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블리트
Glavlit
1922년 6월 6일 인민위원회령으로 설립된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검열 기관이다. 모든 인쇄물, 라디오·텔레비전 방송, 전시회에 대한 사전 검열을 시행했으며, 출판이 금지된 정보 목록(페레첸)과 스페츠흐란(특별보관고) 제도를 운영했다. 공식 명칭은 수차례 변경되었으나 약칭 '글라블리트'는 소련 해체 시기까지 통용되었고, 1990년 8월 글라스노스트의 압력 속에 ГУОТ로 개편된 후 1991년 폐지되었다.
상세
설립과 명칭 변화
글라블리트는 1922년 6월 6일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인민위원회의 포고령으로 설립되었다. 초기 공식 명칭은 '문학출판총국(Гла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по делам литературы и издательств, Главлит)'으로, 러시아 공화국 교육인민위원부(나르콤프로스) 산하에 두어졌다. 설립 목적은 '인쇄물에 대한 모든 종류의 검열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후 소속과 명칭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33년 소련 인민위원회 산하 '군사 및 국가비밀보호 전권위원 관리국', 1946년 각료회의 산하로 이관, 1953년 3월부터 10월까지는 내무부(MVD) 산하 제11총국으로 잠시 편입되었다가 다시 각료회의 직속으로 복귀했다. 1966년 '소련 각료회의 산하 출판 국가비밀보호총국(Главлит СССР)'으로 개칭되었고, 1990년 8월에는 '대중매체 국가비밀보호총국(ГУОТ)'으로 재편되었으며, 1991년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이처럼 명칭과 소속은 계속 바뀌었지만, 약칭 '글라블리트(Главлит)'는 창설부터 해체까지 준공식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통용되었다.
기능과 운영
글라블리트의 핵심 기능은 사전 검열이었다. 모든 책, 신문, 잡지, 포스터, 공연 티켓과 같은 인쇄물은 출판 전에 글라블리트 검열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며, 승인된 원고에는 '군사 및 국가비밀 누설 없음', 교정지에는 '인쇄 허가', 최종 신호본에는 '발행 허가'라는 도장이 찍혔다. 검열은 원고, 교정지(갤리), 신호본의 3단계로 진행되었고, 저자는 검열관의 지시를 직접 볼 수 없었다.
글라블리트는 출판 금지 대상의 기준을 규정했다: (a) 소비에트 권력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는 선동·선전, (b) 국가비밀 누설, (c) 민족주의·종교적 광신 선동, (d) 외설물. 이 기준은 정치적 기후에 따라 그 적용 폭이 달라졌고, 검열관 개인의 재량과 편집증적 해석이 개입하는 일도 흔했다.
또한 글라블리트는 모든 출판사와 정기간행물의 개설 허가, 편집진 승인, 외국 문헌의 수입·반출 통제, 도서관·서점·박물관에서 '정치적으로 유해한' 문헌의 적출 및 폐기를 담당했다. 방송, 공개 강연, 전시회도 통제 대상에 포함되었다.
조직 규모와 '페레첸'
중앙기구는 1927년 86명에서 1934년 197명, 1947년에는 중앙 233명과 전국 지방 기관 2,120명(겸임 검열관 3,750명 별도)으로 성장했다. 중앙은 군사(1부), 외국문헌(2부), 외신기자(3부), 중앙출판물(4부), 지방출판물(5부), 중앙신문·방송·타스(6부), 유해문헌 적출(7부) 등 부서로 분화되었다. 각 공화국·지방·주에는 글라블리트 산하기관이 설치되었고, 모든 출판사와 신문사, 인쇄소, 라디오 방송국, 통신사, 세관, 중앙우체국에 글라블리트 대표가 상주했다.
1925년 글라블리트는 '비밀' 등급으로 최초의 《유포 금지 정보 목록(페레첸)》을 발행했다. 16쪽에 96개 항목이었던 이 목록은 1936년 372개로 증가했고, 1937년에만 300개가 추가되었다. 금지 대상에는 군사 정보뿐 아니라 곡물 수확량, 인플레이션율, 질병 발생률, 범죄 통계 등 경제·사회 지표가 포함되었다. 검열의 실제 적용 범위는 공식적인 국가비밀 보호를 훨씬 넘어섰다.
스페츠흐란과 도서관 검열
글라블리트는 스페츠흐란(특별보관고) 제도를 통해 일반 도서관 열람이 금지된 문헌을 분류·격리했다. 검열관들은 '정치적으로 유해한' 출판물의 목록을 정기적으로 작성해 전국 도서관과 서점에 배포했고, 이 목록에 오른 책들은 공개 열람대에서 제거되어 허가된 연구자만 접근할 수 있는 특별보관실로 이관되었다. 1958년 한 해에만 글라블리트는 1,600만 부의 도서관 장서를 검토하여 600만 부를 특별보관고로 보냈고, 25만 부 이상의 '극도로 적대적인' 외국 출판물을 폐기했다.
1937년 숙청과 글라블리트
1937년 대숙청 시기 글라블리트 자체도 대대적인 숙청을 겪었다. 당시 국장 세르게이 인굴로프(Сергей Ингулов)는 '인민의 적' 비호와 '반당 행위' 혐의로 해임된 후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중앙기구에서 60명이 해고되고 17명이 제명되는 등 기관 전체가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인원을 제거하는 명목으로 재편되었다.
글라스노스트와 해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은 글라블리트의 권한을 근본적으로 잠식했다. 1988년 말부터 검열 기준이 완화되었고, 1987년 6월 소련 정부는 글라블리트가 '해체되었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명칭만 바꾼 채 운영이 계속되었다. 1990년 8월 ГУОТ로 개칭되었고, 1991년 10월 25일 「출판 및 기타 대중매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소비에트식 사전 검열 제도는 법적으로 폐지되었다. 소련 해체 후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글라블리트의 후신 기구가 존속했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comprehensive Russian Wikipedia article: establishment decree June 6, 1922, full chronology of name changes and subordinations, organizational structure, Perechen lists, 1937 purge of Ingulov, 1958 library review figures, glasnost-era dissolution timeline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article: official English names, chronology of names, functions, secrecy classification system, KGB cooperation
- encyclopedia.com Encyclopedia.com (Encyclopedia of Russian History): overview of Glavlit's creation, functions, pre-publication censorship process, foreign literature control, library purging, relaxation in 1988, dissolution in 1991
- soviethistory.msu.edu Michigan State University Soviet History Project: full text of the 1931 Glavlit Statute (Council of People's Commissars RSFSR, June 6, 1931), including the four grounds for prohibition, pre- and post-publication control procedures, exemptions for Party and Academy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