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87년 체제의 한계는 왜 반복되는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8년. 한국 노동운동은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운동 중 하나였고, 민주노총은 100만 조합원을 넘는 거대 조직이 됐다. 그러나 2024년 조직률은 13.0% — 여전히 OECD 하위권이다 (한겨레, 2025.12).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35%가 조직돼 있지만, 30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조직률이 0%대에 가깝다. 이 수치 하나가 87년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압축한다. 87년 체제는 '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가 운동의...
2016~2017: 촛불의 에너지, 탄핵의 통로 2016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의 촛불혁명은 수백만 명을 거리로 불러냈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결과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탄핵의 경로는 촛불 운동의 내용을 선별적으로 처리했다. 민주노총은 촛불 집회에 대규모로 결합했다. 그러나 운동의 정치적 방향 설정에서는 수동적이었다. 볼셰비키그룹의 2020년 분석은 이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박근혜퇴진운동이 전개되는 동안 민주당을 포함한 자본주의 제도권 정당들에 심각한 불신이 팽배했다. 시위대는 이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겪었고, 이...
시대의 문턱: 2008년의 이중성 2008년은 두 가지 기억이 겹친다. 하나는 이명박의 집권이고, 다른 하나는 촛불이다. 2008년 5월,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수백만을 거리로 불러냈다. 이것은 정치적 반란이었지만, 노동운동이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4대 요구(쇠고기 재협상, 시장화·사유화 정책 폐기, 대운하 반대, 물가 폭등 저지)를 내걸고 총파업 찬반투표까지 진행했다. 볼셰비키그룹의 2012년 분석은 이 상황의 역설을 날카롭게 짚는다: "민주노총의 4대 요구는 이제 막 표출되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1997년 12월: 두 가지 날치기 1997년은 두 번 무너졌다. 첫 번째는 11월의 외환위기였다. 외채 상환 불능, IMF 구제금융 요청. 두 번째는, 사실 먼저 왔다. 1996년 12월 26일 새벽, 야당 의원들이 잠든 사이 여당인 신한국당은 단독으로 두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법. 6분 만에.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법은 IMF 위기의 산물이 아니었다. 자본이 87년 이후 10년 동안 공들여 준비한 반격이었다. 외환위기는 그 반격을 정당화하는 '위기'라는 이름표를...
1987년 7~8월, 역사가 바뀌었다 1987년 여름은 두 개의 폭발로 기록된다. 6월의 폭발은 잘 알려져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 최루탄 사망, 수백만의 거리 행진 — 군사독재를 무릎 꿇린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곧이어 두 번째 폭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7월 5일 현대엔진 노조 파업을 시작으로, 8월 말까지 전국에서 3,311건의 파업이 터졌다. 126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이 두 번째 폭발은 첫 번째보다 덜 조명받는다. 그러나 계급 정치의 시각에서 보면, 7~8월의 노동자 대투쟁이야말로 더 근본적인 사건이었...
들어가며: 비판의 끝이 대안의 시작이다 앞선 4회차에 걸쳐 우리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해부를 마쳤다. 데이터는 새로운 원자재가 아니라 자본이 생산 관계를 재편하는 도구이고(1회차), 배달·돌봄·클라우드 노동자는 '긱 워커'라는 이름의 신종 프롤레타리아트이며(2회차), AI는 기술적 필연이 아니라 계급 투쟁의 지형에서 자본이 배치하는 무기이고(3회차), 규제는 독점을 해체하지 못하며 자본주의 국가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낼 뿐이다(4회차). 이제 질문은 단순해진다: 대안이 있는가? 대안론을 세 층위로 나눠 검토한다. 첫째, 자본주의 내에서...
