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환원주의를 넘어: 보편적 연대의 조건과 실천 — 계급과 정체성 5회차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30
1. 서론: 분할된 현실에서 통합의 정치를 사유하기
지난 네 회차에서 우리는 150년에 걸친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논쟁의 역사(1회차), 재생산 노동과 사회적 재생산 이론(SRT)의 발전(2회차), 2026년 한국 젠더 불평등의 물질적 기초(3회차), 그리고 청년 남성 보수화의 계급적 뿌리(4회차)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이 연재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바는 단순하다: 계급과 정체성은 대립하는 두 축이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총체성 안에서 서로를 구성하는 분할된 현실의 두 얼굴이다.
이제 마지막 회차에서는 이 통찰을 정치적 실천의 영역으로 옮긴다. 계급·젠더·세대 균열이 교차하는 현실 속에서, 보편적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마르크스주의가 '계급 환원주의'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정체성 정치의 교착을 넘어서는 경로는 무엇인가?
이 글은 세 개의 렌즈로 이 질문에 답한다. 첫째, 한국 노동운동 내 젠더 정치의 역사적 교훈 — 여성 노동자가 주도한 투쟁들이 어떻게 계급과 젠더의 중층적 의식을 형성했는지. 둘째, 2026년 현재 민주노총 여성할당제 20년의 성과와 한계 — 제도화된 젠더 정치가 왜 아직도 '50대 남성'의 얼굴을 바꾸지 못했는지. 셋째, 계급 환원주의 논쟁의 국제적 지형 — Sarah Garnham('반-환원주의'), Daniel Lopez('상품 물신성과 총체성'), 그리고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 간의 논쟁을 검토하고, '통일적 총체성 이론(unitary totality theory)'의 실천적 함의를 도출한다.
2. 역사의 교훈: 여성 노동자는 어떻게 한국 민주노조 운동을 주도했는가
한국 노동운동의 기원을 말할 때 흔히 전태일의 분신(1970.11.13)이 첫 장을 연다. 그러나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실제 주체는 여성 재봉사들이었다.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 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었고, 청계피복노조의 결성(1970.11.27)과 투쟁을 이끈 것은 이소선(전태일의 어머니)과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1977년으로 넘어가면 이 역사는 더욱 극적으로 전개된다. 노동교실 사수투쟁에서 200여 명이 점거 농성했고, 민종덕의 투신, 신승철의 할복 시도,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과 임미경의 투신 기도가 이어졌다. YH무역 사건(1979.8.9) 은 가발수출업체 여성 노동자 187명이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중 김경숙 노조 집행위원이 사망한 사건으로, 반유신 공동전선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먼타임스(2022.2.7)는 이 시기를 "1970년대 노동운동을 주도한 여성들"로 명명한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 구로동맹파업(1985) 이라는 분수령이 있다.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경공업 수출품을 생산하는 여성 노동자였고,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노동자 연대파업을 성사시켰다. 마산·창원 수출자유지역에서도 유사한 역학이 작동했다. 수출지향 산업화가 여성 노동력에 대한 체계적 의존을 만들어냈고, 그 구조적 위치가 오히려 여성 노동자들을 민주노조 투쟁의 전면에 세웠다.
전북 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구술생애사 연구(KCI 등재) 는 이 과정에서 계급의식과 젠더의식이 어떻게 중층적으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공장 입문 직후에는 '여공'으로서의 젠더적 정체성이 전면에 있지만, 노동운동에 본격 진입하면서 계급의식이 강화되고, 이후 운동의 심화 단계에서는 계급과 젠더의 중층적 의식 — 계급적 착취가 젠더적 차별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 — 이 형성된다.
이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계급과 젠더는 현장에서 분리된 적이 없다. 여성 노동자들의 착취 경험은 '낮은 임금'이라는 계급적 차원과 '여자라서 참아야 한다'는 젠더적 차원이 분리 불가능하게 얽혀 있었다. 계급 환원주의가 비판받아야 하는 지점은 이 중층적 현실을 '진짜 문제는 계급뿐'이라는 단일 축으로 환원하는 데 있다. 반대로 정체성 정치의 한계는 이 착취 경험의 계급적 축을 탈각하고 문화적 표상의 차원으로 축소하는 데 있다.
둘째, 노동운동이 젠더 문제를 방기할 때마다 운동은 약화되었다. 1987년 이후 남성 중공업 노조가 주도하는 민주노조 운동으로 재편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과 조직적 유산은 주변화되었다. '남성 중심의 민주노조'(한국노동연구원의 표현)라는 서사는 단지 상징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교섭 의제에서 돌봄·성평등·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조건이 후순위로 밀리는 물질적 결과를 낳았다.
