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ornados / êxodo dos colonos · 1975

앙골라 정착민 이탈(1975)

Angolan settler exodus (1975)

1975년 앙골라 독립 전후로 포르투갈계 정착민 인구가 대거 이탈한 과정이다. 1974년 이 식민지의 유럽계 주민은 약 40만 명(본토 파병 군인 제외), 혼혈 주민은 약 10만 명이었고 전체 인구는 약 590만 명이었다. 떠난 이들은 대부분 백인이었으나 일부 메스티수와 흑인 포르투갈 시민도 포함됐다. 'retornado(귀환자)'는 경멸적 표현으로 여겨져 귀환자 다수가 'refugiado(난민)'를 선호했다.

상세

이탈의 시기와 규모

대규모 이탈은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 뒤 MPLA와 포르투갈의 권력 이양 합의가 공개되면서 시작됐고, 1975년 11월 11일 독립 전후에 정점을 이뤘다. 1975년 8월 12일 포르투갈이 루안다에서 리스본으로 백인 포르투갈계 앙골라인을 공수하기 시작했다는 영어권 서술이 있는 한편, 포르투갈 25 de Abril 50주년 기념위원회는 당국이 1975년 5월과 11월 사이 대규모 공수 교량(포르투갈어 ponte aérea)을 운영해 464회 운항으로 앙골라에서 133,982명을 대피시켰고, 후암부와 루안다 구간은 8월 11일부터 10월 4일까지 운항했다고 밝힌다. 영어권 서술에 따르면 11월까지 30만 명 넘게 앙골라를 떠났고 대부분 TAP 보잉 707로 수송됐으며, 영국 왕립공군이 Vickers VC10을 보내 약 6,000명을 추가 대피시켰다.

규모는 확정된 단일 수치가 아니다. 영어권 서술의 8월 12일 개시·20만 명 이상·11월까지 30만 명 이상과 포르투갈 측 수치 464회·133,982명은 수송 주체와 집계 기준을 달리하므로 병기해야 한다. 넓게는 1974년 5월부터 1970년대 말까지 100만 명 넘는 포르투갈 시민이 아프리카 영토를 떠났고, 포르투갈에 실제 도착한 이들은 50만에서 100만 명으로 추산되므로 앙골라 수치를 본토 총계에서 바로 읽어낼 수는 없다.

누가 떠났는가

포르투갈계 정착민은 가난한 계층 출신이 많아 도시에서 청소부·택시 운전사·웨이터 같은 육체노동 일자리에 종사했다. 동시에 이들은 영업 생활을 지배하고 커피 농장 거의 전부를 소유했으며 하급·중급 공무원 다수를 제공했다. 따라서 이탈로 자본과 소유, 노동이 함께 빠져나갔다. 남부 앙골라의 아프리칸스계·독일계 정착민 대부분은 포르투갈계 본격 대이탈 이전인 1975년까지 이미 나미비아와 남아프리카로 떠났다.

결과와 그 이후

포르투갈인은 행정·농업·공업 분야 숙련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했고, 그들이 떠난 뒤 독립 앙골라는 중앙계획·경제성장·안보·교육·보건에서 악화를 겪었다. 알보르 협정에서 포르투갈 정부의 협상 주목표는 백인 앙골라인의 대량 이주 방지였으나, 협정은 MPLA·FNLA·UNITA만 첫 의회 선거 후보를 낼 수 있게 해 바콩고인·카빈다인·백인을 의도적으로 선거권에서 배제했다.

이탈은 포르투갈 정치에도 영향을 주었다. 군 출신을 비롯한 귀환자 일부는 새 정부의 공산주의 계열과 충돌했고, 이들의 개입은 1975년 11월 25일 좌파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좌절시킨 우익·친민주 세력에 작용했다. 1975년 정착민 이탈은 앙골라의 노동력 공백만이 아니라 포르투갈 정치 위기의 요인이기도 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영문)
  3. 위키백과 (영문)
  4.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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