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지 (영화)
Yellow Earth (film)
천카이거의 첫 연출작이자 장이머우가 촬영을 맡은 1984년 중국 영화. 1939년 산시(陝西) 북부에 민요를 모으러 온 팔로군 병사와, 강제 혼인을 앞둔 농가 소녀 추이차오의 이야기다. 중국 ‘제5세대’ 영화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상세
무슨 이야기인가?
1939년 이른 봄, 팔로군 선전 병사 구칭이 혼자 옌안을 떠나 황토 고원을 걷는다. 농민의 민요를 모아 공산주의 가사를 붙여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는 가난한 홀아비 농부 집에 머문다. 열네 살 딸 추이차오는 부지런하고 노래를 잘 부른다. 어머니 장례와 동생 혼사에 쓴 돈 때문에 그는 몇 달 뒤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야 한다. 구칭이 남쪽에서는 여자도 글을 배우고 스스로 혼인을 정한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싫어하고, 추이차오는 귀를 기울인다.
구칭이 돌아가는 날, 추이차오가 길에서 기다리다가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혼인 사정을 모르는 구칭은 허가가 있어야 한다며 언젠가 돌아오겠다고 달랜다. 혼례 날이 오고 추이차오는 가마에 실려 간다. 그는 동생에게 구칭의 깔창을 맡기고, 밤에 구칭이 가르쳐 준 노래를 부르며 거센 황하를 건너려 한다. 그가 건넜는지는 영화가 말하지 않는다.
그해 여름 구칭이 돌아왔을 때 집은 비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추이차오의 아버지를 앞세워 용왕에게 비를 비는 춤을 추고 있다. 동생 한한이 구칭에게 달려가려 하지만 군중에 막힌다. 영화는 “공산당이 우리를 구하리라”는 추이차오의 노래로 끝난다.
왜 충격을 주었나?
대사가 아니라 화면으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제임스 해비스는 이것을 1949년 이후 중국에서 영상으로 이야기를 한 최초의 영화라고 불렀다. 또 하나는 공산당을 대하는 태도다. 혁명 병사는 선량하지만 소녀를 구하지 못한다. 해비스는 영화가 농민을 도울 공산당의 능력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고 썼고, 그래서 중국 안에서 논란이 되었다.
어떤 역사와 만나나?
구칭의 임무는 실제 옌안의 관행이었다. 민간 문화를 개조해 새 국민 문화를 만드는 작업은 1942년 옌안 문예 강화로 체계화되었고, 《백모녀》가 그 대표작이다. 영화는 바로 그 전통을 돌아보는 셈이다. 음악은 자오지핑이 맡았고, 원작은 커란의 산문집이다.
천카이거와 장이머우는 1978년 베이징영화학원에 함께 들어가 1982년 졸업하고 광시영화제작소로 배정된 동기다. 이 작품은 중국 영화의 얼굴을 바꾸었다는 평을 받았고, 2005년 홍콩금상장의 최고 중국어 영화 100편 가운데 4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