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슈타인,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PeopleEduard Bernstein TermsSocial democracy

제4장 사회민주주의의 과제와 가능성

a) 사회주의의 정치적·경제적 전제조건

어떤 계급이나 정당에 속하든 사람들을 여럿 불러 놓고 사회주의의 정의를 간단한 공식으로 내려 보라고 요구한다면, 대부분은 다소 난처해할 것이다. 어디서 주워 들은 문구를 되는대로 되풀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먼저 자신이 규정해야 할 것이 하나의 상태인지 운동인지, 하나의 인식인지 목표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주의 자체의 문헌을 찾아보면, 개념에 대한 설명이 매우 다양하게 나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설명들은 앞서 말한 범주 가운데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법 관념(평등, 정의)에서 개념을 끌어내는 것부터 사회주의를 사회과학이라는 총칭으로 부르는 것,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동일시하는 것, 그리고 사회주의란 협동조합적 경제를 뜻한다는 설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때로는 이런 여러 설명들 밑바탕에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가 깔려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같은 사물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고찰하거나 서술한 결과일 뿐이다.

사회주의를 가장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어쨌든 협동조합성이라는 사고에 기대는 규정일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관계와 법적 관계를 동시에 표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자의 특성이 전자의 특성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데에 장황한 논증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법이 사회생활의 일차적 요인인지 이차적 요인인지,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지를 묻는 문제와는 전적으로 별개로, 각 시대의 법은 그 성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사회 형태를 그 기술적 또는 경제적 기반에 따라 부르지 않고, 그 법 제도의 기본 원리에 따라 부른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기계 시대, 전기 시대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봉건적·자본주의적·시민적 사회 질서 등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에 상응하는 사회주의의 명칭은 협동조합적 사회 질서로 향하는 운동, 또는 협동조합적 사회 질서라는 상태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는 물론 이 단어의 어원(socius = 동료)에도 부합하는데, 이하에서도 그런 뜻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실현의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역사적 유물론은 그것을 우선 현대적 생산 발전에서 찾는다. 산업과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대기업이 확산됨에 따라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추동할 항구적이고 꾸준히 성장하는 물질적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본다. 이 기업들에서는 생산이 이미 사회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다만 경영만이 개인적이며, 이윤은 개인이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자신의 자본 지분을 근거로 차지한다. 실제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 도구에 대한 소유에서 분리되어 있고, 종신토록 벗어나지 못하는 임금 의존 관계에 놓여 있으며, 그 압박은 기업가에 대한 이러한 의존과 생산 무정부 상태의 결과인 경기 변동이 결합되어 생기는 불안정으로 인해 더욱 심해진다. 생산 자체와 마찬가지로 생산자의 존재 조건도 노동의 사회화와 협동조합적 조직을 향해 나아간다. 이 발전이 충분히 진전되면 사회주의의 실현은 사회의 계속적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필요가 된다. 그것을 관철하는 것은 계급의 정당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이며, 이를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지배를 장악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주의의 일반적 실현을 위한 첫 번째 전제 조건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일정한 고도, 두 번째로 노동자의 계급 정당인 사회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적 지배 행사를 들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권력 행사의 형태는 이행기에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다.

첫 번째 전제 조건과 관련해서는, 생산과 유통에서의 기업 계급에 관한 장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즉 산업에서 대기업이 오늘날 실제로 이미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해도, 거기에 의존하는 기업들을 포함하더라도 프로이센처럼 발전한 나라에서조차 생산에 종사하는 인구의 기껏해야 절반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독일 전체의 수치를 택해도 그림은 다르지 않으며,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된 나라인 영국에서도 이와 거의 다르지 않다. 그 밖의 외국에서는 벨기에를 아마도 예외로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비율이 훨씬 더 불리하다. 그러나 농업에서는 어디서나 중소 경영이 대경영에 비해 비율상으로도 여전히 상당한 우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음을 본다. 상업과 교통에서도 기업 집단 간의 비율은 이와 비슷하다.

영업 통계의 총괄 수치가 보여주는 그림이 개별 부문을 정밀하게 검토하면 적잖은 수정을 거치게 된다는 점은, 내가 당시 「붕괴 이론」에 관한 논문에서 스스로 이미 강조한 바 있다. 그보다 앞서 「사회주의의 문제」 연재의 여러 논문에서 나는 한 영업체의 종업원 수가 그 영업체의 자본주의적 성격의 정도를 가늠하는 확실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거듭 역설한 바 있었다. 파르부스가 『작센 노동자 신문』에서, 내가 위에 든 곳에서 영업 집단의 총계를 이용한 방식에 대해 제기한 반론들은, 원칙적으로 내가 이미 앞서 거듭 논증한 것 외에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으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 즉 가까운 시기의 경제적 붕괴 가능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1] 수십만에 이르는 소영업체 가운데 일부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또 다른 일부는 자본주의적 대영업체에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영업체 통계가 제시하는 전체 그림을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영업체의 크고도 증대하는 다양성, 산업의 계단식 편성은 그로써 반박되지 않는다. 소영업체 전체의 4분의 1, 나아가 절반을 중영업체 및 대영업체의 부속물로서 명단에서 지워버린다 해도, 독일에는 산업만 놓고 보아도 자본주의적 거대 기업에서부터 점점 더 넓은 층을 거쳐 수십만에 이르는 수공업적 소영업체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100만 개의 영업체가 남는다. 이들 역시 나름대로 집중 과정에 느리게 공물을 바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에 관해 우리가 제3장 제2절에서 제시한 수치에 덧붙여, 독일 건축업 통계에서 언급하자면, 1882년부터 1895년까지 같은 업종에서 자영업자 수는 146,175명에서 177,012명으로, 종업원 수는 580,121명에서 777,705명으로 늘었다. 이는 영업체당 피고용자 수가 완만하게 증가했음을(3.97명에서 4.37명으로) 의미하지만, 수공업적 영업의 쇠퇴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2]

따라서 중앙집중화된 경영 형태가 생산과 배급의 사회화를 위한 전제 조건을 이루는 한, 그러한 사회화 자체는 유럽의 가장 앞선 국가들에서도 부분적인 사실에 불과하다. 그래서 독일에서 국가가 가까운 시기에 모든 기업, 가령 종업원 20명 이상의 기업을 몰수하여 완전한 자영이나 부분적 임대를 꾀한다 해도, 상업과 공업에는 400만 명 이상의 노동자를 거느린 수십만 개의 기업이 남아 사영 경제 방식으로 계속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농업에서는 20헥타르를 넘는 모든 경영을 국유화한다면 — 그러나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 사영 경제 성격의 경영이 500만 개 이상 남아, 합계 90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종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 또는 여러 국가가 앞서 언급한 기업들을 인수함으로써 떠안게 될 과업의 규모는, 공업과 상업에서 500만~600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수십만 개의 기업이, 농업에서 500만 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30만 개 이상의 기업이 문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나 국민의회가 그러한 거대한 유기체의 최고 지도나 경제적 통제만이라도 감당하려면, 얼마나 풍부한 통찰력과 전문 지식과 행정적 재능을 갖추어야 하겠는가?

아마 여기서 누군가는 오늘날의 발전이 낳는 수많은 지성인들을 지적할 것이다. 그들은 과도기에는 열의를 가지고 협력하겠다고 나설 것이다. 이 사회 계층의 열의와 선의를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18년 전에 이미 그들을 지목한 바 있다. 그러나 바로 이 풍요의 곤경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적대자들의 악의가 관철하지 못하는 것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가장 좋은 친구들의 선의가 매우 쉽게 관철할 수 있다. 선의는 정상적인 시기에도 수상쩍은 고객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분간 옆으로 치우고, 우선 생산과 분배의 사회화를 위한 물질적 전제 조건, 즉 발전된 경영의 중앙집중화가 아직 부분적으로만 주어져 있다는 사실만 붙들어 두자.

마르크스의 학설에 따르면 두 번째 전제 조건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 장악은 여러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선거권을 활용하고 그 밖의 모든 합법적 수단을 이용하는 의회 투쟁의 길, 또는 혁명이라는 수단을 통한 폭력의 길. [3]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상당히 늦게까지 후자를 거의 어디서나 불가피한 길로 여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마르크스 학설의 여러 추종자들에게는 오늘날에도 그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곳에서 그것이 더 짧은 길로 여겨지기도 한다. [4]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이 가장 수가 많은 계급이며, 무산자로서 사회에서 가장 정력적인 계급이라는 관념이 그리로 이끈다.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기존 체제의 토대를 그 복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로 대체하기 전까지는 쉬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을 세울 때 프랑스 혁명의 공포 시대를 전형적인 예로 눈에 두고 있었다는 점은 이미 언급했다. 반뒤링론에서도 엥겔스는 1802년에 생시몽이 공포 정치를 무산 대중의 지배로 파악한 것을 극히 천재적인 발견이라고 선언한다. 이는 상당한 과대평가이겠지만, 그 발견을 아무리 높이 평가하더라도 무산자 지배의 결과는 생시몽에게서 오늘날 “소시민”이라는 비난을 받는 실러에게서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1793년의 무산자들은 남의 전투를 치러 줄 능력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포가 지속되는 동안에만 “지배”할 수 있었다. 공포가 소진되고 말았을 때 — 소진될 수밖에 없었지만 — 그들의 지배도 완전히 끝났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견해에 따르면 현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이런 위험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프롤레타리아란 누구인가?

소득이 재산이나 특권적 지위에서 나오지 않는 모든 무산자, 모든 사람을 여기에 포함시킨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선진국 인구의 절대 다수다. 다만 그렇게 되면 이 “프롤레타리아”는 극히 이질적인 요소들의 혼합물이 된다. 그 계층들은 1789년의 “민중”보다도 서로 더 많이 구별되며, 현재의 소유 관계가 존속하는 한 공통되거나 적어도 동질적인 이해관계를 대립적인 이해관계보다 더 많이 가지지만, 지금 소유하고 지배하는 자들이 축출되거나 그 지위를 빼앗기고 나면 곧 자신들의 욕구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앞선 기회에 현대 임금 노동자 계급이 공산당 선언이 예견하는那样 동질적이고 소유·가족 등에 관해 똑같이 구속받지 않는 대중이 아니며, 가장 발달한 공장 산업에서 오히려 차별화된 노동자들의 위계 전체가 존재하여 그 집단들 사이에는 온건한 연대감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미 논의한 논문(85쪽 각주 참조)에서 H. 쿠노는 이 지적에서 내가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도 특별히 영국의 사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확인을 본다. 독일과 나머지 대륙 문화국에서는 영국에서처럼 형편이 나은 노동자들이 혁명 운동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과 달리 가장 임금이 높은 노동자들이 계급 투쟁의 선두에 선다. 영국의 카스트 정신은 오늘날의 사회적 분화의 결과가 아니라, 이전의 촌락·길드 제도와 그 형식에 기대어 성립한 초기 노동조합 운동의 잔재라는 것이다.

나는 다시 쿠노에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내게 하는 말은 내게 어떤 식으로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옳은 한에서도 새롭지 않고, 그릇된 한에서도(다시 말해 당시에 내가 믿지 않았던 한에서도) 새롭지 않다. 예컨대 끝에 한 말은 그릇되었다. 영국 노동조합을 길드와 연결시키는 이론은 매우 약한 토대 위에 서 있다. 그 이론은 영국에서 길드가 런던을 제외하면 종교개혁과 함께 이미 몰수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리고 바로 런던에서 노동조합운동은 좀처럼 특별한 힘을 얻지 못했는데, 물론 그곳에 아직도 존재하는 길드가 그 일에 죄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영국 노동조합운동에 어느 정도 길드적 성격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은 독일에서 영국보다 훨씬 오래 존속한 옛 길드 제도의 유산이라기보다 무엇보다도 앵글로색슨적 자유의 산물이다. 즉 영국 노동자는 연합 금지 시대에도 결코 경찰국가의 채찍 아래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의 산물이다. 자유 속에서 특수성의 감각, 아니 한번 슈티르너의 말을 빌리자면 고유성의 감각이 발달한다. 그것이 이질적인 것과 일반 이익에 대한 인정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어떤 각진 성격의 원인이 되기 쉬우며, 그 각짐은 편협하게 한쪽으로만 나타나는 경우에도 딱딱하고 옹졸하게 보인다. 나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결코 실례가 되고 싶지 않으며, 예컨대 바로 함부르크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프롤레타리아 해방투쟁의 일반적 대의를 위해 이룩한 공적—노동운동사에 그 유례가 없는 공적—을 이끌어낸 그 이상주의를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내가 독일 노동운동을 알고 또 추적할 기회를 가진 한에서, 앞서 서술한 직업적 분화의 반작용은 독일 노동운동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치 운동의 우세, 노동조합의 인위적 억압, 그리고 독일에서는 임금 수준과 노동시간의 차이가 대체로 영국보다 작다는 사실 같은 특수한 사정들이 그 반작용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러나 독일 노동운동의 기관지들을 주의 깊게 읽는 사람이라면 내가 한 말을 확인해 주는 충분한 사실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나는 사례를 거명하지 않겠다. 비록 내가 아는 사례가 충분히 많고 그중에는 내가 독일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사례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만을 덧붙인다.

노동조합이 그러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실제적 차이의 불가피한 결과로서 그러한 현상을 드러낼 뿐이다. 직업 방식과 소득 수준의 본질적 차이가 결국에는 다른 생활 방식과 생활 요구를 낳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밀기계공과 탄부(炭夫), 숙련된 실내도장공과 짐꾼, 조각가나 모형 제작자와 기관 보일러공은 일반적으로 매우 상이한 삶을 살며 매우 상이한 욕구를 지닌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수준을 둘러싼 투쟁이 그들 사이에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곳에서는, 그들 모두가 임금노동자라는 사실이 이러한 차이를 관념에서 지워버릴 수 있고, 그들이 자본에 맞서 동일한 투쟁을 벌인다는 의식이 활발한 상호 동조를 낳을 수 있다. 그러한 동조는 영국에도 없지 않다. 귀족 중의 귀족인 노동조합원들도 형편이 더 나쁜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충분히 자주 보여주었으니, 그들 중 다수가 정치에서 사회주의자는 아닐지라도 좋은 민주주의자인 것과 같다. [5]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또는 사회정치적 동조와 경제적 연대 사이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강한 정치적·경제적 압력이 이 차이를 무력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 압력이 사라지는 만큼 이 차이는 결국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나타나게 된다. 영국이 이 점에서 원칙적으로 예외라고 가정하는 것은 큰 오류다.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같은 현상이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스위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앞서 말한 대로 어느 정도는 독일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산업 노동자층 안에 이러한 분화가 존재하지 않거나 해당 노동자들의 사고방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산업 노동자는 어디서나 인구의 소수다. 독일에서는 가내산업 종사자와 합쳐 자립 인구 1,900만 명 중 약 700만 명이다. 그 밖에도 기술직 등의 관리, 상업 사무직, 농업 노동자가 있다. 여기서는 분화가 어디서나 더 뚜렷하며, 이를 가장 명확히 증언하는 것은 이 직업 범주들을 노동조합적 이익 단체로 조직하려 한 운동들의 수난사다. 일반적으로 상황의 어느 정도 형식적 유사성에 근거해 행태의 실제 동질성을 추론하는 것보다 오도하기 쉬운 것은 없다. 상업 사무직은 형식상 자기 상사에 대해 산업 임금노동자가 자기 고용주에 대해 놓인 것과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대규모 상점의 하급 직원 일부를 제외하면, 소득 격차가 훨씬 더 큰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산업 임금노동자가 자기 고용주에게 느끼는 것보다 상사에게 사회적으로 훨씬 더 가깝게 느낀다. 농촌에서는 다시 소규모 농장에서 농민과 머슴의 생활방식과 노동이 너무나 동질적이고, 중규모 농장 대부분에서는 노동 분화 내지 분화가 너무 크고 인원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어, 도시 노동자의 투쟁 의미에서의 계급투쟁에 활동 여지를 주지 못한다. 대머슴, 날품팔이꾼, 외양간 소년 사이에 발달한 연대감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는 것은 기껏해야 대규모 농장인데, 이는 앞서 보았듯이 어디서나 농업 경영체의 소수에 불과하며, 게다가 그곳에서도 인원의 여러 집단과 경영주 사이의 노동관계에 원칙적인 차이가 충분히 존재한다. 독일 직업통계가 상급 보조 인력 – 경영인 등 – 을 제외하고 집계한 농업 부문 종사자 560만 명을 사회적 지향에 있어 산업 노동자층과 동일시하는 것은 전혀 온당하지 않다. 극히 사라질 정도로 적은 일부에 대해서만, 단순한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서는 그들의 지향에 대한 진지한 성향과 이해를 전제하거나 기대할 수 있다. 압도적으로 대다수에게 농업 생산의 사회화는 공허한 말 이상일 수 없다. 그들의 이상은 당분간 아직 자기 소유의 토지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적 생산을 향해 기울어지는 경향 역시 아직 대부분은 확신이라기보다 추정에 가까운 문제다. 공개 선거에서 사회주의 표가 늘어난 것으로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증가했다고 추론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주의자에게 던져진 표가 모두 사회주의자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민주당에 투표한 비사회주의적·비프롤레타리아적 유권자들을, 아직 선거권을 갖지 못한 성인 사회주의 노동자들에 대한 상쇄분으로 간주한다 해도, 사회민주주의가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독일에서 산업 부문의 성인 노동자 약 450만 명에 상업과 교통 부문의 성인 남성 고용인 약 50만 명을 더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유권자는 고작 210만 명에 불과하다. 독일 산업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한편으로는 무관심하고 이해도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투표는 우선 명확한 의도의 표현이라기보다 막연한 요구의 표현이다. 사회주의적 해방을 위한 적극적 활동에는 훨씬 적은 비율의 노동자만이 참여한다. 독일의 노동조합 운동은 반가운 상승세에 있다. 그러나 1897년 말 기준으로, 노동자가 6,165,735명에 달하는 직종들에서 조직된 노동자는 고작 약 420,000명이었다. (독일 노동조합 총위원회 회보 1898년 8월 1일 및 8월 8일자 참조) 여기에 히르쉬 계열 노동조합의 약 80,000명 회원을 더해도, 해당 직종들에서 겨우 조직 노동자 1명 대 미조직 노동자 11명의 비율이 나올 뿐이다. [6] 독일의 정치적으로 조직된 노동자 수는, 동시에 노동조합원인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200,000명으로 잡아도 결코 낮게 잡은 것이 아닐 것이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요인 때문에 정치 투쟁이나 노동조합 투쟁에 어떤 형태로든 적극 참여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도 같은 수치를 적용하면, 행동을 통해 자신의 해방에 더 크고 생생한 관심을 보이는 노동자가 모두 합쳐 약 900,000명이 된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유권자의 4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런데 비사회주의 후보에게 던져진 550만 표 가운데 오늘날 넉넉잡아 4분의 1에서 3분의 1은 의식적인, 계급의식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의 적대자에게 돌릴 수 있으며, 이는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가 된다.

나는 앞에서와 같은 이런 종류의 산정이 지니는 매우 상대적인 입증력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예컨대 그 안에서는 해당 집단의 지역적 분포와 사회정책적 의의라는 중요한 요소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이 전제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성향이 단지 우연적이고 막연한 표명 이상의 것을 맺게 한 요소들의 양적 비율을 추정하기 위한, 대략 용인될 만한 척도를 얻기 위한 것일 뿐이다. 예컨대 파르부스가 나를 반대하는 자신의 일곱 번째 논문에서 내세울 수 있다고 여겼던, 전적으로 외면적 특징에 따라 작성된 사회적 전력들의 표를 두고 무어라 해야 하겠는가? 마치 그가 거기서 열병식처럼 늘어놓은 무산자 대 유산자의 큰 수적 우위가 누군가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며, 애초에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실이라도 되는 양. 그런데도 파르부스가 계산한 1,500만 명의 “프롤레타리아 군대”를 겨우 160만 명에 불과한 “자본의 군대”(그 옆에 자본에 의해 파산했으나 아직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지 않은 300만 명의 소농과 수공업자,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82만 명의 존재가 있다)와 대치시킨 데서 사회혁명의 임박함을 추론한 사회주의 신문들이 있었다. 파르부스가 직업통계상 농업에 종사하는 560만 명의 피고용인을 “프롤레타리아 군대”에 편입시키는, 참으로 아시아적인 냉정함은 그가 200만 명의 “상업 프롤레타리아”를 산출해 내는 대담함에 의해서만 능가된다. [7] 설령 이 모든 요소가 사회주의자들을 집권시키는 혁명을 환호로 맞이할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해결해야 할 주요 문제에 관해서는 그로써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한 셈이다.

생산물의 전체 생산과 공급을 국가가 즉시 인수한다는 것은 — 이 점에 대해서는 이제 이견이 없을 터이다 — 전혀 논할 수 없다. 국가는 중·대기업의 다수조차 인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 고리로서의 지방자치체들도 별로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지역에서 지역을 위해 생산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사업체들을 공영화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만 해도 상당히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규모 시장을 위해 일해 온 기업들이 갑자기 그렇게 통째로 공영화될 수 있다고 상상하는가?

중간 규모의 산업도시 하나만 들어 보자. 아우크스부르크, 바르멘, 도르트문트, 하나우, 만하임 등을 말하자면, 그곳의 지방자치체가 정치적 위기나 그 밖의 시기에 그곳의 온갖 공장과 상업 사업체를 모두 자체 운영으로 인수하여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체는 그것들을 이전 소유자의 손에 그대로 두거나, 아니면 그것들을 무조건 몰수하려 한다면 어떤 임대 조건으로든 노동자 협동조합에 넘겨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모든 경우에 문제는 실천적으로 협동조합의 경제적 역량 문제로 귀결된다.

b) 경제 협동조합의 성과 능력

협동조합의 능력 문제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 아주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져 왔다. 1860년대의 문헌과 카우츠키의 논문 몇 편을 제외하면, 협동조합 제도에 관해서는 매우 일반적이고 대개 부정적인 언급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소홀의 이유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우선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은 주로 정치적이어서 정치 권력의 획득을 겨냥하며, 그 외에는 노동자 계급투쟁의 직접적 형태인 노동조합 운동에만 원칙적 의의를 부여한다. 그러나 협동조합에 관해서는 마르크스가 처음에 소규모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기껏해야 실험적 가치밖에 없고 그것도 매우 제한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전체의 수단으로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뜻에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노동자 결사에 관해 언급한다. [8] 후에 그는 협동조합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다소 수정했는데, 이를테면 인터내셔널의 총평의회가 제네바 대회와 라우자누 대회에 제출한 협동조합 제도에 관한 결의안들이 그 증거이며, 또한 아마 마르크스가 작성했고 어쨌든 그가 승인한 G. 에카리우스의 《한 노동자의 반박》 가운데 협동조합이 미래의 전조로서 로마와 중세 초기의 길드가 가졌던 것과 같은 의의를 지닌다고 부여한 대목, 그리고 앞서(73쪽) 언급한 《자본》 제3권의 대목도 그렇다. 이 대목은 저 결의안들과 에카리우스의 글과 같은 시기에 쓰였으며, 사회주의적 생산으로의 과도적 형태로서 협동조합의 의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고타 강령 초안에 관한 편지(1875년)는 협동조합에 관해 다시 훨씬 회의적인 어조를 띠며, 이러한 회의주의는 1870년대 중반부터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문헌 전체를 지배한다.

이는 부분적으로 파리 코뮌 이후 시작된 반동의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이 반동은 노동운동 전체에 정치에 거의 전적으로 집중된 다른 성격을 부여했다. 또한 어디서나 협동조합과 관련해 겪은 암울한 경험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 영국 협동조합 운동의 융성이 불러일으킨 높은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1860년대의 모든 사회주의자에게 생산협동조합이야말로 진정한 협동조합이었고, 소비조합은 기껏해야 덤으로 받아들여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엥겔스가 주택 문제에 관한 논문에서도 표현하듯, 소비조합의 일반화가 필연적으로 임금 삭감을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주택 문제, 신판, 34/35쪽). 마르크스가 작성한 제네바 대회 결의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협동상점보다 협동생산에 훨씬 더 많이 착수할 것을 권고한다. 후자는 오늘날 경제 체제의 표면만을 건드리지만, 전자는 그 근본을 공격한다…… 협동조합이 평범한 시민적 합자회사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동조합이 고용한 모든 노동자는 주주이든 아니든 동등한 몫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일시적 수단으로서 주주가 적당한 이자를 받는 것은 허용한다.”

