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ервый Кубанский («Ледяной») поход · 1918.02.22–05.13

얼음 행군

Ice March

1918년 2월 22일부터 5월 13일까지 라브르 코르닐로프와 미하일 알렉세예프의 의용군이 붉은 군대에 밀려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나 쿠반으로 들어갔다가 돈으로 되돌아온 행군. 「제1차 쿠반 원정」이라고도 하며, 3월 말 노보드미트리옙스카야 부근에서 얼음비와 혹한 속에 불어난 강을 건너 싸운 일에서 「얼음 행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4월 예카테리노다르 공격 중 코르닐로프가 포탄에 맞아 죽자 안톤 데니킨이 지휘를 이어받아 군대를 이끌고 빠져나왔고, 이 행군은 남러시아 백군 운동의 출발점으로 기억되었다.

상세

1917년 11월 노보체르카스크에 모인 제정 장교들의 의용군은 돈 카자크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1918년 2월 붉은 군대가 타간로그를 차지하고 로스토프로 다가오자 돈 아타만 알렉세이 칼레딘은 자살했다. 코르닐로프는 약 4천 명의 병력과 1천여 명의 민간인을 이끌고 쿠반 카자크의 도움을 바라며 얼어붙은 초원을 지나 남쪽으로 향했고, 세르게이 마르코프 등이 연대를 맡았다. 3월 6일 레잔카에서 첫 전투를 치렀는데, 이때 의용군은 포로로 잡은 붉은 군대 병사 100여 명을 총살했다. 행군 도중 예카테리노다르가 이미 붉은 군대에 넘어간 사실을 알게 된 의용군은 3월 28일 노보드미트리옙스카야 전투를 치렀고, 이어 빅토르 포크롭스키의 쿠반 부대를 흡수해 병력을 두 배로 늘렸다.

4월 9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예카테리노다르 공격에서 의용군은 약 400명이 죽고 1,500명이 다쳤으며, 코르닐로프는 4월 13일 지휘소로 쓰던 농가에 떨어진 포탄에 맞아 죽었다. 지휘를 이어받은 데니킨은 그날 저녁 공격을 멈추고 강행군으로 포위를 빠져나왔는데, 옐리자베틴스카야에 남겨 둔 부상자 252명 가운데 28명만 살아남았다. 레닌은 코르닐로프의 죽음을 듣고 내전이 대체로 끝났다고 말했지만, 5월 중순 돈 경계로 돌아온 의용군은 출발 때보다 많은 5천 명가량이었고 돈에서는 카자크가 볼셰비키에 맞서 일어나 있었다. 같은 무렵 미하일 드로즈돕스키 대령은 루마니아 전선의 야시에서 자원병 여단을 이끌고 3월 11일 출발해 5월 8일 노보체르카스크에 들어갔고, 곧 의용군에 합류했다. 이 행군의 생존자는 「첫 원정 참가자(페르보포호드니키)」로 불리며 백군 안에서 특별한 위상을 누렸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위키백과 (영문)
  2. 위키백과 (러시아어)
  3. 위키백과 (러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