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젭스크-봇킨스크 봉기
Izhevsk–Votkinsk Uprising
1918년 8월 8일 카마강 유역의 국영 무기 공장 도시 이젭스크에서, 이어 8월 17일 봇킨스크에서 노동자와 「전선병 연맹」이 볼셰비키 권력에 맞서 일으킨 봉기.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내걸고 사회혁명당 제헌의회 의원들의 카마 지역 코무치를 세웠으며, 노동자가 소비에트 권력에 맞서 일어난 가장 큰 봉기로 꼽힌다. 11월 8일 블라디미르 아진의 사단이 이젭스크를 되찾았고, 봉기군은 카마강을 건너 콜차크군의 이젭스크·봇킨스크 부대가 되었다.
상세
이젭스크와 봇킨스크는 주민의 73~74퍼센트가 국영 군수 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인 도시였고, 1918년 5월 이젭스크 공장에만 2만 6,700명이 일했다. 자유 거래 금지와 실업, 임금 하락에 대한 불만이 쌓인 가운데, 5~6월 시 소비에트 선거에서 진 볼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최대강령파는 무력으로 소비에트를 해산했다. 8월 초 카잔이 함락된 뒤 볼셰비키가 노동자를 군대로 동원하려 하자, 8월 8일 전선병 연맹이 공장 무기고를 열어 봉기했고 100명이 채 안 되던 볼셰비키는 도시를 떠났다. 이젭스크는 소총을 두 자루씩 진 부대를 보내 8월 17일 봇킨스크도 봉기에 가담시켰고, 정권은 사회혁명당 의원 세 명으로 된 카마 지역 코무치가 맡았다. 이젭스크 공장은 하루 최대 2,500정의 소총을 봉기군에 공급했고, 봉기는 한때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지역에 미쳤다.
9월 10일 붉은 군대가 카잔을 되찾자 봉기 지역의 처지는 나빠졌고, 의용병으로 출발한 군대는 강제 동원 군대로 바뀌었으며 장교들과 사회혁명당 지도부가 갈등을 빚었다. 9월 15일 제2혼성사단을 맡은 아진은 10월 4일 아그리즈역, 5일 사라풀을 차지하고 이젭스크를 포위했다. 11월 7일 이젭스크 남쪽의 결전에서 탄약이 모자란 봉기군은 사격 없이 대열을 지어 행진해 들어가는 「심리 공격」을 벌였으나 큰 손실을 입고 물러났고, 7~8일 밤 약 1만 5천 명의 주민이 도시를 떠났다. 8일 아침 붉은 군대가 이젭스크에 들어갔고, 봉기군은 봇킨스크도 버리고 11월 14일 부교로 카마강을 건넜다. 점령 뒤 처형된 사람의 수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자료마다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