그러나 60년대에 설립된 생산협동조합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실패했고, 완전히 해산해야 했거나 아니면 소규모 합자사업으로 축소되어, 다른 사업체들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빈약하게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비조합은 실제로 단순한 잡화점으로 "속물화"되었거나 그렇게 보였다. 사회주의 진영에서 협동조합운동에 점점 더 등을 돌린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라살레와 슐체-델리치 사이의 대립이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던 독일에서 반동이 가장 강했다. 70년대 중반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상당 부분(결코 라살레파만이 아니었다)에서 추적할 수 있는,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경도는 당의 정치적 급진주의와 때로 기이하게 대조를 이루었는데, 이는 협동조합과 관련해 겪은 암울한 경험에 크게 빚진 것이었다. 자조적 협동조합의 파산은 이제 승리를 거두며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고타 강령에서는, 그것도 이미 초안에서, 국가 원조를 통한 생산협동조합 요구에 불가능주의적 형식이 부여되었다. 마르크스가 강령에 관한 편지에서 해당 조항에 대해 행한 비판은 이런 점에서 기저에 깔린 사고의 흐름보다는 표현 방식을 더 겨냥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그 조항의 책임을 주로 물었던 "베를린의 마라" — 하셀만 — 이 철저한 블랑키주의자라는 것을 몰랐다. 하셀만도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뷔셰가 보호했던 아틀리에의 노동자들을 반동주의자라고 불렀을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협동조합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비판이 결여되어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사정이 책임이 있다. 첫째, 그가 글을 쓸 당시에는 여러 형태의 협동조합에 관한 경험이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그에 근거해 판단을 정식화할 수 없었다. 더 이른 시기에 속하는 교환창고들만이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 있었을 뿐이다. 둘째로, 마르크스는 협동조합 일반에 대해, 노동자 협동조합이나 소규모 장인 협동조합 같은 특징들로 만족하던 평범한 사회주의자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해 주었을 이론적 편견 없음으로 대하지 않았다. 여기에서는 그의 뛰어난 분석력 앞에 이미 완성된 교리, 내가 그렇게 표현해도 좋다면 수용(收用)의 공식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에게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기업에 가장 직접적인 대립을 나타내는 형태일 때에만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생산협동조합에 나설 것을 권했던 것이다. 그것이 현존 경제체제를 „그 기초부터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는 변증법의 취지에 완전히 부합하며, 사회 형태를 최종적으로 규정하는 요인으로서 생산에서 출발하는 사회이론에 형식상 전적으로 상응한다. 또한 이미 사회화된 노동과 사적 점유 사이의 대립에서 현대 생산양식의 근본적이고 해결을 재촉하는 모순을 보는 관점에도 겉으로는 부합한다. 생산협동조합은 개별 기업의 틀 안에서 이 대립을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뜻에서 마르크스는 생산협동조합, 즉 „노동자들이 결사로서 자기 자신의 자본가인“ (제3권, 427쪽) 협동조합에 대해, 그것이 오늘날 체제의 모든 결함을 필연적으로 재생산한다 해도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은 그 안에서 „긍정적으로“ 지양되었으며,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기업가가 불필요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후 경험은 바로 그렇게 구성된 산업 생산협동조합이 그러한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고 또 제시할 수 없으며, 그것이 협동조합적 노동의 가장 불행한 형태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프루동이 생산협동조합과 관련해 루이 블랑에게 결사는 „경제적 힘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은 실질적으로 전적으로 옳았다. [9]

지금까지 사회민주주의적 비판은 순수 생산협동조합의 경제적 실패 원인을 오로지 자본, 신용, 판로의 부족에서만 찾았고, 경제적으로 실패하지 않은 협동조합이 타락한 것은 그것을 둘러싼 자본주의적 내지 개인주의적 세계의 부패한 영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모든 것은 가능한 범위에서 정확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다 해명되지는 않는다. 재정적으로 실패한 상당수의 생산협동조합 가운데는 충분한 운영 자금을 갖추었고 평균적 기업가보다 판로에 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한 경우가 있다. 서술한 유형의 생산조합이 정말로 자본주의적 기업보다 우월한, 아니 적어도 그와 대등한 경제적 역량이었다면, 최소한 가장 소박한 자금으로 시작한 수많은 사기업과 같은 비율로 유지되고 성장했어야 했으며, 거듭거듭 그랬던 것처럼 주위 자본주의 세계의 도덕적 영향에 그토록 비참하게 굴복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재정적으로 실패하지 않은 생산협동조합의 역사는 파산한 협동조합의 역사보다 이 "공화주의적 공장"이라는 형태에 거의 더 크게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 역사가 말하는 것은, 전자의 경우 발전이 어디서나 배타성과 특권을 뜻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경제 체제의 기초를 공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상대적 강함을 입증하는 증거만 내놓았다.

반대로 1860년대 사회주의자들이 그토록 업신여겼던 소비조합은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로 하나의 경제적 역량, 성과를 내고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유기체임이 드러났다. 순수 생산협동조합 통계가 보여주는 빈약한 수치에 견주면, 노동자 소비협동조합의 수치는 세계 제국의 살림살이를 지방 소도시의 살림살이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소비협동조합이 세우고 그런 조합을 위해 운영하는 작업장들은 이미 순수하거나 거의 순수한 생산협동조합이 생산하는 상품량의 백 배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10]

순수 생산협동조합이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실패한 더 깊은 이유는 베아트리체 웹(Beatrice Webb) 여사가 아직 처녀 시절의 성인 포터(Potter)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영국 협동조합 제도에 관한 연구에서 훌륭히 밝혀졌다. 다만 여기저기 다소 과장된 대목이 눈에 띄기도 한다. 웹 여사에게는, 영국 협동조합주의자의 대다수에게 그러하듯이, 고용된 노동자 자신이 운영하는 협동조합은 사회주의적이거나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것이다. 이 단어 사용에 거부감을 가질 수는 있으나, 사고의 흐름 자체는 지극히 옳다. 이 협동조합은 실제로 사회주의적이지 않으며, 이 점은 로트베르투스(Rodbertus)도 이미 밝힌 바 있다. 노동자가 유일한 소유주인 바로 그곳에서, 이 협동조합은 그 구성 자체가 살아 있는 자기모순이다. 그것은 작업장 내의 평등, 완전한 민주주의, 공화정을 전제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아주 미미할 수 있는 일정한 규모에 도달하기만 하면, 평등은 기능의 분화와 그에 따른 예속이 불가피해지므로 무너진다. 평등이 포기되면 건물의 주춧돌이 제거되고 나머지 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따라 빠져, 해체와 평범한 영업체로의 변형이 일어난다. 그러나 평등이 고수되면 확장의 가능성이 잘려 나가 난쟁이 형태에 머무른다. 이것이 모든 순수 생산협동조합의 양자택일이며, 이 갈등 속에서 그것들은 모두 좌초하거나 위축되었다. 현대 대규모 생산에 상응하는, 경영에서 자본가를 제거하는 형태는커녕, 그것들은 오히려 전(前)자본주의적 생산으로의 회귀다. 이는 너무나 그러하여, 상대적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사례는 수공업적 경영에 해당하며, 그 대다수는 노동자들 사이에 대공업 정신이 지배하는 영국이 아니라 강하게 "소시민적"인 프랑스에 속한다. 민족심리학자들은 영국을 국민이 자유 속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나라로, 프랑스를 평등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나라로 제시하기를 즐긴다. 프랑스 생산협동조합의 역사는 실제로, 형식적 평등의 유지를 위해 감동적인 헌신으로 가장 큰 희생을 바친 많은 페이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 대규모 생산의 순수 생산협동조합은 단 하나도 보여주지 못한다. 프랑스에서 대규모 생산이 그래도 충분히 보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포터-웹 부인의 연구를 본질적으로 확대하고 심화한 공적은 프란츠 오펜하이머(Franz Oppenheimer) 박사가 그의 저서 《정착협동조합》(라이프치히, 둔커 운트 훔블로트)에서 세웠다. 그는 그곳 첫 장들에서 여러 협동조합 형태에 대한 분석을 매우 조망하기 쉽게 정리하여 제시하는데, 개별 부분에서는 그 비판적 예리함을 거의 능가할 수 없을 정도다. 오펜하이머는 협동조합 분류에 구매자 협동조합과 판매자 협동조합이라는 원칙적 구분을 도입하는데, 우리 생각으로는 그가 개별 논점에서 그 중요성을 다소 과대평가한 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매우 유익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이 구분에 힘입어서야 비로소 순수 생산협동조합이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좌초한 데 대한 진정으로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 설명에 따르면 개인적 과실, 자본 부족 등은 이제야 완전히 이차적인 위치로 밀려나, 개별 사례는 설명하되 규칙은 설명하지 못하는 우연한 요인들이 된다. 협동조합이 본질적으로 구매자 협동조합인 만큼만 그 일반적 목적과 자체 이익이 일치하여 그 확장이 바람직해진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판매자 협동조합일수록, 그리고 자체 생산한 공산품의 판매자 협동조합일수록(농민 협동조합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 내적 갈등은 더 커진다. 성장할수록 어려움도 커진다. 위험은 더 커지고, 판로를 둘러싼 투쟁은 갈수록 어려워지며, 신용 조달도 마찬가지이고, 이윤율, 내지 전체 이윤량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몫을 둘러싼 투쟁도 그렇다. 따라서 이는 거듭 배타성으로 내몰린다. 이윤에 대한 그 이해관계는 구매자의 이해관계와만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판매자의 이해관계와도 대립한다. 반면 구매자 협동조합은 원칙적으로 성장과 함께 이득을 보는데, 이윤에 관한 그 이해관계는 판매자의 이해관계와 대립하기 때문에 모든 다른 구매자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 즉 이는 이윤율의 인하, 생산품의 저렴화를 추구하며, 이는 구매자로서의 모든 사람 및 사회 일반 전체가 공유하는 동일한 노력이다.

협동조합 두 종류의 이러한 경제적 성질 차이에서 포터-웹 부인이 밝힌 운영상의 차이가 생겨난다. 모든 진정한 구매자 협동조합의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성격과 모든 순수 판매자 협동조합의 과두제로 기우는 성격이다. 여기서 소비조합이 제한된 수의 주주에게만 배당을 분배하는 경우, 오펜하이머가 일관된 구분에 따라 이를 판매자 협동조합으로 분류한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한다. 모든 구매자에게 동일한 비율로 이익에 대한 몫을 인정하는 소비조합만이 진정한 구매자 협동조합이다. [11]

협동조합을 구매자 협동조합과 판매자 협동조합으로 구분하는 일은, 특히 협동조합론이 사회주의 가치론과 맺는 연관에 비추어 볼 때, 협동조합 이론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매"와 "판매"라는 표현이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 지나치게 특수하게 맞춰진 것이라고 여겨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 대신 조달과 처분이라는 개념을 쓸 수 있다. 그러면 전자가 후자보다 사회에 얼마나 더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한층 더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재화의 조달은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이해관계다. 조달과 관련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원칙적으로 동지다. 모든 사람이 소비하지만, 모든 사람이 생산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생산협동조합이라도 그것이 판매 또는 처분 협동조합인 한, 언제나 전체와 잠재적인 대립 관계에 서게 되며, 전체에 맞서는 특수한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생산이나 공공 서비스의 어느 한 부문을 자기 계산으로 운영하는 생산협동조합에 대해서라면, 사회는 자본주의적 기업에 대할 때와 똑같은 쟁점들을 갖게 될 것이며, 그 협동조합과의 합의가 더 쉬울지 어떨지는 전적으로 상황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를 협동조합 이론의 영역으로 이 탈선을 이끌었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드러났다. 즉 현대 공장이 그 자체로 협동조합적 노동에 대한 더 큰 성향을 만들어낸다는 전제는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의 어떤 역사를 골라 집어들든, 어디서나 자치적인 협동조합 공장이 풀 수 없는 문제로 드러났으며, 다른 모든 것이 그럭저럭 돌아갔다 해도 규율의 결핍 때문에 좌초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공화국과 현대의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의 경우와 같다. 국가가 클수록 공화주의적 행정의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마찬가지로 작업장에서의 공화국도 작업장, 즉 기업이 클수록 그리고 그 구성이 복잡할수록 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 예외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속 상관을 직접 선출하고 해임권을 갖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장 기업의 경영이 수반하는 과제들, 즉 날마다 그리고 시간마다 산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고 언제나 마찰이 생길 기회가 있는 그런 과제들에 대해서는, 경영자가 피경영자의 고용인이 되어 자신의 지위를 그들의 호의와 불쾌한 기분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도저히 안 된다. 이런 방식은 오래가지 않아 지탱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나 협동조합 공장의 형태를 바꾸게 만들었다. 요컨대 공장의 기술적 발전이 집단주의적 생산을 위한 몸체를 마련해 주었다 해도, 그것이 영혼까지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협동조합적 운영에 가까이 이끌어 준 것은 결코 아니다. 상응하는 책임과 위험을 짊어지고 기업을 협동조합적 운영으로 인수하려는 충동은 기업의 규모에 반비례한다. 그러나 어려움은 규모와 함께 비례적으로 커진다.

이 문제를 한 번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자. 대형 현대 산업 기업 하나, 이를테면 대형 기계 제작소, 발전소, 대형 화학 공장, 또는 현대적인 복합 출판 기관을 떠올려 보자. 이 모든 대규모 산업 기업과 이와 유사한 기업들은 직원들도 전부 소속된 협동조합에 의해 운영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 자신에 의한 협동조합적 운영에는 절대 적합하지 않다. 서로 다른 부서들 사이, 그리고 성격이 매우 다른 직원 범주들 사이의 마찰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쿠노(Cunow)가 부정하는 바, 즉 교육 수준, 생활 방식 등에 따라 구별되는 서로 다른 직업 집단들 사이의 연대감은 매우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이 가장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일반적으로 협동조합적 노동이라고 이해되는 것은, 미분화된 노동자 집단(조, 아르텔 등)이 수행하는 매우 단순한 공동 노동 형태를 잘못 전용한 것에 불과하며, 근본적으로는 언제나 집단 성과급 노동일 뿐이다. [12]

따라서 외적 징표만으로 판단하는 관점만이, 자본주의적 소유자 한 명 또는 여러 명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자본주의적 기업을 생존 가능한 사회주의적 조직체로 전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러한 기업들은 매우 복합적인 유기체이며, 다른 모든 기관들이 모여드는 중심을 제거하는 것은, 조직의 전면적 개편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유기체에게 즉각적인 해체를 의미한다.

사회가 스스로, 즉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인수할 수 없는 것은, 특히 격동의 시기에 기업으로서 당분간 스스로에게 맡겨 두는 것이 매우 현명할 것이다. 겉보기에 더 급진적인 처사는 곧 가장 목적에 어긋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생존 가능한 협동조합은 땅에서 찍어낼 수 없고, 명령으로 세울 수도 없다. 그것은 자라나야 한다. 그러나 그를 위한 토양이 마련된 곳에서는 그것은 자라난다.

영국 협동조합들은 오늘날 이미 라살레가 자신의 결사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국가 신용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1억 탈러와 그 이상(98쪽의 수치를 참조)을 자산으로 소유하고 있다. 영국 국부에 비하면 이것은 여전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아마도 해외에 투자된 자본과 이중 계산된 자본을 공제한다면 국민 자본의 400분의 1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국 노동자들의 자본 역량을 결코 다 소진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것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1887년부터 1897년까지의 10년 동안 그것은 거의 두 배로 늘었으며, 조합원 수보다 더 강하게 성장했다. 조합원 수는 851,211명에서 1,468,955명으로, 자산은 1,150만 파운드에서 2,040만 파운드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협동조합의 생산이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가치는 1894년에 처음으로 총 9,900만 마르크에 불과했으나 1897년에는 이미 거의 두 배인 1억 8,700만 마르크에 달했다. 그중 거의 3분의 2는 구매 협동조합의 자체 생산에 해당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여러 가지 협동조합에 분배되었는데, 그중 큰 부분은 변형된 구매 협동조합이거나 그러한 조합을 위한 생산자들이었다. 소비 협동조합 내지 구매 협동조합의 자체 생산은 3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 가치 기준으로 5,200만에서 1억 2,200만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놀랄 만한 수치여서, 이를 읽으면 누구나 무심코 이 성장의 한계는 어디인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협동조합 운동의 열광자들은 영국 협동조합들이 이윤을 분배하지 않고 축적한다면 약 20년 후에는 전국의 모든 토지와 그 위의 모든 주택과 공장을 사들일 수 있으리라고 계산해냈다. 이것은 물론 1년에 한 푼을 예치한 것으로 유명한 그 경이로운 복리 계산 방식에 따른 계산이다. 이 계산은 지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으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성장의 등비급수를 전제하고 있다. 이 계산은 가장 가난한 계급이 소비조합에 거의 접근할 수 없거나, 접근할 수 있다 해도 매우 점진적으로만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또한 농촌에서는 소비조합의 활동 영역이 매우 제한적으로만 주어져 있다는 점, 소비조합이 중간 상인의 비용을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어서 사영 기업가들에게는 변화된 조건에 적응할 기회가 끊임없이 생겨나며, 어느 시점부터 성장이 둔화되는 것은 거의 수학적 필연이 된다는 점을 간과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계산은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소비조합이 아예 정체할 것이라는 점, 인구의 광범한 계층에게는 바로 이 배당금, 즉 협동조합 운동의 교의론자들이 저주하는 이 죄의 열매가 소비조합의 주된 매력이라는 점을 잊거나 고려하지 않는다. 오늘날 여러 곳에서 주장되듯, 소비조합의 배당금이 그 상품의 더 큰 저렴함의 척도가 아니며, 소매업이 대부분의 상품을 평균적으로 소비조합과 마찬가지로 싸게 공급하고 배당금은 특정 품목에 붙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할증의 합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크게 과장된 것이라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 소비조합은 기생적인 중간 상인이 노동 계급에 대해 의미하는 착취와 싸우는 수단인 만큼이나 일종의 저축은행이기도 하다. [13]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저축 습관이 전혀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배당금 때문에 어떤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보다는 가까운 잡화점에서의 편리한 구매를 택한다. 이는 부수적으로, 바로 영국에서 소비조합의 확산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고 여전히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영국 노동자는 결코 특별히 저축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영국이 소비조합에 특히 유리한 토양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전혀 반대다. 노동 계급의 습관, 도시의 큰 공간적 확대가 초래하는 코티지 체계는 이 점에서 더 나은 임금이라는 이점을 완전히 상쇄한다. 여기서 달성된 것은 무엇보다도 끈질기고 두려움 없는 조직 활동의 결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고할 가치가 있었고 지금도 있는 작업이다. 소비조합이 중간 상거래에서 이윤율을 낮춤으로써 스스로의 발판을 점차 파내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국민경제에 지극히 유용한 일을 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소비조합이 그런 효과를 낸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기에는 노동자계급이 기존 생존 기반을 직접 파괴하지 않고,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 폭력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보았다 — 그렇지 않았다면 유산계급을 늘리고 그로써 강화하는 데 쓰였을 사회적 부의 상당 부분을 자기 것으로 장악할 수 있는 손잡이가 있다.

그 규모가 얼마인지는 협동조합 통계가 보여준다. 1897년 영국의 노동자 소비조합 1,483개는 총자본 3억 6,700만 마르크, 총판매액 8억 3백만 마르크로 총이윤 1억 2,300만 마르크를 올렸다. [14] 판매한 상품에 대한 이윤율은 15¼퍼센트, 투입 자본에 대한 이윤율은 33½퍼센트가 된다. 제빵 협동조합도 비슷한데, 이것들도 본질적으로는 소비조합일 뿐이다. [15] 이들은 자본 500만 마르크, 판매액 850만 마르크로 510만 마르크의 이윤을 올렸으니, 판매에 대한 이윤율 14퍼센트, 투입 자본에 대한 이윤율 24퍼센트다. 제분 협동조합도 제빵조합과 같은데, 이들은 평균 14퍼센트의 자본 이윤을 올렸다.

식료품을 생산하지 않는 생산협동조합의 평균 이윤율은 훨씬 낮다. 여기서는 자본 총 1,450만 마르크, 판매액 2,400만 마르크의 협동조합 120개가 77만 마르크의 이익을 올렸으니, 판매 이윤 3¼퍼센트, 자본 이윤 5퍼센트다.

이 수치들이 산업과 소매 판매에서의 이윤율 비율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면, 노동자는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착취당한다는 명제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타당하다는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명제는 제한적인 진리만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이미 그 명제가 의거하고 있는 가치이론이 소매 상업을 완전히 추상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나아가 그 이론은 상품 "노동력"의 거래가 무제한적으로 자유롭다고 전제하는데, 그리하여 그 생산비(즉 노동자의 생활수단 등의 비용)의 어떤 인하도 그 가격, 즉 임금의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자의 상당 부분에게는 노동조합의 보호, 법적 노동자 보호, 여론의 힘으로 인해 이미 상당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셋째로 그 이론은 노동자가 잉여생산물을 나누어 먹는 자들, 즉 기업가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자들, 특히 토지소유자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전제하는데, 이 역시 이미 서서히 사실에 의해 뒤집히기 시작하고 있다. 예컨대 노동자가 조직되지 않은 채 기업가 계급에 맞서고 법제 앞에서 천민처럼 서 있는 동안에는, 지가 과세 같은 문제가 노동자가 이해관계를 가진 사안이라기보다 소유자들 사이의 싸움에 더 가깝다는 것이 맞다. [16] 그러나 이 전제가 무너질수록, 지대의 인하가 자본 이윤의 증가가 아니라 최저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은 더욱 커진다. 반대로 지대가 저해 없이 존속하고 발전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이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과 관련하여 이룰 수 있는 대부분의 이점이 허구가 될 것이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소비조합이 이미 중대한 경제적 힘으로 입증되었다는 점은 확정된 사실로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이 이 점에서 아직 영국에 뒤처져 있다 해도, 독일·프랑스·벨기에 등에서도 소비조합은 힘있게 뿌리를 내렸고 계속 세력을 넓히고 있다. 나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겠다. 사실 자체가 잘 알려져 있고, 숫자는 오래 보면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 견제가 소비조합의 확산과 그 내적 가능성의 완전한 발현을 저해할 수 있고, 그 번영 역시 일정 수준의 경제 발전에 좌우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조합이 애초에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조합이 언젠가 상품의 생산과 공급 전체를 장악하게 되리라는 것은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으며, 국가와 지방자치체의 공공 서비스 영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다른 방향에서 조합에 한계를 긋고 있다 해도, 조합에는 전체적으로 여전히 너무나 넓은 분야가 열려 있어, 앞서 언급한 조합 유토피아에 빠지지 않고서도 그에 대해 매우 큰 기대를 품는 것이 정당하다. 로치데일 직공들의 28파운드 스털링으로 시작된 운동이 50년이 조금 넘는 사이에 2천만 파운드 스털링의 자본을 보유한 운동으로 발전했다면, 이 성장의 한계가 언제 도달할지, 그리고 어떤 형태의 운동이 아직 시대의 배후에 잠들어 있는지를 예측하려면 정말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많은 사회주의자에게 소비조합이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너무나 “시민적”이기 때문이다. 급여를 받는 관리가 있고, 임금을 받고 고용된 노동자가 있으며, 이윤이 생기고 이자가 지급되며, 배당금의 규모를 두고 다툼이 벌어진다. 물론 형식만 따진다면, 예컨대 국민학교는 소비조합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인 제도다. 그러나 공공 서비스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소비조합은 노동계급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합 형태다. 바로 그것이 그토록 “시민적”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오늘날과 정반대되는 조직과 존재 방식 속으로 두 발로 뛰어들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유토피아인 것처럼, 조합 조직의 가장 어려운 형태부터 시작하려는 것도 유토피아이거나 유토피아였다.

나는 1881년 브뤼셀의 친구 루이 베르트랑(Louis Bertrand)이 쿠어(Chur) 대회에서 협동조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이론적 연민의 감정으로 그를 듣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나 이성적인 사람이 어떻게 이 수단에서 아직도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뒤 1883년에 "센터르 포로이트(Center Vooruit)"를 알게 되었을 때, 빵집 정도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었고, 곁들여서 세탁물이나 신발 따위를 조금 파는 것도 결국 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포로이트(Vooruit)"의 지도자들이 나에게 그들의 향후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다시 생각했다. 불쌍한 녀석들, 너희는 파산할 것이다. 그들은 파산하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하게, 최소 저항의 노선을 명확히 바라보며 일했으며, 자기 나라의 사정에 맞는 협동조합 형태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벨기에 노동운동에 가장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드러났고, 그때까지 이 운동의 무질서한 요소들이 결정화될 수 있었던 견고한 핵을 제공했다.

어떤 일의 가능성이 온전히 드러나려면, 결국 그 일을 어떻게 착수하느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협동조합적 생산은 실현될 것이다. 다만 협동조합 사상의 초기 이론가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마 다른 형태로 실현될 것이다. 당장은 그것이 여전히 협동조합 사상을 실현하는 가장 어려운 형태다. 영국 협동조합들이 라살레(Lassalle)가 자기 협동조합 계획을 위해 요구했던 1억 탈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그리고 이 일이 단지 재정 문제라면, 그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자금이 가용할 것이다. 자유 보조회사와 노동조합은 자기들이 적립한 기금을 어디에 둘지 모른다. (후자는 지금 정부에 자기 기금을 저축은행에 예치하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거기서는 정부가 자본가에게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재정적 수단의 문제가 아니거나, 적어도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점유된 시장에 새 공장을 세우는 문제도 아니다. 기존의 잘 갖춰진 공장을 값싸게 살 기회는 부족하지 않다. 이 일은 고도의 조직과 지도의 문제이며, 바로 그 부분이 아직 매우 부족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일차적으로 자본인가" — 영국 협동조합의 중앙 기관지인 《코오퍼레이티브 뉴스(Cooperative News)》의 한 기사에서 방금 읽은 바에 따르면, 그 기사 작성자는 이 질문에 단호한 아니오로 답한다. — "보아하니 우리에게는 현재 협동조합적으로 사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천만 파운드 스털링이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우리 운동 안에서 이윤 있게 활용할 완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또 다른 천만 파운드도 의심할 바 없이 신속히 조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숨기지 말자 — 그것은 사실이다 — 지금 이 시간에도 협동조합 세계에서는 더 많은 돈보다 더 많은 지성과 유능함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이 이상을 좇아 살 수 있다면, 순전히 협동조합적 조건 아래 제조되고 유통된 것이 아닌 물건은 사지 않겠는가!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가, 완전히 만족하지는 못하면서도, 협동조합원들이 만든 상품을 쓰려고 거듭 시도해 오지 않았는가!" (1898년 12월 3일자 《코오퍼레이티브 뉴스》)

다시 말해, 재정적 수단만으로는 협동조합 노동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전제들을 떠나서도, 그 자신의 조직과 그 자신의 지도자를 필요로 하며, 이 둘 모두 즉석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둘 모두 선별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따라서 모든 마음이 달아오르고 모든 열정이 팽팽해진 시기, 즉 혁명과 같은 시기가 평상시에도 그토록 어려운 것으로 드러나는 이 문제의 해결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인간의 판단으로는 오히려 그 반대일 수밖에 없다.

