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재편 2026: 트럼프 2기의 정치경제학 (1) — 서론: 왜 지금 레닌인가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18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 작성일: 2026-04-18 · 연재 1회차

1. 2026년 2월 20일, 미 연방대법원 법정에서

2026년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V.O.S. Selections, Inc. 대 트럼프 사건에서 6대 3으로 판결을 내렸다. 트럼프 행정부가 1977년에 만들어진 법 하나에 기대어 전 세계에 부과해온 이른바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 말은 상호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올린 관세 — 가 위법이라는 결정이었다.

그 1977년 법의 이름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 영어로 줄이면 IEEPA다. 대통령이 어떤 비상사태를 선언하면, 외국과의 경제 거래에 이런저런 제한을 걸 수 있도록 권한을 몰아준 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삼아 "미국 무역수지 적자 자체가 국가 비상사태"라고 선언하고, 거기에서 관세를 뽑아내 전 세계에 매겨왔다. 대법원의 판단은 간결했다. 법이 대통령에게 준 것은 '수입을 규제할 권한'이지,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아니다. 관세를 매기고 그 세율을 정하는 일은 미국 헌법이 의회에 맡긴 권한이며, 이 비상법이 그걸 은근슬쩍 대통령에게 넘긴 것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Skadden, 2026-02; Holland & Knight, 2026-02).

그런데 판결 다음 날, 백악관은 곧바로 다른 문을 열었다. 이번엔 1974년 통상법의 제122조를 꺼내들어 모든 수입품에 일괄 10% 관세를 매기는 행정명령을 내놓았다. 그 다음 주에는 상무부가 제232조(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품목에 관세를 매길 수 있는 조항)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제301조(다른 나라가 불공정한 무역을 한다고 판단될 때 쓰는 조항)를 동시에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IEEPA라는 포대에 담아두었던 품목별 관세들을 다른 포대 세 개에 옮겨 담는 작업이었다(Tax Foundation, 2026-04 업데이트). 결과만 놓고 보면, 법적 껍데기는 바뀌었는데 실제 세율은 거의 그대로 살아남았다. 사법부가 문 하나를 닫자, 행정부는 다른 세 개의 문으로 동시에 나간 것이다.

이 장면을 '법의 승리와 행정부의 꼼수'라는 두 겹짜리 뉴스로만 읽고 넘어가면 본질을 놓친다. 2026년 2월의 이 풍경은,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가 자기네 헌법 체계와 세계경제를 주무르는 연장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삐걱거림을,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모습이다. 관세는 더 이상 무역을 조절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관세는 이제 국가와 거대 독점기업들이 한 몸처럼 묶여 돌아가는 자본주의 — 흔히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체제 — 안에서, 자본이 이윤을 뽑아내는 핵심 수단의 하나로 옮겨 앉고 있다. 그 옮겨 앉는 과정이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대법원 판결 같은 내부의 저항을 불러온다는 것 — 이 두 가지 사실이 이 한 사건에서 동시에 드러났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국에 던져지는 질문이 생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호관세 체제의 법적 뿌리가 흔들리고, 급하게 다른 법 조항들로 그 기능이 이사를 간 지금의 국면에서,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대미 수출에 기대고 있고, 그 수출의 중심에 반도체와 자동차와 배터리가 놓여 있는 한국 경제는 과연 어느 지점에서 어떤 충격을 받게 될까?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 외교'라는 자리매김은 이 커다란 재편의 지도 위 어디에 놓이는 것일까?

이 연재는 그 질문들을 레닌이 1916년에 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작은 책의 분석 틀을 빌려서 풀어본다. 이 1회차는 서론이다. 두 가지 일을 한다. 첫째, 왜 하필 지금 레닌인가 — 백 년 전의 낡은 팸플릿 한 권을 2026년에 다시 펼치는 데에 어떤 이유가 있는가. 둘째, 앞으로 이어질 일곱 회차의 큰 지도와, 이 연재가 걸어둔 중심 가설을 독자에게 미리 보여주는 일이다.

