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수호대(케벨레 방위대)
Kebele Defense Squads (Revolution Defence Squads)
에티오피아 데르그 정권이 도시 거주자 협회(케벨레) 안에 조직한 무장 부대로, 1976~1978년 적색테러 시기 동네 단위에서 반대파 색출과 처분을 맡았다. 1975년 7월 포고 제47호로 결성된 케벨레에 무기를 지급해 경찰 권한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며, 중앙 당국의 감독이 약한 상태에서 폭력을 행사했다.
상세
결성 배경
1975년 7월 포고 제47호로 아디스아바바와 다른 다섯 도시에 도시 거주자 협회인 케벨레가 세워졌다. 아디스아바바의 케벨레 291개는 각각 대략 3,000~12,000명 규모의 동네를 관할했고, 처음에는 집세 징수와 지역 재판, 기본 서비스를 맡았다. 1976년 말에 이르러 지방세와 주택·주민 등록까지 권한이 확대됐다.
무장과 적색테러 집행
1977년 2월 3일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데르그 의장이 된 뒤 '반혁명분자들에게 죽음을! EPRP에게 죽음을!'을 선언했고, 적색테러가 시작된 지 한 달 안에 데르그는 케벨레 같은 민간 조직에 무기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1977년 3월 22일부터 아디스아바바에서는 EPRP 구성원과 무기를 찾는 집집이 수색이 벌어졌고, 수호대는 각기 제멋대로 법을 행사해 식량·물자·휘발유를 임의로 압수하고 사람들을 밤에 집에서 끌어갔다. 곧 정치국은 케벨레에 EPRP 의심 청년을 체포하라고 명령했고, 수백 명이 아디스아바바 밖으로 끌려가 집단 처형됐으며 사망자는 1,000명에 이를 수 있었다.
성격과 한계
수호대가 모두 데르그 편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트웨이 부부는 수호대가 데르그의 '반동분자'·'무정부주의자' 색출 요구에 일률적으로 따르지 않았고, 상당수가 각 케벨레나 공장을 장악한 파벌을 따랐으며, 많은 수호대에 EPRP가 침투했고 또 다른 수호대는 데르그가 아니라 메이손을 위해 활동했다고 기록한다. 이는 테러가 위로부터의 국가 폭력인 동시에 동네 단위의 폭력이었음을 보여준다. 1976~1978년 사이 케벨레 방위대에 많은 잔혹 행위가 귀속됐고, 그 뒤 이들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
제도적 승계와 구분
데르그는 특정 농민협회나 케벨레 관할구역 안에서 활동하는 인민방위대에 경찰 권한을 부여했으며, 그 주된 역할은 정치적 반대를 식별해 처분함으로써 진압하는 것이었다. 1978년 이 부대들은 인민보호여단으로 통합되어 정식 경찰 훈련을 받고 지역 경찰 임무를 맡았다. 한편 1975년 포고 제71호로 세워진 인민민병대(የህዝብ ሚሊሻ)는 주로 농촌의 민방위 준군사 조직으로서 보조 경찰 임무와 재산 보호, 농민협회 재판 결정 집행을 맡은 별개 기관이며 케벨레 방위대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1981년 포고 제25호 당시 케벨레 행정 구조에 혁명방위위원회가 포함됐지만 이는 1978년 이후의 발전으로, 1976~78년 수호대 형태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규모와 귀속의 불확실성
적색테러 전체 사망자 추정치는 크게 엇갈려 10,000명에서 980,000명까지 제기되며, 국제앰네스티는 최대 500,000명으로 추정했다. 2006~2008년 멩기스투와 다른 데르그 관료들에 대한 집단살해 유죄 판결은 민족 집단뿐 아니라 정치 집단 말살 의도까지 포함하는 에티오피아 법의 정의에 근거한 것이다. 수치는 단정하지 않고 귀속해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