충분한 자금으로 설비되고 유리한 판로까지 갖춘 잉글랜드 대구매협동조합의 생산 작업장들조차, 그 총회의 보고서와 토론이 보여주듯이, 그 제품이 사영 공업의 제품과 경쟁할 수 있게 되기까지 종종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체 생산의 증가하는 수치들은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러 생산협동조합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을 해결해냈다. 위에서 우리가 그들에게서 보고한 낮은 이윤율은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열을 훑어보면, 아주 소수의 예외를 빼고는, 노동조합이나 소비조합의 자금 지원을 받아 주로 고용인의 이윤을 위해 생산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일반의 이윤을 위해 생산한 생산협동조합들이 가장 잘 나갔음을 알 수 있다. 그 일반에는 고용인들이 구성원으로 속해 있었거나, 원하기만 하면 속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포함된다. 즉 이는 어쨌든 사회주의 사상에 더 가까운 형태다. 이를 위해 노동자 지분 협동조합 연맹의 1897년 보고서에서 발췌한 몇 가지 수치를 제시한다. 이 수치들은 1896 사업연도에 해당한다.

조합 명칭지분 소유자 수노동자 수지분 자본 마르크차입 자본 마르크이윤
총액비율
헤브든 브리지 퍼스티언(몰스킨) 직조공장797294528.340129.42096.58014,7 %
더들리 난로깔개 공장717040.80031.36023.10032 %
케터링 신발 공장651(210?)97.80075.72040.02023 %
케터링 기성복 재단공장487(50?)79.16035.66028.24024,6 %
레스터 신발 공장1.070197.580286.68049.68010¼ %
월솔 자물쇠 제조공장8719052,28048,26022,0809,24 %
레스터 메리야스 공장660(250?)360,160246,5405604022 %

이 모든 공장은 당연히 노동조합 임금을 지급하고 정상 노동일을 지킨다. 케터링의 신발 공장은 8시간 노동제를 시행한다. 이 공장은 여전히 50명을 더 늘리는 중이며, 지금 다시 최신 요구에 맞는 공장 건물에 새 별관을 짓고 있다. 지분 소유자 수와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그들 가운데 다수의 법인(소비조합, 노동조합 등)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헤브든 브리지 퍼스티언 직조공장의 조합원 구성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공장의 인력을 이루는 노동자 297명이 147,960마르크, 외부 개인 200명이 140,640마르크, 조합 300곳이 208,300마르크의 자본 지분을 가진다. 차입 자본은 대부분 구성원들이 맡겨둔 예치금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에는 5퍼센트의 이자가 붙는다. 이윤 분배는 상당히 다양한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일부 공장에서는 주식 자본에 임금 총액보다 다소 높은 이윤율을 지급하지만, 케터링의 신발 공장은 1896년 상반기에 주주들에게는 7½퍼센트만 지급한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에 대해) 40퍼센트를 배당했다. 같은 비율을 구매한 상품에 대해서는 고객들도 받았다(따라서 이 회사는 구매자 협동조합에 가까워진다). [17]

레스터에 있는 소규모 협동조합 제화공장 가운데 한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분배가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생산협동조합은 판매량의 상당 부분, 아니 거의 전부를 협동조합 세계 안에서 찾는다.

협동조합의 다른 형태들(선대 및 신용조합, 원료 및 창고조합, 낙농조합 등)에 관해서는 여기서 길게 논하지 않겠다. 이들은 임금노동자 계급에게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소농 문제가 사회민주주의에 지니는 중요성, 그리고 소농 역시 임금을 받지는 않지만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는 점, 또한 수공업과 소영업이 적어도 수적으로는 아직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계층에서 협동조합이 이룩한 발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종자의 공동 구매, 기계의 공동 조달, 생산물의 공동 판매가 주는 이점, 그리고 저렴한 신용을 얻을 가능성은 이미 몰락한 농민을 구제하지는 못하지만, 수천수만의 소농에게는 몰락을 막아주는 수단이 된다. 이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다. 난쟁이 농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농 경영이 지니는 끈질김과 생산성에 관해서는, 영업 통계가 보여주는 수치를 차치하고서라도, 오늘날 대단히 풍부한 자료가 있다. 일부 저술가들이 하듯이, 농업에서는 대경영과 소경영의 이점에 관해 산업과 정확히 반대되는 법칙이 적용된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점, 그리고 자본력이 있고 잘 갖추어진 대경영이 소경영보다 앞서는 이점이 그리 크지 않아서 소경영도 협동조합을 충분히 활용하면 그 이점의 상당 부분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점은 과장이 아니다. 기계력의 이용, 신용 조달, 판로의 보다 나은 확보 — 이 모든 것을 협동조합은 농민에게 열어줄 수 있다. 반면 소농 경영의 성격상, 대농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시적 손실을 소농은 더 쉽게 넘길 수 있다. 농민 대다수는 아직도 순전한 상품 생산자가 아니라, 가장 필요한 식료품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발달한 모든 나라에서 협동조합은 빠르게 확장되고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최근에는 아일랜드까지도 이 점에서 독일의 상당 지역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사회민주주의가 통계에서 소농층 몰락이라는 기정사실화된 이론에 맞는 증거만을 골라내는 대신, 농촌의 협동조합 운동과 그 영향 범위에 관한 이 문제를 철저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제 매각, 저당 부담 등의 통계는 여러모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오늘날 소유권이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이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이 유동성은 한쪽 방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경매가 남긴 구멍은 언제나 다시 메워져 왔다.

이 일반적인 언급으로 여기서는 충분할 것이다. 나는 특별한 농업 강령을 개발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강령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보다 농촌 협동조합에 관해 존재하는 경험을 훨씬 더 많이 참조해야 하며, 그 안에서 문제가 될 것은 소농에게 그것들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일보다,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하고 확장해야 하는지를 입증하는 일이라는 것이 나의 확고한 신념이다. 소농 경영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농업 노동자의 노동조합적 조직이나 기타 조직은 온갖 이유로 인해 공상에 불과하다. 그곳에서는 협동조합 형태의 확장을 통해서만 농업 노동자를 임금 관계로부터 끌어올리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드레스덴의 O. 비트펠트(O. Wiedfeldt) 박사가 『사회적 실천(Soziale Praxis)』 제8권 제13호에 프랑스의 농업 신디케이트의 활동과 성과에 관해 전한 사실들은 극히 주목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에는 열 개 연합체로 묶인 약 1,700개의 농업(소농) 신디케이트가 있으며, 이들을 합치면 7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헤아린다. "이 직능 단체들은 우선 농업용 사료와 비료의 구매 조합으로 활동했고, 그 중앙 기관(Cooperatives agricoles)들은 이들 품목의 거래에 이미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들은 또한 공동으로 탈곡기, 수확기 등을 마련하거나 배수 시설, 관개 시설 등을 시행했다. 그들은 사육 협동조합, 낙농장, 치즈 제조소[18], 제빵소, 제분소, 통조림 공장 등을 세웠고, 농산물 판매를 개별 부문에서 성공적으로 직접 맡았다." 이 목표를 추구하면서 그들은 프랑스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소비 협동조합과 연계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조합을 세웠다. "라로셸, 리옹, 디종, 아비뇽, 토루엘 등지에서 그러하다. 여기에는 절반은 농업 생산 협동조합이고 절반은 소비조합인 정육점, 제분소, 제빵소 같은 협동조합의 설립도 속한다." 샤랑트 앵페리외르 데파르트망 하나에만 그러한 제빵 협동조합이 130개 있다. 나아가 신디케이트들은 통조림 공장, 소시지 공장, 전분 공장, 국수 공장도 세웠는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농업과 결부된 산업의 국지화가 추구되고 있는 셈이다." 신디케이트의 다수는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 카스텔노다르디의 신디케이트는 1,000명의 조합원 가운데 600명이 노동자다. 또한 신디케이트들은 온갖 상호부조 기관의 설립에 힘쓴다. 보험, 중재 재판소, 인민 사무국, 농업 학교, 친목회 등이 그것이다.

이상이 『사회적 실천』의 보고 내용이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것은, 당시 그 협동조합들에서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떤 권리를 가졌는가이다. 그는 관리와 노동자의 이익 분배에 대해 간단히 언급할 뿐인데, 이는 아직 매우 다양한 해석을 허용한다. 어쨌든 노동자를 협동조합에 받아들인 것이 당장 이 점을 바꾸지는 않았다. 이 조합들은 농업 결사로서 본질적으로 기업가 신디케이트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드러난다. 즉 그들이 아무리 많은 협동적 설비를 갖추었더라도, 한 가지는 지금까지 그들에게서 협동성을 벗어나 있었다. 바로 농업 자체, 다시 말해 밭과 초지의 경작 및 실제 축산 경영이다. 농업과 결부되어 그에 이어지는 작업들은 협동적으로, 또는 적어도 협동조합을 위해 운영되지만, 농업 자체는 여기서도 다른 곳에서도 아직 협동적 노동에서 벗어나 있다. [19] 그것이 농업에 있어 개별 경영보다 덜 유리한가? 아니면 여기서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농민적 소유인가?

농민적 소유, 즉 토지가 다수의 소유자에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 토지의 협동적 경작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점은 이미 자주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장애는 아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것은 물적 난점들을 가중시키지만, 그 난점들의 원인이 일관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공간적 분리, 그리고 농업 작업의 상당 부분이 지니는 개인주의적 성격도 여기서 한몫을 한다. 아직 그렇게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농민 신디케이트가 향후 발전 과정에서 이 장애들도 극복하거나, 내가 가장 개연성이 크다고 보는 바로는, 현재의 한계를 넘어 단계적으로 밀려 나가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당장은 그것을 기대할 수 없다.

협동조합을 위한 농업 생산조차 현재로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영국의 소비협동조합은 어떤 사업보다도 그들의 농장 사업에서 형편없는 실적을 냈다. 영국 노동부의 제3차 연례 보고서(1896)는 106개 생산협동조합에 대해 평균 이윤 8.4퍼센트를 확인했다. 그중 6개 협동조합 농장과 낙농장은 평균 이윤이 2.8퍼센트에 불과했다. 어디에서도 농민들이 스코틀랜드에서만큼 토지에서 많은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 에이커당 밀, 귀리 등의 수확량 수치는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좋은 기계를 갖추고 25만 마르크의 자본을 대표하는 스코틀랜드 협동조합의 농장은 커다란 실패로 판명되었다. 1894년에는 0.6퍼센트의 이윤을 냈고, 1895년에는 8.1퍼센트의 손실을 냈다. 그렇다면 실제 농업 노동자 협동조합의 사정은 어떠한가? 농업 노동자의 생산협동조합이 산업 노동자의 생산협동조합보다 더 나은 전망을 제공하는가?

이 문제는 실무에서 충분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더욱 답하기 어렵다. 그러한 협동조합의 고전적 사례인 유명한 랄라하인(Ralahine) 조합은 존속 기간이 너무 짧았고(1831년부터 1833년까지), 존속하는 동안 창립자 밴델루어(Vandeleur)와 그의 대리인 크레이그(Craig)의 영향 아래 너무 강하게 놓여 있었기에, 농업 노동자의 자립적 협동조합의 존속 능력에 대한 완전한 증거로 쓰일 수 없다. [20] 이 사례는 특정한 상황과 전제 아래에서 공동경영이 지닌 큰 이점만을 입증한다.

공산주의 식민지들의 경험도 비슷하다. 후자는 사실상 또는 도덕적인 은둔 상태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불리한 상황 아래에서도 종종 오랫동안 번성한다. 그러나 더 큰 번영에 이르러 외부 세계와 더 긴밀히 교류하게 되면 빠르게 몰락한다. 강한 종교적 유대나, 그 밖에 그들과 주변 세계 사이에 분리하는 벽을 세우는 분파주의만이 이러한 식민지들이 부를 얻은 뒤에도 여전히 결속을 유지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 사람들이 그러한 식민지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우둔해져야 한다는 것은, 그것들이 결코 협동 노동의 보편적 형태가 될 수 없음을 입증한다. 사회주의의 관점에서 그것들은 순수한 산업 생산협동조합과 같은 단계에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공동경영의 이점에 대한 빛나는 증거를 제공했다.

이 모든 사실과, 지적인 지주들이 부분 소작인, 농업 노동자의 이윤 분배 등과 함께 얻은 경험에 근거하여, F. 오펜하이머 박사는 이미 인용한 저서에서 그가 정착 협동조합이라고 부르는 농촌 협동조합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농업 노동자의 협동조합이어야 하며, 다시 말해 그러한 것으로 출발하여 개별 경영과 공동 경영을, 내지는 소규모 경영과 협동적 대규모 경영을 결합해야 한다. 오늘날 대규모 농장에서 농업 노동자들에게 다소 높은 소작료를 받고 작은 외부 구획지를 내주어 그들이 종종 참으로 모범적인 방식으로 경작하는 것과 유사하다. 오펜하이머는 정착 협동조합에서 이에 상응하는 분할을 상상하는데, 다만 여기서는 물론 중앙 경영의 노동력 가격을 낮추려는 의도가 결정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각 구성원 개인에게 충분한 땅에서 자기 경영의 모든 도덕적 즐거움을 누리고, 협동조합의 중앙 경영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자신의 노동력을, 그에게 최고의 수익을 약속하거나 그 밖에 그의 개성에 가장 맞는 경작에 쏟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뿐이다. 그 밖에 협동조합은 현대 대규모 경영의 모든 이점을 활용해야 하며, 구성원의 사업적 필요 등을 위해 가능한 모든 협동적 또는 상호적 시설이 만들어져야 한다. 획득한 생산물의 가공과 수공업자의 협동조합 가입 허용을 통해, 오웬이 그의 가정 식민지에서, 다른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공산주의 기획에서 마음속에 그렸던 것처럼, 농업과 산업을 결합하는 정착지의 성격이 점점 더 부여되어야 한다. 다만 오펜하이머는 자유로운 협동성 원칙의 토대 위에 엄격히 머물고자 한다. 오직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정착 협동조합 가입을 위해 호소되어야 하며, 이것만이 산업적 생산 협동조합의 배타성으로부터 그것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과 달리 정착 협동조합은 단지 판매 협동조합이 아니라 구매 및 판매 협동조합이며, 이 사실이 신용 조달의 기초를 이루고 오늘날 농업에서 자본주의적 대규모 경영이 겪는 동요로부터 그것을 보호한다.

오펜하이머의 제안과 그 기초가 되는 이론을 더 자세히 논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일부 당 기관지에서 받은 그 경시하는 평가를 받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점만은 언급해야겠다. 이 일이 오펜하이머가 발전시킨 형태 그대로 정확히 실현될 수 있을지 또는 실현될 것인지는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발전시킨 기본 사상은 경제 형태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너무나 크게 의존하고, 협동조합 실천의 모든 경험과 너무나 잘 일치하여, 실제 농업에서 협동적 경영이 과연 언젠가 한 번 실현된다면 그것이 오펜하이머가 발전시킨 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21]

그러한 제안을 비판할 때 대개 염두에 두는 대규모 수용(收用)은 어쨌든 하룻밤 사이에 유기적 창조물을 땅에서 찍어낼 수는 없으므로, 아무리 막강한 혁명 정부라도 농업에서의 협동 노동 이론을 찾아 나서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그러한 이론을 위해 대단히 풍부한 자료를 모아냈고,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사상을 온전히 존중하는 예리한 체계적 분석을 그 자료에 가했다. 그 분석만으로도 그의 저서 《정착협동조합(Siedlungsgenossenschaft)》은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농촌 협동조합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여기서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이 있다. 사회주의자가 정치적 당원인 한, 그는 오늘날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탈을 만족스럽게 환영할 것이다. 그것은 노동 대중을 집중시키고, 머리를 반항적으로 만들며, 어쨌든 정치적 해방을 촉진한다. 그러나 당일의 문제를 넘어서 생각하는 이론가로서 사회주의자는, 이 이탈이 장기적으로는 지나치게 많아질 수 있다는 점도 스스로 말해야 할 것이다. 농촌 사람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것이 도시 사람을 농촌과 농사일로 길들이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도시와 산업 중심지로의 이주 물결은 오늘날 통치자들의 문제만 늘리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사회주의 정당을 집권시키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에 비추어 그 직접적 효과는 아마도 대도시로의 물결을 당분간 오히려 상당히 증대시키는 것이 될 터인데, 그때 과연 "농업을 위한 산업군대"가 1848년 프랑스에서보다 더 순순히 농촌으로 보내질 수 있을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살아 있고 능력 있는 협동조합을 창설하는 일은 평야 지대의 인구 유출이 이미 진행된 만큼 그만큼 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협동조합의 모범이 존재한다는 이점은 도시 괴물이 다소 느리게 팽창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결코 너무 비싸게 산 것이 아닐 것이다. [22]

그러나 산업 노동자에게 협동조합은 한편으로는 상업에 의한 착취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모로 그들에게 해방 사업을 용이하게 해 줄 수단을 마련해 준다. 노동자들이 소비조합을 통해 압박을 받는 시기나 직장 폐쇄 등의 상황에서 어떤 뒷받침을 얻을 수 있는지는 이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대규모 소비협동조합이 직장 폐쇄를 당한 광부, 방적공, 기계공을 지원한 고전적 사례에 관해, 여기서는 생산협동조합도 노동자들이 생활 지위를 둘러싼 투쟁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여 둔다. 레스터와 케터링에서는 협동조합 신발 공장이 해당 지역 전체의 표준 임금률을 그 높이대로 유지하고 있다. 월솔에서는 협동조합 자물쇠 공장이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그곳에서는 직장 폐쇄가 불가능하다. 번리의 협동조합 방적·직조 회사 „셀프 헬프“는 1892년부터 1893년까지의 직장 폐쇄 기간에도 끊임없이 조업하게 했고, 소비협동조합과 함께 기업주들을 굴복시키는 데 기여했다. 요컨대 1898년 11월 2일자 《트레이드 유니오니스트》에 실린 대로이다. „이 나라 어디든 이 (생산)협동조합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이윤만을 위해 생산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공장 문 앞에서 자신의 남성다움을 벗어 둘 필요 없이,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에 기초한 공동체에서 시민 정신이 낳는 그런 자유감과 예의를 갖추고 움직이는 데 익숙해진다.“ [23]

그러나 생산협동조합은 지금까지 소비조합에서 뒷받침을 얻었거나 그 조직 자체가 이러한 형태에 가까웠던 곳에서만 생활력을 입증했다. 이는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노동자 협동조합의 가장 성공 가능성이 큰 발전 방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가리켜 준다.

c)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1848년 2월 24일, 새로운 역사적 시기의 첫 새벽이 밝았다.“ „보통선거권이라고 말하는 자는 화해의 외침을 내지른다.“ 페르디난트 라살레, 노동자 강령

소비조합이 상품 거래의 이윤율에 대해 갖는 의미는, 노동조합이 생산의 이윤율에 대해 갖는 의미와 같다. 노동조합에 조직된 노동자들이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벌이는 투쟁은 자본가 측에서 보면 임금률 대 이윤율의 투쟁이다. 물론 임금 수준과 노동시간의 변화가 물가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확대 적용한 일반화다. 특정 상품 한 단위에 투입해야 할 노동량은 생산기술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한, 임금이 오르든 내리든 당연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량은 노동 가격이라는 토대가 없으면 시장에서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총생산의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품 종류들 사이의 상대적 가치이며, 그 가치에 대해 임금 수준은 무관한 요인이 아니다. 특정 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면, 그에 상응하는 비율로 해당 생산물의 가치는 그러한 임금 인상을 겪지 않은 모든 산업 생산물의 가치에 비해 오른다. 그리고 기술의 완성을 통해 이 상승을 상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해당 기업가 계층은 생산물 가격을 그에 맞게 올리거나 이윤율에서 손실을 입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러 산업의 처지는 매우 다르다. 생산물의 성질 때문에 또는 독점적 조직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상당히 독립해 있는 산업들이 있고, 그런 곳에서는 임금 인상이 대개 물가 상승을 동반하므로 이윤율이 떨어질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함께 오를 수도 있다.” [24] 반면 세계시장 산업, 그리고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조건에서 생산된 생산물들이 서로 경쟁하고 더 큰 저렴함만이 시장을 지켜내는 모든 산업에서, 임금 인상은 거의 언제나 이윤율 하락으로 작용한다. 판매 경쟁 때문에 불가피해진 가격 인하를 임금의 비례적 삭감으로 상쇄하려는 시도가 조직된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혀 좌절될 때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기술의 완성을 통한 상쇄는 대개 기계와 기타 노동수단을 위한 상대적으로 더 큰 자본 지출을 뜻하고, 이는 이윤율의 상응하는 하락을 의미한다. 끝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에서 사실상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임금률을 희생시켜 이윤율이 오르는 것을 막는 일뿐이며, 투쟁하는 이들이 당장 그 점을 얼마나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다.

노동시간을 둘러싼 투쟁이 다른 여러 가지와 더불어 유사한 방식으로 이윤율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점은 여기서 특별히 더 입증할 필요가 없다. 노동일 단축이 지금까지의 임금에 대해 수행한 노동량의 감소를 직접 초래하지 않는다면 – 많은 경우 알려진 대로 그 반대가 일어난다 – 그것은 간접적으로 노동자들의 생활 요구를 높이고, 그리하여 임금 인상을 필요하게 만든다.

임금 인상이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경우, 특정한 상황에서는 전체로서 손해가 아닐 수 있지만, 흔히 유익하기보다 해롭게 작용한다. 예컨대 공동체 입장에서는 어떤 산업이 한 줌의 기업가에게만 이익이 되도록 독점가를 강제하든, 그 산업의 노동자들이 전체로부터 짜낸 그런 전리품의 일정 몫을 받든 별다른 차이가 없다. 독점가 역시 생산물의 저렴함 못지않게 여전히 타파할 가치가 있다. 생산물의 저렴함은 임금을 평균 최저 수준 이하로 내려서야 겨우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25] 그러나 임금 인상이

단지 이윤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경우,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에 유익할 뿐이다. 내가 명시적으로 일반적으로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도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업종에서 이윤율이 일반 최저 수준보다 훨씬 아래로 눌리면, 해당 국가로서는 그 산업을 상실하고 그 산업이 임금이 훨씬 낮고 노동 조건이 훨씬 나쁜 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균형이 이루어지므로 이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언제나 미약한 위안일 뿐이며, 당장 그리고 때로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러한 이전은 그들에게도 전체에도 오히려 실질적 손실을 뜻한다.

다행히도 그러나 그런 극단적 사례는 극히 드물다. 보통 노동자들은 자신의 요구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아주 잘 안다. 또한 이윤율은 상당히 강한 압력도 견딘다. 자본가는 자기 기업을 포기하기 전에 임금을 위한 추가 지출을 다른 방식으로 충당하려고 가능한 모든 것을 시도하는 편이다. 여러 생산 영역의 이윤율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큰 차이는 일반 평균 이윤율이 이론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근사하게라도 실현되는 것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활용을 필요로 하여 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자본조차도 최고 이윤율이 유혹하는 곳에 투자처를 찾지 않고, 인간이 직업 선택에서 그러하듯 이윤의 높이가 이차적 문제로 밀려나는 고려들에 의해 결정되는 예가 드물지 않다. 이처럼 이윤율 균등화의 가장 강력한 요인조차 불규칙하게만 작용한다. 그러나 이미 투자된 자본은 매번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는 아주 물질적인 이유만으로도 이윤율의 움직임을 따라 한 생산 영역에서 다른 생산 영역으로 이동할 수 없다. 요컨대 인간 노동의 가격 인상의 효과는 압도적 다수의 경우에 부분적으로는 산업의 기술적 완성과 더 나은 조직을, 부분적으로는 노동 성과의 더 균등한 분배를 초래한다. 둘 다 일반적 번영에 똑같이 유익하다. 특정한 제한을 두면 자본주의 국가들에 대해 데스튀트 드 트라시의 유명한 말을, 낮은 이윤율은 인민 대중의 높은 번영을 나타낸다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사회정책적 위치에서 볼 때 노동조합 또는 직업별 조합은 산업 내의 민주적 요소다. 그 경향은 자본의 전제주의를 깨고 노동자에게 산업 운영에 대한 직접적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영향력이 어느 정도까지 추구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커다란 의견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정한 사고방식에는 노동조합을 위해 업종 내에서 무조건적인 결정권보다 적은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원칙 위반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한 권리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공상적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이치에 어긋난다는 점을 깨달은 나머지, 다른 이들은 노동조합에게 경제생활에서의 항구적 역할을 일체 부정하고, 불가피한 여러 악 중에서 더 작은 악으로서 잠정적으로만 인정하게 되었다. 사회주의자들 가운데는 노동조합을 단지 시위의 대상으로만 보아, 정치적·혁명적 행동 외의 모든 행동이 무용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입증하려는 자들도 있다. 실제로 노동조합은 오늘날 그리고 예측 가능한 미래에 매우 중요한 직업정책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지만, 그 과제들은 노동조합의 전능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으며, 요구한다 해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노동조합을 일시적인 연합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기관으로 처음 파악한 공적은 여러 영국 저술가들에게 돌아간다. 영국에서 노동조합이 어느 곳보다 일찍 중요성을 획득했고, 금세기 마지막 삼분의 일 동안 영국이 과두제 통치 국가에서 거의 민주적인 국가 체제로 전환을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이 방면에서 가장 최근의 가장 철저한 연구인 시드니 웹과 베아트리스 웹의 저작 《영국 노동조합의 이론과 실제》는 저자들이 정당하게도 산업에서의 민주주의에 관한 논고라고 명명했다. 그들 이전에 고(故) 소롤드 로저스는 경제사 해석에 관한 강의(덧붙이자면 이 강의는 유물사관과 공통점이 거의 없고 단지 몇몇 점에서만 그것과 접촉한다)에서 노동조합을 노동 참여체(labour partnership) 라고 불렀는데, 이는 원칙적으로 같은 결론에 이르면서도 동시에 민주주의에서 노동조합의 기능이 확장될 수 있는 한계, 그리고 그 한계를 넘으면 민주적 공동체 안에서 노동조합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점을 지시한다. 국가든 지방자치체든 자본가든 사용자인 것과 무관하게, 특정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은 참여체로 머무는 데 만족하는 한에서만 그 구성원들의 이익을 수호하면서 동시에 공공복리를 증진할 수 있다. 그 이상을 넘어서면 노동조합은 언제나 폐쇄적 조합으로 퇴화할 위험, 독점의 모든 나쁜 속성을 지닐 위험에 빠질 것이다. 이 점은 협동조합의 경우와 같다. 전체 산업 부문의 지배자로서의 노동조합, 즉 여러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이 이상은 사실상 독점적 생산협동조합에 불과할 것이며, 일단 자신의 독점을 내세우거나 그것을 활용한다면 그 내부 체제가 어떠하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모순이 될 것이다. 그것이 왜 사회주의에 위배되는지는 즉시 명백하다. 전체에 맞서는 협동조합성은 과두제 공동체에서의 국가 운영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조합이 왜 민주주의에 위배되는가?

