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벌체제와 민주주의 1: 개발국가와 재벌의 탄생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6
1. 문제 설정: 재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2025년 현재 한국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은 92개, 그 소속회사는 3,301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5년 5월 1일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기업집단 92개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명목 GDP의 0.5%에 해당하는 11.6조 원 이상 46개 집단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KDI 경제정보센터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재게시·요약한 공정위 발표도 같은 수치를 확인한다.[ftc2025][fomek2025]
이 숫자는 단순한 기업 통계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어떤 단위로 조직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치경제학적 지표다. 재벌은 개발독재 시기의 낡은 잔재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기본 형식이다. 한국에서 산업정책, 금융, 고용, 부동산, 수출, 기술투자, 심지어 선거정치까지 재벌 문제를 우회해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재벌을 “성공한 기업가의 결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친다. 재벌은 시장경쟁의 자연스러운 승자가 아니었다. 국가는 은행을 장악했고, 정책금융과 차관 지급보증을 제공했고, 특정 산업을 지정했으며, 노동을 통제했고, 수출 실적을 기준으로 보상과 처벌을 배분했다. 그 결과 특정 가족·기업집단은 산업자본, 금융 접근권, 정치적 영향력을 결합한 거대한 사적 권력으로 성장했다.
이 연재의 첫 번째 글은 바로 이 출발점을 다룬다. 한국 재벌체제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왜 그것은 단순한 “대기업 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계급권력인가.
2. 개발국가의 핵심: 시장을 만든 국가는 누구를 키웠는가
한국의 개발국가는 흔히 “국가가 시장을 이끈 성공 사례”로 서술된다. 이 말은 절반만 맞다. 국가는 분명 시장을 방치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개입이 누구를 위해, 어떤 계급관계를 통해, 어떤 정치적 억압과 결합해 작동했는가다.
참여연대에 실린 이병천의 2004년 글 「재벌체제의 빛과 그림자」는 한국식 성장모델을 “국가-재벌의 지배 연합”이자 “국가-재벌-은행의 삼각 밀착체제”로 규정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군사정부는 은행을 국유화해 금융배분을 장악했고, 정책금융과 외자도입·차관 지급보증을 통해 특정 기업집단을 성장시켰다. 성장의 과실은 재벌이 사적으로 획득했고, 손실과 위험은 사회와 국민경제가 떠안았다.[lee2004]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 대 시장”이라는 평면적 구도가 아니다. 한국 개발국가의 실제 구조는 “국가가 시장을 대신했다”가 아니라 “국가가 특정 자본을 선택해 시장의 지배자로 만들었다”에 가깝다. 국가는 산업화의 조정자였지만 중립적 조정자가 아니었다. 재벌은 국가의 산업전략을 수행하는 민간 대리인이었고, 국가는 그 대리인에게 금융·인허가·외자·수출지원·노동통제라는 권력을 몰아주었다.
따라서 한국 재벌의 탄생은 사적 축적과 국가권력의 결합이었다. 이 결합 없이는 삼성, 현대, SK, LG 같은 집단의 역사적 비약을 설명할 수 없다.
3. 은행 국유화와 정책금융: 재벌 형성의 기관실
재벌체제의 첫 번째 기관실은 금융이었다. 자본주의에서 누가 자금을 얻는가는 누가 성장할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박정희 체제는 이 문제를 시장금리와 민간은행의 판단에 맡기지 않았다. 국가가 은행을 장악하고, 자금의 흐름을 산업정책의 하위 장치로 조직했다.
이병천의 분석에서 “국가-재벌-은행의 삼각 밀착체제”라는 표현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lee2004] 재벌은 단순히 값싼 돈을 빌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국가가 보증하고 배분한 신용을 통해 자기자본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로 사업을 확장했다. 수출 실적과 정부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기업은 더 많은 금융을 받았고, 전략산업에 진입할 기회를 얻었다.
이 구조는 축적의 위험을 비대칭적으로 배분했다. 성공하면 재벌 총수 일가와 계열기업이 지배력을 확대했다. 실패하면 부실채권, 외채, 산업구조 왜곡, 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 노동, 국민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한국 재벌체제의 “사적 이윤, 사회적 위험”이라는 공식은 IMF 이후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개발국가 시기에 이미 제도화된 원리였다.
