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시화
Malgachisation
말라가시화(Malagachisation, 말라가시어 fanagasiana)는 마다가스카르의 문화 요소, 특히 말라가시어를 채택하는 과정 전반을 가리킨다. 좁게는 프랑스 식민통치(1897~1960)의 효과를 지우기 위해 마다가스카르 국가가 시행한 정책, 곧 교육·행정·경제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계 인력을 말라가시어와 마다가시 인력으로 대체하려 한 정책을 뜻한다. 말라가시어권 서술은 이를 프랑스 식민화 이후, 특히 1975년부터 제2공화국 시기에 추진된 정체성 강화 정치로 설명한다.
상세
식민지 언어 질서와 그 이전의 요구
프랑스 식민통치(1897~1960) 아래에서도 말라가시어는 지역 공동체의 언어로 남았지만, 학교·행정·문서의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1960년 독립 뒤 제1공화국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유지했고, 1971~1972년의 위기 국면에서 프랑스어 사용 자체가 대중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요구가 처음 제기된 것은 1972년 5월이었다. 같은 달 13일 전국에서 약 10만 명의 중등학교 학생들이 파업에 들어가 프랑스와의 문화협력협정 폐기, 프랑스식 교육과정과 프랑스인 교원을 마다가스카르의 생활과 문화를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과 마다가시 교원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치라나나 정권이 무너지고 가브리엘 라마난초아의 과도정부가 들어선 뒤 공식적인 말라가시화 정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fanagasiana'라는 용어 자체는 20세기 초 마다가시인과 유럽인의 접촉 속에서 생겨난 개념이며, 리샤르 안드리아만자토의 AKFM은 외국 기업 국유화와 생산적 토지의 공동화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말라가시화, 프랑스적 가치와 언어의 거부를 요구했다.
제도화: 법률과 교육제도
말라가시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마다가스카르 민주공화국(제2공화국, 1975~1992) 체제에서였다. 1975년 사회주의의 도입과 함께 마다가스카르 경제의 국유화, 권력과 교육의 민주화가 추진되었고, 마다가스카르어는 사회주의 체제와 연결된 이데올로기적 차원을 획득했다. 마다가스카르 사회주의 혁명헌장이 새 언어정책의 표현이었다. 제2공화국 시기 정치 문서에서 교육의 말라가시화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혁명의 요구, 즉 사회주의적이고 진정으로 말라가시적인 국가 건설의 요구에 맞추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1975~1991년 교육 언어는 말라가시어였다(1960~1975년은 프랑스어). 1978년 7월 17일 법률 제78-040호는 교육·훈련의 일반적 틀을 규정하고 교육제도를 MINESEB로 개편했으며, 공용 말라가시어(malagasy iombonana)를 개발할 위원회를 두어 메리나 계통의 공식 말라가시어와 지역 방언 사이의 가교를 마련하려 했다.
학교와 행정, 경제로 확장
교육에서 말라가시화는 프랑스어를 줄이는 대신 학교에서 말라가시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을 뜻했다. 초등 전 과정과 중등 일부에서 말라가시어를 교수 언어로 도입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해 국사와 말라가시 문화를 포함시키고, 마다가시 교원을 양성해 외국인 교원을 점진적으로 대체하려 했다. 프랑스어를 모르는 학생들의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학교교육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학교 밖에서도 정책은 행정과 경제로 확장되어 외국인 인력을 단계적으로 교체하고 마다가시 관리들을 등용하며 행정 문서에서 말라가시어 사용을 확대했고, 일부 경제 부문에서는 시민 참여를 강화했다. 1975년 이후 디디에 라치라카 아래에서 말라가시화는 사회주의 정책과 결합되었다. 식민지 지명을 식민지 이전의 말라가시 지명으로 바꾸는 작업도 포함되어, 디에고 수아레스는 안치라나나가 되었다. 정책은 의도적인 언어계획을 수반해 기술·행정 용어를 말라가시어로 만들고 행정·교육·기술 어휘를 번역했으며 말라가시어 철자법과 표준화를 둘러싼 논쟁을 낳았다. 제1공화국 시기인 1960년대 초부터 치라나나 정부도 기술·법률 용어를 위한 말라가시어 위원회를 만들었고 여러 부처가(특히 1964년 법무부와 1965년 농업부) 자체 어휘를 개발했지만, 말라가시화론자들은 이를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지역·계급 갈등과 메리나 논쟁
정책은 메리나 강요 사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식 말라가시어로 추진된 것은 중앙 고지대(메리나) 계통의 변종이었고, 해안 지역 주민들은 메리나 계통을 공식 말라가시어로 삼는 것을 메리나 우위를 강요하려는 시도로 보아 다른 방언을 지키려는 저항을 낳았다. 타협안으로 '공용 말라가시어(malagasy iombonana)'가 약속되었다. 사회언어학 연구도 이 갈등을 확인한다. 제1공화국 이래 표준화된 '공식' 말라가시어는 중앙 지역 주민들의 방언 변종이며, 해안 지역 주민들이 '말라가시어'라는 이름의 언어 선택에 반대한 것은 그 정치적·사회적 함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프랑스어와 말라가시어의 양층언어 상황 위에 말라가시어 대 말라가시어의 양층언어 상황이 겹쳐 있었던 것이다. 계급적 불균등도 드러났다. 프랑스어가 말라가시어로 대체된 뒤 말라가시어 교재와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했고, 경제·정치 엘리트는 자녀를 프랑스계·가톨릭 사립학교에 보내 공교육에 남은 약 150만 명의 학생들과 갈라섰다.