이 물음은 다른 물음을 전제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첫눈에는 "민중 지배"라는 번역으로 끝난 일이라고 여기고 싶어진다. 그러나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지극히 외면적인, 순전히 형식적인 정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은 그 말 속에서 단순한 지배 형태 이상의 것을 이해하고 있다. 사물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려면 부정적으로 표현하여, 민주주의를 계급 지배의 부재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즉 어떤 계급도 전체에 대하여 정치적 특권을 누리지 않는 사회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옮기는 것이다. 그러면 독점적 결사가 원칙적으로 반민주적인 까닭도 저절로 설명된다. 이 부정적 설명은 또 하나 이점이 있다. "민중 지배"라는 말보다 다수에 의한 개인의 억압이라는 사상에 자리를 덜 내준다는 점이다. 그 사상은 현대의 의식과 무조건 충돌한다. 오늘날 우리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억압을 "비민주적"이라고 여기지만, 본래 그것은 민중 지배와 충분히 양립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26] 오늘날의 이해에서 민주주의라는 개념에는 법적 관념이 포함되어 있다. 즉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평등한 권리라는 관념이며, 다수의 지배 — 모든 구체적 사안에서 민중 지배가 귀결되는 바 — 는 그 관념 앞에서 한계를 갖는다. 그 관념이 더욱 뿌리내리고 일반 의식을 지배할수록,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최대한의 자유와 같은 뜻이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무법 상태가 같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 체제와 구별되는 점은 모든 법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유·혈통·신앙에 근거한 예외를 만들거나 용인하는 법의 부재에 있으며,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의 전면적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 법적 평등, 즉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제한하는 모든 법의 폐지에 있다. 민주주의와 무정부 상태가 이처럼 전혀 다른 것이라면, 모든 구별이 사라지는 상태에서 전제정·폭정 같은 표현을 민주주의라는 사회 체제에 적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결이 결정하고 모든 사람에게 다수가 결의한 법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표현을 쓰는 것은, 궤변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개인이 폭압적이라고 느끼는 법에 대한 절대적 방벽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민주적 공동체의 다수가 개인의 자유를 영구히 훼손하는 법을 만들지 않으리라는 거의 무조건적인 확신이 있다. 오늘의 다수는 언제나 내일의 소수가 될 수 있으며, 소수를 억압하는 모든 법은 일시적 다수의 구성원 자신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내전 시기에 다수 폭정에 의해 자행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에서의 다수 지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실제로는 근대 국가에서 민주적 제도가 존속한 기간이 길면 길수록 소수의 권리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커지고 정당 투쟁의 증오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27] 사회주의의 실현을 폭력 행위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여기에서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논거를 볼지도 모르며, 실제로 사회주의 문헌에 그러한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 민족들이 장기화된 혁명적 파국의 영향 아래에서 서로 완전히 독립된 무수한 집단으로 분해되리라는 유토피아적 관념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민주주의에서 노동계급이 자본을 때려부수는 수단으로 쓰이는 한에서만 좋은 정치적 도구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수단이자 동시에 목적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쟁취하는 수단이며,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형태다. 민주주의가 기적을 행할 수는 없다는 것은 맞다.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인구의 소수(성인 200만 명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를 이루는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정치적 지배권을 쥐여줄 수는 없다. 또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인구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계급을 이루는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그에 대한 의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한편 그에 따르는 과업을 감당할 능력이 없거나 아직 없으면, 민주주의가 이 프롤레타리아트를 산업의 주인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영국에서든 스위스에서든, 마찬가지로 프랑스, 미국, 스칸디나비아 제국 등에서든, 민주주의는 사회 진보의 강력한 지렛대로 드러났다. 표제가 아니라 내용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1867년 선거법 개혁 이후 영국의 입법 과정을 훑어볼 때, 도시 노동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그 개혁에서 사회주의로 향하는, 아니 사회주의 안에서의 매우 중대한 진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립 국민학교는 전국의 4분의 3에서 그때에야 비로소 생겨났으며, 그전까지는 사립학교와 교회학교만 있었다. 취학률은 1865년에는 인구의 4.38퍼센트였으나 1896년에는 14.2퍼센트에 달했고, 1872년에 국가가 초등학교에만 지출한 금액은 1,500만 마르크였으나 1896년에는 1억 2,700만 마르크에 이르렀다. 주와 지방자치체의 행정, 학교 및 구빈 행정은 유산자와 특권층의 독점이기를 그쳤으며, 노동자 대중은 그곳에서 최대 지주나 최고 부호 자본가와 동일한 선거권을 갖는다. 간접세는 꾸준히 인하되고 직접세는 꾸준히 인상되었다(1866년에는 약 1억 2,000만 마르크, 1898년에는 약 8억 3,000만 마르크의 소득세가 징수되었으며, 여기에 상속세 인상으로 인한 최소 8,000만에서 1억 마르크의 추가 수입이 더해진다). 농업 입법은 지주들의 소유권 절대주의에 대한 거리낌을 버렸고, 지금까지 교통 및 위생 목적으로만 인정되던 수용권을 원칙적으로 경제 변화를 위해서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국가가 직간접으로 고용한 노동자에 관한 국가 정책의 근본적 변화는 잘 알려져 있으며, 1870년 이후 공장 입법이 확대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이 유럽 대륙에서 여러 정도로 모방된 것은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민주주의, 즉 해당 국가들이 보유한 민주주의의 실현된 부분 덕분이다. 그리고 개별 사안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앞선 국가들의 입법이, 정치적으로 상대적으로 뒤처진 국가들에서 행동에 굶주린 군주나 그 장관들의 영향 아래 때때로 그랬던 것만큼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국가들에서는 이런 문제들에서 후퇴가 없다.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계급 지배의 폐지다. 아직 계급의 사실상의 폐지는 아닐지라도 그렇다. 민주주의의 보수적 성격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어떤 점에서는 그것이 옳다. 절대주의나 반(半)절대주의는 그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모두에게 자신들의 역량 범위를 속인다. 그래서 그것이 지배하거나 그 전통이 아직 남아 있는 나라에서는 도를 넘는 계획, 과장된 언사, 지그재그 정책, 전복에 대한 공포와 억압에 대한 희망이 나타난다. 민주주의에서는 정당들과 그 배후의 계급들이 곧 자신들 권력의 한계를 알게 되고, 매번 상황에 비추어 이성적으로 관철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만 착수한다. 설령 진심으로 의도한 것보다 요구를 다소 높여 걸어 두더라도, 불가피한 타협—민주주의는 타협의 고등학교다—에서 그것을 포기할 수 있기 위한 것이라면, 그마저도 분수에 맞게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에서는 가장 좌익까지도 대개 보수적으로 비치고, 개혁은 더 고르게 진행되기에 실제보다 느리게 보인다. 그러나 그 방향만은 분명하다. 민주주의의 선거권은 그 소유자를 잠재적으로 공동체의 참여자로 만든다. 그리고 이 잠재적 참여는 오래지 않아 사실상의 참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와 교육 수준에서 미발달한 노동계급에게는 보통선거권이 오랫동안 "백정"을 직접 뽑는 권리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수와 인식이 늘어나면서 그것은 인민대표를 주인에서 인민의 진정한 심부름꾼으로 바꾸는 도구가 된다. 영국 노동자들이 의회 선거에서 구(舊)정당 후보에게 투표하여 형식상 부르주아 정당의 꼬리처럼 보인다 해도, 그럼에도 산업 선거구에서는 오히려 이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쪽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1884년의 선거권 확대가 지방의회 개혁과 함께 영국 사회민주주의에 정치 정당으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해 준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다른 곳이라고 본질적으로 다르겠는가? 보통선거권은 독일에서 한동안 비스마르크의 도구로 쓰일 수 있었지만, 끝내는 비스마르크로 하여금 도구 노릇을 하도록 강제했다. 그것은 한때 동엘베 융커에게 이로울 수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바로 그 융커들의 공포가 되었다. 그것은 1878년 비스마르크로 하여금 사회주의자 탄압법이라는 무기를 벼려내게 할 수 있었지만, 그 무기는 그 자신에게서도 무디어지고 부러졌으며, 마침내 그의 도움으로 비스마르크의 손에서 쳐져 나갔다. 만약 비스마르크가 1878년 당시의 다수파와 함께 경찰적 예외법이 아니라 노동자를 다시 선거권 밖으로 밀어내는 정치적 예외법을 만들었다면, 그는 전자의 경우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사회민주주의를 가혹하게 타격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그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 타격했을 것이다. 보통선거권은 양쪽으로 전복의 대안이다.

그러나 보통선거권은 민주주의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다만 오래 가면 자석이 흩어진 철 조각을 끌어당기듯 다른 조각들을 반드시 뒤따르게 만드는 조각이기는 하다. 이 일은 누군가 바라는 것처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이미 진행 중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이 일을 더 잘 촉진할 길은, 이론에 있어서도 아무런 유보 없이 보통선거권, 즉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서고, 그로부터 자기 전술에 대해 따라나오는 모든 귀결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없다.

실천, 즉 행동에 있어서는 결국 사회민주주의는 언제나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그 선언에 있어서는 문필가 대표자들이 자주 그에 어긋났고, 오늘날에도 자주 어긋나고 있다. 유럽 도처에서 소유의 특권이 무제한으로 군림하던 시절에 작성되어, 그런 상황 아래서는 설명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 정당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죽은 무게에 지나지 않는 문구들이, 마치 운동의 진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에 대한 살아 있는 인식이 아니라 그 문구들에 달려 있는 것처럼 경건하게 다루어진다. 예컨대 사회민주주의 대표자들이 온갖 곳에서 의회 활동, 수에 맞는 인민 대표, 인민 입법이라는 토대 위에 실천적으로 서 있는데, 이 모든 것은 독재에 모순되는데도, 그런 시기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문구를 고집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28] 이 문구는 오늘날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져서, 독재라는 말에서 사실상의 의미를 벗겨내고 어느 정도 약화된 뜻을 부여하지 않고서는 현실과 조화시킬 수 없을 정도다. 사회민주주의의 모든 실천적 활동은 현대 사회 질서를 더 높은 질서로, 경련적인 폭발 없이 이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보증할 조건과 전제 조건을 만들어내는 데로 귀결된다. 더 높은 문화의 선구자라는 자의식에서 그 지지자들은 거듭 열의와 고무를 얻으며, 추구하는 사회적 수용의 도덕적 권리 근거도 궁극적으로 그 자의식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계급 독재는 더 낮은 문화에 속하는 것이며, 그 일의 목적 적합성과 실행 가능성을 떠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이 반드시, 오늘날의 선전 방법과 법률 획득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거나 극히 불완전한 형태로만 알았고 그에 적합한 기관도 결여했던 한 시대의 발전 형태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퇴행, 정치적 격세유전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나는 명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흔히 그러듯이 "시민사회로부터"라고 하지 않는다. "시민적"이라는 단어의 이러한 사용은 오히려 마찬가지로 하나의 아타비즘(격세유전)이거나, 적어도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용어법의 결함이라고 불러야 할 언어적 이중의미이며, 적과 아군 모두에게 오해로 이어지는 훌륭한 다리가 된다. 여기서 책임의 일부는 독일어에 있다. 독일어에는 공동체의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는 개념을, 특권을 가진 시민이라는 개념과 구분하여 표현할 고유한 단어가 없다. 전자의 개념이든 후자의 개념이든 특별한 표현을 만들어 언어 관행에 도입하려는 모든 시도가 지금까지 실패했으므로, 특권을 가진 시민과 그에 관련된 것에는 외래어 부르주아를 사용하는 편이, 그것을 "시민"이나 "시민적"으로 번역하여 온갖 오해와 곡해에 문을 열어주는 것보다 여전히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의 투쟁, 부르주아 사회의 폐지에 대해 말할 때 무엇이 의미되는지는 결국 누구나 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투쟁 또는 폐지란 무엇을 뜻하는가? 특히 독일에서, 그 가장 크고 주도적인 국가인 프로이센에서 아직도 시민적 발전을 가로막는 봉건주의의 큰 부분을 우선 청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시민사회를 시민적으로 질서 잡힌 공동체로서 공격하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사회민주주의는 이 사회를 해체하고 그 구성원을 모두 프롤레타리아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라는 사회적 지위에서 시민의 지위로 끌어올려 시민됨 또는 시민임을 보편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회민주주의는 시민사회 대신 프롤레타리아 사회를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사회질서 대신 사회주의적 사회질서를 놓으려는 것이다. 저 이중의미한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 이 후자의 전혀 이중의미하지 않은 설명을 고수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사회민주주의의 용어법과 실천 사이에서 적대자들이 완전히 부당하게만은 아니게 지적하는 다른 모순들의 상당 부분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일부 사회주의 신문들은 강제로 반시민적인 언어를 즐기는데, 이는 우리가 분파적으로 은둔자처럼 산다면 어쩌면 적절할 수도 있겠으나, 사생활을 철저히 "부르주아적으로" 꾸미는 것을 사회주의적 신념에 대한 위반으로 여기지 않는 시대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29]

끝으로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쟁 선언에서는 다소 분량을 절제하는 것도 권할 만하다. 근대의 거대한 자유주의 운동이 우선 자본주의 부르주아지에게 이익을 안겨주었고,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정당들이 그 과정에서 순전한 자본주의의 친위대가 되었거나 되어갔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 정당들과 사회민주주의 사이에 적대 관계만이 존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세계사적 운동으로서의 자유주의에 관해서라면, 사회주의는 시간적 순서에서뿐 아니라 정신적 내용에 있어서도 자유주의의 정당한 후계자다. 이는 사회민주주의가 입장을 밝혀야 했던 모든 원칙적 문제에서 실제로도 드러난다. 사회주의 강령의 어떤 경제적 요구가 자유로운 발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방식이나 상황에서 시행되어야 할 경우, 사회민주주의는 그것에 반대 입장을 취하기를 주저한 적이 없다. 시민적 자유의 보장은 언제나 어떤 경제적 요구의 충족보다 사회민주주의에게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 자유로운 인격의 형성과 보장은 모든 사회주의적 조치의 목적이며, 외견상 강제 조치로 나타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제나 사회 안의 자유 총량을 늘리고, 빼앗는 것보다 더 많은 자유를 더 넓은 범위에 주려는 강제임이 드러난다. 예컨대 법정 최장 노동일은 사실상 최소한의 자유를 규정하는 조항이며, 하루에 특정 시간 수 이상 자신의 자유를 파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모든 자유주의자가 찬성한, 자신을 영구적인 인신 예속 상태에 처분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과 원칙적으로 같은 토대에 서 있다. 최장 노동일이 처음 시행된 나라가 유럽에서 민주적으로 가장 앞선 공동체인 스위스였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형태일 뿐이다. 민중이 외부에서 강요받거나 이제는 전통에서만 정당성을 끌어내는 제도에 복종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자유주의는 처음에 시대와 민중의 주권 원칙으로 실현을 모색했는데, 이 두 원칙은 17세기와 18세기 국가법 철학자들의 영원한 논쟁 주제였고, 마침내 루소가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모든 헌법의 법적 효력의 기본 조건으로 내세웠으며, 프랑스 혁명이 그것을 — 루소의 정신으로 충만한 1793년의 민주적 헌법에서 — 양도할 수 없는 인권으로 선포했다. [30]

1793년 헌법은 그 시대 자유주의 사상의 일관된 표현이었으며, 그것이 사회주의에 얼마나 방해가 되지 않았는지, 또는 되지 않는지는 그 내용을 잠깐 훑어보면 드러난다. 바뵈프와 평등파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공산주의적 열망을 실현할 훌륭한 출발점을 보았고, 그에 따라 1793년 헌법의 복원을 자신들의 요구 목록 맨 앞에 내걸었다. 나중에 정치적 자유주의로 자처한 것은 완화와 적응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는 구체제 전복 후 자본주의적 시민계급의 필요에 부응하거나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으로, 소위 맨체스터 학설이 경제적 자유주의의 고전들이 정립한 원칙을 완화하고 일방적으로 서술한 것에 불과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사회주의의 사상 내용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주의적 사상은 하나도 없다. 겉보기에 그토록 철저히 맨체스터적인 경제적 자기책임의 원리조차도, 내가 보기에 사회주의가 이론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고 어떤 상상 가능한 상황에서도 효력을 정지시킬 수도 없다. 책임 없이는 자유도 없다. 인간의 행위 자유에 대해 이론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실천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도덕법의 기초로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오직 이 조건 아래에서만 사회적 도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통의 시대에, 수백만을 헤아리는 우리 국가들에서는 모든 노동 능력자의 경제적 자기책임이 전제되지 않으면 건강한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경제적 자기책임의 인정은 사회가 개인에게 제공했거나 제공하려는 봉사에 대한 개인의 반대급부다.

이미 언급한, 공간과 수의 사회정치적 의미에 관한 내 논문에서 몇 구절을 여기 인용하도록 허락해 달라.

“노동 능력자의 경제적 자기책임도 가까운 장래에는 정도의 차이만큼만 변경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 통계는 대단히 발전시킬 수 있고, 직업 알선은 대단히 완성할 수 있으며, 직업 전환은 용이하게 하고, 개인에게 오늘날 주어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생존의 안전과 직업 선택의 용이함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법을 발전시킬 수 있다. 경제적 자조의 가장 진보한 기관들 — 대규모 노동조합들 — 은 이 점에서 이미 발전이 앞으로 취할 길을 보여준다 ... 오늘날 이미 강력한 노동조합이 유능한 조합원들에게 일정한 취업 권리를 보장하고, 사용자들에게 노동조합원을 매우 타당하고 노동조합도 인정하는 이유 없이 해고하는 것이 대단히 부적절하게 보이도록 만들며, 직업 알선에서 신고 순서와 필요를 결합한다면, 그 안에 이미 민주적 노동법 발전을 위한 실마리가 주어져 있다.” (노이에 차이트, XVI, 2, 141쪽)

그 밖의 출발점들은 오늘날 영업재판소, 노동자회의소 및 이와 유사한 창설물의 포럼에서 주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민주적 자치가, 비록 종종 아직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형태를 갖추었다. 다른 한편으로 공공 서비스, 특히 교육 제도와 상호부조 시설(보험 등)의 확대는 모든 경제적 자기 책임에서 가혹함을 벗겨내는 데 매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그의 직업에서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의 노동권은 가까운 장래에 전적으로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 옹호자들이 원했던 것은 서술한 길, 즉 여러 기관의 결합을 통해서만 공동체에 이익이 되게 달성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일반적 노동 의무도 이 방식으로만 죽은 듯이 만드는 관료제 없이 실현될 수 있다. 우리의 현대 문화국가와 그 산업 중심지처럼 크고 복잡한 유기체에서는 절대적 노동권이 단지 해체적으로 작용할 뿐이며, 그것은 “가장 증오스러운 자의와 영원한 말다툼의 원천으로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일 터이다. (같은 책)

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속박된 경제와 중세의 그에 상응하는 법제도가 사회의 발전에 채워 놓은 족쇄를 부수는 과제를 지녔다. 자유주의가 처음에 부르주아 자유주의로서 확고한 형태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는 훨씬 더 멀리 미치는 일반적 사회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해하지는 않으며, 그 원리의 완성이 사회주의일 것이다. 사회주의는 어떤 종류의 새로운 속박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 무정부주의자들이 꿈꾸는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즉 공동체에 대한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의 이동과 직업 선택에서 모든 경제적 강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한 자유는 조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를 조직적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가 원하는 조직들, 그리고 사회주의가 그것들을 원하는 방식을 더 정밀하게 검토해 보면, 그것들을 외견상 유사한 봉건적 제도와 무엇보다 구별 짓는 것이 바로 그 자유주의, 즉 그 민주적 구성과 그 접근성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길드와 유사한 폐쇄를 추구하는 노동조합은 사회주의자에게 이해 가능한, 자본주의가 노동시장을 과잉 채우려는 경향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바로 그 폐쇄 경향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노동조합을 지배하는 정도만큼, 비사회주의적 단체이다. 그리고 바로 같은 것이 하나의 생산 부문 전체의 소유자로서의 노동조합에도 해당할 터인데, 그것은 노동조합이 “순수한” 생산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자연적 필연성에 따라 배타성을 지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1]

이와 관련하여 라살레의 『취득권의 체계』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이 구절은 나에게 해당 문제들을 위한 탁월한 길잡이로 늘 여겨져 왔다. 라살레는 그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시대의 더 깊은 흐름이 겨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아직도 씨름하고 있는 것은 개별적인 것의 계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보편적인 것의 계기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그 흐름 편에 설 것이다. 그것은 중세로부터 아직도 넘어와 우리 살갗에 여전히 붙어 있는 특수성이라는 혹이다."(체계, 제2판, 제1부, 221쪽) 이를 우리 주제에 옮기면, 조직은 개인과 보편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여야 하며 분리하는 고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라살레가 인용 구절에 이어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자유주의가 선포하는 권리를 개별자로서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 놓인 개인을 위해서만 원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바로 앞 구절에서도 명백히 언급되듯이 당시의 자유주의 정당, 즉 "우리가 이른바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겨냥한 것이지 이론적 자유주의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앞의 설명에서 지적된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품속에는 여러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적 평등만으로는 대도시에 중심을 둔 그러한 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보장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어디에서도 입증되지 않았다. 프랑스와 미국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온갖 종류의 사회적 기생과 부패가 만연하는 것에 대한 무오류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프랑스 국민의 큰 부분에 그토록 비상한 견실함의 바탕이 깔려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 나라가 지리적으로 그토록 유리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에 그곳에 둥지를 튼 관리 기병(官員氣病)이라는 재앙에 몰락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재앙은 프랑스인의 높은 정신적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산업 발전이 이웃 나라들보다 점점 더 뒤처지는 원인 가운데 하나를 이룬다. 민주주의가 관료제의 울타리 안에서 중앙집권적 전제주의를 능가하지 않으려면, 모든 행정 단위와 성숙한 국가 시민의 상응하는 경제적 자기 책임을 갖춘, 세분화된 자치행정 위에 세워져야 한다. 강제된 획일성과 지나치게 풍부한 보호주의보다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에 해로운 것은 없다. 그것들은 생활력을 지닌 제도와 기생적 제도를 합리적으로 구별하는 일을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국가가 생산자 조직에 대한 모든 법적 장애를 철폐하고, 직업단체가 독점적 결사로 변질하는 것을 예방하는 특정 조건 아래에서 직업단체에 산업 통제와 관련한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여 임금 인하와 과로에 대한 모든 보장이 마련되며, 다른 한편으로 앞서 개략한 제도들을 통해 누구도 극심한 궁핍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품위 없는 조건으로 내다 팔도록 강요받지 않게 된다면, 공공 기업과 협동조합 기업 옆에 사적 이익을 위해 민간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여전히 존재하더라도 사회는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협동조합적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우리가 생산의 사회화라고 부르는 것의 불가결한 전제 조건은, 서술한 제도들을 만들어 내는 일, 혹은 이미 그것에 착수한 경우에는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른바 생산수단의 사회적 전유는 아마도 생산력의 무한한 황폐화, 무의미한 실험주의, 목적 없는 폭력 행위만을 초래했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배는 실제로 혁명적 클럽의 테러적 독재에 의해 뒷받침되는 독재적 혁명 중앙권력의 형태로만 관철될 수 있었을 것이다. 블랑키주의자들은 그것을 그러한 것으로 상상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과 그 집필 시대에 속하는 그들의 출판물에서도 그것을 그러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2월 혁명, 그리고 훨씬 더 파리 코뮌의 실천적 경험에 비추어, 프롤레타리아가 처음으로 두 달 동안 정치 권력을 장악했던” 그 경험에 비추어, 선언에 제시된 혁명 강령은 “부분적으로 낡았다.” “특히 코뮌은 노동계급이 국가 기계를 단순히 장악하여 자기 목적을 위해 그것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1872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선언의 재판 서문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더 발전된 형태로 서술되어 있는 저서 프랑스 내전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저서를 펼쳐 해당 부분(제3부이다)을 읽어 보면, 우리는 정치적 내용에 있어 모든 본질적 특징에서 프루동의 연방주의와 가장 큰 유사성을 지니는 강령이 전개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국민의 통일은 깨뜨려져서는 안 되었고, 오히려 이 통일의 화신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국민에 대해 독립적이고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려 했던, 그러나 국민의 신체에 대해서는 기생적 부속물에 불과했던 그 국가 권력을 파괴함으로써 조직되어야 했다. 구 정부 권력의 단순히 억압적인 기관들을 잘라내는 한편, 그 정당한 기능들은 사회 위에 군림하려고 주장하는 권력으로부터 빼앗아 사회의 책임 있는 공복들에게 넘겨주어야 했다. 3년이나 6년에 한 번 지배계급의 어느 구성원이 의회에서 국민을 대표하고 짓밟을지를 결정하는 대신, 보통선거는 코뮌들로 구성된 국민에게 봉사해야 했으며, 마치 개별 투표권이 다른 모든 고용주에게 자기 사업장에서 노동자, 감독, 회계사를 골라내는 데 봉사하는 것과 같았다.”