재벌은 이 금융구조 속에서 다각화했다. 한 기업이 한 업종에서 성장해 다른 업종으로 확장하는 일반적 기업 성장과 달리, 한국 재벌은 국가가 열어준 신용과 인허가를 매개로 건설, 무역, 제조, 중화학, 금융 주변부, 유통으로 빠르게 뻗어 나갔다. 계열사 구조는 단순한 경영전략이 아니라 국가 신용을 사적 지배력으로 번역하는 장치였다.
4. 1973년 중화학공업화 선언: 산업정책의 집중과 재벌의 비약
재벌체제 형성에서 결정적 분기점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였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1월 12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중화학공업화정책을 선언했다. 선언의 핵심은 1980년대 초 수출 100억 달러와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 달성을 위해 철강, 조선, 기계,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archives1973]
국가기록원 자료는 1973년 1월 30일 「중화학공업화정책 선언에 따른 공업구조개편론」이 확정되고, 같은 해 3월 30일 경제기획원이 1974년도 경제정책의 중점을 “중화학공업의 집중적 건설”로 제시했다고 정리한다. 또 중화학공업화 선언은 기존 경공업 중심 전략에서 중화학공업 중심 전략으로의 전면적 전환이었다고 평가한다.[archives1973]
이 전환은 “산업 고도화”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없다. 중화학공업은 막대한 초기투자, 장기 회수기간, 국가 인프라, 수입기술, 외자, 수출시장 확보가 필요한 부문이다. 이런 산업은 중소기업이나 분산된 민간자본이 자생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가는 대규모 자본동원이 가능한 특정 기업집단을 선택해야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재벌은 국가 산업정책의 핵심 수혜자가 되었다.
조선,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 기계 산업은 한국 경제의 수출 기반을 넓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부문들은 재벌의 경제권력을 질적으로 강화했다. 재벌은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산업을 수행한다는 명분으로 금융, 토지, 인력, 기술, 규제 완화, 외교적 지원까지 끌어오는 권력으로 성장했다.
중화학공업화는 한국 산업구조를 바꾸었지만, 그 산업구조의 지배권은 민주적 통제 아래 놓이지 않았다. 노동자와 시민은 “국가 발전”의 이름으로 동원되었고, 지배권은 총수 일가와 관료-기업 네트워크에 집중되었다.
5. 노동통제: 한강의 기적의 침묵된 조건
재벌 형성사는 금융과 산업정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노동통제가 빠지면 설명은 반쪽이 된다. 값싼 정책금융만큼 중요한 것은 값싼 노동력, 장시간 노동, 노조 억압, 병영적 작업장 질서였다.
이병천은 개발독재 시기의 노동대중이 “선성장 후분배” 시스템에 봉사하도록 통제되었고, 재벌 비대화와 함께 중소기업 저발전, 경제구조의 불균형이 심화되었다고 지적한다.[lee2004] 이 말은 성장의 비용을 누가 부담했는가를 묻는다. 재벌의 축적은 노동자의 저임금과 정치적 침묵을 조건으로 했다.
개발국가는 노동을 독립적 사회세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자는 임금교섭의 주체가 아니라 수출경쟁력의 비용 항목으로 취급되었다. 파업과 노조 활동은 “경제발전 저해”나 “안보 위협”으로 낙인찍혔다. 공장은 생산의 장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규율의 장이었다.
이 구조에서 재벌과 국가는 상호보완적이었다. 국가는 노동운동을 억압해 기업의 축적조건을 보장했고, 재벌은 수출과 투자 성과로 정권의 경제적 정당성을 뒷받침했다. 이것이 “한강의 기적”의 계급적 이면이다. 기적은 누군가에게는 축적의 기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침묵과 과로의 체제였다.