결과와 논쟁
학술적 평가는 실패의 원인을 원칙보다 수단에서 찾는다. 인적·언어적 자원의 부족, 어휘 공급의 부족, 기술 용어의 결함이 말라가시어가 확장될 수 있는 영역, 특히 학교와 대학에서의 영역을 제한했고, 10년이 지나도 구체적 성과가 없었다. 두 언어의 학습 모두 코드 전환과 간섭으로 손상을 입었고, 프랑스어가 교수 언어 지위를 되찾으면서 '재프랑스화(refrancisation)'가 불가피해졌다. 1990년까지도 여러 학교가 프랑스어로 수업했고, 말라가시어로 가르치려 애쓰던 교사들은 여전히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프랑스어에 대한 강한 거부는 큰 해악을 낳아 마다가스카르 정부가 프랑스어를 한시적으로 유지하게 했고, 해안 지역 주민들은 공식 말라가시어보다 프랑스어를 선호해 이를 받아들였다. 말라가시어권 서술은 정책이 주민들을 실망시켰고, 교육 관계자 대부분이 학생들이 말라가시어 문어를 습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으며, 1983년 이후 말라가시어 학위를 가진 학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전한다. 국가가 제공한 말라가시어 교과서는 적고 질도 낮았으며, 교사들은 훈련되지 않았고 수도 부족했고, 수업에 대한 감독도 없어 학생들은 말라가시어도 프랑스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라치라카의 유산을 다룬 한 전문가 논평은 라치라카 아래 20년의 사회주의와 말라가시화(교육 언어로서 말라가시어의 사용) 끝에 마다가스카르가 세계에서 최악에 속하는 교육체계를 갖게 되었다고 본다. 같은 글은 '모두를 위한 교육'을 향한 단호한 추진이 있었지만 적절한 계획과 자원이 없는 실험이었고, 여러 세대에 걸쳐 하지 못한 일을 몇 해 만에 해내려 했다고 평한다. 그 결과는 모든 사람을 교육하는 대신 자신의 학년 수준에서 기대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었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중등교육을 마친 여러 세대의 마다가시인, 특히 그 세대는 '희생된 세대(Sacrificed Generation)'로 널리 불린다. 지지 측이 내세운 성과도 기록되어 있다. 민족적 자긍심과 통일, 진정한 문화적·지적 독립을 향한 진전, 말라가시 정체성에 관한 전국적 논쟁, 구전 전통과 전통 지식의 가치 부여가 그것이다. 말라가시어권 서술은 또한 말라가시화가 프랑스어를 익히지 못한 농촌 주민을 포함해 전체 인구의 학교교육 접근성을 높였다고 덧붙이면서도, 부족한 교재와 교사 훈련이 마다가시인 사이에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상징적·헌법적·이데올로기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말라가시어는 매개 언어이자 대외 소통 언어로서 프랑스어가 지닌 도구적 가치 앞에서 약한 위치에 머물렀고, 말라가시어를 진흥하려 선택된 학교가 오히려 말라가시어를 점차 주변화된 지위에 가두었다는 것이 학술적 평가다. 2008년 마다가스카르 언론의 한 투고는 말라가시화가 라치라카의 국가사회주의 정책에 의해 상식에 반해 결정되었고 민족 통일 반대 세력이 이용한 주요 불화의 원천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논쟁적 주장이지 확립된 사실이 아니다. 같은 투고는 말라가시화가 교육의 '메리나화'를 뜻한다는(주변부 인구의 지적 후진성을 지속시킨다는) 반복되는 논증과 말라가시어에 현대성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하다는 논증을 기록하는데, 필자는 첫 번째 논증에 이의를 제기하고 두 번째는 결함이 아니라 어휘 확충의 문제로 다룬다. 이 투고는 1975년의 말라가시화를 '생각도 실행도 나빴던' 것으로, 마다가시어를 '완전히 불신하게 만든' 것으로 규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