셋째, 여성 노동자 주도의 투쟁은 계급적 정체성과 젠더적 정체성이 '대립'이 아닌 '중층'임을 실천적으로 증명했다. 전북 지역 연구가 보여주듯, 운동의 심화는 젠더 의식의 포기가 아니라 계급 의식과의 통합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추상적 이론 논쟁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의 산물이다.
3. 현재의 교착: 민주노총 여성할당제 20년, 왜 '50대 남성'의 얼굴은 바뀌지 않았나
민주노총은 2005년 여성할당제를 도입했다. 20년이 지난 2025년, 매일노동뉴스(2025.12.1)의 평가는 냉정하다.
"민주노총에서도 대표자는 '50대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한 달씩 농성을 집중할 수 있고, 술도 잘 먹고,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이런 남성이 대표자가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관계자
수치화된 현실은 더욱 구체적이다: 여성 간부 중 핵심 위치인 단체교섭위원 경험이 있는 간부는 52.4% 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도 여성·성평등 의제를 실제 교섭석상에서 다뤄본 경험은 더욱 희소하다. 할당제는 '여성이 간부가 되는 것'까지는 일정 부분 성취했지만, '여성 간부가 핵심 권력과 핵심 의제를 장악하는 것'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교착의 원인은 세 겹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첫째, 노동조합의 남성적 문화 그 자체. "술도 잘 먹고, 덩치도 크고, 목소리도 큰" — 이 서사가 우스갯소리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조합원들 사이에서 '진정한 노동자다움'의 규범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3회차에서 분석한 한국 노동시장의 성별 이중구조가 노조 내부의 권력구조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둘째, 교섭 의제의 구조적 편향. 임금·고용안정이라는 '계급적 본류' 의제는 남성 정규직 중심으로 설정되고, 돌봄·성평등·비정규직 보호 같은 '젠더적 지류' 의제는 부차화된다. 여성할당제는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교섭 의제의 위계를 바꾸지는 못했다.
셋째, 정치적 대표성과 계급적 대표성의 분리. 한국노총의 2025년 양성평등주간 포럼이 지적하듯, "노동시장에서 발생한 차별이 노동시장 퇴장 이후까지 지속돼 연금격차까지 유발한다" — 즉 젠더 불평등은 노동시장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생애 전 주기에 걸친 계급적 문제다. 그런데도 노조의 교섭 구조는 '현재 고용된 정규직 남성'의 이해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노총의 여성할당제가 '실패'했다는 낡은 서사가 아니라, 제도적 개혁만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할당제는 필요조건이었지만 충분조건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교섭 의제의 재구성, 조직 문화의 변혁,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보편적 이해'를 젠더 중립적으로 재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 의식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4. 계급 환원주의 논쟁의 국제적 지형: 무엇이 진정한 '통합'인가
4.1. 세 가지 입장
2018년 호주 사회주의대안(Socialist Alternative)의 이론지 『Marxist Left Review』 제16호는 계급 환원주의를 둘러싼 중요한 논쟁을 실었다. Sarah Garnham의 「Against Reductionism: Marxism and Oppression」과 이에 대한 Daniel Lopez의 응답 「Totality and Oppression」은 이 문제에 대한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정교한 이론적 대결 중 하나다.
Garnham의 입장은 두 가지 유형의 계급 환원주의를 구별한다: (1) '반-본질주의'(anti-essentialism — Adolph Reed 등)는 인종·젠더 같은 정체성 범주를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 분할을 위해 조작한 허구로 간주하고, 따라서 이 범주들에 기반한 정치를 거부한다. (2) '추상적 환원주의'(abstract reductionism)는 억압을 자본주의의 '외부적' 현상으로 간주하여, 자본 축적의 논리 자체와 무관한 것으로 취급한다.
Garnham의 핵심 논변: 이 두 입장 모두 억압이 자본주의의 총체성(totality)에 내재적이라는 사실을 놓친다. 억압은 단지 분할 통치의 도구가 아니라, 자본 축적의 메커니즘 자체에 통합되어 있다(SRT의 통찰을 이론적 기초로 삼는다). 자본주의는 젠더화된 노동 분절, 인종화된 계층 구조, 민족적 위계 없이 작동한 적이 없다.
