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교육 수용소
Re-education camps (Vietnam)
베트남 전쟁 종전 직후인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 이후 새 정부가 남베트남의 전직 군인·공무원·경찰과 구정권 협력자를 구금해 '재교육'한 수용소다. 베트남어로는 Trại cải tạo, trại học tập cải tạo라 한다. 정부는 이를 교도소가 아니라 사회 복귀를 위한 교화와 건설적 노동의 장소로 규정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를 '재교육 훈련소'로도 적는다.
상세
제도의 성립
1975년 5월 신정부는 특정 집단에게 등록을 명령했고, 6월에는 등록자들에게 재교육을 받으러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남베트남군 사병·부사관은 3일 과정, 소위~대위급 장교와 하급 경찰관·정보요원은 10일분 식량·용품을, 고위 장교·관리는 30일분을 준비해 지정된 장소로 보고하도록 했다. 정부가 예고한 기간은 사병 3일, 하급 장교·관리 10일, 고위 장교·관리 1개월이었으나 실제로는 고위 장교의 경우 10년 넘게, 일부는 17~18년까지 구금되기도 했다.
수용소는 남베트남 전역에 흩어져 있었다. 수감 기간은 수주에서 18년까지였고, 석방과 폐쇄는 1980년대~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수용 조건
수감자들은 집단 정치 교화(미제국주의 비판, 노동의 영광, 공산당 지도하의 승리 등)와 강제 자필 신고서 작성을 요구받았고, 지뢰 제거·벌목·농사·경내 건설 등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 부족한 식량과 의료로 기아와 질병(말라리아·각기병·이질 등)에 따른 사망이 흔했으며, 구타·독방·족쇄 등이 보고되었다.
수감자 규모는 추정치가 엇갈린다. 학술적 검토는 20만~30만 명으로 보며, 100만 명설은 팜반동 총리의 발언 오역에서 비롯된 과장으로 본다. 반면 디아스포라·미국 정부 계통 자료는 50만~100만 명으로 추정한다.
석방과 종료
1976년 6월 남베트남 임시혁명정부는 수감자들을 3년 후 재판하거나 석방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석방 기준이 불명확해 뇌물·인맥이 작용했다. 1989년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베트남과 협정을 맺어 아직 구금 중이던 전직 남베트남 관리들의 석방을 추진했다. 제도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단일 연도는 확정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슐츠 국무장관의 1985년 연설에서 이 수용소를 두고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 정부 관리·지지자와 기타 반대자들을 체포해 수십만을 보냈고 노동·교화·폭력적 학대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반공 진영의 정치적 규정으로서 출처를 밝혀 인용해야 한다.
구별되는 제도
라오스에도 유사하지만 구별되는 제도가 있었다.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은 '재교육 센터(세미나 캠프)'를 두었고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된 전직 라오스 왕국 정부 관리들이 주로 수감되었으며, 수천 명의 전직 관리들이 보내졌다. 1975년부터 구금된 사람들이 많았고 1989년 후아판 주의 재교육 센터에서 고위 관리·장교들이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