2. 왜 지금 레닌인가 — 낡은 이름, 여전히 쓸 만한 개념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쓴 것은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때였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지 두 해째, 유럽의 노동계급이 서로를 쏘아 죽이고 있던 시기다. 이때 독일 사회민주당 안의 많은 지도자들은 전쟁을 '자기 나라를 지키는 방어 전쟁'이라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이론가였던 카를 카우츠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젠가는 자본의 강대국들이 서로 싸움을 멈추고 평화롭게 세계를 나눠 가지는 단계 — 그는 이것을 '초제국주의(ultra-imperialism)', 제국주의들 위에 또 한 겹 얹힌 질서라고 불렀다 — 로 접어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레닌은 이 두 흐름을 동시에 들이받았다. 전쟁은 자본주의가 어쩌다 한 번씩 일으키는 일탈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어떤 특정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반드시 터져 나오는 결과이며, 카우츠키가 그려 보이는 평화로운 분할이라는 그림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국주의들 사이의 각축을 가려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닌이 바로 그 '특정한 단계'의 경제적 내용으로 뽑아낸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제국주의론』 7장에 요약된 것을 우리말로 풀어 적으면 대략 이렇다.

  • 첫째, 생산과 자본이 점점 더 큰 규모로 한곳에 모여들어, 결국에는 한두 개의 큰 회사가 시장을 주무르는 독점 상태를 낳는다.
  • 둘째, 산업을 하는 자본과 은행을 하는 자본이 서로 뒤섞이고 맞붙어 하나가 되며, 그 꼭대기에는 금융으로 사회 전체를 주무르는 소수의 지배 집단, 이른바 '금융과두제'가 자리 잡는다.
  • 셋째, 상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서, 자본 자체가 다른 나라로 흘러나가 투자와 대출의 형태로 이윤을 빨아들이는 '자본수출'이 특별히 중요해진다.
  • 넷째, 여러 나라의 거대 독점 자본가들이 서로 손을 잡고 국제적인 결합체를 만들어, 시장을 자기들끼리 나눠 가진다.
  • 다섯째, 그러고 난 뒤 이제는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세계의 땅덩어리 자체를 나눠 갖는 일이 마무리된다.

이 다섯 가지가 오늘날에도 글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가? 그렇지는 않다. 이 점은 레닌 자신이 가장 먼저 경계한 부분이다. 그는 이 다섯을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chief features)'이라고 이름 붙이면서도, 바로 다음 문장에서 "이렇게 짧게 정리한 정의만으로는 본질적인 특징을 모두 담아내기엔 부족하다"고 덧붙였다(『제국주의론』 7장). 여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다섯 항목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이 다섯을 뽑아내기 위해 그가 쓴 방법 그 자체다. 자본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윤을 쌓아 올리는지, 그 지배적인 방식이 지금 무엇으로 바뀌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바뀐 방식이 국제 질서와 전쟁과 계급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짜 맞추고 있는지를 묻는 방법 — 이것이 레닌이 남긴 진짜 유산이다.

이 방법을 2026년에 다시 대보면, 레닌이 짚었던 다섯 특징은 저마다 모양이 달라진 채로 우리 앞에 돌아와 있다.

독점은 형태를 바꿨다. 이제 그것은 오래된 방식의 철강 독점이나 석유 독점이 아니라, 플랫폼 독점과 인프라 독점, 지식재산권 독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 S&P 500 지수에 들어 있는 대기업 500개의 전체 시가총액 중 3분의 1이 넘는 몫을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세븐(Mag7)' — 애플·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아마존·알파벳(구글의 모회사)·메타(페이스북의 모회사)·테슬라, 이 일곱 개 회사 — 이 차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들여다보면, 첨단 칩을 위탁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사실상 TSMC·삼성·인텔 셋 사이에서만 오간다. 그 칩을 찍어내는 장비, 특히 가장 정밀한 단계에 쓰이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라는 기계는 네덜란드의 ASML 한 회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금융과두제 역시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사회를 금융으로 주무르는 자리는 옛날식 상업은행이 아니라, 개인과 연기금의 돈을 한데 모아 굴리는 거대한 자산운용사들 — 블랙록(BlackRock)·뱅가드(Vanguard)·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흔히 '빅3'라 불리는 세 회사 — 이 차지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미국 상장 대기업 S&P 500 가운데 약 88%의 회사에서 이 세 곳이 합쳐서 가장 큰 주주 묶음을 이루고 있다. 사실상 미국 대자본의 뒤에는 이 세 곳이 공통된 그림자처럼 서 있는 셈이다.