독점은 예외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경향이다 자유시장론자들은 플랫폼 독점을 '일탈'로 본다. 카카오·네이버가 지나치게 커졌고, 규제가 뒤처진 탓에 시장이 왜곡됐다는 서사다. 처방도 단순하다: 공정경쟁법을 강화하고, 반독점 규제 기관을 키우면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은 반대로 읽는다. 독점은 자유경쟁의 왜곡이 아니라 자본 집적·집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레닌은 1916년 『제국주의론』에서 이미 확인했다: "경쟁이 독점으로 전화한다. 이것이 자본주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현상이다." 플랫폼 경제에서 이 경향은 한층 강화된다....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는다" — 이 명제의 정치적 함의 2025년, 앤스로픽이 공개한 '노동시장에 관한 AI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래머 업무의 이론상 94%를 AI가 대체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AI로 인해 5년 내 9,2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 7,000만 개가 생긴다고 전망했다. 한국 기업의 AI 도입률은 2023년 기준 30.3%로 전년 대비 2.3%포인트 증가했고, 한국노동연구원은 AI 노출도 높은 직종에서 청년 고용이 2022~2024년 사이 15% 감소했다고 보고한다. 이 숫자들은 사...
누가 플랫폼 노동자인가 "플랫폼 노동자"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23년 플랫폼 종사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종사자 수는 88만 3천 명(전년 대비 11.1% 증가)이며, 특수고용 종사자를 합산하면 약 144만 명으로 추정된다. 고용노동부는 플랫폼 종사자 실태조사를 국가통계로 공식화하려 했으나, 2025년 현재도 통계청 기준 미달로 정식 공표가 중단된 상태다. 이 숫자들 자체가 정치적이다. 국가는 이 노동자들이 몇 명인지, 얼마를 버는지,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는다. 노동법 적용을 위...
요약 SetLog 는 New Chat Inc. 가 개발·배포하는 폐쇄형 영상 공유 소셜 앱이다. 공식 처리방침은 사진·동영상·메시지 등 사용자 콘텐츠가 종단간 암호화(E2EE)되어 회사가 내용을 볼 수 없다고 명시한다. 본 보고서는 Google Play 에서 배포되는 Android 베타 빌드(v1.0) 의 APK 바이너리를 정적 분석해, 이 주장의 구현 실재 여부, 권한·인프라 모델, 그리고 앱스토어 공시와의 일치성을 검토했다. 핵심 발견: 암호화 구현은 실재한다. 앱은 X25519-HKDF-SHA256+CHACHA20-POLY13...
"플랫폼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 쿠팡은 유통업이 아니라 테크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카카오는 금융이 아니라 플랫폼이라고 주장한다. 우버는 운송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주장한다. 이 반복되는 자기부정 서사 뒤에는 하나의 일관된 목적이 있다: 노동법·세금·독점 규제를 피하는 것. "4차 산업혁명", "데이터 경제", "AI 전환" — 이 언어들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핵심 작동 원리를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이 연재는 그 은폐를 걷어내는 시도다. 핵심 질문: 플랫폼과 AI는 자본...
개요 SetLog는 그룹 단위로 영상과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 애플리케이션이다. iOS 앱스토어와 Google Play Store에 공개 출시되어 있으며, 2026년 4월 기준 iOS 250,000+, Android 100,000+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개발사는 New Chat Inc.(뉴챗)이며, Apple App Store 판매자명 및 저작권 표기 주체도 동일하다. SetLog는 K-팝 팬덤 및 한국어권 사용자를 주요 타깃으로 하며, 한국 언론(뉴시스, 2026년 4월 6일)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운영진은 "현재...
서론: 문제 제기 — 노동귀족 현상과 이중구조의 재생산 2026년 4월 23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경기 평택 캠퍼스에서 4만 명 규모의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창사 이래 두 번째 전면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충격이 예상된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보이지 않는 4만 명이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내 협력업체 소속 하청 노동자들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체 노동자 중 각각 21%, 30%가 하청 구조에 편입되어 있다. 이들은 같은 팹(Fab...
앞의 세 회차는 주로 부정의 논리였다. 자본주의가 왜 구조적으로 생태위기를 생산하는지(1회), 현실 사회주의도 생산주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2회), 그리고 탈성장과 그린뉴딜이라는 두 가지 좌파적 대안이 각각 어떤 계급적 한계를 지니는지(3회)를 검토했다. 이번 회차에서는 방향을 바꾼다. 생태사회주의가 단순히 기존 대안들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면, 그 긍정적 내용은 무엇인가? 생태사회주의는 실제로 어떤 사회를 제안하는가?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생태적 계획경제, 에너지 공공화, 식량주권. 이 셋은 추상적 이념이...