Lopez의 응답은 Garnham의 '총체성'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고 비판한다. 진정한 총체성의 구체적 본질은 상품 생산과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 이며, 루카치 이후의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이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Lopez는 상품 물신성에서 출발해 젠더 억압을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을 '사적' 영역(가족)으로 분리하고, 이 사적 재생산의 질적(quality) 측면—사랑, 돌봄, 친밀성—이 상품화된 노동과 모순을 이룬다는 것. 인종주의의 경우, 자본주의가 형식적 평등(추상적 개인)과 실질적 불평등 사이의 긴장을 인종화된 위계로 매개한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Oakland Socialist(2018) 의 입장은 또 다르다. 이들은 정체성 정치와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수레바퀴(wagon wheel)' 메타포로 비판한다: 다양한 억압의 축들은 서로 '겹치는 원'이 아니라 계급이라는 중심축(허브)에 연결된 바퀴살이다. Fred Hampton의 "국제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인종주의와 싸우자"는 외침이 이 입장의 규범적 지향이다.
4.2. 평가: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넘어설 것인가
Garnham에게서 취할 것: 억압이 자본주의의 외부적 부산물이 아니라 내재적 구성요소라는 주장. 이는 계급 환원주의의 가장 강력한 논박이며, SRT와 정합한다. 1~2회차에서 우리가 추적한 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논쟁의 핵심 결론 — 재생산 노동이 잉여가치 생산의 외부가 아니라 조건이라는 것 — 이 바로 이 지점에서 이론적으로 완성된다.
Lopez에게서 취할 것: '총체성'이라는 개념이 추상적 구호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경고. 그러나 상품 물신성만으로 젠더·인종 억압의 구체적 형태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 29.0%(OECD 1위), 여성 경력단절의 구조, 청년 남성의 '불안한 상위계급' 현상은 상품 물신성의 일반 이론보다 정치경제학의 구체적 분석을 더 필요로 한다.
Oakland Socialist의 '수레바퀴' 모델: 단순하지만 실천적 유용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말콤 X, 마틴 루터 킹, 프레드 햄튼이 보여준 궤적 — 인종 해방 투쟁에서 시작해 계급 투쟁으로 수렴한 — 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청계피복 → YH무역 → 구로동맹파업)와도 구조적으로 평행한다. 다만 '중심축=계급'이라는 도식은 억압의 자율적 동학—예컨대 노동계급 내부의 남성 이익—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민주노총의 '50대 남성' 문제는 계급적 이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5. 통합적 실천의 조건: '보편적 연대'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한가
5.1. 계급 환원주의를 넘어서는 네 가지 원칙
이상의 역사적 분석과 이론적 검토로부터, 계급·젠더·세대 균열을 매개하는 정치적 실천의 네 가지 원칙을 도출할 수 있다.
제1원칙: 억압은 자본주의에 내재적이다. 따라서 계급 해방과 억압 철폐는 동일한 투쟁의 서로 다른 계기다.
계급 환원주의의 가장 치명적 오류는 억압을 '나중에 해결할 문제' 혹은 '계급 해방이 이루어지면 자동으로 사라질 부차적 문제'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성별화된 임금격차, 인종화된 노동시장 분절, 세대 간 자산 불평등 없이 작동한 역사적 경험이 없다. 계급 투쟁이 억압에 무관심할 때마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다수를 배제하는 남성·정규직·중장년 중심의 운동으로 축소되어 왔다. 한국 19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이 그 증거다.
제2원칙: 노동계급 내부의 분할된 이해를 인정하지 않는 '보편'은 허구다.
정규직 남성 노동자·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청년 프레카리아트·돌봄 노동자는 같은 계급에 속하면서도 자본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구조적 위치에 놓여 있다. 이 차이를 무시한 '노동자 전체의 이익'이라는 추상은 현실에서는 기존의 특권적 위치를 보편으로 위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한동백(2024)의 표현대로, "계급운동은 청년으로서의 노동자, 여성으로서의 노동자, 장애인으로서의 노동자를 넘어, 그것 자체 내에 지양·보존된 노동자로서의 청년, 노동자로서의 여성, 노동자로서의 장애인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제3원칙: 정체성 정치는 신자유주의와의 공모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만, 정체성의 물질적 토대를 부정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정체성 정치의 우파적 변종 — 다양성 경영, 유리천장 돌파 담론, '여성 리더십' 신화 — 이 자본의 이해와 공모하는 방식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잉 반응으로 정체성 자체를 허구로 치부하는 '반-본질주의'(Reed 등)는, 구체적 착취 경험을 가진 현실의 인간들을 추상적 계급 범주로 환원하는 오류를 범한다. 3~4회차의 데이터가 입증하듯, 한국의 젠더·세대 불평등은 '문화적 표상'이 아니라 임금·주거·돌봄·자산이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 서 있다.
제4원칙: 보편적 연대는 선험적 조건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구성되는 과정이다.