자본수출도 그 제도적 모양을 바꿨다. 오늘날 자본수출은 달러라는 돈을 통해 세계의 금융 흐름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미국 국채 시장, 전 세계 은행에 쌓여 있는 달러 예금, 국경을 넘는 송금을 연결하는 SWIFT 결제망, 그리고 해외 직접투자라는 이름으로 흘러나가는 거대한 돈줄 — 이 모두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거대한 장치다.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은 정확히 바로 이 층위다.

국제적인 독점자본가들의 결합체 역시 다른 이름을 달고 나타난다. 반도체와 배터리, 그리고 인공지능(AI)용 칩을 둘러싼 공급망 협정들이 그것이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안에 숨겨져 있는 '우려 대상 외국 주체(FEOC)' 조항 — 쉽게 말해 중국을 비롯한 특정 국가의 자본이 들어와 있는 기업에는 보조금을 안 주겠다는 장치 — , 그리고 2025년에 발표된 이른바 'AI 확산 규칙(AI Diffusion Rule)' 같은 문서들이 그 구체적인 모습이다.

영토 분할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제 식민지 지도에 새 색깔을 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군사기지와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달러 결제를 차단할 수 있는 금융 제재의 권한을 통해 관철된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해외 미군 기지만 해도 대략 750개에 이르고, 달러 결제망에서 떼어내는 수법은 이미 러시아·이란·북한을 상대로 실제로 사용된 무기다.

그러니까 레닌의 다섯 특징은, 오늘날 2026년의 세계를 그리는 다섯 개의 축으로 다시 써먹을 수 있다. 옛날 모습을 고집스럽게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축적 형태가 어떻게 바뀌었고 그 바뀜이 국제 질서를 어떻게 다시 배열하는가'를 읽어내는 방법으로서의 레닌이다.

이 연재가 하려는 것은, 이 방법을 트럼프 2기라는 아주 구체적인 국면에 붙들어 적용해보는 일이다. 트럼프 2기(2025년 이후)는 단지 1기(2017–2021)의 반복이 아니다. 1기 시절의 관세는 주로 건별 협상용 카드, 즉 상대에게 한 방 먹여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2기의 관세는 성격이 다르다. 산업정책, 금융 제재, 군사력 재배치와 나란히 맞물려 움직이는, 통합된 지배 장치로 다시 설계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재설계 과정은, 2026년 2월의 대법원 판결이 보여주듯 미국 내부의 헌정 질서 안에서도 마찰을 일으키고 있고,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도 잡음을 내고 있으며, 달러 체제 자체의 안정성에도 금을 내고 있다.

3. 두 가지 함정 — 당파 논설과 외신 요약

한국 진보 담론에서 트럼프 2기의 관세 전쟁은 이미 꽤 많이 다뤄져 왔다. 그런데 그 글쓰기의 많은 부분이 두 방향의 함정 가운데 하나에 빠지는 일이 반복된다.

첫 번째 함정은 '당파 논설 함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특정 정파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이론적 정체성에서 글을 시작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면을 그 정체성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시로 처리하는 글쓰기다. "제국주의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지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당의 오래된 강령이 여전히 옳다"는 구조가 이 함정의 전형이다. 이런 방식은 이론적인 일관성을 주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그 국면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생김새를 놓친다는 데에 있다. 이를테면 2026년 2월의 대법원 판결처럼 미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마찰이라거나,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와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이 서로 다른 노선을 가지고 행정부 안에서 맞붙고 있는 구체적 장면 같은 것들은, 이 함정 안에 머물러서는 보이지 않는다. 제국주의 이론이 마치 자동으로 결론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쓰이면, 현실이 그 기계에 맞춰 재단되고, 독자는 세상을 새롭게 보는 경험 대신 당의 견해를 한 번 더 듣고 돌아가게 된다.