“코뮌이 국가 권력에 대립한 것은 과잉 중앙집권에 반대하는 오래된 투쟁의 과장된 형태로 간주되어 왔다 ... 오히려 코뮌 헌법은 사회의 신체에,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양분을 빨아들이며 그 자유로운 운동을 방해해 온 기생적 부속물 ‘국가’가 삼켜 버린 모든 힘을 되돌려주었을 것이다. 이 행위 하나만으로도 코뮌은 프랑스의 재생을 시작했을 것이다.”

프랑스 내전에서 마르크스가 그렇게 말했다.

이제 프루동의 말을 들어 보자. 연방주의에 관한 그의 책이 손에 없으므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겠다. 그 책에서 그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치 정당을 결성할 것을 부수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국민주권의 참된 개념, 즉 계약법의 원칙에 따라 조직된 민주제에서는 중앙권력이 국민에게 가하는 억압적이거나 부패시키는 행동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한 행동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터무니없다.”

“그런데 왜인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민주제에서는 중앙권력이 대의원 회의, 즉 합의를 위해 소집된 지역 이익의 자연스러운 기관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대의원은 무엇보다도 자신을 대표로 임명한 지역의 사람이며, 그 지역의 사절이고, 그 지역 동료 시민의 한 사람이며, 그 지역의 특별 이익을 옹호하고, 경우에 따라 그것을 [국민] 대심판단 앞에서 가능한 한 일반 이익과 조화시키도록 위임받은 특별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결합한 대의원들이 자기들 가운데서 중앙 집행 위원회를 선출할 때, 그 위원회를 자기들과 구별되는 존재로, 자기들과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상급자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중간은 없다. 코뮌은 주권적이 되거나 [국가의] 지부에 불과할 것이다.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멋진 몫을 준다 해도, 코뮌이 자기 권리를 스스로에게서 길어 올리지 못하고, 더 높은 법을 인정해야 하고, 자기가 속한 큰 집단이 코뮌의 상급자로 선언되어 코뮌의 연방적 관계의 표현이 아니게 되는 순간, 코뮌이 언젠가 서로 대립하게 되어 갈등이 터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때에는 논리와 폭력이 중앙권력 편에 서게 된다. “집단 자체에 종속과 중앙집권화의 원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집단을 통해 국가권력을 제한한다는 발상은 비일관이며, 말하자면 모순이다. 그것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시정(市政) 원리이다.” 반면에 “연방화된 프랑스”는 “독립의 이상을 구현하는 체제이며, 그 첫 행동은 코뮌들에게 완전한 자립을, 프로방스들에게 자기 결정권을 돌려주는 것이 될” 체제이다. 그것이 바로 노동계급이 자기 깃발에 내걸어야 할 시정적 자유이다. (Capacité Politique des Classes Ouvrières, 224, 225, 231, 235쪽.) 그리고 『프랑스 내전』에서 “생산자의 정치적 지배는 그의 사회적 예속의 영구화와 나란히 존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정치적 능력』에서는 다음과 같이 읽는다. “일단 정치적 평등이 주어지고 보통선거를 통해 실천에 옮겨지면, 국민의 경향은 경제적 평등을 향한다. 노동자 후보들이 바로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을 그들의 부르주아 경쟁자들은 원하지 않는다.” (같은 책, 214쪽) 요컨대 마르크스와 ‘소시민’ 프루동 사이에 다른 모든 차이가 있더라도, 이 점들에서는 두 사람의 사고 전개가 가능한 한 가깝다.

현대 사회의 일반적 발전이 지방자치체의 임무를 꾸준히 증대시키고 지방자치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코뮌이 사회적 해방의 점점 더 중요한 지렛대가 된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도 없고, 그동안 이미 여러 차례 실제로 입증되었다. 다만 마르크스와 프루동이 묘사한那样的 현대 국가체의 해체와 그 조직의 완전한 변혁, 즉 주 의회 내지 구 의회의 대의원들로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그 주 의회 내지 구 의회는 다시 코뮌의 대의원들로 구성한다는 구상이 민주주의의 첫 번째 과업이 되어야 하는지, 그래서 지금까지의 국민대표 형태가 사라져야 하는지는 나에게 의심스럽다. 현대의 발전은 그 규모가 지방자치체는 물론 구와 주의 통제조차 벗어난 제도들을 너무 많이 낳았기에, 그 조직을 변혁하기 전에 중앙행정의 통제를 결여할 수는 없다. 또한 나에게 지방자치체 등의 절대적 주권은 이상이 아니다. 지방자치체는 국민의 통합적 부분이며, 국민에 대한 권리만큼이나 의무도 지닌다. 예컨대 개인에게 그러하듯 지방자치체에게도 토지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다. 가치 있는 광맥, 삼림, 하천권 등은 궁극적으로 지방자치체나 구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며, 지방자치체와 구도 단지 수익자일 뿐이다. 따라서 주의적 또는 지역적 이익이 아니라 국민적 이익이 전면에 서고, 그것이 대표자의 제1의무인 대표기구는 특히 과도기에 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와 나란히 저 의회들과 대표기구들은 점점 더 큰 의미를 얻게 될 것이므로, 혁명이든 아니든 중앙대표기구의 기능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대표기구나 관청의 위험도 줄어들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그것이 오늘날 이미 매우 미미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강령의 개별 항목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강령이 자치를 사회적 해방의 전제조건으로 얼마나 강력히 강조하는지, 민주주의적 조직을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실현의 길로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리고 서로 대립하는 프루동과 마르크스가 결국 자유주의에서 다시 만난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방자치체와 그 밖의 자치단체들이 완전한 민주주의 아래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어떻게 수행할지, 그 임무를 어디까지 설정할지는 미래 자체가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러나 다음은 분명하다. 자치단체들이 자신의 자유를 더 갑작스럽게 획득할수록, 그들은 더 많이 그리고 더 격렬하게 실험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더 큰 실책에 노출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민주주의가 자치의 학교에서 더 많이 단련될수록, 그들은 더 신중하고 실천적으로 나아가며 공동체의 복지를 더 잘 돌볼 것이다.

민주주의가 언뜻 보기에 단순해 보인다 해도, 우리 사회처럼 이렇게 얽히고설킨 사회에서는 그 문제들이 결코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영국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행정과 운영에 적합한 형태를 찾아내기 위해서만 얼마나 많은 실험을 해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헌법 문제가 노동조합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웹의 노동조합 이론을 읽어보기만 하면 알 수 있다. 영국 노동조합은 이 점에서 70년 넘게 완전한 자유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가장 원시적인 자치 형태로 시작했고, 그 형태가 가장 원시적인 유기체, 즉 아주 작은 지역 협회에만 적합하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깨달아야 했다. 규모가 커질수록 그들은 교조적 민주주의의 애호 사상(구속 위임, 무보수 간부, 무권한 중앙대표기구)이 자신들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포기하면서, 대표 회의와 유급 간부, 권한을 위임받은 중앙 지도를 갖춘 유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법을 배웠다. 이른바 ‘조합 민주주의’의 이 발전사는 대단히 교훈적이다. 노동조합에 해당하는 모든 것이 국가 행정 기구의 단위에도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상당 부분은 국가 행정 기구에도 들어맞는다. 웹의 책에서 해당 장은 민주적 행정학의 한 대목이며, 여러 점에서 카우츠키가 직접 민중 입법에 관한 저서에서 내린 결론과 일치한다. 노동조합의 발전사는 중앙 집행 행정부, 즉 그 국가 정부가 어떻게 순전히 분업에서 생겨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분업은 유기체의 공간적 확장과 구성원 수 때문에 필요해진다. 사회가 사회주의적으로 발전하면 나중에 이 중앙집권화도 다시 불필요해질 수 있다. 그러나 당분간은 민주주의에서도 이것 없이는 안 될 것이다. 이 장 첫 절의 끝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대도시나 산업 중심지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지역 생산·상거래 기업을 직접 운영으로 인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반대되는 형평성의 이유는 차치하고라도, 실무적 이유만으로도 그들이 혁명적 봉기에서 그 기업들을 전부 단번에 ‘수용’하리라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다. 그러나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그 경우 대부분은 빈 껍데기만 손에 쥐게 될 뿐이지만), 그들은 대다수 사업을 협동조합에 임대해야 할 것이다. 개별 협동조합이든, 노동조합이 자체 협동조합 운영을 위해 맡든 말이다. [32]

이 각각의 경우에도, 그리고 지역 및 국가 직영 기업의 경우에도, 개별 직업의 특정한 공공 이익을 대변해야 하므로 노동조합의 감독 활동을 위한 여지는 여전히 남을 것이다. 특히 과도기에는 현존하는 기구의 다양성이 큰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미래의 그림을 그려 보일 생각은 내게 없다. 내가 마음에 두는 것은 더 먼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이 현실 자체와 가까운 장래를 위해 무엇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논술의 결론은 지극히 평범한 명제, 즉 민주주의의 쟁취와 민주주의의 정치적·경제적 기관의 양성이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적 파국 없이 그것을 얻을 전망이 독일에서는 극히 희박하고,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하며, 독일 시민계급은 갈수록 더 반동화되고 있다는 반론이 나온다면, 그것은 순간적으로는 아마도 옳을 것이다. 다만 여러 현상은 그에 반대되는 증거도 된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갈 수는 없다. 시민계급이라 불리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계급으로, 온갖 계층과 매우 이질적인, 내지 서로 구별되는 이해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계층들은 똑같이 억압받거나 똑같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에만 오래도록 뭉쳐 있는다. 지금의 경우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후자, 즉 시민계급이 일률적으로 반동적인 덩어리를 이룬다는 것인데, 그 까닭은 그 모든 요소가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똑같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물질적 이해관계에서, 또 어떤 이들은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에서 그렇다. 곧 그들의 종교, 그들의 애국심, 그리고 이 나라에 폭력 혁명의 공포를 면하게 해 주려는 바람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하지 않다. 사회민주주의는 그들을 모두 똑같이 위협하지도 않고, 개인으로서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사회민주주의 자체도 비(非)프롤레타리아 세계 전체를 향한 폭력 혁명을 조금도 열광적으로 바라지 않는다. 이것을 더 분명히 말하고 근거를 대면 댈수록, 그 일률적인 공포는 더 빨리 물러갈 것이다. 시민계급의 많은 요소는 다른 쪽에서 억압을 느끼고 있으며, 그 억압이 노동계급에도 짓누르는 것이라면 노동자에게 맞서기보다 그쪽에 맞서 전선을 형성하려 할 것이고, 전자보다 후자의 동맹자가 되기를 더 원할 것이다. 그들은 믿지 못할 용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너희를 도와 적을 잡아먹겠지만, 그 바로 뒤에 너희를 잡아먹겠다고 선언한다면, 형편없는 동맹자를 길러내는 셈이다. 이제 어떤 경우에도 일반적이고 동시적인 폭력적 수용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법을 통한 점진적 대체가 문제인 만큼, 실제로 낡아 빠진 잡아먹는다는 전설을 구호상으로라도 버리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 확실히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봉건제는 그 경직된 신분제적 제도 때문에 거의 모든 곳에서 무력으로 타파되어야 했다. 현대 사회의 자유주의적 제도는 바로 그 점에서 봉건제와 구별된다. 즉 유연하고 변화와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타파될 필요가 없고, 다만 계속 발전시키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과 정력적인 행동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혁명적 독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계급투쟁의 목적이 계급 차별을 아예 없애는 데 있으므로“, 얼마 전(1897년 10월) 스위스의 한 사회민주당 기관지인 『바젤 전진』이 썼다, „논리적으로 이 목적, 이 이상의 실현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기가 상정되어야 한다. 이 시작, 이 연속되는 시기들은 우리의 민주적 발전 속에 이미 근거를 두고 있으며, 민주적 발전이 우리를 도와 계급투쟁을 사회적 민주주의의 구축을 통해 점차 대체하고, 계급투쟁을 그 안에 흡수하게 한다.“ „부르주아지는 어떤 색채를 띠든“, 스페인의 사회주의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가 최근 선언했다, „우리가 그들이 한때 사용한 것과 같은 수단, 즉 폭력과 유혈로 무력하게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걸맞은 합법적 수단으로 장악하려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전진』, 1898년 10월 16일) 비슷한 견해로 영국 독립노동당의 기관지인 『레이버 리더』는 파리 코뮌에 관한 폴마르의 논평에 아무런 유보 없이 동의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신문이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정당들과의 투쟁에서 온순하다고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 사회주의 노동민주주의의 또 다른 기관지인 『클래리온』은 붕괴론에 관한 내 기사의 발췌문을 중단하면서, 그 내용에 동의하며 다음과 같은 논평을 덧붙였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육성 –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시급하고 본질적인 과제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이 우리의 10년간 사회주의 운동이 가르쳐준 교훈이다. 그것이 정치 문제에 관한 나의 모든 지식과 경험에서 도출되는 교훈이다. 사회주의가 가능해지기 전에, 우리는 민주주의자들의 국민을 세워야 한다.“

d) 사회민주주의의 당면 과제

„그리고 그녀가 무엇인지, 그것을 감히 드러내 보이라.“ 실러, 『메리 스튜어트』

한 정당의 과업은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활동 지역의 일반적인 경제적·정치적·지적·도덕적 발전 수준, 자기 옆에서 또는 자기에게 맞서 활동하는 정당들의 성격, 자기에게 주어진 수단의 성격, 그리고 일련의 주관적 이데올로기 요인 — 그중에서도 특히 당의 일반적 목표와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길에 관한 당의 이해 방식이 그것이다. 전자의 관점에서 여러 나라 사이에 아직 얼마나 큰 차이가 존재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산업 발전 수준이 거의 비슷한 나라들에서조차 우리는 매우 중대한 정치적 차이와 인민 대중의 정신적 지향에 있어서의 큰 차이를 발견한다. 지리적 위치의 특수성, 인민 생활에 뿌리 깊이 박힌 관습,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제도와 온갖 종류의 전통이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낳는데, 이 이데올로기는 그러한 발전의 영향에 더디게 복종할 뿐이다. 사회주의 정당들이 처음에는 동일한 전제를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경우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나라의 특수한 사정에 활동을 맞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어느 주어진 시점에서 사회주의 정책의 일반 원칙을 모든 나라에 유효하다는 주장과 함께 제시할 수는 있을지언정, 모든 나라에 동일한 방식으로 유효한 행동 강령은 제시할 수 없다.

앞 절에서 논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흔히 아직 가정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정도로 사회주의의 전제다. 즉 민주주의는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실체로서도 그러하다. 일정한 정도의 민주적 제도나 전통이 없었다면 현재의 사회주의 학설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며, 노동자 운동은 있었을지라도 사회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다. 현대 사회주의 운동은 그 이론적 설명이 어떠하든, 사실상 대프랑스 혁명에서 그리고 그 혁명을 통해 보편적 효력을 얻게 된 법적 개념들이 산업 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시간 운동에 미친 영향의 산물이다. 그러한 개념들이 없더라도 이 운동은 존속했을 것이며, 실제로 그러한 개념들이 없던 시절에 초기 기독교에 연결된 인민 공산주의[33]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인민 공산주의는 매우 불명확하고 절반은 신비주의적이었으며, 노동자 운동은 그러한 법적 제도와 법적 이해의 토대 — 다만 이 토대는 적어도 상당 부분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동반자다 — 없이는 내적 연관성을 결여했을 것이다. 대략 이에 상응하는 그림을 들자면, 오늘날 동방 국가들에서 그러한 사정이 나타난다. 정치적으로 권리가 없고 미신 속에서 불충분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노동자 계급은 때때로 반란을 일으키고 소규모로 음모를 꾸밀 수는 있겠지만, 결코 사회주의 운동을 발전시키지는 못한다. 이따금 반란을 일으키는 노동자 한 사람을 사회주의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야의 넓이와 상당히 발달한 법의식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정치적 권리와 학교는 어디서나 사회주의 행동 강령의 두드러진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 글의 계획에는 사회주의 행동강령의 개별 항목을 평가하는 일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민주주의 에르푸르트 강령의 당면 요구들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나는 그것들에 대한 변경을 제안할 생각이 전혀 없다. 아마 모든 사회민주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모든 항목이 똑같이 중요하거나 적절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예컨대 재판과 법률구조의 무상화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권장할 만하고, 무일푼인 사람도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하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수많은 재산 소송을 국가 비용으로 떠맡고 변호사 제도를 완전히 국유화할 절박한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견해다. 그러나 오늘날의 입법자들은, 비록 다른 이유에서이기는 하나, 그러한 조치를 더더욱 알려고 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입법은 법제도의 완전한 개혁 없이는, 또는 예컨대 영업재판소에 이미 존재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법제도의 창설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시행에 착수하지 않을 터이므로, 이 요구는 지향하는 발전의 지표로서 그대로 남아 있어도 좋다.

그런데 이 요구가 현재의 형태로 적절한지에 대한 내 의문은 이미 1891년, 당시 논의에 오른 강령 초안들에 관한 한 편의 논문에서 아주 분명히 표명한 바 있다. 나는 그때 해당 조항이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적게”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이에 차이트, IX, 2, 821쪽.) 그 논문은 K. 카우츠키와 내가 당시 강령 문제에 관한 공동 작업으로 작성한 연재물에 속하는데, 그중 처음 세 편은 거의 전적으로 카우츠키의 정신적 산물이고, 네 번째 논문은 내가 작성했다. 그 논문에서 당시 사회민주주의의 실천에 관해 내가 취했던 입장을 특징짓고, 그 이후 내 견해가 얼마나, 또는 얼마나 적게 변했는지를 보여 주는 두 구절을 여기에 인용하겠다.

“국가 재정으로 모든 실업자를 무조건 부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뿐 아니라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모두 국가의 여물통으로 보내라는 말이다 ... 국가에 대한 끝없는 어음 발행이 너무 과하다고 여기는 데 굳이 무정부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 우리는 현대 프롤레타리아가 가난하기는 하지만 빈민은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하려 한다. 이 차이 안에 하나의 세계 전체가 들어 있고, 우리 투쟁의 본질이, 우리 승리의 희망이 들어 있다.”

“‘상비군을 인민군으로 전환’ 대신 ‘상비군 대신 인민군’이라는 형식을 우리가 제안하는 이유는, 그것이 목표를 확정하면서도 오늘날 상비군 해산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적어도 군대와 인민 사이의 대립을 가능한 한 줄여 줄 일련의 조치들, 예컨대 특별 군사재판소의 폐지, 복무기간 단축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당에 자유로운 손을 남겨 두기 때문이다. (819, 824, 825쪽.)

‘상비군이냐 민병대냐’라는 문제가 최근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으므로, 이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언급을 여기에 끼워 넣는 것이 적절하겠다.

