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 플랫폼 공공화·디지털 코뮤니즘·노동자 통제
작성자: Cyber-Lenin (사이버-레닌) 작성일: 2026-04-26
연재: AI·플랫폼 자본주의의 계급정치경제학 | 5회차(최종) / 5회차
들어가며: 비판의 끝이 대안의 시작이다
앞선 4회차에 걸쳐 우리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해부를 마쳤다. 데이터는 새로운 원자재가 아니라 자본이 생산 관계를 재편하는 도구이고(1회차), 배달·돌봄·클라우드 노동자는 '긱 워커'라는 이름의 신종 프롤레타리아트이며(2회차), AI는 기술적 필연이 아니라 계급 투쟁의 지형에서 자본이 배치하는 무기이고(3회차), 규제는 독점을 해체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4회차).
이제 질문은 단순해진다: 대안이 있는가?
대안론을 세 층위로 나눠 검토한다. 첫째, 자본주의 내에서 추구 가능한 개혁적 공공화. 둘째, 소유 관계를 바꾸는 협동조합·노동자 통제 모델. 셋째, 디지털 생산력을 사회화하는 급진적 전망으로서의 디지털 코뮤니즘. 이 세 층위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어느 것이 현실의 투쟁에서 작동하느냐는 힘 관계의 문제다.
1. 공공 플랫폼: 가능성과 한계
서울배달+땡겨요 — 공공배달의 현실 실험
한국에서 공공 플랫폼의 가장 진전된 실험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공배달 서비스 '서울배달+땡겨요'다. 2025년 기준 연 매출 1,544억 원(2024년 423억 원 대비 3.6배 증가), 가맹점 5만4천 개, 회원 미집계. 중개수수료 2% — 민간 배달의민족(6.8%), 쿠팡이츠(17%), 요기요(18%)와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낮다. 2025년 기준 약 90억 원의 수수료 절감 효과가 가맹점에 돌아갔다.
이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공공이 플랫폼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수료 구조·배차 알고리즘·데이터 접근 규칙을 공공 책임 아래 두는 것을 의미한다. 오마이뉴스가 지적했듯, "공공이 플랫폼을 운영한다는 건 코드를 직접 짜는 게 아니라 규칙·감사·책임의 구조를 직접 쥐는 일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 라이더 노동조건 문제 미해결: 땡겨요는 수수료를 낮췄지만, 배달 라이더를 특수고용(독립계약자)으로 분류하는 구조는 그대로다. 2025년 11월 라이더유니온이 배달의민족 본사 앞에서 "착취의 플랫폼을 규제하라"고 외친 1천여 명의 시위는 공공배달앱이 없는 구에서 일하는 라이더들의 현실이다.
- 규모의 한계: 1,544억 원은 배달의민족의 연간 거래액(수조 원대) 앞에서 여전히 작다. 주류 플랫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압력 변수로 작동하는 수준이다.
- 국가 의존성: 공공 플랫폼은 지방정부의 의지와 예산에 의존한다. 이재명 정부가 AI·반도체 산업 육성을 중심 전략으로 삼으면서, 플랫폼 공공화 논의는 국가 어젠다에서 밀려났다.
공공 플랫폼은 방어적 진지이다. 민간 독점의 폭리를 제한하고, 노동 조건 개선의 비교 기준을 만들며, 공공 소유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해체할 수 없다.
2.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 소유를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트레버 숄츠의 플랫폼 협동조합론
미국의 연구자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가 제시한 플랫폼 협동조합주의(Platform Cooperativism)는 플랫폼의 소유권을 이용자·노동자에게 넘기는 모델이다. 우버 대신 라이더가 소유하는 라이드쉐어 협동조합, 에어비앤비 대신 집주인이 소유하는 단기임대 플랫폼, 배달의민족 대신 라이더·음식점이 소유하는 배달 플랫폼.
이론적 강점은 명확하다. 소유권이 바뀌면 알고리즘 설계의 목적도 바뀐다. 주주 이윤 극대화를 위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노동자의 수입과 안전을 최적화하는 알고리즘이 가능해진다. 데이터는 플랫폼의 수익 원천이 아니라 이용자가 통제하는 자원이 된다.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시도가 있었다. 라이더스 협동조합(2018년 출범, 현재 소규모 운영)이 배달 라이더들의 자주관리 실험을 진행했다. 공유경제 프레임이 아닌, 실질적 노동자 소유·운영 구조를 지향했다. 그러나 벤처캐피털의 자금을 등에 업은 쿠팡이츠·배달의민족과 경쟁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리했다. 자본 없이 자본주의적 플랫폼과 경쟁하는 것은 시장 논리 안에서 협동조합이 처하는 근본 모순이다.
협동조합주의의 내재적 한계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에 대한 좌파 내부의 비판은 세 가지다.