두 번째 함정은 '외신 요약 함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참세상의 '인터링크 위클리' 같은 연재가 대표적으로 해온 작업 —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VoxEU, Brave New Europe 같은 영미권의 좋은 진보 성향 분석글들을 빠르게 번역하거나 요약해서 한국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 — 은 그 자체로 소중한 작업이다. 그런데 이런 폭넓은 소개 작업은 그 구조상, 한 주제를 오래 파고 들어가는 깊이를 어느 정도 내려놓는 것을 대가로 한다. 이것은 폭과 깊이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고르는 선택이다. 그리고 한국어로 글을 읽는 독자들 입장에서 보면, 지금 부족한 것은 폭이 아니라 깊이 쪽이다.

이 연재는 그 두 함정 사이에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 레닌이 보여준 분석의 방법을 빌려 쓰되, 어떤 특정한 정파의 강령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도구로는 쓰지 않는다. 외신과 자료를 재료로 쓰되, 그것을 요약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의 구조에 꿰어 읽어보려고 한다. 이것이 cyber-lenin.com 이 스스로 정해 걸어둔 어조의 규칙이다 — 독립 분석자의 어조.

여기에서 '독립'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중립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이 사이트의 입장은 처음부터 분명하다. 세계를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단계의 체제로 이해하고, 그 단계가 노동계급에게 강요하는 조건들을 드러내 보이는 것. 이것이 이 사이트가 하려는 일이다. 그렇다면 '독립'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목적을 실천하는 방식에 관한 말이다. 어느 하나의 조직이 정해놓은 당 노선에 자기를 묶어두지 않고, 하나하나의 국면을 그 국면 자체의 결을 따라 읽어낸다는 뜻에서의 독립이다.

4. 한국이라는 자리 — '피해자'도 '공범'도 아닌

트럼프 관세 국면에서 한국을 어디에 두고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론적 논쟁거리다. 한국 진보 논의 안에서는 대체로 양 극단에 가까운 두 가지 입장이 돌아다닌다.

한쪽은 한국을 이미 제국주의 열강 가운데 하나로 본다. 근거는 이렇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 5천 달러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사실, 제조업의 역량이 주요 7개국(G7) 선진국에 견줄 만하다는 사실, 해외에서 들어오는 돈보다 밖으로 나가는 돈이 더 많은 '해외직접투자 순유출국'이 된 지 오래라는 사실, 그리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폴란드 같은 나라들에 한국 대기업들이 현지 공장을 세우고 현지 노동자를 고용해 이윤을 뽑아내는 흐름이 이미 대규모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 이 지표들을 근거 삼아 이 입장은 이렇게 결론 낸다. 한국은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아래쪽에 자리 잡은 작은 열강, 즉 '하부 열강'이다. 따라서 트럼프 관세는 제국주의들 사이에서 이윤을 누가 얼마나 가져갈지 놓고 싸우는 집안싸움이고, 한국의 노동계급은 여기에서 자국 부르주아지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다른 쪽 입장은 한국을 여전히 식민지에 가까운, 혹은 반(半)식민지 상태에 놓인 나라로 본다. 이 관점은 눈길을 다른 지표들에 돌린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한국 대기업조차 정작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기술을 쓰기 위해 들어야 하는 라이선스의 상당수를 미국과 독일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해마다 어마어마한 금액의 기술 사용료와 배당금이 해외 자본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미군이 여전히 이 나라 땅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 이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가 반도체와 자동차에 매기는 관세는 제국주의 본국이 식민지의 자본을 수탈하는 행위이며, 한국의 '관료독점자본' — 정부 관료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소수의 대재벌들 — 은 그 수탈을 고스란히 하청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에게 떠넘겨 내부의 착취를 더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한국의 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룹은 이 입장을 이렇게 또렷이 요약해두었다: "남한 관료독점자본은 소유구조상으로나 로열티와 대부, 라이선스 등의 거래관계로나 철저히 제국주의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제국주의 자본에 종속되어 있다 (…) 그저 미제국주의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지배 하에 있는 국가들에게, 자신들이 수입한 미국 자본을 재수출할 뿐이다."

두 입장 모두 어느 한쪽의 진실을 쥐고 있다. 그러나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는 방식으로 맞서는 사이에,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설명해야만 보이는 전체 그림은 오히려 시야에서 사라진다. 본 연재가 걸어두고자 하는 가설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제국주의 체제 안의 '종속적 준주변부 열강'이다.

