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신분
Third Estate
구체제 프랑스 삼부제에서 성직자(제1신분)와 작위 귀족(제2신분)에 속하지 않는 모든 주민을 가리키는 법적 신분. 도시와 농촌을 아울러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고, 그 안에 부르주아지·관리·전문직·수공업자·임금노동자·농민이 함께 들어 있었다.
상세
법적 신분과 내부 계급
제3신분은 구체제 프랑스 삼부제의 세 번째 신분으로, 성직자로 이루어진 제1신분과 작위 귀족으로 이루어진 제2신분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포괄했다. 국왕은 어느 신분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 구분은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법적·정치적 지위를 규정했고, 신분마다 특권이 달랐다. 제1·제2신분이 대체로 면세였던 반면 제3신분은 조세 부담의 대부분을 졌다. 부르주아지, 수공업자, 노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농민으로 구성된 제3신분은 전체 인구의 약 97%에 이르렀으며, 농민은 제3신분 전체의 약 80%를 차지했다.
11세기 이후 노동하는 일반 범주는 농민, 숙련 수공업자, 상인, 금융업자, 세속 전문직, 기업가로 분화했다. 제3신분은 도시와 농촌 집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도시에는 임금노동자가, 농촌에는 자유농민과 영주지에서 일하는 농노가 있었다. 자유농민은 다른 신분에 비해 불균형하게 높은 세금을 냈다.
대표와 계급의 불일치
정치적 대표는 신분의 사회적 실태와 크게 어긋났다. 1614년 제3신분 대표 187명 가운데 상인은 둘, 쟁기꾼은 하나였던 반면 변호사가 30명, 총독 대리 58명, 관구 관리 56명이었고 177명이 변호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 1789년 제3신분 대표 약 610명(또는 578명, 600명으로 집계되기도 한다) 가운데 약 3분의 2가 법률 자격을 지녔고 거의 절반이 매관 관직 보유자였으며, 상공업 종사자는 100명 미만이었다. 선출된 대표 가운데 농민이 있었는지를 두고는 사료가 엇갈린다. 영어 위키백과는 농민과 수공업자가 한 명도 없었다고 서술하는 반면, 프랑스어 위키백과는 선출된 대표 가운데 농민이 단 한 명뿐이었다고 전한다.
1789년과 그 이후
제3신분 대표들은 신분별 표결이 아니라 머릿수 표결을 요구했는데, 신분별 표결에서는 인구 5% 미만인 성직자와 귀족이 제3신분을 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789년 6월 17일 제3신분 대표들은 스스로 프랑스 국민의회임을 선언하고 기존 세금이 불법이라고 밝혔다. 시에예스의 팜플렛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1789년 1월)는 제3신분이 그 자체로 완전한 국민이며 나머지 두 신분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해 초기 혁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팜플렛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약 30만 부 인쇄). 8월 4일 특권 폐지에 이어 8월 11일 국민의회가 봉건제의 완전한 폐기를 선포하면서 제3신분의 법적 존재는 끝났다.
혁명 이후 'tiers état'는 '인민'의 모호한 동의어로 혼동되기도 했다. 19세기에 프루동은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모든 것이다'라고 그 어법을 되살렸다. 같은 이름의 다른 용례와도 구별해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제3신분'은 주 의원과 자치시 대표였고, 스웨덴과 러시아에서는 시민과 농민이 각각 별개 신분을 이루는 4신분제가 있었으며, 오늘날 '제4신분'은 보통 언론과 대중 매체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