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공산당 (국내파)
Communist Party of Greece (Interior)
1968년 2월 그리스 공산당(KKE)의 분열로 생긴 그리스의 유로코뮤니즘 정당. 군사정권 아래 국내에서 비합법으로 활동하던 「국내 사무국」 지도부와 망명 지도부의 반대파가 세웠고, 소련 공산당의 이념적 지도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공산당 같은 정당과 가까워졌다. 1986년 5월 제4차 당대회 뒤 1987년 그리스 좌파(EAR)와 「그리스 공산당 (국내파) – 혁신 좌파」로 갈라지며 사라졌다.
상세
1968년 2월 5~15일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2차 확대 전원회의에서 정치국원 미초스 파르찰리디스, 지시스 조그라포스, 파노스 디미트리우와 몇몇 중앙위원이 동맹 정책과 소련의 역할 같은 문제로 다수파에 맞서다 퇴장했다. 이들은 당이 소련 지도부의 선택에 전적으로 기대는 데 불만을 품고 프라하의 봄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흐름이었다. 그리스 안에서 비합법으로 활동하던 지도부인 「국내 사무국」의 바비스 드라코풀로스, 니코스 카라스, 안토니스 브릴라키스 등이 이들 편에 서면서 그리스 공산당 (국내파)이 생겼고, 이들은 망명 지도부를 따르는 쪽을 「국외파」라고 불렀다. 당은 소련 공산당의 이념적 지도와 사실상 결별하고 이탈리아 공산당 같은 정당과 손잡으며 유로코뮤니즘을 택했다.
군사정권(1967~1974) 아래서 당은 범그리스 반독재 전선(PAM)과 청년 조직 「리가스 페레오스」를 통해 저항 운동에 나섰고, 1974년 민정 이양 뒤에는 신문 《아브이》를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다시 냈다. 민정 이양 뒤 첫 선거에서는 그리스 공산당과 함께 통합 좌파를 이루어 8석을 얻었으나, 1977년에는 별도의 「진보·좌파 세력 동맹」으로 나가 2석에 그쳤고 당에서는 레오니다스 키르코스만 당선했다. 1981년 총선에서는 1.34%로 의석을 얻지 못했지만, 같은 해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5.3%로 키르코스를 유럽의회에 보냈다. 정치철학자 니코스 풀란차스도 이 당의 당원으로서 「사회주의로 가는 민주적 길」 논쟁에 참여했다.
1986년 5월 제4차 당대회에서는 당을 비공산주의 좌파 정당으로 바꾸자는 키르코스 쪽 주장이 이겼다. 1987년 1월 이에 반대한 중앙위원 29명이 「그리스 공산당 (국내파) – 혁신 좌파」를 만들었고, 1987년 4월 나머지는 키르코스를 서기로 하는 그리스 좌파(EAR)를 세웠다. 두 갈래는 서로 다른 길을 거쳐 뒷날 급진좌파연합(시리자)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