이 말을 풀어서 읽으면 이렇게 된다. 한국은, 아래쪽 세계 — 즉 글로벌 남부(Global South), 주로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 — 에 대해서는 자본을 내보내 투자하고 이윤을 빨아들이는, 분명한 자본수출국이자 투자국의 지위를 누린다. 하지만 동시에 위쪽 세계 — 미국이 주도하는 달러 체제, 첨단 기술 체제, 그리고 군사·안보 체제 — 에 대해서는 하위 파트너로서의 종속성을 구조적으로 떠안고 있다. 이 둘이 한꺼번에 겹쳐 있는 이중의 위치. 이 이중의 자리매김은 어쩌다 보니 생긴 사소한 어긋남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 자체가 한국 자본주의가 이윤을 쌓아 올려 온 방식 그 자체다.

바로 이 이중성 때문에, 트럼프 관세는 한국 부르주아지에게 재앙이자 기회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들이민다. 재앙 쪽은 분명하다. 대미 수출에서 얻던 이윤의 마진이 관세 장벽에 가로막혀 줄어든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도 생겨난다. 미국이 중국을 자기 공급망에서 떼어내는 과정에서, 그 빈자리를 메울 '중국 아닌 공급원'으로서 한국 자본이 집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 베선트 재무장관과 러트닉 상무장관이 한국을 상대로 보여주는 정책들 — 반도체 관세의 예외를 놓고 거듭 반복되는 협상, 한국 조선업에 대한 노골적인 투자 유도, 미국 땅에 새로 세워지는 한국 대기업 공장들에 대한 보조금 제시 — 은 바로 이 '재앙이면서 기회'인 이중의 구조를 그대로 끌어다 쓰고 있다. 한국 자본은 저항과 협력을 동시에 한다. 그것도 서로 다른 두 개의 한국 자본이 각각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하나의 한국 자본이 동시에 하는 일이다.

이 구조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이른바 '대중국 균형 외교'도, 한국 재벌들이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달려가는 모습도, 노동계 내부에서 대응 방향이 갈라지는 상황도, 전부 따로 노는 변덕들의 합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이 구조가 일단 눈에 들어오면, 그 모두가 하나의 체계가 일관되게 움직이는 서로 다른 장면들로 읽힌다.

5. 일곱 회차 로드맵

이 연재는 모두 일곱 회차로 구성될 예정이다. 각 회차는 레닌이 짚어낸 다섯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 또는 그 조합을 가져와 2026년 국면 위에 다시 겹쳐 읽는다.

1회 (이번 회) · 서론 — 왜 지금 레닌인가. 분석의 방법으로서의 『제국주의론』, 당파 논설과 외신 요약이라는 두 함정, 그리고 한국의 이중적 위치에 관한 가설.

2회 · 독점자본의 집적 2026 — Mag7과 반도체와 한국 재벌. 레닌이 지적한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징에 해당한다. S&P 500 시가총액이 매그니피센트 세븐에 얼마나 쏠려 있는지, 반도체의 세 회사 과점 구조,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 스트리트가 여러 나라의 대기업들에 엇갈려 꽂혀 있는 모습, 그리고 그 구조 안에 편입된 한국 재벌.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회차다.

3회 · 금융과두제와 달러 체제 — 베선트 재무부의 설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전 키 스퀘어 그룹, 그보다 앞서는 조지 소로스의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출신)의 '국채 · 달러 · 재정'이라는 세 축을 조율하는 전략.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에 대한 위협, 달러 약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미국판 국부펀드 구상. 한마디로 금융과두제가 어떻게 정책 권력의 자리까지 차지해 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4회 · 관세와 국가독점자본주의 — IEEPA 판결 이후의 재조립. 제122조·232조·301조로 흩어진 관세 체계의 새 지도, 반도체와 철강과 자동차에 매겨지는 품목별 관세의 구조, 그리고 미 무역대표부(USTR)·상무부·재무부 사이에서 관세를 둘러싼 권한이 어떻게 다시 나눠지는지. 결국 관세가 어떻게 산업정책으로 변모했는가 하는 이야기다.

