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인민혁명당
Ethiopian People's Revolutionary Party (EPRP)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당(EPRP, 암하라어 약칭 이하파)은 1972년 4월 망명 학생들이 서베를린에서 결성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다. 1974년 혁명의 두 주도 좌파 정당 가운데 하나였고, 군사정권 데르그가 혁명을 배신했다고 보아 무장투쟁으로 돌아섰다. 1976년부터 데르그는 '적색 테러'로 이에 대응했다.
상세
기원과 좌파 경쟁
EPRP는 급진적 에티오피아 학생운동에서 성장해 1972년 4월 서베를린에서 에티오피아 인민해방기구(EPLO)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고, 초대 사무총장으로 베르하네 메스켈 레다가 선출되었다. 이후 당명을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당으로 바꾸었다. 1974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축출한 혁명에서 EPRP와 전에티오피아사회주의운동(MEISON)은 데르그의 전위를 두고 경쟁했다. '에티오피아 우선' 구호밖에 없던 데르그가 좌파 학생운동에 이념적 지도를 구하면서, MEISON은 데르그와 멩기스투를 지지한 반면 EPRP는 데르그가 혁명을 배신하고 진정한 '인민민주주의'를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무장투쟁과 '백색 테러'
1974~1977년 사이 도시 게릴라전을 둘러싼 전략 논쟁이 당내에서 격화되었고, 베르하네 메스켈 레다와 중앙위원 게타체 마루는 도시 무장투쟁 확대에 반대했다. 갈등은 폭력으로 치달아 1976년에 정점에 이르렀다. EPRP는 공공건물을 공격하고 데르그 고위 인사를 암살했으며, 1977년 5월 보도는 EPRP가 수도의 주요 반대 세력으로서 정부 관료 20여 명을 암살하고 데르그 본부를 급습했으며 멩기스투에게 부상을 입혔다고 전했다. 멩기스투는 이른바 '백색 테러'를 내세워 EPRP 지지자들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는 '적색 테러'를 개시했고, 초기에는 MEISON과 지역 케벨레 관리들의 협력을 받았다.
진압
적색 테러의 정확한 시점과 사상자 수는 사료마다 다르다. 1976년 9월 EPRP 활동가들이 체포·처형되었고, 9월 23일 멩기스투 암살 시도는 EPRP 소행으로 지목되었다. 멩기스투는 아디스아바바 혁명광장 연설에서 '반혁명분자에게 죽음을! EPRP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우며 진압을 선언했고, 데르그는 케벨레 민병대를 무장시켰다. 도시에서의 절정은 1977년 3월 22일 시작된 가택수색으로 설명되며, 5월 1일 전후의 대규모 체포·처형의 희생자는 최대 1천 명으로 추정된다. 전체 사망자 추계는 1만에서 98만까지 큰 폭으로 갈리며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최대 50만으로 보았다. 2006년 멩기스투는 궐석 재판에서 집단살해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EPRP 창립 사무총장 베르하네 메스켈 레다는 적색 테러기에 체포되어 1979년 7월 12일 처형되었다.
농촌 후퇴와 분열
생존한 당원들은 1977년 8월까지 도시를 떠나 아가메의 아심바산 근거지로 후퇴했고, 에리트레아해방전선의 일부 지원을 받았다. 1978년 2월 23일 EPRP 부대가 아가메의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부대를 공격했으나 5일간의 전투 끝에 TPLF가 아심바산을 점령했고 패주한 대부분은 ELF로 갔다. 이후 일부는 1980년 11월 에티오피아 인민민주운동을 결성했고, 이는 뒤에 암하라민족민주운동으로 발전했다. 많은 당원은 곤다르로 이동해 1991년까지 데르그와 TPLF에 맞서 싸웠다. 다만 1978년 패배를 두고 일부 자료는 당의 결정적 몰락으로, 다른 자료는 TPLF와의 분열·쇠퇴를 더 늦은 시기로 잡아 논쟁이 있다.
구분
사전의 '적색 테러' 항목은 러시아 내전기(1917~1922)의 소비에트 진압 정책을 다룬다. 1976~1978년 에티오피아의 적색 테러(케위 시비르)는 데르그가 경쟁 마르크스-레닌주의 조직을 상대로 벌인 별개의 진압이며, 러시아 내전의 적색 테러를 명시적으로 본떴다. EPRP는 그 주요 민간 좌파 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