革命样板戏 · 1967.05

혁명 모범극

Revolutionary model operas

문화대혁명기 공산당이 본보기로 내세운 무대 작품들. 중국어로 양판희(样板戏)라 한다. 1967년 5월 《인민일보》가 경극 다섯, 발레 둘, 교향 음악 하나의 여덟 편을 처음 꼽았고 1976년까지 26편쯤으로 늘었다. 장칭이 주도했다.

상세

어떤 작품들인가?

《인민일보》가 1967년 5월 31일 사설에서 꼽은 여덟 편은 경극 《지취위호산》, 《해항》, 《홍등기》, 《사자방》, 《기습백호단》, 발레 《홍색낭자군》, 《백모녀》, 교향 음악 《사자방》이다. 주인공은 모두 공산당 아래 싸우고 일하는 현대 중국인이다. 황제와 장군, 재자가인을 몰아낸 무대였다.

왜 다들 외우게 되었나?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와 연극이 말라붙었던 시절, “8억 인민에 연극 여덟 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모범극은 라디오와 확성기로 되풀이되어 흘러나왔고, 1969~1972년에는 영화로 찍혀 이동 영사대에 실려 농촌까지 갔으며, 300여 지방극이 이를 옮겨 공연했다. 음반과 포스터, 그릇과 찻주전자에까지 실렸다. 경극을 모르는 남녀노소도 몇 소절씩은 불렀다. 작가 안치 민은 자서전에서 라디오에 귀를 대고 가수의 숨소리까지 따라 했다고 회고한다.

경극을 어떻게 바꾸었나?

우선 인물의 위계를 정했다. ‘세 가지 돋보이기(삼돌출)’라 하여 모든 인물 가운데 긍정적 인물을, 그 가운데 영웅을, 그 가운데 주인공을 돋보이게 했다. 악역은 짧은 노래만 받았다. 다음으로 소리가 바뀌었다. 서양 관현악단이 들어와 경극 악대와 함께 연주했고, 즉흥의 여지를 없앤 악보가 생겼으며, 노생·화단 같은 전통 배역 구분이 사라졌다.

이 틀은 대단히 엄격했다. 영화와 음반과 지방극으로 옮길 때에도 조금도 어긋나면 안 되었다. 초기에 수정 의견을 낸 예술가들은 박해를 받았다. 죄목은 ‘모범극 파괴 현행 반혁명’으로 최고 사형까지였고, 무대에서 대사 하나를 틀려도 반혁명 죄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평가되나?

여전히 예민한 문제다. 장칭이 정치적 야심을 위해 썼으니 ‘음모 문예’라는 평가가 있고, 많은 작품이 장칭이 손대기 전에 이미 꼴을 갖추었으니 그가 남의 성과를 빼앗았을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바진은 모범극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했다고 썼다. 그러나 연구자 미나미 가즈시는 농촌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를 아끼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다. 2008년 교육부가 초중고 경극 교육 곡목 15곡 가운데 모범극 9곡을 넣자 논란이 크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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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zh.wikipedia.org
  2. 위키백과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