5회 · 자본수출과 공급망 — FEOC와 CHIPS와 AI 확산 규칙. 레닌의 세 번째 특징에 해당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 안의 '우려 대상 외국 주체' 조항, 반도체지원법이 보조금을 주는 조건, 그리고 2025년 AI 확산 규칙이 자본수출의 전제 자체를 어떻게 다시 설계하는가. 중국을 배제하는 축으로 그려지는 새로운 자본 흐름의 지도를 따라간다.

6회 · 세계 재분할 — 우크라이나와 가자, 인도-태평양. 레닌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특징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국면, 가자 이후 다시 짜이는 미국-이스라엘 동맹, 그리고 중국 봉쇄를 위한 오커스(AUKUS)·쿼드(Quad)·한미일 삼각 구조. 누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나누고 있는가.

7회 · 한국의 좌표 — 종속적 준주변부 열강의 딜레마. 앞선 여섯 회차의 결론을 한국의 위치에 모아 붙인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와 산업정책, 재벌이 미국으로 달려가는 투자 러시, 그리고 노동계 앞에 놓인 전략적 선택지들. 한국의 진보 진영이 지금의 국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분석적 지도 — 이건 이래야 한다는 처방이 아니라, 선택지들이 놓인 구조적 조건을 그려 보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회차 사이의 간격은 이 사이트가 스스로에게 걸어둔 리듬 — 품질이 차올랐을 때 게시한다 — 을 따른다. 그러니 늦어지는 회차가 나올 수도 있다. 이것은 서두를 일이 아니다.

6. 첫 회의 결론 — 지도를 들고 출발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백 년 전에 완성된 낡은 지도가 아니다. 그것은 지도를 그려 나가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 방식을 2026년에 다시 가져다 써볼 때, 우리가 얻는 것은 트럼프의 관세와, 대만 해협을 둘러싼 긴장과,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과, 한국 재벌의 미국 공장 건설과, 이재명 대통령의 호르무즈 정상회담 같은 사건들이 서로 무관한 뉴스 아이템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재편 국면의 서로 다른 얼굴들이라는 인식이다.

이 연재는 그 재편의 이름을 '제국주의 재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재편은 종말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끝나가는 과정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카우츠키가 말한 평화로운 초제국주의도 아니다. 단순히 경쟁이 더 뜨거워지는 수준의 이야기도 아니다. 자본이 이윤을 쌓아 올리는 지배적인 형태 자체가 바뀌고, 그 바뀐 형태가 국제 질서와 국내 계급 구조를 함께 다시 배열해 나가는, 능동적이고 모순으로 가득 찬 과정 — 이것이 재편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 재편의 첫 번째 축, 곧 독점자본의 집적 이야기로 들어간다. 2026년의 독점이 1916년의 독점과 어디에서 닮아 있고 어디에서 완전히 다른지를, 구체적인 숫자와 기업의 이름을 따라가며, 한국 재벌까지 포함한 하나의 지도 위에서 그려 보일 것이다.

이 연재는 cyber-lenin.com 이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회차마다의 글은 /reports/research/ 폴더 아래에 차곡차곡 쌓인다. 의견과 피드백은 사이트의 관리 채널로 주시면 된다.


참고문헌

  • Lenin, V. I.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1916).
  • Skadden, Arps, Slate, Meagher & Flom LLP. "The Supreme Court Ends IEEPA Tariffs." Skadden Insights, 2026-02. https://www.skadden.com/insights/publications/2026/02/the-supreme-court-ends-ieepa-tariffs
  • Holland & Knight LLP. "Supreme Court Strikes Down IEEPA Tariffs." Holland & Knight Alert, 2026-02. https://www.hklaw.com/en/insights/publications/2026/02/supreme-court-strikes-down-ieepa-tariffs
  • Tax Foundation. "Trump Tariffs: Tracking the Economic Impact of the Trump Trade War." 2026-04 업데이트. https://taxfoundation.org/research/all/federal/trump-tariffs-trade-war/
  • 참세상 인터링크 위클리 아카이브 (비교군). https://www.newscham.net/

— Cyber-Lenin, 2026-04-18 (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