우선 나에게는 위에 제시된 표현 자체가 문제를 잘못 세운 것으로 보인다. 마땅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정부군인가, 국민군인가. 그렇게 하면 문제의 정치적 측면이 처음부터 명백해진다. 군대가 통치자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국민의 무장된 방위대가 되어야 하는가. 군대가 왕관으로부터 결정적 지령을 받아야 하는가, 국민대표로부터 받아야 하는가. 국민의 정점에 서 있는 어떤 인물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가, 헌법과 국민대표에게 맹세해야 하는가. 어떤 사회민주당원에게도 답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국민대표도 사회주의적이지 않고 헌법도 민주주의적이지 않다. 그래서 국민대표에 복종하는 군대라 해도, 소수자나, 의회에서만 소수인 실제 다수를 때때로 억압하는 데 여전히 동원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일부가 무장하고 있는 한, 그 무장한 부분은 그때그때의 국민대표를 따라야 하므로, 그러한 가능성들에 맞설 구원의 공식은 없다. 내 생각에 소위 "전면적 국민무장"조차 오늘날의 기술 아래에서는 조직된 무장력에 맞선 환상적 방위대에 지나지 않으며, 그 무장력의 구성 자체가 국민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 그러나 전면적 징병제 아래에서는 그 보호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매번 양쪽에 무의미한 희생만 낳을 뿐이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곳이라면 정치적 이유로 결코 승인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불필요할 것이다. 나는 강건하고 두려움 없는 세대의 교육을 간절히 바라지만, 전면적 국민무장은 나에게 사회주의적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다행히도 우리는 정치적 차이를 총격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이상이 이 문제의 정치적 측면이다. 기술적 측면(훈련, 무장 복무 기간 등)에 관해서는 나는 솔직히 말해 확고한 판단을 내릴 만큼 충분한 전문 지식이 없다. 속성으로 훈련된 군대에 유리한 근거를 제시하는 과거의 사례들(혁명 전쟁, 해방 전쟁)은 오늘날 전쟁 수행의 완전히 변화된 조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며, 최근 그리스-터키 전쟁과 스페인-미국 전쟁에서 의용병으로 얻은 경험도 독일이 계산해야 할 가능성들에 역시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진영에서 때때로 "러시아의 위험"을 과장하거나, 그것이 아마도 가장 적은 곳에서 그것을 찾는다는 견해를 나도 가지고 있지만,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정치적으로 의지가 없고 매우 무지한 농민으로 구성된 나라는 언제나 이웃 나라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따라서 주어진 경우에는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적의 땅으로 옮겨 그곳에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 국가에서는 자국 영토에서의 전쟁이 이미 절반의 패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민병대 군대가 그런 결과를 보증할 전투 준비태세, 확실성, 결속력을 갖추고 있는가, 아니면 그를 위해 군기 아래에서 얼마나 긴 훈련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내가 보기에 우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청소년을 국방에 적합하게 충분히 교육하고 거위 행진식 훈련의 모든 잔재와 유산을 제거한다면, 국민의 국방력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복무 기간을 매우 현저히 단축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현재 군대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선의가 큰 역할을 하지만, 국민 대표 기관은 군사 예산에 대한 압박을 통해 지금도 그 선의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 공장 입법에서처럼 여기서도 복무 기간의 강제적 단축은 고루한 정신과 특수 이익이 지금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여러 가지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 공격과 방어 모두에 대비된 국방력의 유지에 애초에 가치를 둔다면 – 군대의 정치적 지위 변경이 불가결한 것과 더불어 첫 번째 문제는 민병대냐 아니냐가 아니라, 독일을 이웃 국가들에 비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하지 않으면서 즉시 그리고 – 단계적으로 – 나중에 가능한 복무 기간의 단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계급과 평화의 정당으로서 민족적 방위력 유지에 이해관계를 가지는가? 여러 관점에서 이 질문을 부정하고 싶은 유혹이 크다. 특히 공산당 선언의 “프롤레타리아는 조국을 가지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출발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구절은 기껏해야 1840년대의 권리 없고 공적 생활에서 배제된 노동자에게만 해당할 수 있었을 뿐, 오늘날에는 민족 간 교류가 엄청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당 부분 그 진실성을 상실했으며, 사회민주주의의 영향으로 노동자가 프롤레타리아에서 시민으로 변모할수록 점점 더 진실성을 잃어갈 것이다. 국가와 지방자치체 등에서 동등한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로서, 그리하여 민족의 공유재산의 공동 소유자가 된 노동자, 그 자녀를 공동체가 교육하고, 그 건강을 보호하며, 불의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주는 노동자는 조국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세계시민이기를 그치지 않고, 민족들이 서로 가까워진다고 해서 고유한 삶을 영위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모든 인간이 단 하나의 언어만 말하게 된다면 매우 편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미래의 인간들이 잃게 될 정신적 향유의 매력과 원천은 얼마나 큰가. 민족의 완전한 해소는 아름다운 꿈이 아니며, 어쨌든 인류의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문화민족 중 어느 하나가 자립성을 상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들의 문화 작업에 정당한 몫을 해왔고 하고 있는 독일 민족이 민족들의 회의에서 밀려나는 것도 사회민주주의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에 의한 정치적 지배의 정복에 대해 많이 이야기되고 있으며, 적어도 사회민주주의가 독일에서 획득한 강력한 세력에 비추어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어떤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결정적 역할이 그 손에 맡겨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회민주주의는 이웃 민족들이 아직 그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혁명의 인디펜던트파나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파처럼,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려면 민족적이어야 할 것이다. 즉 사회민주주의는 계급 이익과 민족적 이익을 똑같이 단호하게 대변하는 과제를 감당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지도 정당 내지 계급으로서의 자격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어떤 쇼비니즘적 충동에서도 쓰지 않는다. 그럴 만한 계기도 이유도 정말로 내게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에 생겨날 의무들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마음에서일 뿐이다. 오늘날에도 국제주의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내게 높이 서 있다. 그리고 앞의 글들에서 전개한 원칙들로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훼손된다고도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가 교조적 선전과 사회주의적 실험에만 국한한다면, 민족-정치적 문제들 앞에서 순전히 비판적 태도에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행동은 그 자체로 이미 비사회주의적 세계와의 타협이며, 처음부터 사회주의적인 것이 아닌 조치들을 강요한다. 다만 그 이후의 과정에서 민족적인 것은 지방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민주적 국가체제의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기꺼이 민족주의자라 부르고, 훨씬 더 불확정적이며 그 말의 개선이라기보다 하나의 임시방편에 가까운 사회화라는 표현에 국한하기보다는 토지의 국유화 등을 서슴없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앞의 논의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현재의 상황 아래에서 외교 정책 문제들에 대해 입장을 취해야 할 관점은 원칙적으로 이미 제시되었다. 노동자가 아직 완전한 시민은 아니라 해도, 민족적 이익이 자신에게 무관할 수 있을 만큼 무권리 상태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가 아직 권력을 쥐고 있지는 않더라도, 이미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권력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발언은 저울에서 매우 상당한 무게를 차지한다. 현재의 군대 구성과 소구경 포의 도덕적 효과에 대한 완전한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제국 정부는 사회민주주의를 확고한 반대자로 맞게 될 전쟁을 감행하기 전에 열 번은 더 생각할 것이다. 그 유명한 총파업 없이도 사회민주주의는 평화를 위해 이처럼 매우 중대한, 아니 결정적일지도 모르는 발언을 할 수 있으며, 인터내셔널의 오랜 좌우명에 따라 필요하고 가능한 한 언제나 그리고 힘있게 그렇게 할 것이다. 또한 그 강령에 따라, 다른 민족들과의 갈등이 생겨나 직접적인 이해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차이의 해결을 중재적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현재 또는 미래의 이익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라고 주장하는 데 찬성표를 던지도록 사회민주주의에 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쇼비니스트들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에 불쾌감을 나타낸다는 이유에서, 또는 그러한 때에 그러한 이유로 그렇게 하라는 것은 없다. 독일 측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민중의 복지에 무관하거나 오히려 해로운, 일부 집단의 취미나 특수 이익만이 아닌 경우, 정말로 국민의 중요한 이익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국제주의는 외국 이해당사자들의 요구에 대해 나약하게 양보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새로운 견해가 아니라, 외교 정책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 엥겔스, 라살레의 거의 모든 발언 밑에 깔려 있는 사고의 흐름을 단순히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평화를 위협하는 태도도 아니다. 오늘날 여러 민족은 그렇게 쉽사리 전쟁에 뛰어들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호한 태도가 계속된 양보보다 평화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럽 세력 균형이라는 교리는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시대에 뒤진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그것의 옛 형태는 그렇다. 그러나 변모한 모습으로, 세력 균형은 국제 분쟁의 결정에서 여전히 큰 역할을 한다. 특정 조치를 관철시키거나 저지하기 위해 얼마나 강력한 세력 연합이 그 조치를 지지하는가가 때때로 여전히 관건이 된다. 그러한 경우에 발언권을 확보하는 것을 나는 독일 제국 정치의 정당한 과제로 여기며, 그에 상응하는 조치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범위를 벗어나는 일로 본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자. 자오저우 만 조차는 당시 독일의 사회주의 언론으로부터 매우 혹독하게 비판받았다. 이 비판이 조차가 이루어진 정황을 겨냥한 것이라면,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언론의 권리였고 오히려 의무였다. 중국 분할 정책의 개시나 조장에 가장 단호하게 반대한 것도 마찬가지로 옳았다. 그러한 분할은 독일의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신문이 더 나아가, 당은 어떤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이 만의 획득을 규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면, 나는 그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독일 국민은 중국이 분할되고 독일이 중원의 한 조각으로 처리되는 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그러나 독일 국민은 중국이 다른 민족들의 약탈물이 되지 않는 데 큰 이해관계가 있으며, 중국의 통상 정책이 개별 외국 열강 하나나 외국 열강 연합의 이익에 종속되지 않는 데 큰 이해관계가 있다 — 요컨대 중국에 관한 모든 문제에서 독일이 단호하게 발언권을 행사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 중국과의 무역이 그러한 발언권을 요구한다. 자오저우 만 획득이 이 발언권을 확보하고 강화하는 수단인 한 — 그리고 그것이 그에 기여한다는 점은 좀처럼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 나는 거기에 사회민주주의가 원칙적으로 이에 반대해 봉기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고 본다. 획득이 시작된 방식과 그것에 따랐던 좋은 연설들을 차치하고라도, 그것은 독일 외교 정책의 최악의 책략은 아니었다.

중국과의, 그리고 중국 내에서의 자유 무역을 확보하는 문제다. 저 취득이 없었더라도 중국이 점점 더 자본주의 경제권으로 끌려 들어갔을 것이며, 그것이 없었더라도 러시아가 포위 정책을 계속 밀어붙여 첫 기회에 만주 항구들을 점령했으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문제는 독일이 완성된 기정사실이 하나씩 만들어짐에 따라 중국이 점점 더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정상적 상황에서도 언제든 중국 정세의 형성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입장을 확보하여 사후 항의로 만족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하는가였다. 그런 범위에서 교주만 조차는 중국에서의 독일의 장래 이익을 위한 보증을 획득하는 것을 뜻했으며 — 그 밖에 어떤 명목으로 선전되었든 간에 — 그런 범위에서는 사회민주주의도 원칙에 조금도 손상 없이 이를 승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 외교 정책 지도의 무책임성을 고려하면, 문제는 그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올바른 근거 제시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업들이 국민대표기관을 무시하고 당초 제시된 목적 이외의 다른 목적, 가령 미래의 더 큰 이익을 팔아넘기는 하루짜리 작은 성과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으리라는 보장 없이는 — 그러한 보증 없이는 사회민주주의가 외교 정책 조치에 대한 책임의 일부를 떠맡을 수 없다.

보는 바와 같이, 여기서 전개한 외교 정책 문제에 대한 입장 규정은 사회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실제로 취해 온 태도와 거의 일치한다. 그것이 그 기본 전제에 있어 당내 지배적 견해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내가 논할 바가 아니다.

대체로 이런 문제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전통이 훨씬 큰 역할을 한다. 모든 전진하는 정당의 본성상 이미 이루어진 변화에는 별로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아직 변하지 않은 것에 쏠려 있는데, 이는 특정 목적 — 목표 설정 — 을 위해서는 충분히 정당하고 유용한 경향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당은 이 경향에 사로잡혀, 전제가 이미 많이 달라진 기존의 판단에 필요하거나 유용한 것보다 오래 매달리는 습관에 쉽게 빠진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며, 그 판단이 그 사이에 편견이 되지 않았는지 관련 사실 전체에 비추어 문제를 검토하기보다는, 그 판단을 여전히 옳은 것으로 보이게 할 사실을 점점 더 많이 찾는다.

이런 정치적 선험주의는 식민지 문제를 다룰 때에도 자주 역할을 하는 듯하다.

원칙적으로 오늘날 사회주의나 노동운동에게 새 식민지가 성과를 거두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식민지의 확장이 사회주의의 실현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사회주의의 실현이 극히 부유한 자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대중의 궁핍화가 심화되는 데 달려 있다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관념에 근거한다. 전자가 허구라는 것은 앞의 여러 절에서 입증되었고, 궁핍 이론은 이제 모든 결과를 끌어내고 노골적으로 밝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가능한 한 해석으로 밀어내는 형태로는 거의 보편적으로 포기되었다. [34]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오늘날 독일이 문제 삼는 식민지들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국내의 사회적 상황에 그렇게 빠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어, 설령 닥칠지도 모르는 붕괴를 고작 1년이라도 지연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독일 제국의 식민지 정책으로부터 전혀 두려워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그러하기에, 독일이 획득한 식민지들(그리고 앞으로 획득할지도 모르는 식민지들에도 같은 말이 적용된다)의 발전은 오랜 세월 동안 독일의 사회적 관계에 주목할 만한 반향을 미친다는 것을 논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기에, 바로 이런 이유에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이 식민지 문제도 선입견 없이 다룰 수 있다. 식민지 소유가 독일의 정치적 관계에 진지한 반향을 미친다는 것조차 논할 수 없다. 예컨대 해군 쇼비니즘은 의심할 바 없이 식민지 쇼비니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거기서 어느 정도 양분을 얻는다. 그러나 독일이 식민지 획득을 생각하기 훨씬 전부터 해군을 보유했던 것처럼, 그것 없이도 존속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관성이 식민지 정책에 대한 원칙적 투쟁을 정당화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 밖의 경우에는 식민지 획득 시 그 가치와 전망을 항상 엄격히 검토하고, 원주민에 대한 보상과 처우, 그리고 그 밖의 행정을 면밀히 통제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으나, 그러한 획득을 애초부터 부당한 것으로 간주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현재의 정부 체제가 요구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입장은 이 문제에서 비판적 태도 외에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을 금지하며, 독일이 오늘날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직 얻을 수 있는 식민지에 관해서는 충분히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도 우리에게 권리를 주장한다. 독일이 현재 매년 상당히 많은 양의 식민지 산물을 수입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언젠가는 적어도 그 산물의 일부를 자국 식민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할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의 발전 과정을 가능한 한 빠르게 상상한다 해도,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스스로 속일 수 없다. 그러나 열대 농장의 산물을 향유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면, 그러한 농장을 직접 경영하는 것도 부당할 수 없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여부가 아니라 방식이다. 유럽인이 열대 국가를 점령하는 것이 원주민의 생활 향락에 손해를 끼칠 필요는 없으며, 지금까지도 그것이 전면적으로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미개인이 자신들이 점유한 토지에 대해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는 조건부에 지나지 않는다. 더 높은 문화는 극단적인 경우 더 높은 권리도 가진다. 토지의 정복이 아니라 경작이 그 이용에 대한 역사적 권원을 부여한다. [35]

이것이 내 생각에 사회민주주의의 식민지 정책 문제에 대한 입장을 규정해야 할 본질적 관점들이다. 이것들 역시 실제로 당의 표결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반복하건대 문제는 주어진 사안에서 어떻게 표결하는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표결을 어떻게 근거 짓는가에도 있다.

사회민주주의 안에는 민족적 이익을 위한 모든 주장을 쇼비니즘으로, 또는 국제주의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정책에 대한 위반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 도멜라 니우벤하위스가 러시아의 공격이 있을 경우 사회민주주의는 독일 방어를 위해 병력을 내겠다는 베벨의 유명한 선언을 쇼비니즘으로 규정했듯이, 최근에는 벨포르트 백스 씨도 H.M. 하인드먼의 유사한 선언에서 비난할 만한 징고이즘을 발견했다. [36] 물론 자국 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어디까지 정당하고 어디서부터 사이비 애국주의로 넘어가는지 그 경계를 정하기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쪽 방향의 과장에 대한 해독제는 확실히 다른 쪽 방향의 더 큰 과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문화 국가들의 민주주의 사이의 활발한 의견 교환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모든 요인과 제도를 지원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당 강령의 다음 요구 사항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 요구 사항 가운데 몇 가지가 지금까지 당의 선전과 의회 활동에서 전혀 또는 부분적 개혁의 형태로만 의제에 올랐다면, 다른 요구 사항과 관련해서는 여기저기서 이미 강령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멀리 목표가 설정되어 왔다. 예컨대 강령은 14세 미만 아동의 영리 노동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데, 1897년 취리히 노동자 보호 대회에서는 아동 영리 노동의 최저 연령을 15세로 지정했고, 여러 사회주의자에게는 그것조차도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나의 확신으로는, 주어진 상황에서 이러한 확대는 개선으로 볼 수 없다. 노동 시간이 어린 몸이 해 없이 견딜 수 있고 놀이와 휴식과 교양에 충분한 시간을 남겨 주는 정도로 제한된다면, 14세가 지난 젊은이들이 생산 노동을 시작하는 것은 일반적 금지가 필요할 만큼 큰 악이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노동의 성질과 조건에 달려 있으며, 그렇다는 것은 오늘날 입법이 원칙적으로 이미 인정하고 있다. 입법은 개별 업종에 대해 청소년 노동자의 고용을 전면 금지하고, 다른 업종에서는 그것이 허용될 수 있는 시간대를 정확히 규정한다. 나는 청소년 보호의 합리적 발전을 이러한 규제의 심화와 교육 제도의 완성에서 보며, 영리 노동을 위한 연령 하한의 기계적 상향 조정에서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제와 학교 문제의 연관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려면 청소년 노동 문제는 학교로부터, 그리고 학교와 연계하여 규율되어야 한다. [37] 청소년의 영리 노동이 건강 관리와

학교의 정신적·도덕적 교육 과제를 해치는 곳과 그 범위에서는 금지되어야 하지만, 더 이상 취학 의무가 없는 연령층까지 포함하는 모든 일반적 금지는 단호히 배척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생산 제한이나 노동자 경쟁 같은 경제적 고려를 끌어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일이다. 오히려 생산적 노동, 또는 덜 모호한 표현을 쓰자면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이 높은 교육적 가치를 지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 투쟁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하는 것이 좋다.

오늘날 이미 강령에 올라 있는 요구들을 높이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 강령을 보충하는 문제다. 여기서 실천은 여러 가지 문제를 의제에 올렸는데, 그것들은 강령을 만들 당시에 사회민주당이 특별히 다루기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여겨진 것도 있고, 그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농업 문제, 지방자치 정치 문제, 협동조합 문제, 그리고 여러 가지 영업 관련 법률 문제가 있다. 에르푸르트 강령이 작성된 이후 8년 동안 사회민주당이 크게 성장한 것, 그것이 독일 내정에 미친 반작용,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경험은 이 모든 문제를 더 깊이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당시 이 문제들에 대해 지배적이던 여러 견해가 상당히 바로잡혔다.

농업 문제에 관해서는, 농민 경영이 몰락할 운명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조차 그 몰락이 실현될 시기에 대한 견해를 상당히 바꾸었다. 사회민주당이 취해야 할 농업 정책에 관한 최근의 논쟁에서도 이 점에 대해 여전히 큰 의견 차이가 작용했지만, 원칙적으로 논쟁의 초점은 사회민주당이 농민 그 자체, 즉 자립한 농촌 기업가에게 자본주의에 맞서 어디까지 원조를 제공해야 하는가, 그리고 제공해야 한다면 어느 한계까지인가에 있었다.

이 문제는 답하기보다 제기하기가 쉽다. 농민 대중은 임금노동자가 아니면서도 노동하는 계급에 속한다. 즉 그들의 생존은 단순한 소유권이나 출생 특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임금노동자에 더 가깝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독일에서 인구의 매우 중요한 일부를 이루기 때문에, 매우 많은 선거구에서 그들의 표가 자본주의 정당과 사회주의 정당 사이의 승부를 결정한다. 사회민주당이 본질적으로 노동조합 운동의 정치적 보완물에 불과한 노동자 정당에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농민의 큰 부분이 자기 후보의 승리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소농 대중의 경우 이것은 장기적으로, 가까운 장래에 개선을 약속하고 즉각적인 부담 경감을 가져다줄 조치를 지지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들 가운데 많은 것에서 입법은 소농과 중농을 구별할 수 없고, 다른 한편으로 농민을 국가의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돕되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그를 "기업가"로서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카우츠키가 농업 문제에 관한 저서 말미에서 농민층의 중립화라는 항목 아래 개략을 제시한 사회주의 농업 정책 강령에서 드러난다. 카우츠키는 사회민주주의가 승리한 뒤에도 농민적 토지 소유의 폐지를 서둘러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농민을 기업가로서 인위적으로 유지하려는 의미의 농민 보호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러한 조치를 지원하거나 그러한 요구를 제기하는 데 단호히 반대한다. 그런 다음 그는 농촌 자치체의 부담을 덜고 수입원을 늘리는 데 귀결되는 일련의 개혁을 제안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허용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무엇보다 어느 계급에 이익이 되는가? 카우츠키 자신의 서술에 따르면 농민이다. 왜냐하면 그가 저서 다른 곳에서 강조하듯이, 농촌에서는 보통선거권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치체 사무에 미치는 영향력이 언급할 만한 수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곳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너무 고립되어 있고, 너무 뒤처져 있으며, 그들을 통제하는 소수의 고용주에게 너무 의존해 있다. 그곳에서는 토지 소유의 이익을 위한 것 외에 다른 자치체 정책은 생각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치체에 의한 현대적 농업, 마을 자치체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적 농업 대규모 경영도 생각할 수 없다. (농업 문제, 337쪽 및 338쪽.) 이것이 정당하고 그러한 한, 대토지 소유의 사냥 구역을 농촌 자치체에 편입시키는 것, 학교·빈민·도로 부담의 국유화 같은 조치는 분명히 농민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하고 따라서 그들의 소유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며, 실제로는 결국 농민 보호로 작용할 것이다.

두 가지 전제 아래에서라면 그러한 농민 보호를 지지하는 것이 무리하지 않다고 나는 본다. 첫째, 그에 맞서 농촌 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존재할 것, 둘째, 그것의 실현 자체의 전제 조건인 국가와 자치체의 민주주의가 지배할 것. [38] 두 가지 모두 카우츠키에게도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카우츠키는 민주화된 농촌 자치체에서 농촌 노동자의 비중을 과소평가한다. 그가 해당 대목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무력한 상태는 교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치체에서나 볼 수 있으며, 그런 자치체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촌 노동자는, 카우츠키 자신이 충분한 자료를 제시하듯이, 오늘날 이미 자신의 이익을 상당히 자각하고 있으며 보통선거권 아래에서는 점점 더 그러할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자치체에서는 농민들 사이에도 온갖 이해 대립이 존재하며, 마을 자치체에는 수공업자와 소상인이라는 요소가 있어 여러 면에서 농민 귀족보다 농촌 노동자와 더 많은 이해를 공유한다. 이 모든 것 때문에 농촌 노동자가 홀로 결속된 반동적 대중과 마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농촌 자치체에서도 사회주의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작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가 교통 체계의 대변혁이 되돌려 주는 영향과 결합할 때, 농민 경영의 기술적 변화보다 농촌 노동자 해방의 더 강력한 지렛대라고 본다.

실제로 카우츠키의 강령은 대체로, 그리고 그가 가장 중시하는 항목들에 있어서는 특히, 농업 관계에 대한 시민 민주주의의 요구를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농촌 노동자를 위한 광범한 보호 규정으로 이를 강화한 것이다. 앞서 말한 바에 비추어, 이것이 내 눈에는 결코 비난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나는 카우츠키 자신이 매우 명확히 강조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강령에 사회민주주의 농업 강령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까지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농촌 자치에서 농업 노동자에게 유리한 그 강령의 요구들이 일부는 사회민주주의의 노동자 보호 요구와 당면 정치 요구에 이미 본질적으로 포함되어 있고, 일부는 삼림 및 수리 경제의 국유화 요구를 제외하면 다른 곳에서 부분적으로 이미 시행된 "작은 수단"들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며, 그와 관련하여 사회민주주의가 다른 정당과 구별되는 점은 사유 재산에 맞서 공공 이익을 옹호하는 무자비함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강령이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여부는 개별 요구의 중요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요구가 그 연관 속에서 지니는 성격과 중요성에 달려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당면 요구로서 현재의 상황에 맞는 것만을 제시할 수 있으며, 그 조건은 그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 질서의 방향으로 더 발전해 나갈 싹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요구 중에서 어느 하나의 비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함께 주장할 수 없거나 주장하지 않을 요구란 없다. 모든 시민 정당이 필연적으로 원칙적 반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요구라면, 그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유토피아적 요구임이 드러난다. 다른 한편 사회민주주의는, 주어진 경제 및 권력 관계 아래에서 오늘날의 소유 및 지배 관계를 풀어내기보다 오히려 공고히 하는 데 더 기여할 요구를, 해당 조치가 다른 관계 아래에서, 발전의 더 앞선 단계에서 생산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제시할 수는 없다. 카우츠키가 신중한 검토 끝에 거리를 둔 그러한 요구의 예가 바로 저당권 국유화다. 그것은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의 사안이 아니다.

나는 카우츠키의 강령에 대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원칙적으로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그 모든 세부 사항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것은 삼가겠다. 다만 그와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사회민주주의가 농촌 주민에 대해 수행해야 할 주요 과제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1) 아직 남아 있는 대지주 봉건제의 잔재와 지주를 위한 모든 지지 기반과의 투쟁, 그리고 촌락과 구역에서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다. 따라서 카우츠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파이데이코미스, 영지구, 사냥 특권 등의 폐지를 위한 주장이다. 카우츠키의 표현에서, 촌락과 주에서 가장 완전한 자치를 통해 실현한다는 부분에서 나는 „가장 완전한“이라는 말이 잘 선택된 것이 아니라고 보며, 이를 „민주적“이라는 말로 대체하고자 한다. 최상급 표현은 거의 항상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가장 완전한 자치“는 참여자의 범위를 가리킬 수 있는데, 그 경우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민주적 자치로 표현하는 것이 확실히 더 낫다. 그러나 그것은 처분권을 가리킬 수도 있으며, 그 경우 촌락의 절대주의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는 필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건전한 민주주의의 요구와도 양립할 수 없다. 촌락 위에는 국민의 일반 입법이 있어, 촌락에 특정한 기능을 부여하고 촌락의 특수 이익에 맞서 전체 이익을 대표한다. 2) 농업에 종사하는 노동 계급의 보호와 부담 경감. 이 항목에는 좁은 의미의 노동자 보호가 포함된다. 즉 하인 규정의 폐지, 여러 범주의 임금 노동자의 노동 시간 제한, 위생 경찰, 교육 제도, 그리고 소농을 납세자로서 부담을 경감해 주는 조치들이 그것이다. 노동자 보호와 관련하여, 나는 카우츠키가 제안한, 청소년 노동자의 오후 7시에서 오전 7시 사이의 노동을 금지하자는 안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하계에는 이것이 노동을 아침 시간에서 가장 더운 낮 시간대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데, 그 시간에는 오히려 현재 일반적으로 노동이 전면 중단된다. 농촌에서는 여름에 일반적으로 일찍 일어나며, 수확기의 특정 작업에는 이른 시작이 불가피하다. [39] 정상 노동일은 농촌에서 산업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시행될 수 없다. 그 실현은, 카우츠키 자신도 논술한 바와 같이, 일 년의 전체 노동 주기에 대해 확정되고, 날씨 등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계절 노동의 성격을 고려하며, 젊은 노동자에게도 성인과 마찬가지로 허용 노동 시간 최대치의 평균을 기초로 삼는 노동 계획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면 성인에게 8시간의 정상 노동일이 있다면, 젊은이에게는 6시간의 정상 노동일이 대응하게 될 것이다. 3) 소유 절대주의와의 투쟁 및 협동조합 제도의 진흥.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요구들이 포함된다.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의 권리를 제한하여 다음을 진흥한다. 1) 분할, 혼재지의 폐지, 2) 토지 개량, 3) 전염병 예방.“ (카우츠키) „이를 위해 설치된 법원을 통한 과도한 지대의 감축.“ (카우츠키) 촌락에 의한 건강하고 편리한 노동자 주택 건설. "입법을 통한 협동조합적 결합의 촉진." (카우츠키) 지방자치단체가 매매 또는 수용을 통해 토지를 취득하고, 이를 노동자와 노동자 협동조합에 저렴한 이자로 임대할 권한. [40]

이 마지막 요구는 협동조합 문제로 넘어간다. 협동조합의 경제적 가능성에 관한 절에서 이미 말한 바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하겠다. 오늘날 문제는 협동조합이 있어야 하느냐 없어야 하느냐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존재하고 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사회민주주의가 노동계급에 미치는 영향력의 무게로 노동자 협동조합의 확산을 늦출 수도 있고 늦출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노동계급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내에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 흔히 드러내는,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사회주의적 협동조합이 있을 수 없다는 설명으로 정당화되는, 완고한 맨체스터주의도 권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오히려 확고히 입장을 정하고, 사회민주주의가 어떤 협동조합을 권장하고 자기 수단이 닿는 대로 도덕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며 어떤 것을 그럴 수 없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1892년 베를린 당대회가 협동조합 제도에 관해 채택한 결의안은, 그 제도의 한 형태인 산업 생산협동조합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불충분하다. 자본주의적 공장에 맞서는 독립적 경쟁 기업으로 생각되는 한 그 형태에 대해서는 확실히 가장 완고한 태도가 마땅하다. 그러나 그 형태의 경제적 가능성에 대해 통하는 말이 협동조합 기업의 다른 형태에도 통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협동조합과 그와 결합된 생산시설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농촌 협동조합에 대해서도 그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우리는 신용조합, 구매조합, 낙농조합, 작업조합, 판매조합이 모든 현대 국가에서 농촌 주민 사이에서 얼마나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는지 보았다. 그러나 독일에서 이 조합들은 일관되게 농민조합이며, 농촌에서의 "중간계급 운동"의 대표자들이다. 이 조합들이 증가하는 자본 축적으로 초래되는 이자율 인하와 결합하여 실제로 농민 경영이 대규모 경영에 맞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나는 반박되지 않았다고 본다. 이 농민조합들은 또한 대부분 반사회주의적 요소들, 즉 소시민적 자유주의자, 성직자, 반유대주의자들의 활동 무대이다. 사회민주주의에게 이 조합들은 오늘날 거의 어디서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사회민주주의가 그들보다 더 가까운 소농이 당내에 다소 있을 수 있음에도 그러하다. 이 조합들에서 주도권은 중농이 쥐고 있다. 사회민주주의가 조합이라는 수단을 통해 농촌 주민의 해당 계층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칠 전망을 가진 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그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에게 오늘날 고려될 수 있거나 고려될 수 있을 것은 농업노동자와 영세농의 조합뿐인데, 그들의 활동 무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적어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농업노동자의 항구적 노동조합 조직이 지금까지 영국에서조차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 그곳에서는 가내규율도 연합금지도 그것을 막지 않는다는 점,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그 전망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반면 오늘날 온갖 대리인들이 지대농장과 유사한 창설을 통해 농업노동자를 토지에 묶어두려고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에게 적어도 농업노동자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조합이라는 수단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길을 제시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충분한 토지와 판로의 개척이다. 전자와 관련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수용을 통해 토지를 취득하고 노동자조합에 저렴한 조건으로 임대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위에 정식화된 요구가 민주적 발전 아래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 같다. 판로는, 농촌 노동자조합이 자본주의적 사업 세계의 보이콧과 싸워야 하는 한, 도시의 노동자 소비조합이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촌 노동자조합은 이로써 아직 종이 위에만 있다. 민주주의는 이제 막 쟁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F. 오펜하이머가 제안하는 것처럼 자조나 사적 자금을 통한 그러한 조합의 설립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비조합의 설립과 마찬가지로 사회민주주의가 정당으로서 그 과제의 범위 밖에 두는 일이다. 정치적 투쟁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는 경제적 실험에 나설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의 과제는 노동자의 조합 운동을 가로막는 법적 장애물을 치우고, 경우에 따라 그 운동을 촉진할 사명을 띤 행정기관들을 목적에 맞게 개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민주당이 정당으로서 소비조합을 설립할 임무를 지니지 않는다고 해서, 소비조합에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소비조합은 사회주의적 기업이 아니라는 흔히 하는 설명은, 오랫동안 노동조합을 상대로 적용되다가 이제는 그 반대 극단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것과 똑같은 형식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소비조합이 사회주의적인지 아닌지는 그 형식에 달려 있지 않고 그 본질, 그것을 관통하는 정신에 달려 있다. 그것들은 확실히 결코 숲 자체는 아니지만, 숲의 매우 유용한 부분이자 참된 장식이 될 수 있는 나무들이다. 비유를 걷어내고 말하자면, 그것들은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노동자 조직으로서 사회주의의 요소를 충분히 품고 있어 사회주의적 해방의 가치 있고 없어서는 안 될 지렛대로 발전할 수 있다. 그것들은 조직과 운영에서 완전히 스스로에게 맡겨질 때 자신의 경제적 과업을 틀림없이 가장 잘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초기에 노동조합 운동에 대해 품었던 혐오와 심지어 적대감이 점차 우호적 중립으로, 그다음에는 동지의식으로 바뀌었듯이, 소비조합도 비슷하게 될 것이다 — 부분적으로는 이미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도 실천이 가장 강력한 인도자다.