6. 대만과 다른 길: 중소기업 국민경제가 아니라 재벌 국민경제
한국 개발국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의는 종종 “국가 주도 산업화”의 성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 주도라는 동일한 말 아래에서도 서로 다른 경로가 존재한다. 이병천은 한국형 개발모델이 대만식 국유기업·중소기업 병행발전이 아니라, 재벌을 경제성장의 대표 주자로 삼는 방식이었다고 지적한다.[lee2004]
이 차이는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국민경제의 성과가 소수 재벌집단의 성과에 종속되는 방식으로 조직되었다. 수출이 늘면 재벌의 규모가 커졌고, 재벌이 커지면 하청 중소기업과 노동시장은 그 주변부로 재편되었다. 중소기업은 독립적 혁신 주체라기보다 대기업 납품망의 하위 단위가 되기 쉬웠고, 노동자는 원청-하청 구조 속에서 분할되었다.
이 구조는 오늘까지 이어진다. 원청 대기업의 영업이익, 하청 단가 후려치기, 비정규직·파견·사내하청, 플랫폼 외주화는 모두 개발국가 시기의 원형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재벌체제는 산업 고도화와 불균형 발전을 동시에 낳았다. 한국 경제가 세계시장에 편입될수록, 그 편입의 지휘권은 민주적 공론장이 아니라 재벌 본사와 관료조직에 집중되었다.
7. 재벌은 경제조직이 아니라 정치권력이다
재벌을 “경제조직”으로만 보면 민주주의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재벌은 처음부터 정치권력과 결합해 형성되었다. 은행 국유화, 정책금융, 차관보증, 수출목표, 중화학공업화, 노동통제는 모두 국가권력의 작동이다. 재벌은 이 국가권력을 사적 축적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 결과 한국 민주주의는 출발부터 모순을 안게 되었다. 형식적 정치민주화가 진전되어도 경제권력은 소수 기업집단에 집중되어 있었다. 선거로 정부는 바뀔 수 있지만, 투자·고용·수출·산업전환을 쥔 재벌의 구조적 권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정권은 재벌개혁을 말하면서도 성장률, 고용, 수출, 주가, 반도체 투자 앞에서 재벌과 협상해야 했다.
이것이 한국 재벌체제의 민주주의적 문제다. 재벌은 단순히 “너무 큰 기업”이 아니다. 재벌은 국가가 만든 사적 경제권력이고, 그 권력은 민주적 통제 밖에서 사회 전체의 방향을 좌우한다. 개발국가가 만든 이 권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해체되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자유화, 세계화, IMF 구조조정, 반도체·AI 산업정책을 거치며 다른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8. 결론: 개발국가의 성공을 누구의 성공으로 볼 것인가
개발국가 서사는 보통 이렇게 말한다. 가난한 나라가 국가 주도 산업화로 성장했고, 재벌은 그 성장의 주역이었다. 이 서사는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불충분하다.
더 정확한 서술은 이렇다. 한국 국가는 냉전, 개발독재, 수출경쟁, 노동억압 속에서 특정 자본집단을 선택해 키웠다. 그 결과 한국은 빠르게 산업화했지만, 그 산업화의 지배권은 노동자와 시민이 아니라 재벌에게 집중되었다. 성장의 과실은 사적으로 집중되었고, 위험과 비용은 사회적으로 배분되었다.
2025년 현재 92개 공시대상기업집단과 3,301개 소속회사라는 통계는 이 역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재벌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형이다. 다음 글에서는 민주화 이후에도 왜 재벌이 약해지지 않았는지, 1987년 이후 정치민주화와 경제권력의 분리가 어떻게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되었는지를 다룬다.
[ftc2025] KDI 경제정보센터, 「2025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92개 지정」, 2025-05-02. https://eiec.kdi.re.kr/policy/materialView.do?num=266227&pg=&pp=&topic=P
[fomek2025] 한국중견기업연합회,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2025-05-02. https://www.fomek.or.kr/main/policy/law/policy_view.php?wr_id=1181
[lee2004] 이병천, 「재벌체제의 빛과 그림자」, 참여연대 참여사회, 2004-11-01. https://peoplepower21.org/magazine/716358
[archives1973] 국가기록원, 「중화학공업화선언(1973)」. https://www.archives.go.kr/next/new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7346&site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