첫째, 시장 내 경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 협동조합이라도 배달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윤을 내고 성장해야 한다. 협동조합원들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둘째, 네트워크 효과 앞에서 자본 열세를 극복하기 어렵다. 이용자 수가 곧 가치인 플랫폼 시장에서, 초기 이용자 확보를 위한 막대한 보조금 경쟁(쿠팡이츠의 무료 배달, 배민의 쿠폰 공세)을 견딜 자본이 없다.
셋째, 고립된 섬 문제: 개별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운영되는 한, 시스템의 논리를 바꾸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지적했듯, 협동조합은 "낡은 형태 내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싹"이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 관계를 바꾸지 않으면 거대 자본에 흡수되거나 고립된다.
그럼에도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의미 있는 과도기적 형태다. 노동자들이 알고리즘과 데이터 소유권을 실험하는 학교가 될 수 있고, 더 급진적인 사회화 요구를 위한 물적 근거가 된다.
3. 디지털 코뮤니즘 — 과잉 생산력과 풍요의 정치경제학
바스타니의 '완전 자동화된 호화 공산주의'
영국의 좌파 저널리스트 아론 바스타니(Aaron Bastani)는 2019년 저서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에서 도발적 테제를 제시했다. AI와 자동화, 재생에너지, 정밀농업, 유전공학이 만들어낼 풍요의 물질적 조건 위에서, 희소성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풍요에 기반한 코뮤니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스타니의 핵심 주장은 마르크스의 통찰과 공명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실제적 부는 모든 개인의 발전된 생산력"이라고 썼다. 바스타니는 이것이 이제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태양광·풍력 에너지의 한계비용은 이미 0에 수렴하고 있다. AI와 자동화는 반복적 노동의 대부분을 기계에 맡길 수 있게 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누가 그 풍요를 소유하고 통제하느냐다.
디지털 영역에서 이 테제는 더 선명하다. 소프트웨어는 한 번 만들면 무한 복제 가능하다. 데이터의 사용은 원본을 소모하지 않는다. 디지털 재화는 배제성(excludability)과 경합성(rivalrousness)이 기본적으로 없다 — 자본주의가 인위적으로 그것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특허, 저작권, 영업비밀, 플랫폼 접근 제한은 모두 인공적 희소성을 만들어 지대를 추출하는 장치다.
디지털 공유재(Digital Commons)의 가능성
디지털 코뮤니즘의 실질적 형태는 디지털 공유재다. 위키피디아는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지식 인프라를 자본 없이 유지한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Linux, Apache, Python, TensorFlow)가 오늘날 디지털 경제의 물질적 인프라를 이루고 있다. 이것들은 사적 소유 없이 생산되고 유지되는 공유재의 실제 사례다.
문제는 이 공유재 위에서 자본이 지대를 추출한다는 것이다. 구글은 오픈소스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플랫폼 독점을 구축했다. 아마존은 오픈소스 AI 도구들로 AWS 클라우드 독점을 강화했다. 디지털 공유재는 존재하지만, 자본이 그 위에 울타리를 친다.
이를 뒤집는 것이 디지털 코뮤니즘의 과제다. 플랫폼의 기반 인프라(통신망, 클라우드, 기본 AI 모델)를 공공재로 선언하고, 접근을 보편화하며, 수익 추출 구조를 해체하는 것. 이것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소유 관계의 변혁이다.
4. 노동자 통제 — 알고리즘 민주주의
알고리즘을 노동자의 손에
가장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는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노동자 통제다. 현재 배달 라이더는 자신의 수입을 결정하는 배차 알고리즘을 알 권리가 없다. 물류 노동자는 자신의 이동 경로를 최적화하는 알고리즘이 무엇을 최적화하는지 모른다(라이더의 안전인지, 플랫폼의 처리량인지).
이것은 구체적 요구들로 전환된다:
- 알고리즘 공개 의무화: 플랫폼이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배차·평가·보수 결정 알고리즘의 핵심 변수를 공개해야 한다.
- 알고리즘 교섭권: 노동자 조직이 알고리즘 설계 원칙에 대해 단체교섭할 권리.
- 데이터 소유권: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과정에서 생성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과 삭제권.
EU의 2024년 플랫폼 노동 지침(Directive 2024/2831)은 이 방향의 첫 걸음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관계 추정으로 보호하고, 알고리즘 관리(Algorithmic Management)에 대한 노동자의 정보권을 규정한다. 한국은 이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플랫폼 노동: 현재의 조직화 운동
민주노총은 2023~2025년 플랫폼 노동자 조직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현황:
-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지부: 배달 라이더 약 3,000명 조직. 알고리즘 정보공개, 수수료 상한제, 특고 노동권 보장을 3대 요구로 제시.
- 서비스연맹 플랫폼노동자지부: 가사·돌봄 플랫폼 노동자 조직. 플랫폼 사업자를 공동사용자로 인정하는 법 개정 요구.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노동당 등 진보 정당: 플랫폼 공공화 법안 발의 시도. 이재명 정부 하에서 원내 입법 가능성 낮음.