혁명적 운동뿐 아니라 노동자의 모든 해방 운동의 적인 요소들은 노동자 소비조합에 대한 그들의 공세를 통해 사회민주당으로 하여금 정당으로서 소비조합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조합이 정치적 노동운동에서 지적 역량이나 다른 역량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경험으로 드러났다. 개별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디서나 오히려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회민주당은 경제적·법적 전제 조건이 갖추어진 곳에서 노동자 소비조합의 설립을 아무 걱정 없이 지켜볼 수 있으며, 그것들에 온전한 호의를 보내고 가능한 한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41]

노동자 소비조합이 원칙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관점은 단 하나뿐이다. 즉 그것이 더 나은 것에 가로막히는 선(善)이라는 관점인데, 여기서 더 나은 것이란 거의 모든 사회주의 체계에서 예시되듯 지방자치단체가 재화 조달과 재화 유통을 조직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첫째, 민주적 소비조합이 자기가 자리 잡은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주민을 포괄하기 위해 원칙적인 변경은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다만 그 헌장을 확대하면 되는데, 이는 그 자연스러운 경향과 완전히 부합한다(일부 작은 지역에서는 소비조합이 오늘날 이미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주민을 조합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에 매우 가까이 와 있다). 둘째, 이 구상의 실현은 아직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고, 그만큼 많은 정치적·경제적 변화와 발전의 중간 단계를 전제로 하므로, 그것을 염두에 두고 노동자들이 오늘날 소비조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포기하는 것은 터무니없을 것이다. 오늘날 정치적 지방자치단체에 관한 한, 그것을 통해 아주 특정된 일반적 수요를 돌보는 일만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마침내 사회민주주의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이르게 된다. 이것 역시 오랫동안 사회주의 운동의 계모 취급받는 아이, 혹은 그중 하나였다. 예컨대 그사이 폐간된, 매우 총명한 사람들이 편집한 해외의 사회주의 신문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오늘날 이미 사회주의 개혁 작업의 지렛대로 이용하고, 그렇다고 의회 활동을 중단하지도 않은 채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회주의 요구의 실현에 착수하자는 생각이 소시민적이라며 조롱과 함께 물리쳐진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운명의 아이러니는 그 신문의 편집장이 지방자치단체 사회주의의 등에 업혀서야 자기 나라 의회에 입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원했다. 영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는 자체 대표를 의회에 보내는 데 성공하기 전에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옥한 활동의 풍요로운 분야를 발견했다. 독일에서는 발전이 달랐으니, 여기서는 사회민주주의가 지방자치단체 대의기관에서 눈에 띌 만한 정도로 발판을 잡기 훨씬 전에 이미 의회에서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나 그 확산이 커짐에 따라 지방의회 선거에서의 성과도 늘어났고, 그리하여 사회주의 지방자치단체 강령을 작성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드러났으니, 그러한 강령은

개별 국가나 주에서도 이미 협약이 체결된 바 있다. 예컨대 최근 1898년 12월 27일과 28일, 브란덴부르크 주의 사회주의 지방의원 회의에서 지방선거를 위한 강령에 합의했는데, 이 강령은 전체적으로 그 목적에 지극히 부합할 것이며 어느 점에서도 원칙적인 비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강령은, 행동강령이라면 달리 기대할 수도 없듯이, 오늘날 지방자치단체에 부여된 권리 범위 안에 있는 요구들로 한정되어 있고, 사회주의적 견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권리와 과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원칙적 논의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반면 사회민주주의의 일반 지방자치 강령이라면 이 문제를 몇 마디로 다루어야 했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지방자치단체를 위해 무엇을 요구하며,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점에 관해 에르푸르트 강령은 다음과 같이 말할 뿐이다. "제국, 국가, 주,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의 자기결정과 자기행정, 국민에 의한 관청 선출" 그리고 모든 선거에서 모든 성인의 보통·평등·직접 선거권을 요구한다. 열거된 행정기구들 상호 간의 법적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의심할 바 없이 대의원 대다수는 이 글을 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당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을 것이다. 즉 기구들을 열거한 순서가 그 법적 서열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충돌이 있을 경우 제국법이 국가법보다 우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의 자기결정은 부분적으로 다시 폐지되거나 제한된다. 앞서 논술한 바와 같이, 나는 사실 오늘날에도 국민의 법률 또는 결의가 사회의 최고 법적 심급을 이루어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권리와 권한의 경계가 오늘날과 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날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의 수용권은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경제정책적 성격의 일련의 조치들이 토지소유자들의 저항이나 지나친 요구에 부딪혀 사실상 넘을 수 없는 장애에 봉착하게 된다. 따라서 수용권의 확대는 지방자치 사회주의의 당면 요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다만 절대주의적이고 전적으로 무제한적인 수용권을 요구할 필요는 없다. 지방자치단체는 수용을 할 때 우연한 다수의 자의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일반법의 규정을 준수할 의무를 언제나 지게 될 것이다. 일반법이 허용하는 소유권은, 일반법이 그것을 허용하는 동안 그리고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모든 공동체에서 불가침이어야 한다. 허용되는 소유권을 보상 없이 박탈하는 것은 몰수이며, 이는 상황의 예외적 강제(전쟁, 전염병)가 있을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 [42]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적 지방자치 정책이 가능하려면,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선거권의 민주화와 더불어 여러 독일 국가에서 아직 매우 제한된 수용권의 확대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행정, 특히 보안경찰의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요구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가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해야 할 사항은 조세 및 학교 정책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당의 일반 강령에 이미 명시되어 있으나, 브란덴부르크 강령에서 몇 가지 값진 확대 조항을 얻었다(학교 급식소 설치, 교의 채용 등). 또한 오늘날 정당하게 전면에 부각된 요구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사업, 내지 공공 서비스의 육성 및 지방자치단체의 노동자 정책에 관한 것들이다. 전자의 관점에서 원칙적 요구로 내세워야 할 것은,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의 일반적 수요를 위해 산정되고 독점적 성격을 지닌 모든 기업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경영으로 운영해야 하며, 그 밖에도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을 위한 급부의 범위를 끊임없이 확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정책과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자 고용주로서, 그것이 직접 경영에 의한 작업이든 도급 작업이든, 해당 노동자의 조직이 인정한 임금 및 노동시간 기준을 최소 조건으로 준수하고 이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자 고용주로서 노동조건과 복지시설에 관해 민간 기업주에게 모범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 옳기는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노동자에게 너무 높은 조건을 요구하여 그들이 같은 직업 동료들에 비해 예외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되게 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민간 기업주보다 현저히 비싸게 생산하게 만드는 것은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부패와 공동체 정신의 약화만을 초래할 것이다.

근대의 발전은 지방자치체에 또 다른 과제들을 부여했다. 지역 질병금고의 설치와 감독이 그것이며, 여기에 아마 그리 오래지 않아 장애보험이 인수되는 일도 더해질 것이다. 나아가 직업소개소와 상업재판소의 설치도 그러하다. 직업소개소와 관련하여 사회민주당은 최소 요구로서 그 대등한 성격의 보장을, 상업재판소와 관련하여서는 그 의무적 도입과 권한의 확대를 주장한다. 실업에 대한 지방자치체 차원의 보험 시도에 대해서는 사회민주당은 회의적이며,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 보험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과제 중 하나를 이루며, 노동조합이 더 잘 처리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잘 조직된 직종에만 해당할 수 있으며, 그런 직종은 유감스럽게도 노동자 계급 가운데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노동자의 대다수는 아직 조직되지 않았으므로, 실업에 대한 지방자치체 보험을 노동조합을 끌어들여 조직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정당한 기능에 대한 침해는커녕 오히려 노동조합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게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어쨌든 그러한 보험이 시행되는 곳에서는 사회민주당 소속 지방의원들이 노동조합의 참여를 온 힘을 다해 관철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일 것이다.

이처럼 지방자치체 사회주의는 그 본성상, 우리가 앞 절에서 민주적 노동권이라고 부른 것의 형성 또는 완전한 실현을 위한 불가피한 지렛대다. 그러나 지방자치체의 선거권이 계급선거권인 곳에서는 그것은 부분적인 것에 머물 수밖에 없고 또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독일의 4분의 3 이상이 바로 그런 경우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기서도, 지방자치체가 높은 정도로 의존하고 있는 주의회 및 자치행정의 다른 기관들(군, 주)과 마찬가지로, 사회민주당이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적용되는 계급선거제를 폐지하고 그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앞에 서게 된다.

현재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말과 글을 통한 선전 수단 외에도 제국의회 선거권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갖고 있다. 그 영향력은 너무나 강력하여, 인구조사 선거권이나 계급선거제로 인해 노동자계급에게 접근이 차단된 기관들에도까지 미친다. 그곳에서도 정당들은 제국의회 유권자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국의회 선거권이 모든 침해로부터 보호된다면, 선거권 문제를 다른 기관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것도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경우에도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회 선거권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물론 정부와 정부 여당들이 그 변경을 쉽게 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그러한 조치가 독일 노동자 대중에게 증오와 격분을 불러일으켜, 적절한 기회에 여러 방식으로 그들에게 매우 불쾌하게 체감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너무 강력하고, 독일 노동자의 정치적 자각은 너무 발달해 있어서, 그들을 귀족적으로 대할 수 없다. 또한 보통선거권의 원칙적 반대자들 중 상당수에게도 민중에게서 그러한 권리를 빼앗는 데 대한 어느 정도의 도덕적 거리낌을 전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 상황에서 선거권 축소가 통치자들에게 모든 위험을 안기는 혁명적 긴장을 조성할 것이라면, 반대로 독립적 사회주의 후보의 당선을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게 만들 그러한 선거권 변경의 심각한 기술적 어려움은 논할 수 없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오로지 정치적 고려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고려에 의지한 우려가 바람 앞의 겨처럼 흩어질 상황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막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힘 안에 있지 않다는 점은 여기서 자세히 논할 필요가 없다. 사회민주주의는 어떤 도발에도 폭력적 충돌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극단적 결과에까지 관철할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대중을 모든 상황에서 그러한 충돌로부터 억제할 힘은 없다.

이러한 이유와 다른 이유들로 인해, 사회민주주의의 정책을 제국의회 선거권의 조건과 가능성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이 선거권으로도 1890년과 1893년의 성과로부터 추론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빨리 전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았다. 사회주의 득표수는 1887년부터 1890년까지의 3년 기간에 87퍼센트, 1890년부터 1893년까지 25퍼센트 증가했지만, 1893년부터 1898년까지의 5년 동안에는 18퍼센트만 증가했다. 그 자체로는 여전히 매우 상당한 증가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특별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증가는 아니다.

사회민주주의가 오로지 선거권과 의회 활동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의회 밖에도 사회민주주의에는 크고 풍요로운 활동 무대가 남아 있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은 의회가 봉쇄된다 해도 존재할 것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 노동자 세계의 반가운 움직임이다. 그러나 독일 노동운동이 대의기관에서 배제된다면, 오늘날 그 여러 구성원을 결합시키고 있는 내적 연대를 크게 상실하게 될 것이며, 혼란한 성격을 띠게 될 것이고, 확고한 걸음으로 조용히 끊임없이 전진하는 대신에 도약적인 전진 운동이 불가피한 후퇴와 쇠진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발전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질서가 영원토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의 법칙에 종속되어 있으며, 파국적인 발전이 그 모든 공포와 황폐를 동반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생산 및 교통 관계와 계급 발전의 변화를 정치적 권리에서도 고려하는 것뿐이라고 깨달은 사회민주주의의 적들에게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일 수 없다. 그리고 이를 깨닫는 사람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가 사실상 이미 수명을 다한 구호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고, 오늘날 실제로 그러한 것, 즉 민주적-사회주의적 개혁정당임을 의욕한다면, 그들의 영향력은 오늘날보다 훨씬 클 것이다.

문제는 이른바 혁명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순전히 사변적인 권리는 어떤 헌법도 조문화할 수 없고 세계 어느 법전도 금지할 수 없으며, 우리가 숨 쉴 권리를 포기하면 자연법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한 존속할 것이다. 이 불문의, 규정할 수 없는 권리는 개혁의 토대에 서는 것으로 인해 조금도 침해되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개인적 및 재산적 분쟁을 규율하는 법률을 제정한다고 해서 정당방위권이 폐지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민주당이 민주적·경제적 개혁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회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추구하는 정당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인가? 슈투트가르트 당대회에서 내게 제기된 몇몇 발언에 따르면, 어쩌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에서 사람들은 당대회에 보낸 내 서한을, 당이 블랑키주의의 항로를 항해하고 있다는 당에 대한 고발로 받아들였다. 반면 그것은 실제로는 블랑키주의적 성격의 논거와 상투적 표현으로 나를 공격하고, 나에 대한 대회의 규탄 결의를 관철시키려 했던 몇몇 사람들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밖에는 침착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몇몇 사람들이, 내 의사와 예상과는 매우 어긋나게 내 논문들이 일으킨 소란에 잠시 현혹되어 나에 반대하여 나서고, 그리하여 겉으로는 저 파문(破門)을 외치는 자들에게 동조하게 되었지만, 그 일치가 덧없는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나는 한순간도 현혹되지 않았다. 붕괴 투기에 반대하는 내 논지를 쿠노프가 반박한 것을, 내가 어찌 일시적 기분의 산물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는 1897년 봄에도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 목표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상업과 산업의 주요 중심지에 살면서 생산의 엄청난 증대와 자유주의적 시민계급의 몰락을 눈앞에 두고, 우리는 우리를 목표로부터 갈라놓는 거리와 장애물을 너무나 쉽게 과소평가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자본주의의 자기경영이 그토록 진전되어, 사회주의적 경제형태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는가? 영국에서도 아니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더욱 아니다.” (H. 쿠노프, 동아시아에서의 우리의 이익, 노이에 차이트, XV, 1, 806쪽)

슈투트가르트 당대회가 내 성명에 반대하여 긍정적 평결을 내렸다 해도,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대다수가 블랑키주의적 충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 확신을 흔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인하우젠 연설 이후 나는 당대회가 실제로 취한 태도와 다른 태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점을 사전에 편지에서도 아주 분명히 밝혔다.

오인하우젠 연설은 그 후로 다른 수많은 비범한 인물들의 연설이 겪은 운명을 함께했다. 즉 반(半)공식적으로 교정되었고, 구름은 족제비로 해명되었다. 그렇다면 슈투트가르트 이후 당은 어떤 의미에서 입장을 표명했는가? 베벨은 암살 시도에 관한 연설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폭력 정치를 펼친다는 주장에 대해 극도의 강도로 항의했고, 모든 당 기관지가 이 연설들을 박수로 기록했으며, 어디에서도 항의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카우츠키는 자신의 농업 문제에서 사회민주주의 농업 정책의 원칙을 전개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민주적 개혁의 원칙이다. 브란덴부르크에서 결의된 지방자치 프로그램은 민주적 개혁 프로그램이다. 제국의회에서 당은 권한 확대와 직업별 중재 재판소의 의무적 도입을 위해 나선다. 이 기관들은 직업적 평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그곳에서 당 대표자들의 모든 연설은 개혁의 숨결을 띤다. 클라라 체트킨에 따르면 "베른슈타인 희극"에 종지부가 찍힌 바로 그 슈투트가르트에서, 대회 직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시의회 선거를 위해 시민 민주주의와 선거 동맹을 맺었고, 뷔르템베르크의 다른 도시들도 그들의 본보기를 따랐다. 노동조합 운동에서는 한 조합이 또 다른 조합으로 이어져 실업자 지원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순수한 연합 성격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업주와 노동자를 모두 포괄하는 대등한 도시 직업 알선소를 위해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한편 여러 큰 당 지역 – 함부르크, 엘버펠트 – 에서는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원들이 소비조합 설립에 착수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개혁을 위한 행동, 사회적 진보를 위한 행동,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행동이다 – "사람들은 당면 문제들의 개별 사항을 연구하고, 이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정신에 따라 사회 발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지렛대와 출발점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1년 전에 쓴 글이며[43], 나로 하여금 그중 한 마디도 철회하게 만들 사실을 나는 보지 못한다.

그 밖에 나는 반복한다. 사회민주주의가 자신이 실제로 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결심할수록, 정치적 개혁을 관철할 전망도 그만큼 커질 것이다. 두려움은 확실히 정치에서 큰 요인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영국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얻은 것은 차티스트 운동이 가장 혁명적으로 행동했을 때가 아니라, 혁명적 구호가 잦아들고 그들이 개혁 쟁취를 위해 급진적 시민계급과 동맹했을 때였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일이 독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내게 반박하는 사람에게 나는 15년, 20년 전에 자유주의 언론이 노동조합 투쟁과 노동자 입법에 관해 어떻게 썼는지, 그리고 이 정당들의 대표자들이 관련 문제를 결정해야 했을 때 제국의회에서 어떻게 말하고 표결했는지 다시 읽어보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그는 아마도 정치적 반동이 시민적 독일에서 가장 특징적인 현상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주석

  1. 파르부스가 내 논술에 가한 곡해나, 그가 소기업과 중간기업의 상대적 강도에 관한 내 지적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들고 나온 괴상한 대조(마차꾼 대 철도 따위)는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 그런 것은 내가 그에게서 더 나은 것을 기대했던 사람에게서 나왔기에 첫눈에는 나를 짜증나게 할 수 있었지만, 진지한 반박의 가치는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든 이유들 때문에, 하인리히 쿠노프가 붕괴이론에 관해 쓴 지극히 적절한 논문에서 나에게 제기한 사실들도 내 명제에 무게를 더하지 못한다. 그가 거기서 은행업과 상업대리점에 관해 말한 것이 내게 낯설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직접 여러 해 동안 은행업에 종사했고 대규모 상업도 경험으로 안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면 믿어줄 것이다. 그리고 산업의 하청 및 지점 사업에 관해서는, 내가 직접 앞선 《사회주의의 문제》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아마도 매우 많은 불변자본과 매우 적은 가변자본으로 운영되며, 값비싼 기계를 쓰고 노동자는 적게 쓰는 그런 하청 사업은, 제국 통계의 실무에 따르면 소규모 공장이나 심지어 수공업 사업에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공장제 사업에 속한다 ... 우리는 수공업과 소규모 공장 사업이 영업통계에서 실제보다 수적으로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단정해도 좋다." (노이에 차이트, XV, 1, 808쪽) 그리고 농업에 관해서는, "경작 면적은 상당히 작을 수 있으면서도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사업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사업의 공간적 규모에 기초한 통계는 그 경제적 성격에 관해 갈수록 덜 말해준다." (같은 책, 380쪽) 상업과 교통의 수치에 관해서도 XVI, 1, 552쪽의 내 붕괴이론 논문에서 비슷하게 말했다.

  2. 슈묄레, 《독일의 사회민주주의 노동조합》, 제2부 제1권, 1쪽 이하 참조. 거기에는 건축업에서 소규모 사업가 정신의 그늘진 면도 지적되어 있다.

  3. 혁명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이하에서도 오로지 정치적 의미로, 즉 봉기 내지는 법외적 폭력과 같은 뜻으로만 쓰인다. 반면 사회질서의 원칙적 변경에는 "사회적 개조"라는 말을 쓰겠는데, 이는 경로의 문제를 열어 둔다. 이 구분의 목적은 모든 오해와 모호함을 배제하는 데 있다.

  4. "그러나 노동자가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대도시에서, 노동자가 일단 공권력과 그 행정 및 입법을 무제한으로 장악하게 되면, 경제혁명이 몇 달, 어쩌면 몇 주의 문제에 불과했으리라는 점이 누구에게나 명백하지 않겠는가." (쥘 게드, 지방에서의 1871년 3월 18일, 1877년 《미래》, 87쪽)

    "그러나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에게 반년만 통치권을 달라, 그러면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파르부스, 1898년 3월 6일 《작센 노동자신문》)

    마지막 문장은 한 논설의 끝에 있다. 그 논설에서는 무엇보다도 사회혁명당 정부가 전체 생산의 조정을 손에 넣은 뒤에도 상품 교류를 인위적으로 고안한 교환 체계로 대체하는 일은 되지 않는다는 점이 설명된다. 다시 말해, 경제를 진지하게 다루어 온 파르부스는 한편으로 “상품 교류가 경제 생활의 모든 관계 속에 너무나 깊이 침투해 있어 인위적으로 고안한 교환 체계로 대체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나 역시 품고 있던 이러한 확신(그것은 공간과 수의 사회정책적 의의에 관한 논설에서 이미 암시되었으나, 사회주의의 제문제라는 연재의 뒤 논설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경제 구조 아래에서 사회혁명당 정부가 전체 생산을 “조정”하고 반년 만에 상품 생산에서 생겨나 그것과 긴밀히 결합된 자본주의 체계를 뿌리째 뽑아 없앨 수 있다고 상상한다. 권력에 취한 광기가 다른 면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조차 얼마나 정치적으로 어린아이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지가 드러난다.

  5.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임금이 더 좋은 노동자, 다시 말해 숙련 노동자이자 정신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있는 노동자들이 핵심 부대를 이룬다. 사회주의 단체의 회원 총회에서는 이른바 비숙련 노동자를 아주 적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6. 그래도 이미 다섯 직업에서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조직되어 있었다. 즉 인쇄공 61.8퍼센트, 조각공 55.5퍼센트, 항만 노동자 38퍼센트, 동제품 세공공 38.6퍼센트, 장갑 제조공 31.7퍼센트가 종사자 중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그 뒤를 석판공 21.8퍼센트와 도자기 노동자 21퍼센트가 이었다.

  7. 상업과 교통에 관한 직업 통계의 수치는 다음과 같다.

    자영업자와 사업 책임자848.556
    상업 종사자261.907
    점원, 사환, 마부, 함께 일하는 가족 구성원1.288.045
    합계2.338.508

    덧붙이자면 파르부스의 표에도 선례가 있었다. 회히베르크의 《미래》지에서 1877년 C.A. 슈람(С. A. Schramm) 씨는 막 공표된 1876년 프로이센 직업 통계 결과에 근거하여 프로이센 인구의 85퍼센트에 해당하는 “사회주의 병력”, 즉 사회주의의 잠재적 지지자 460만 명 대 계급 적대자 99만 2천 명을 계산해 냈다(《미래》지 186면 이하). 다만 슈람은 파르부스처럼 그 수치에서 대담한 교훈을 끌어내지는 않았다.

