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영화)
Earth (film)
알렉산드르 도브젠코가 우크라이나 농촌의 집단화를 그린 1930년 소련 무성영화. 트랙터를 몰고 온 청년이 쿨라크의 총에 맞아 죽지만 마을은 사제 없이 그를 묻고, 비가 사과와 수박을 적신다. 개봉 아흐레 만에 상영이 막혔으나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시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바람이 밀밭과 해바라기밭을 쓸고 간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노인 세묜이 죽어 간다. 아들 오파나스와 손자 바실이 그를 지켜본다. 친구 페트로는 저승에 가면 천국인지 지옥인지 신호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지만, 끝내 소식은 없다. 마을 쿨라크들은 집단화에 반대하고, 콤소몰 청년 바실은 그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한다. 아버지 오파나스는 믿지 않는다.
바실이 첫 트랙터를 몰고 온다. 마을이 들뜬 가운데 라디에이터가 과열되자 남자들이 오줌을 눠서 채운다. 트랙터는 땅을 갈고 쿨라크의 울타리를 무너뜨리며,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한 번에 펼쳐진다. 그날 밤 바실은 집으로 가는 흙길에서 호파크를 추다가 어둠 속의 그림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오파나스는 신이 없다며 사제를 쫓아내고 아들의 친구들에게 “새 삶을 위한 새 노래”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부탁한다. 마을이 관을 메고 사과나무 사이로 나아가는 동안 약혼녀 나탈리야는 벌거벗은 채 슬퍼하고 사제는 저주를 퍼붓는다. 호마는 묘지로 달려와 새 질서에 항의해 자기가 죽였다고 외치지만, 마을 사람들은 “바실의 이름을 온 세상이 알 것”이라는 콤소몰 연설을 듣느라 돌아보지 않는다. 마지막에 큰비가 내려 들판과 채소와 과일을 적시고, 나탈리야 곁에는 새 연인이 있다.
왜 이토록 아름답다고 하나?
사건보다 이미지가 말한다. 멈춘 듯한 농민의 클로즈업, 부드러운 초점으로 이른 아침 빛에 찍은 흙먼지 속의 춤이 그렇다. 영화학자 길베르토 페레스는 이 촬영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비겼다. 촬영은 다닐로 데무츠키가 맡았다. 대부분 우크라이나 폴타바 지역에서 찍었고, 바실 역의 세묜 스바셴코는 현지 농민에게 물어 춤을 바꿨다. 도브젠코는 자기 할아버지를 세묜의 모델로 삼았고, 고향에서 일어난 소비에트 일꾼 암살을 바실의 죽음에 옮겼다. 그는 이 시기를 “한 민족 전체의 경제적, 정신적 변혁의 시기”라고 했다.
집단화를 찬양하는 영화인데 정작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죽음과 자연의 순환이다. 그리고리 로샬은 “예이젠시테인도 푸돕킨도 사람과 세상을 말하면서 도브젠코가 드러낸 다정함과 온기에 이르지 못했다”고 썼다. 1958년 브뤼셀 세계박람회 투표에서 역대 12편에 들어갔다.
왜 금지되었나?
영화는 1930년 4월 8일 개봉해 아흐레 뒤 막혔다. 같은 달 당 조직국은 소비에트 정책과 어긋나는 요소를 고칠 때까지 상영을 멈추라고 결정했다. 《프라우다》는 형식의 솜씨를 칭찬하면서 정치적 내용은 거짓이라고 했고, 시인 데먄 베드니는 《이즈베스티야》에서 “반혁명적”, “패배주의적”이라고 공격했다. 평론가 이폴리트 소콜로프는 위대한 감독이자 “소부르주아 예술가”라고 불렀다. 트랙터의 오줌, 나탈리야의 나체처럼 “생물학적”이고 자연주의적이라는 장면이 잘렸다. 도브젠코는 신경쇠약 직전까지 몰려 우크라이나를 떠나 해외로 갔다. 뒤에 그는 《이반》(1932)으로 다시 비판받았고, 스탈린의 요구로 “우크라이나의 차파예프”를 만들어야 했다. 4년이 걸린 《시초르스》를 스탈린은 한마디 지적 없이 받아들였다.
비판은 집단화가 한창이던 시기와 맞물렸다. 집단화는 농민의 가축 도살과 기계 파괴, 소비에트 일꾼 암살 같은 저항을 불렀고, 영화가 찍힌 우크라이나 농촌은 몇 해 뒤 홀로도모르를 겪는다. 영화 속 낙관은 그 뒤의 역사와 나란히 놓고 보아야 한다.
지금 볼 수 있는 판은 무엇인가?
1941년 키예프 전투 때 독일군의 공습으로 원본 네거티브가 사라졌다. 잘린 장면을 포함한 판은 약 40년이 지나서야 널리 상영되었고, 1971~1972년 도브젠코의 미망인 율리야 솔른체바의 지도 아래 모스필름에서 복원판이 나왔다. 2012년에는 우크라이나 국립 도브젠코 센터가 복원하고 포크 그룹 다하브라하가 새 음악을 붙였으며, 2015년 유네스코 70주년 기념 상영작에 뽑혔고, 2021년 우크라이나 영화 100선에서 2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