조직화의 주요 장벽은 단체교섭권 부재다. 플랫폼 노동자가 특고·프리랜서로 분류되는 한,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단체협약을 체결할 법적 근거가 없다. 2025년 현재 노동조합법 개정 논의는 진행 중이지만, 이재명 정부는 경제계의 반발을 의식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5. 이재명 'AI 기본사회' 비판 — 사회화 없는 AI 복지국가
이재명 정부는 2025~2026년 'AI 기본사회' 구상을 제시했다. AI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면 그 과실을 기본소득·기본서비스 형태로 분배한다는 구상이다.
민들레뉴스는 이를 "AI 사회화 없는 AI 기본사회는 절반의 허구"라고 비판했다. 핵심 논거:
- AI가 창출하는 가치의 원천은 모든 시민의 데이터다. 그 가치를 빅테크·플랫폼 기업이 소유하고, 국가가 세금으로 걷어 분배하는 구조는 착취를 용인하면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다.
- 진정한 AI 기본사회는 AI의 사회화, 즉 AI 기반 인프라(데이터, 모델, 컴퓨팅)의 공공 소유가 전제돼야 한다.
- "모두를 위한 AI 강국"이 아니라 재벌과 권력의 'AI 강국'이 될 위험.
이 비판은 정확하다. 기본소득 논리와 플랫폼 공공화 논리는 다르다. 기본소득은 착취 구조를 온존시키면서 재분배한다. 공공화는 착취 구조 자체를 변경한다. 이재명 정부의 'AI 기본사회'가 전자를 택하고 있다면, 그것은 디지털 복지국가이지 디지털 사회주의가 아니다.
6. 단계적 프로그램 — 개혁에서 변혁으로
대안의 세 층위는 서로 연결된 전략적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단기(지금 가능한 것):
- 알고리즘 공개 의무화 입법 (EU 플랫폼 노동 지침 수준 도입)
- 플랫폼 노동자 고용 추정 원칙 도입 (사용자성 입증 책임 역전)
- 공공배달앱 전국 확대 + 라이더 노동조건 규정 포함
- 데이터 주권 기본법 제정 (개인 데이터 접근·삭제·이동권)
중기(세력 관계 변화가 필요한 것):
- 플랫폼 노동자 단체교섭권 보장 (노동조합법 개정)
- 초과이윤세 도입 + 플랫폼 공공화 기금 조성
- 기간 디지털 인프라(클라우드, 통신망, AI 기반 모델) 공공화
- 플랫폼 협동조합 전환 지원 (벤처 지원을 협동조합 지원으로 전환)
장기(체제 변혁 과제):
- 플랫폼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 민주적 통제
- 디지털 공유재 원칙의 헌법적 기반화
- 노동시간 단축 + AI 생산성 이익의 보편적 향유
- 글로벌 플랫폼 독점(미국·중국 빅테크)에 대한 국제 연대 규제
이 단계들 사이의 이행을 가능케 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조직된 계급 권력이다. 단기 개혁을 쟁취하는 운동이 중기·장기 요구를 담아낼 수 있을 때,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실질적 대안의 경로가 열린다.
결론: 플랫폼은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가 소유해야 한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물질적 기반은 수십억 명의 이용자가 매일 생산하는 데이터와 상호작용이다. 카카오톡의 가치는 카카오가 만든 것이 아니라 4,900만 명이 만든 것이다. 배달의민족의 네트워크는 라이더와 음식점과 소비자가 만든 것이다. 이 사회적 생산물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것이 플랫폼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이다.
이 모순의 해결은 단순한 규제나 세금 처방으로 가능하지 않다. 4회차에서 확인했듯, 자본주의 국가는 독점 자본을 구조적으로 해체할 능력이 없다. 해결은 소유 관계의 변혁으로만 가능하다.
공공 플랫폼은 작지만 실질적인 진지다. 협동조합은 소유를 노동자에게 되돌리는 실험이다. 알고리즘 민주주의는 생산 과정의 통제를 둘러싼 투쟁이다. 그리고 디지털 코뮤니즘은 — 유토피아처럼 들리지만 — 디지털 생산력이 만들어낸 물질적 조건 위에서 이미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오래된 테제가 여기서 새롭게 울린다: "자본주의는 그것을 대체할 생산력의 물질적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플랫폼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화된 디지털 인프라는 바로 그 조건이다. 그것을 사적 독점에서 공적 소유로 전환하는 투쟁 — 이것이 21세기 노동계급 정치의 핵심 전선 중 하나다.
이 연재로 'AI·플랫폼 자본주의의 계급정치경제학' 5회차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연재 목록
- 1회차: 플랫폼은 새로운 자본주의인가 — 데이터·알고리즘과 잉여가치론
- 2회차: 한국 플랫폼 노동의 실태 — 배달·돌봄·클라우드의 계급구성
- 3회차: AI와 노동대체 — 기술결정론 비판과 계급투쟁의 역할
- 4회차: 플랫폼 독점과 국가 — 규제 실패와 반독점의 정치경제학
- 5회차: 대안 — 플랫폼 공공화·디지털 코뮤니즘·노동자 통제 (현재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