데 출신의 의사이자 언론인으로, 1870년 파리 18구 구청장이 되었고 이듬해 파리 코뮌과 정부 사이의 타협을 시도했다. 독립 급진파의 핵심 인물로 정교분리를 주장했다. 1906년 내무장관으로서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정책을 폈고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1906~1909년과 1917~1920년 총리를 지냈다. 1917년 11월 전쟁이 가장 어려울 때 총리가 되어 독일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요구했고, 파리 강화회의에서 베르사유 조약을 이끌어 냈다. 헝가리를 독일처럼 약화시키려 해 트리아농 조약의 가혹한 조건을 낳았다. 1929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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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0파리 18구 구청장
  • 1906내무장관
  • 1906–1909프랑스 총리
  • 1917–1920프랑스 총리
  • 1919파리 강화회의 의장

라울 리고

Raoul Rigault
프랑스 국가기관 프랑스 프랑스 1846–1871 ✕ 처형

파리 코뮌의 경찰 책임자이자 블랑키주의 혁명가

“코뮌 만세! 암살자들에게 죽음을!”

제2제정기 블랑키주의자로 활동하며 공화주의·무신론 신문에 글을 쓰고 정치 활동으로 여러 차례 투옥됐다. 1870년 9월 공화정 선포 뒤 파리 경찰청에서 정치 업무를 맡았고, 1871년 3월 코뮌 봉기 후 경찰청장이 됐다. 코뮌 평의원과 코뮌 보안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4월 말 검사로 임명돼 인질 정책 집행과 반대파 체포에 관여했다. 피의 주간에 구금 중이던 변호사 귀스타브 쇼데를 처형하게 했고, 1871년 5월 24일 베르사유 정부군에 붙잡혀 재판 없이 총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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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0년대블랑키주의·공화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신문에 기고했다. 정치 활동으로 여러 차례 투옥됐다.
  • 18709월 공화정 선포 뒤 파리 경찰청에서 정치 담당 관리로 일했다.
  • 18713월 20일 파리 경찰청장에 임명됐고, 26일 코뮌 평의원으로 선출됐다. 공안위원회를 거쳐 4월 말 코뮌 검사로 임명됐다.
  • 1871피의 주간에 귀스타브 쇼데 처형을 명령했다. 5월 24일 베르사유 정부군에 붙잡혀 재판 없이 총살됐다.

장 시아프

Jean Chiappe
프랑스 국가기관 반혁명 세력 프랑스 프랑스 1878–1940 ✕ 격추사

좌파에 엄격하고 동맹에 관대했던 파리 경찰청장, 그 해임이 2월 6일의 도화선이 되다

「그렇다면 나는 거리에 있게 되겠군요」, 해임을 통보하는 달라디에와의 전화에서, 1934년 2월 3일. 우파 신문은 이 말을 거리로 나가겠다는 예고로 읽었고, 시아프는 실직을 뜻했을 뿐이라고 했다

코르시카 아자시오 출신의 경찰 관료로 1927년부터 1934년까지 파리 경찰청장을 지냈다. 좌파 시위에는 엄격하고 극우 동맹의 가두 행동에는 관대하다는 평이 따라다녔으며, 우파 신문과 참전군인 조직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1934년 2월 3일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가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자 우파는 공화국이 자기 편 경찰을 쳐낸 사건으로 받아들였고, 사흘 뒤 콩코르드 광장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해임된 뒤에도 파리에서 우파 정치의 중심 인물로 남았고, 1940년 비시 정권이 레반트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해 부임하던 길에 지중해 상공에서 비행기가 격추되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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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8코르시카 아자시오에서 출생
  • 1900년대–1926경찰 행정의 요직을 거치며 승진
  • 1927–1934파리 경찰청장
  • 1934.02.03달라디에가 해임, 모로코 총감 제안을 거부
  • 1935–1940파리 우파 정치의 중심 인물로 남음
  • 1940.11비시의 레반트 고등판무관 임명, 부임 길에 격추되어 사망

르네 부스케

René Bousquet

점령자와 협상한 비시 경찰 수장

1942년 7월 2일, 그는 독일 점령 당국의 유대인 체포에 프랑스 경찰을 투입하겠다고 동의했다.

르네 부스케는 프랑스의 고위 관료로, 비시 정권의 경찰 협력을 국가 주권의 외형과 결합해 추진했다. 그는 독일 보안기관과 협상해 프랑스 경찰을 동원할 자율성을 확보하는 한편, 유대인 박해와 추방을 실행하는 체계에 경찰력을 제공했다. 1942년 7월 벨디브 검거에서 그의 행정적 결정은 대규모 체포와 강제 이송을 가능하게 했으며, 해방 뒤에는 숙청을 피하고 금융·정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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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홍수 때 구조 활동으로 전국적 명성을 얻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음
  • 1931내무부 차관 피에르 카탈라의 보좌관
  • 1933부지사
  • 1939–1942마른현 지사 및 지역 지사
  • 1942–1943비시 경찰 사무총장
  • 1950년대–1993금융·언론계 사업가 및 정치적 영향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