1970년대 청계피복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1985년 구로동맹파업, YH무역 농성은 '이론적으로 정합한 연대 전략'이 먼저 있었기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 착취 조건에 맞서는 과정에서 계급적·젠더적 연대가 실천적으로 구성되었다. 이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의 실천에도 적용된다. '완벽한 이론'을 먼저 확보한 후에 실천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투쟁 속에서 연대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5.2. 2026년 한국에서 보편적 연대를 위한 세 개의 전술적 과제
과제 1: 노동조합 교섭 의제의 확장. 임금·고용안정이라는 전통적 의제에 더해, 돌봄의 사회화·성평등 임금체계·비정규직의 정규직화·주거권을 핵심 교섭 의제로 격상시키는 것. 이는 '특수 이익'의 추가가 아니라, 여성·청년·비정규직이 노동계급의 다수를 구성하는 현실에서 '보편 이익'의 재정의다.
과제 2: 조직 문화의 변혁. 민주노총 여성할당제 20년의 교훈은 제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성적 운동 문화(술·목소리·체력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다움')에 대한 의식적 개입, 여성 간부의 핵심 권력(단체교섭위원 등) 진출을 위한 멘토링과 조직적 지원, 그리고 교섭 테이블에서 젠더 의제가 '본 의제'로 다뤄지도록 하는 정치적 압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과제 3: 세대 간 연대의 재구성. 4회차가 분석한 청년 남성 보수화의 핵심 동력은 문화적 반동이 아니라 경제적 불안이었다. 청년 세대를 '적' 혹은 '구제불능의 보수'로 낙인찍는 대신, 청년 남성·여성 모두가 직면한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안정성(비정규직화, 주거 불안, 자산 격차)을 공통의 적으로 설정하는 계급적 담론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대남 담론'의 문화주의적 교착을 돌파하는 유일한 길이다.
6. 결론: 분할된 현실에서 온전한 해방으로
이 연재 5회차의 여정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서 시작해 2026년 한국의 젠더·세대 균열까지, 하나의 지속된 질문을 추적했다: 계급과 정체성은 왜 분리되었고,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 있는가?
우리가 얻은 답은 이렇다.
계급과 정체성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분할되었다. 자본 축적은 성별화된 노동 분절, 인종화된 계층 위계, 세대화된 자산 불평등을 통해 작동해 왔다. 이 억압의 구조들은 '계급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관계의 내적 구성 요소다. 마르크스주의가 이 사실을 망각할 때, 그것은 실제 노동계급의 구체적 경험으로부터 괴리된 추상 이론으로 전락한다. 정체성 정치가 계급을 망각할 때, 그것은 억압의 물질적 뿌리를 외면한 문화적 표상 정치로 축소된다.
보편적 연대는 분할을 부정하는 데서가 아니라 분할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1970년 청계피복의 여성 노동자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론서를 읽고 계급과 젠더의 통일을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구체적 착취 조건 — 낮은 임금, 긴 노동시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내해야 했던 추가적 굴욕 — 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투쟁이 계급적이면서 동시에 젠더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증명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실천을 이론의 언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실천을 그 역사적 유산 위에서 재구성하는 일이다. 계급 환원주의도, 계급을 탈각한 정체성 정치도 아닌, 계급을 통해 정체성을 사유하고, 정체성을 통해 계급을 구체화하는 통합적 실천. 2026년 한국에서 진보 정치의 미래는 이 과제를 얼마나 성실히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참고문헌
- Engels, F. (1884).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marxists.org.
- Bebel, A. (1879). Woman and Socialism. marxists.org.
- Kollontai, A. (1920). "Communism and the Family." marxists.org.
- Dalla Costa, M. & James, S. (1972). The Power of Women and the Subversion of the Community. Falling Wall Press.
- Federici, S. (2004). Caliban and the Witch: Women, the Body and Primitive Accumulation. Autonomedia.
- Garnham, S. (2018). "Against Reductionism: Marxism and Oppression." Marxist Left Review, No.16.
- Lopez, D. (2018). "Totality and Oppression: A Reply." Marxist Left Review, No.16.
- Oakland Socialist (2018). "Intersectionality, Class Reductionism and Revolutionary Socialism."
- 한동백 (2024). "보편-특수-개별로서의 계급운동과 부문운동의 연대." 볼셰비키그룹.
- 이경순 (2006). "여성노동운동에 나타난 계급과 젠더: 1970-80년대 전북지역 여성노동자 구술생애사." KCI 등재.
- 우먼타임스 (2022.2.7). "전태일 이후, 70년대 노동운동 주도한 여성들."
- 매일노동뉴스 (2025.12.1). "민주노총 여성할당제 20년, 조직 리더는 여전히 '50대 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