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lichsoziale Partei (CS, CSP) · 1891–1934

기독사회당 (오스트리아)

Christian Social Party (Austria)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의회 대표 지역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서 활동한 가톨릭 보수 정당. 1890년대 초 카를 뤼거의 지도 아래 창당되어 제국의 주요 정당으로 급성장했고, 제1공화국에서는 1934년까지 모든 연방정부에 참여하며 1920년부터 대개 총리를, 1928년부터는 대통령도 배출했다. 지도부가 권위주의적 신분제 국가로의 전환을 준비했고, 그 체제가 들어선 1934년 조국전선에 자리를 내주고 해산했다. 1945년 창당한 오스트리아 국민당(ÖVP)의 전신으로 여겨진다.

상세

기독사회 운동의 뿌리는 1848년 창간된 「빈 교회신문」과 가톨릭 직인조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9년 린츠 주교 프란츠 요제프 루디기어의 체포에 항의한 시위는 기독사회 운동의 탄생으로 일컬어지며, 카를 폰 포겔장은 1873년 증시 폭락 뒤 기독교 사회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놓았다. 1887년 루트비히 프세너가 세운 기독사회협회에 1888년 카를 뤼거가 합류해 협회 의장을 맡았다.

창당 시점에 대해서는 기독사회협회가 정당으로서 1891년 제국의회 선거에 나선 때로 보는 견해와 여러 그룹이 1893년 하나로 합친 때로 보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뤼거의 지도 아래 창당되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당은 소시민적·성직자적 성향으로 농민과 도시 소시민, 수공업자와 관리를 끌어들였고, 하급 성직자를 조직에 활용했다. 당시 기독교적 가치관에는 온건한 반유대주의도 포함되어, 1890년대까지 뤼거 주변의 선거연합은 「반유대주의자와 기독사회파」 같은 이름을 썼다. 당은 1895년 빈 시의회에서 3분의 2 의석을 얻었고 1897년 뤼거가 빈 시장이 되었으며, 1907년 가톨릭인민당과 합쳐 제국의회 하원 최대 교섭단체가 되었다. 1910년 뤼거가 죽은 뒤 위기를 맞아 1911년 선거에서는 사회민주노동자당에 뒤졌고, 1918년 11월 12일 공화국 수립에 찬성했다.

제1공화국에서 당을 대표한 인물은 1921~1930년 당 의장을 지내고 1922~1924년과 1926~1929년 총리를 맡은 성직자 이그나츠 자이펠이었다. 1927년 당은 대독일인민당, 나치 정당 등과 「통일명부」 선거연합을 이루었고, 같은 해 빈 법원 화재 사건 뒤 향토방위대와의 접촉을 되살렸다. 1928년 12월부터 1938년 3월까지 당의 빌헬름 미클라스가 연방대통령을 지냈다.

1932년 봄 농업장관 출신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향토방위대의 정치 조직이 참여한 연립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1933년 3월 4일 국민의회 의장 세 명이 모두 사퇴하자 돌푸스는 이를 「의회의 자기 해체」라 부르며 긴급명령으로 권위주의 통치를 시작했다. 그는 정부를 지지하는 모든 세력을 묶는 「조국전선」을 만들었고, 1933년 9월 11일 트라브렌플라츠 연설에서 정당 국가의 포기와 권위주의적 신분제 국가 수립을 공언했다. 1934년 5월 1일 정당이 설 자리가 없는 신분제 헌법이 공포되었고, 5월 14일 마지막 기독사회당 의원단 회의가 열렸으며, 9월 28일 연방당 지도부는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끝낸다고 선언했다. 역대 당 의장은 뤼거(1893~1910), 알로이스 폰 리히텐슈타인(1910~1918), 요한 네포무크 하우저(1918~1920), 레오폴트 쿤샤크(1920~1921), 자이펠(1921~1930), 카를 바우고인(1930~1934), 에메리히 체르마크(1934)였다.

소속 인물

관련 인물

출처

  1. de.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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