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룔-크로미 작전
Orel–Kromy operation
1919년 10월 11일부터 11월 18일까지 붉은 군대 남부전선이 모스크바로 향하던 데니킨의 의용군 제1군단을 오룔과 크로미 일대에서 막고 되민 작전. 영어 문헌은 오룔-쿠르스크 작전이라 부른다. 서부전선에서 옮겨 온 라트비아 소총사단을 중심으로 한 충격군이 백군의 측면을 쳤고, 10월 13일 코르닐로프 연대들에게 떨어진 오룔은 20일 에스토니아 소총사단과 제9소총사단이 되찾았다. 백군은 이후 모스크바에 더 가까이 오지 못했다.
상세
충격군은 안톤 마르투세비치가 이끈 라트비아 소총사단(9개 소총연대와 기병연대 1개), 비탈리 프리마코프의 붉은 카자크 독립 기병여단, 파블로프의 독립 소총여단으로 이루어졌고 약 1만 명이었다. 쿠테포프의 제1군단은 코르닐로프·마르코프 연대의 제1보병사단과 드로즈돕스키 연대의 제3보병사단을 거느렸다. 제1보병사단이 10월 10일 크로미를, 13일 오룔을 차지했고 코르닐로프 연대는 므첸스크까지 나갔다. 충격군은 15일 드로즈돕스키 부대를 밀어내고 크로미에 들어갔고, 백군이 툴라 진격을 멈추고 이 충격군을 치는 데 주력을 돌리는 사이 에스토니아 소총사단이 오룔 서쪽에서 압박했다. 코르닐로프 연대들은 19일 밤 오룔을 버리고 남쪽으로 물러났다.
크로미는 23~24일 다시 백군에게 넘어갔다가 26~27일 라트비아 사단이 되찾았고, 같은 무렵 드미트롭스크도 넘어왔다. 11월 3일 붉은 카자크 여단 등을 묶은 프리마코프의 제8기병사단이 백군 후방으로 들어가 포니리, 파테시, 리고프를 잇달아 쳤고, 11월 17~18일 에스토니아 사단과 제9사단이 쿠르스크를 되찾았다. 같은 때 부됸니의 기병이 보로네시와 카스토르노예에서 백군 기병을 깨뜨렸다. 붉은 군대는 의용군을 포위해 없애지는 못했지만 전략 주도권을 되찾았고, 라트비아 사단은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