기후위기에 대한 좌파적 대응은 하나가 아니다. 오늘날 국제 진보 진영 내에서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략 논쟁이 있다면, 그것은 탈성장(Degrowth) 대 그린뉴딜(Green New Deal)의 대립이다. 두 입장 모두 자본주의의 생태 파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원인 진단과 대안 처방,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누가 전환을 추진하는가라는 계급 주체 문제에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이 논쟁을 단순히 정책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이 숨어 있다. 그린뉴딜:...
가장 불편한 반론부터 생태사회주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반론은 역사적 사실이다: 소련은 자본주의가 아니었지만 생태 파괴는 자본주의 못지않게 심각했다. 아랄해는 말라붙었고, 체르노빌은 폭발했으며, 바이칼호는 오염됐다. 이 반론을 무시하거나 얼버무리는 것은 지적 정직성의 포기다. 오히려 이 실패를 정확히 분석해야 "왜 생태사회주의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다. 소련의 실패는 사회주의 일반의 필연인가, 아니면 특수한 역사적 조건의 산물인가? 소련 생태학의 3시기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질문부터 다시 세우자 기후위기 담론의 주류는 '탄소'를 관리 대상 물질로 다룬다. 탄소세를 올리거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거나, 개인의 소비 행동을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IPCC 보고서, 그린뉴딜 패키지, 한국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 모두 이 틀 안에 있다. 그런데 이 틀은 결정적인 질문을 회피한다: 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태계를 파괴하는가? 이것이 개별 기업의 악의나 특정 에너지원의 문제라면 규제로 해결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의 운동 법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체제 안의 해법은 구조를 건드리지...
요약 2026년 1월부터 CU 물류 화물노동자들은 원청인 BGF 계열이 직접 교섭에 나설 것과 장시간 노동·저운임·비계약 부가노동·휴식 부족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BGF 측은 화물기사들이 개별 운송사와 계약한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유로 직접 사용자성을 부인했고, 기존의 센터·운송사·기사 간 3자 협의 틀을 고수했다. 그 결과 갈등은 4월 5일 다수 물류센터 파업으로 폭발했고, 4월 20일 경남 진주 CU 물류센터 앞에서는 사측이 투입한 2.5톤 대체수송 차량이 조합원들을 들이받아 서광석 동지가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네 편의 진단 뒤, 질문은 하나다 1회는 트럼프 2기를 "파시즘화 경로에 진입한 우익 보나파르티즘"으로 규정했다. 2회는 그 지반이 미국만의 예외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30년의 세계적 귀결임을 보였다. 3회는 트럼피즘이 기술우파·복음주의·백인민족주의의 삼각 접합 위에서 작동함을 분해했다. 4회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미 제국주의 쇠퇴기의 재편이며 고립주의도 거래주의도 아닌 "자유주의 헤게모니 → 양자 강제 헤게모니" 이행임을 밝혔다. 네 차례의 진단이 끝나면 남는 것은 한 질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 국제 좌파...
문제설정: '고립주의자' 명명이 놓치는 것 한국어권 주류 해석은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을 대체로 두 틀 중 하나로 읽는다. 고립주의자 틀 — 관세·NATO 회의·이민 봉쇄를 묶어 "미국이 세계에서 물러난다"고 본다. 자유주의 논평가·한국 외교부 라인·다수 경제지가 이 위치에 있다. 거래의 제국 틀 — 『동아일보』 2026.01 사설 제목처럼, 트럼프가 "무역질서·동맹을 흔드는 거래상"이라는 해석. 이성적 전략 없는 즉흥·협박 외교라는 뉘앙스. 두 틀 모두 현상은 맞게 포착하지만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 고립주의자가 그린란드·파나마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