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콘스탄티노비치 오르조니키제
Григор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Серго) Орджоникидзе대전환의 공업 사령관,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다
1936년 10월 50세 생일 무렵, 퍄티고르스크에서 열린 기념 행사에 그는 형 파풀리아의 체포 소식에 충격을 받아 참석하지 않았고 아내 지나이다만 홀로 자리를 지켰다.
1903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볼셰비키 원로로, 1912년 프라하 회의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되었고 1930년 정치국 정위원이 되었다. 캅카스 소비에트화와 트랜스캅카스 연방 수립을 이끌었으며, 1926~30년 중앙통제위원회와 노농검열인민위원회를 이끌고 1930~32년 국민경제최고회의를 거쳐 1932년부터 중공업인민위원으로 제1·2차 5개년계획을 지휘했다. 중공업인민위원으로서 자기 부문의 대량 탄압에 반대해 간부들을 감쌌고, 1937년 2월 18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으며 공식 발표는 심장마비였다. 숙청된 측근과 가족, 죽음의 정황은 사망 원인을 둘러싼 이견과 함께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상세 이력 보기
- 1912프라하 협의회에서 중앙위원 선출
- 1921캅카스 소비에트화 지휘, 「그루지야 사건」 논란
- 1926–1930중앙통제위원회 의장
- 1930–1932국민경제최고회의 의장
- 1932–1937중공업인민위원: 5개년 계획의 공업 총괄
- 1924–1926트랜스캅카스 지역위원회 제1서기
- 1926북캅카스 지역위원회 제1서기
- 1926–1930노농검열인민위원, 소련 인민위원회 부의장
- 1930–1937정치국 정위원
- 1935스타하노프 운동을 전국적 캠페인으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