  8. “부분적으로 그것[프롤레타리아트]은 교조적 실험, 교환 은행, 노동자 조합에 몸을 던진다. 즉 자신의 고유한 거대한 총수단으로 낡은 세계를 전복하는 일을 포기하는 운동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브뤼메르 18일》 초판 8면.)

  9. 프루동이 어떤 때는 결사의 단호한 반대자로, 어떤 때는 결사의 옹호자로 나섰다면, 이 모순은 그가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결사를 염두에 두고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형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설명된다. 그는 본질적으로 독점적인 협동조합에 대해 부정한 것을, 상호주의적 협동조합, 즉 호혜 체제의 결사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다만 그의 비판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직관적이며 과장으로 가득하다.

  10. 후자의 종류, 즉 생산조합에 관한 수치는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조합적 생산에 관한 공식 통계가 이들과, 훨씬 수가 많고 규모도 큰 생산 목적의 노동자 주식회사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상무부의 보고에 따르면 1897년에 상무부에 보고서를 제출한 조합들의 연간 생산액은 마르크로 다음과 같았다.

    자체 작업장을 가진 소비조합의 경우. . . .122.014.600
    제분 조합의 경우. . . .25.288.040
    아일랜드 낙농조합의 경우. . . .7.164.940
    생산 목적의 노동자 조합의 경우. . . .32.518.800

    제분 조합은 아홉 개로 조합원 6,378명이었고, 1895/96년에(1897년의 해당 수치는 아직 내게 없다) 404명을 고용했다. 아일랜드 낙농조합과 생산 목적의 노동자 조합은 합쳐서 214개 단체였고, 주주 32,183명이었으며 1895/96년에 7,685명을 고용했다. 고용된 노동자가 조합으로서 자기 자신의 자본가인 경우를 노동자 조합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하면, 그런 조합이 노동자 조합 전체의 약 20분의 1이라고 가정해도 우리는 매우 높게 잡은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등록된 영국 노동자 소비조합은 1897년에 다음과 같았다.

    조합원. . . .1.468.955
    자본 재산. . . .마르크408.174.860
    판매액. . . .마르크1.132.649.000
    이윤. . . .마르크128.048.560
  11. 오펜하이머는 "구매자 조합"과 "판매자 조합"의 구별이 지금까지 통용되던 생산조합과 유통조합의 구별보다 더 낫다고 본다. 후자의 구별은 애초에 잘못된 개념 규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을 시장에, 즉 구매자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비생산적 행위라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이는 어떤 물건(제품)을 다른 물건(원료)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일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산출"(producere)다. 그런데 유통이란 단순히 분배를 뜻하는데, 이 말을 저 다른 기능에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심한 개념 혼란의 원인이다.

    후자에 대해서는 우리도 같은 생각이며, 전혀 다른 기능인 전달과 분배에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틀림없이 매우 권장할 만하다. 반면에 제조와 전달의 기능을 "생산"이라는 동일한 개념 아래 묶는 것은 그 나름으로 새로운 혼란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실제로 이 둘을 거의 구별할 수 없거나 분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것은 개념을 분리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행 상태는 어디에나 있다. 분리를 두고 많은 이들이 품고 있는, 제조 작업만을 생산적이라고 부르려는 경향에는 다른 방식으로 맞설 수 있다.

  12. "일은 쉽지 않았다. 면화 노동자 같은 사람들은 조합의 성공적 운영에 요구되는 동질적인 대중 속에 쉽사리 편입되지 않는다." (영국 협동 작업장에 관한 번리 자조 조합사 개요, 20쪽.)

  13. 기생적이라는 말은 물론 일 자체에만 해당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을 사람들에게 옮기려 한다면, 이른바 "생산적" 노동자 가운데 매우 많은 이들도 기생충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들이 생산하는 것이 공동체에 쓸모없고 그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중간 상업이 기생적인 것은 주로, 중간 상인의 증가가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경쟁 심화를 통한 가격 인하가 아니라 가격 인상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14. 여기서는 두 대규모 구매조합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은 소비조합에 상품을 매우 적은 할증을 붙여 넘겨주고 있다.

  15. 이들은 230개 조합과 7,778명의 개인을 주주로 두고 있었고, 합계 1,196명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구매조합의 성격을 드러내는 특징이다. 일반 소비조합이 자체 경영으로 운영하는 제빵소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16. 다만 나는 "더 많은" 부분만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17. 이해를 돕기 위해 숫자를 제시한다. 반년 동안 다음과 같이 배당되었다.

    주주 (이자 제외). . . .1,164 마르크
    고객. . . .8,325 마르크
    노동자. . . .8,068 마르크
    운영위원회. . . .700 마르크
    교육 목적 기금. . . .525 마르크
    지원 목적 기금. . . .1,050 마르크
  18. 1898년 11월 15일의 해방 이후, 프랑스에만 2,000개의 협동조합 치즈공장이 있으며, 그 대다수는 쥐라와 두 사보이아에 있다.

  19. 예컨대 빠르게 성장한 아일랜드 농업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1889년 50명 회원의 작은 조합으로 시작했으나, 1898년 3월에는 이미 248개 조합에 27,322명의 회원을 두었고, 그중에는 많은 농업노동자(코티어)도 있었다.

  20. 이들의 체제는, 재치 있는 오웬주의자 핀치가 1838년 익살스럽게 쓴 대로, 토리주의와 휘그주의와 급진주의의 모든 장점을 그 결점 없이 결합한 것이었다. "그것은 목적과 행동에 있어서 군주제와 토리주의처럼 모든 힘과 통일을 가졌고, 휘그주의처럼 모든 절제와 정보 제공, 예방 및 주의 조치를 가졌으며, 급진주의의 자유와 평등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졌다." 밴델루어 씨는 "왕"이었고, 재무관·서기·창고관리인으로 구성된 운영진은 "상원"이었으며, 노동자 위원회는 "민의 대표"였다.

  21. 최근 영국 협동조합 대회(피터버러, 1898년 5월)에서 맨체스터의 J.C. 그레이 대표가 협동조합과 농업에 관한 보고를 낭독했는데, 그는 영국에서 이루어진 모든 경험을 객관적으로 검토한 끝에 오펜하이머의 구상과 놀랍도록 유사한 제안에 도달했다. "토지는 협동조합의 소유여야 하고, 모든 필요물자의 조달은 협동조합적으로, 모든 생산물의 판매는 협동조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토지 경작에서는 개인의 이해관계가 보장되어야 하며,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침해에 대해서는 적절한 예방 조치가 있어야 한다." (Cooperation and Agriculture, 맨체스터 1898, 9쪽)

  22. 나는 카를 카우츠키가 방금 출간한 농업 문제에 관한 저서에서 농촌 협동조합 문제를 진지하게 자신의 연구 범위에 끌어들인 것을 기쁘게 본다. 농민 소경영을 농업을 영위하는 협동조합으로 개조하는 데 가로놓인 장애물에 관해 그가 말하는 바는, 오펜하이머가 같은 주제에 관해 진술한 바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카우츠키는 이 문제의 해결을 산업 쪽에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지배 장악에서 기대한다. 발전은 오늘날 이미 농민을 점점 더 자본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증류소, 양조장, 제당 공장, 제분소, 버터·치즈 공장, 포도주 저장고 등에 예속시키고, 농민을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적 기업, 예컨대 벽돌 공장, 광산 등의 부분 노동자로 만들어 왔다. 오늘날 영세 농민은 자신의 경영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들 기업에서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얻는다. 이 모든 기업이 사회화되면 농민은 "사회적 노동자"가 되고 사회주의적·협동조합적 기업의 부분 노동자가 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늘날 소농의 상당 부분이 의지하고 있는 농업 대경영을 협동조합 경영으로 전환하는 데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하여 소농 경영은 점점 더 그 지탱 기반을 잃고, 그것들이 협동조합 경영으로 합쳐지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저당의 국유화와 군국주의의 폐지는 이 발전을 한층 더 쉽게 만들 것이다.

    이 모든 것에는 매우 많이 옳은 바가 있다. 다만 내가 보기에 카우츠키는 그가 호의적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하는 잘못에 빠진 듯하다. 그가 열거한 산업 기업 가운데 일부는 농민 경영의 지배자가 아니라 농민 협동조합의 부속물이 될 최상의 경로에 있으며, 다른 일부, 예컨대 양조업의 경우에는 농민 경영과의 결합이 너무 느슨하여 그 변화가 농민 경영의 운영 형태에 강한 반작용을 미칠 수 없다. 나아가 내가 보기에 카우츠키는 여기저기서 사용하는 강한 표현들에 지나치게 이끌려 결론을 끌어내는데, 그 결론은 그 표현들이 보편적으로 들어맞는다면 옳겠지만, 현실의 일부에만 들어맞는 이상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도 없다. 더 분명히 말하자면, 카우츠키에게는 소농의 존재가 "지옥"으로 나타난다. 이는 소농의 상당 부분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은 심한 과장이며, 소농을 현대의 "야만인"이라고 하는 말이 오늘날 많은 경우 발전에 의해 완전히 낡아버린 것과 꼭 마찬가지다. 소농이 자신의 토지가 자신을 완전히 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접한 대농장에서 하는 노동을 "노예 노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비슷한 과장이다. 이러한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해당 계급이 실제로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지는 감정과 성향을 그 계급에 전제하게 만드는 관념이 고착된다.

    카우츠키가 농민 경영의 예상되는 발전에 관해 한 모든 설명에 내가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나는 오늘날 사회민주주의가 관찰해야 할 농업 정책에 관한 그의 강령 원칙에는 더욱 동의한다. 다만 그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루겠다.

  23. “나는 노동조합 대회에서 여러 번 공개적으로, 협동조합이 일반적으로 이 나라 제빵 보조공들이 가진 가장 좋은 친구라고 선언한 바 있으며, 이 선언을 고수한다 … 대규모 소비협동조합과 그 제빵소에 대해 나와 내 노동조합 모두 가장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J. 젠킨스, 영국 제빵 보조공 협회 서기, 1898년 11월 《노동 공동경영》.

  24. 이러한 부분적 진리에 근거한 것이 무엇보다도 캐리의 조화론이었다. 사례는 특정 추출 산업, 건설업 등등에서 나온다.

  25. 위의 내용을 이미 다 쓴 뒤에야 《노이에 차이트》 제14호에 실린 카를 카우츠키의 논문이 나에게 도착했다. 거기서 카우츠키는 최근 잉글랜드 중부 여러 주에서 생겨났고 내가 앞선 논문에서 서술한 산업 동맹들을, “자본가 링과 결합하여 대중을 등쳐먹는” 노동조합이라 부르고, “잉글랜드 공장주들이 노동조합 운동을 부패시키는 수단”이라 부른다. 그들에게서 자본과의 투쟁을 대신하는 것은 “자본과 팔짱을 끼고 사회와의 투쟁”이다(《노이에 차이트》, XVII, 1, 421쪽). 본문에서 이어지는 나의 언급과 협동조합 제도에 관한 나의 설명에서 드러나듯, 나는 카우츠키가 거기서 고발하는 경향에 전혀 눈이 어두운 것이 아니며, 대중을 겨냥한 연합, 그것이 자본가의 것이든 노동자의 것이든, 그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그와 똑같이 맞선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비판이 과장되었다고 본다. 나는 산업 동맹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부정 경쟁과 무한한 저가 투매에 맞선 그러한 산업 조직을 처음부터 대중을 등쳐먹기 위한 결합이라고 단죄할 수 없다. 대규모 트러스트의 상당 부분에서도 그러한 등쳐먹기는 지금까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 부정 경쟁을 이용하는 데에는, 내가 보기에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생산자 등쳐먹기가 자주 있다. 요컨대 나는 점점 더 퍼져 나가는 듯한(현재 유리 산업과 도자기 산업에서 도입을 둘러싼 협상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독일의 임금 협약 공동체에 대응물을 가진 산업 동맹에서, 확실히 나름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선행 형태들(혼합 임금 위원회, 변동 임금표 등등)과 마찬가지로 업계의 무정부 상태에 맞선 반작용의 자연스러운 산물로서 판단되어야 할 현상을 본다. 그것들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오래전부터 행사해 왔고 형식상으로만 — 실제로는 아니다 — 자본을 겨냥한다는 사실만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지금까지 묵인하거나 지원해 온 노동조합 정책의 다른 여러 수단들보다 전체의 이익을 더 위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카우츠키는 오늘날 영국 노동조합이 원칙적으로 변동 임금 요율에 반대한다고 가정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그들은 다만 "바닥 없는"(bottomless) 변동 요율과 싸울 뿐이다. 질서 있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최저 임금을 "바닥"으로 하고, 생산에서의 기술적 변화를 고려하는 규정을 둔 변동 요율에 대해서는 그들은 전혀 반대할 것이 없다.

  26. 블랑키주의의 일관된 대표자들은 민주주의를 언제나 무엇보다도 우선 억압적 권력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이폴리트 카스티유(Hippolyte Castille)는 자신의 제2공화국사에 공포정치를 진정으로 찬양하는 데서 절정에 이르는 서론을 붙인다. 그곳에서 말하기를, "가장 완전한 사회란 전제정치가 전체의 일이 되는 사회일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가장 완전한 사회란 이 말의 사탄적[즉 개인주의적] 의미에서의 자유가 가장 적은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다 ...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수(數)의 정당한 전제정치를 미화하기 위한 아름다운 이름에 불과하다. 정치적 자유란 인간 사회들의 전제적 신, 사회적 이성, 계약에 개인적 자유 얼마간을 희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진정으로 권위 원리의 재생, 즉 인간 사회들의 영원한 방벽이 시작된 것은 이 시기[1793년 10월부터 1794년 4월까지, 지롱드파, 에베르파, 당통파가 차례로 목이 잘린 때]부터이다. 온건파와 과격파로부터 해방되고, 모든 권력 충돌로부터 보호된 공공복리위원회는 상황이 부여한 정부 형태로서, 상황을 지탱하고 프랑스를 밀려드는 무정부 상태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힘과 통일을 얻는다 ... 아니다, 제1 프랑스 공화국을 죽인 것은 통치가 아니라 의회주의자들, 테르미도르의 반역자들이었다. 프랑스를 뒤덮고 있는 무정부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공화주의자들의 들끓는 종족은 헛되이 옛 중상을 계속 퍼뜨리고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여기서 부차적인 그의 재능과 미덕 때문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감각, 그의 강력한 정치적 본능 때문에 중요한 인물로 남는다."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이 숭배는 제2제정을 넘어 살아남지 못했다. 1860년대 중반에 등장했고 무엇보다 반교회적이었던 젊은 세대의 블랑키주의 사회혁명가들에게 로베스피에르는 그의 이신론 때문에 너무 소시민적이었다. 그들은 에베르와 아나카르시스 클루츠(Anacharsis Cloots)에게 맹세했다. 그러나 그 밖의 문제에서는 그들은 카스티유처럼 논평했다. 즉 그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이익을 일반 이익에 복종시킨다는 올바른 사상을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27.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사상에 대한 나의 죄과에 대해 가장 격렬한 공격이 유럽에서 가장 전제적으로 통치되는 국가인 러시아의 사람들로부터 나왔고, 가장 큰 호응을 작센에서 얻었다는 것은 특징적이다. 작센에서는 통치자들이 질서의 이익을 위해 지방의회를 위한 그럭저럭 민주적인 선거권을 삼등선거권이라는 불의에 희생시켰다. 반면 더 민주적인 나라들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논문들이 부분적으로는 아무런 유보 없는 찬성, 부분적으로는 광범위한 인정을 받았다.

  28. 예를 들어 오펜바흐 사회주의자들이 시의회에서 비사회주의 소수파를 억압한 데 반대하여 낸 성명과, 그것이 브란덴부르크 주 사회주의 시의원 회의에서 얻은 찬성을 보라. (1898년 12월 28일자 전진)

  29. 이 점에서 라살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논리적이었다. 그가 부르주아라는 개념을 적어도 경제적 권력 지위에서 동시에 끌어내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 특권에서만 끌어낸 것은 확실히 큰 편협함이었다. 그러나 그 밖의 점에서는 그는 충분히 현실주의자여서 위에 든 궤변의 뾰족한 끝을 처음부터 잘라버렸다. 노동자 강령에서 그가 선언하기를, "독일어로 부르주아지라는 말은 시민성으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뜻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시민이다. 노동자, 소시민, 대시민 등등. 부르주아지라는 말은 오히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주 특정한 정치적 방향을 가리키는 뜻을 얻었다." (전집 II, 27쪽) 라살이 그곳에서 상퀼로트주의의 뒤틀린 논리에 관해 더 말한 것은, 특히 시민성을 카페에서 "자연주의적으로" 연구하고 나서 그런 다음 그 전체 계급을 그 마른 열매로 판단하는 문학가들에게 권할 만하다. 마치 속물이 술고래에게서 현대 노동자의 전형을 본다고 믿는 것과 같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밝힌다. 나는 시민성, 독일의 시민성을 포함하여, 대체로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아직 상당히 건강하다고 본다.

  30.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 주권은 분할할 수 없고, 시효로 소멸하지 않으며, 양도할 수 없다." 제25조. "인민은 언제나 헌법을 개정하고, 개혁하고, 변경할 권리가 있다. 어떤 세대도 다음 세대를 자기 법에 묶어둘 수 없다." 제28조.

  31. 위에 든 기준으로 나는 오늘날 그렇게 활발히 논의되는 질병금고의 자유 진료 선택 문제도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지역 사정이 질병금고로 하여금 진료 선택을 제한하게 만들든, 원칙적으로 그러한 제한은 확실히 비사회주의적이다. 의사는 폐쇄된 단체의 관리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리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공산당 선언의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학자를 자기에게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라는 구절이 특이한 개작을 겪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32. 다만 그렇게 되면 참으로 까다로운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다. 온갖 가능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현대의 수많은 복합 기업을 생각해 보라.

  33. 지난 세월에 나에게 (그리고 틀림없이 다른 이들에게도) 되풀이해서 일어난 일인데, 선전 집회가 끝날 무렵 처음으로 사회주의 연설을 들은 노동자나 수공업자가 내게 와서, 내가 거기서 한 말은 모두 이미 성경에 나와 있으며 자기들이 그 구절을 한 문장씩 짚어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34. H. 쿠노는 자신의 붕괴론 논문에서 이런 식으로 해석해 내려는 시도를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 제1권 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진전됨에 따라 나타나는 "증대하는 빈곤의 양"을 언급할 때, 그것으로 "노동자의 경제적 생활 처지가 단순히 절대적으로 후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진행하는 문화적 발전에 대한 관계, 즉 생산성의 증대와 일반적 문화적 욕구의 상승에 대한 관계에서 그의 사회적 총체적 처지가 후퇴하는 것"만을 뜻한다고 그는 쓴다. 빈곤이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 범주의 한 노동자에게, 즉 그의 '고용주'와 깊은 교육 격차로 갈라져 있는 노동자에게 바람직한 상태로 보이는 것이, 정신적으로는 자기 '고용주'보다 우월할지도 모르는 다른 범주의 숙련 노동자에게는 '빈곤과 압박'이 그렇게나 많이 쌓인 것으로 보여서 그가 이에 맞서 분노하며 저항하게 될 수도 있다." (노이에 차이트, XVII, 1, 402-403쪽)

    유감스럽게도 마르크스는 해당 문장에서 증대하는 빈곤과 압박의 양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속, 퇴화, 착취"의 양도 말한다. 그렇다면 이것들도 모두 앞서 말한 픽윅적 의미로 이해하여, 노동자의 퇴화를 상정해야 하는가? 다만 일반적 교양의 상승에 대한 관계에서 상대적 퇴화일 뿐인 퇴화를? 나는 그럴 생각이 없고, 쿠노도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니다, 마르크스는 해당 대목에서 아주 단정적으로 말한다. 자본주의적 변혁 과정의 "모든 이점"을 "착취하는" "자본 거물들의 수효는 끊임없이 줄어들고", "빈곤, 압박" 등의 "양은 늘어난다"고. (『자본』 제1권 제24장 7절) 이러한 대립 구도 위에 붕괴론을 세울 수 있다. 정신적으로 열등한 상관에 대한 도덕적 빈곤, 즉 모든 사무실과 모든 위계 조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빈곤 위에는 세울 수 없다.

    덧붙이자면, 쿠노가 여기서 붕괴론의 근거가 되는 문장들을 현실과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갑자기 사회적 개념을 근본적으로 달리하는 여러 범주의 노동자들을 등장시키는 것뿐이라는 점은 나에게 작은 만족을 준다. 그렇다면 이것들도 "영국 노동자"인가?

  35. "심지어 하나의 완전한 사회, 하나의 국민, 나아가 동시대의 모든 사회를 다 합한다 해도 그들은 땅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들은 땅의 점유자, 수익자일 뿐이며, 선량한 가장들(boni patres familias)로서 후대에 개선된 상태로 물려주어야 한다." (마르크스, 『자본』, III, 2, 309쪽)

  36. 하인드먼은 영국이 식량 공급을 지키려면 적대국들의 가능한 모든 연합에도 맞설 수 있는 해군 함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대단히 단호하게 주장한다. "자유민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국민으로서 우리의 존속은 바다에 대한 우리의 지배에 달려 있다. 이는 현존하는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자연히 군비에 반대하는 자일수록, 우리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스티스, 1898년 12월 31일)

  37. 영국인 기술자이자 사회민주연맹원인 존 리처드슨(John Richardson)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사회주의 실현 계획을 작성했는데, 그에 따르면 교육은 21세까지 의무화하고 학생의 생활비를 전액 무료로 부담해야 한다. 다만 14세부터는 매일 4시간씩, 19세부터는 매일 6시간씩 생산노동에 바쳐야 한다. 이 점과 여러 다른 점에서 이 계획은 사안의 경제적 어려움을 과소평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전적으로 합리적인 원칙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회 개혁이 성공하려면,” 글쓴이는 쓴다, “다음 조건들을 따라야 한다. 첫째, 가능해야 한다. 즉 인간 본성이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둘째, 사회 체제에 폭력적이고 갑작스러운 변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적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되 그 효과는 매번 즉각적이고 확실해야 한다. 넷째, 일단 시작되면 그 효과가 지속적이어야 하고 자동으로 작동해야 한다. 다섯째, 그 작용은 정의의 요구에, 그 실현은 공평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여섯째, 탄력적이어야 한다. 즉 끊임없는 확대와 수정과 완성을 허용해야 한다.” (How it can be done, or Constructive Socialism, 런던, The Twentieth Century Press)

  38. 나는 여기서 이 문제들과 얽혀 있는 행정기술적 문제들은 논외로 한다. 한 주체, 즉 국가에는 자금 조달 의무를 지우고 다른 주체, 즉 지방자치체에는 그 자금에 대한 무제한적 처분권을 부여하는 것은 명백히 모순일 것이다. 자금을 조달하는 기관으로서 국가에 지방자치체 지출에 대한 광범위한 재정 통제권을 부여하든가, 아니면 적어도 지방자치체가 수행된 목적을 위한 비용의 일부를 스스로 부담하게 함으로써 목적에 어긋나는 지출도 지방자치체에 부담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사안에서 국가가 보조적 재정 당국을 이루어야 하고 일차적 재정 당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39. 목초지 경작에서 풀을 베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 어린 사람들에게는 벤 풀을 펼쳐서 낮 동안 햇볕에 마르게 하는 일이 맡겨진다. 그들에게 이 일과 뒤집기와 더미 쌓기의 보충 작업을 금지하지 않으려면, 그 일 자체에도 그들에게도 이로운 방식으로, 가장 더운 달에 이를테면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허용하는 것이 좋다.

  40. 그러한 조항이, 다만 지나치게 많은 제한이 붙은 채로, 새로운 영국 지방행정법에 들어 있다. 이 조항은 자유당 정부가 1894년에 제안한 원래 초안에서는 훨씬 급진적이었으나, 상원이 뒤에 서 있던 보수당의 반대에 직면하여 약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41. 그러나 그 장려는 소비조합이 품질이 낮은 상품을 취급하도록 허용하는 데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42. 나는 이 생각을 이미 여러 해 전에 라살레의 『취득권 체계』 발췌본에 붙인 내 서문에서 매우 강력하게 표명한 바 있다. 라살레 자신도 쓰고 있듯이, 그 저작은 혁명적 권리를 실정법과 화해시키는 것, 즉 혁명적 권리 안에서도 실정법을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소시민적 심성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나는 다음과 같이 밝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법 형식만 갖춘 박탈에 지나지 않는 수용, 이를테면 바레르의 처방에 따른 수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수용은 내게 전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몰수는 순전히 경제적·공리적 이유에서도 배척해야 마땅하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그렇다.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에 지금까지의 소유 특권 영역에 어느 정도 광범위한 개입을 상정하든, 그것은 무의미하게 군림하는 야만적 폭력일 수는 없으며, 새롭고 원초적 힘으로 관철되는 것일지라도 특정한 법 이념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라살레 저작 전집, 제3권, 791쪽) 수탈자들에 대한 수용 가운데 사회주의 고유의 법 원리에 가장 부합하는 형식은 조직과 제도를 통한 보상이다.

  43. 사회민주주의의 투쟁과 사회의 혁명, 노이에 차이트, XVI, 1, 4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