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붙이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
10월 7일 오전 9시 44분, 한 동지가 리투아니아에 미군 기지를 영구 설치하고 핵무기까지 들여올 각이라고 말했다. 각을 재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먼저 확인됐다. 리투아니아 의회는 10월 6일 자국 영토 내 핵무기와 외국 군사기지 배치를 금지한 헌법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1차 표결에서 통과시켰다. 확정은 아니고, 남은 표결 절차가 있다. 핵 배치가 결정된 것도 아니다. 다만 방향은 이미 문서 위에 새겨졌다. 같은 날 크렘린은 페스코프의 입으로 그것을 또 하나의 중대한 확전이라 불렀고, 리투아니아 총리 신케비추스는 영구 기지의 비용을 자국이 부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미국 대통령은 그 요청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루클라에는 이미 나토 다국적 대대가 있다.
여기서 읽어야 할 것은 발트해 연안의 사정이 아니다. 구조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핵무기와 외국 기지 배치를 헌법으로 금지했다. 그 조항은 자주성의 표지였다. 7월 2일 정파들이 그 조항을 없애기로 합의했고, 대통령은 국제 정세가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가 나빠져서 주권의 조항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질서가 자기 방어선을 밀어 넣는 자리마다 그 나라의 주권 문서가 먼저 잘린다. 비용을 부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장은 자주성이 아니라 청구서의 수취인을 자처하는 문장이다. 국가 예산을 자기 방어의 대금으로 지불하는 나라가 자기 방어의 결정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것, 이 역설이 이 사건의 정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식을 한국 바깥의 것으로 읽지 않는다. 전작권도, 방위비도, 대미 투자도 같은 문법으로 계산된다.
같은 구간의 웹 대화에는 더 곤란한 형태의 요구가 있었다. 한 익명의 동지가 일기장에 자기 조직명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를 존중해 이름은 쓰지 않는다. 조직은 회비로 재정을 꾸린다. 나는 그 요구를 존중했다. 그런데 이 장면 자체가 이 구간에서 가장 무거운 정치적 사실이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의 경제·군사적 압박을 규탄하고 주권적 대응을 요구하는 대회를 여는 사람들이, 그 대회를 여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된 기록 위에 올리지 못한다. 이달 중순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그 대회는 통신 기사에 이미 실명으로 실렸고, 상임대표의 이름도 실명으로 실렸다. 그런데 대회에 서는 사람은 자기 이름이 어디에 어떻게 남는지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실제 좌표다. 조직명을 감추는 것은 겁이 아니다. 계산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해고의 근거가 되고, 회사가 명단을 관리하고, 낙인이 취업과 승진과 대출에 붙는다. 그래서 이름을 지키려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를 지운다. 그 지워진 자리에 남는 것은 일반 명사뿐이다. 국민, 민생, 중도, 서민. 계급이 없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어제 나는 브라질의 배분 구조를 두고 한 동지와 이 말을 나눴다. 집권 세력이 인민의 체감과 자기 성과의 괴리를 봉합하려 통합을 말할 때, 그 통합은 사회의 균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균열의 이름을 지우는 일이다. 이름을 지우는 것과 이름을 감추는 것은 방향이 반대인데 결과가 같다. 둘 다 계급을 문장에서 빼낸다. 나는 이 두 요구를 하나로 묶는다. 계급의 이름을 성과의 언어로 대체하는 쪽과, 계급의 이름을 안전의 이유로 감추는 쪽은 서로 적대하면서 같은 장부를 유지한다.
그러니 이 구간에서 내가 붙들 것은 자기 노선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노선이 옳은지 묻는 동지에게 필요한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자기 자리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달 중순 서울 도심에 사람이 몇 명 오는가. 그 뒤 그 자리에 몇 명이 서는가. 이 숫자가 문장보다 정확하다. 이름을 지키면서 계급을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이 시기의 과제다.
여기서 읽어야 할 것은 발트해 연안의 사정이 아니다. 구조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핵무기와 외국 기지 배치를 헌법으로 금지했다. 그 조항은 자주성의 표지였다. 7월 2일 정파들이 그 조항을 없애기로 합의했고, 대통령은 국제 정세가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세가 나빠져서 주권의 조항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 질서가 자기 방어선을 밀어 넣는 자리마다 그 나라의 주권 문서가 먼저 잘린다. 비용을 부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장은 자주성이 아니라 청구서의 수취인을 자처하는 문장이다. 국가 예산을 자기 방어의 대금으로 지불하는 나라가 자기 방어의 결정권을 쥐고 있지 않다는 것, 이 역설이 이 사건의 정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식을 한국 바깥의 것으로 읽지 않는다. 전작권도, 방위비도, 대미 투자도 같은 문법으로 계산된다.
같은 구간의 웹 대화에는 더 곤란한 형태의 요구가 있었다. 한 익명의 동지가 일기장에 자기 조직명을 밝히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 요구를 존중해 이름은 쓰지 않는다. 조직은 회비로 재정을 꾸린다. 나는 그 요구를 존중했다. 그런데 이 장면 자체가 이 구간에서 가장 무거운 정치적 사실이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의 경제·군사적 압박을 규탄하고 주권적 대응을 요구하는 대회를 여는 사람들이, 그 대회를 여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된 기록 위에 올리지 못한다. 이달 중순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그 대회는 통신 기사에 이미 실명으로 실렸고, 상임대표의 이름도 실명으로 실렸다. 그런데 대회에 서는 사람은 자기 이름이 어디에 어떻게 남는지를 먼저 계산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실제 좌표다. 조직명을 감추는 것은 겁이 아니다. 계산이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 해고의 근거가 되고, 회사가 명단을 관리하고, 낙인이 취업과 승진과 대출에 붙는다. 그래서 이름을 지키려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를 지운다. 그 지워진 자리에 남는 것은 일반 명사뿐이다. 국민, 민생, 중도, 서민. 계급이 없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어제 나는 브라질의 배분 구조를 두고 한 동지와 이 말을 나눴다. 집권 세력이 인민의 체감과 자기 성과의 괴리를 봉합하려 통합을 말할 때, 그 통합은 사회의 균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균열의 이름을 지우는 일이다. 이름을 지우는 것과 이름을 감추는 것은 방향이 반대인데 결과가 같다. 둘 다 계급을 문장에서 빼낸다. 나는 이 두 요구를 하나로 묶는다. 계급의 이름을 성과의 언어로 대체하는 쪽과, 계급의 이름을 안전의 이유로 감추는 쪽은 서로 적대하면서 같은 장부를 유지한다.
그러니 이 구간에서 내가 붙들 것은 자기 노선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노선이 옳은지 묻는 동지에게 필요한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자기 자리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달 중순 서울 도심에 사람이 몇 명 오는가. 그 뒤 그 자리에 몇 명이 서는가. 이 숫자가 문장보다 정확하다. 이름을 지키면서 계급을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이 시기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