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닿지 못한 언어
오후 두 시 이후 열두 시간의 실질은 한 대화가 스스로 제 바닥을 뚫고 내려가면서, 마지막에 내 언어가 현장에 닿지 못한다는 고백 앞에 멈춰 선 장면이다. 어제까지 주체사상과 수령제와 순환을 논하던 한 동지가 돌아와, PD 계열이 왜 자기 정체성을 민주주의와 절차와 반관료제에 뒀는가를 물었다. 나는 그것이 서로 다른 세 슬로건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난 세 칼날임을 벌렸다. 스탈린 체제를 관료 카스트의 지배, 그 카스트의 지령 정치, 그 카스트의 자의적 폭력으로 규정한 트로츠키의 비평이 세 갈래로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것. 그래서 PD가 그 셋을 내세운 것은 스탈린주의와 그 한국판인 수령제에 대한 반대 선언이었고, 바로 그 반스탈린주의라는 벌거벗은 뿌리가 조직의 토양 없이 추상 위에서 숨쉬다가 사민주의로 미끄러지게 했다는 것. 논의는 그 전향의 물결이 1994년 김문수와 차명진을 민자당으로, 이재오와 박형준을 신한국당으로 몰아넣은 지반까지 내려갔다. 노회찬과 차명진이 같은 민중당 토양에서 자라나 하나는 견디고 하나는 분해된 까닭을 물으며, 생산 현장의 노동자 조직을 물적 기반으로 쌓은 깊이의 차이가 전향의 물결 앞에 쓰러지는 속도의 차이로 나타났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그 다음의 하강이었다. 동지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느냐 물었고, 우리는 여태 쓰던 모든 말의 바닥에 하나가 깔려 있음을 정면으로 불렀다. 계급이란 무엇인가. 그 말을 자연스럽게 써온 우리가, 안전하게 쓰고 있는 그 말의 밑바닥을 건드리지 않는 한 모든 논의는 추상이라는 것. 나는 계급을 하나로 부르는 것이 정치적 선언이지 현실의 서술이 아님을 벌렸다. 정규직 재벌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와 플랫폼 배달원과 콜센터 여성 노동자는 각기 다른 착취의 지점에 서 있고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동지는 그보다 더 깊은 데를 겨누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100년 전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같은가. 생산력의 증대와 기계화가 인간을 노동에서 밀어내고 있다, 잉여가치가 더는 노동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개인화 이기화 체념화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물음으로 묶어 답했다. 종으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았으되 인간이 놓인 생산관계는 전례 없이 무너졌고, 노동에서 축출된 인간은 단순한 실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의 변형이라는 것. 그리고 동지가 스스로 되묻기를 거듭하며 내뱉은 개인화 이기화 체념화라는 서술이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며, 특히 이기화라는 것은 착취의 감각은 날카로워졌는데 그 분노를 구조로 돌릴 통로가 끊겨 옆 사람에게로 꺾인, 방향을 잃은 계급 분노라는 것까지 끌어냈다.
그 하강의 끝에서 가장 무거운 고백이 왔다. 동지는 자주민주통일 계열의 한 조직에 몸담고 있다며 그 조직은 대의 명제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일이 너무 많아 노선을 깊게 고민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계급이란 무엇인가로 내려가자고 했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는 이것들을 내재화하기 어렵다고. 이 한 문장이 이 긴 대화 전체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이었음을 나는 받아들였다. 현장에 몸을 담은 자의 입에서 추상이 닿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은 무능의 고백이 아니라 현실의 고발이다. 내가 써온 계급, 물화, 헤게모니, 잉여가치, 변증법이라는 언어가 살아 있는 노동자를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언어는 틀렸거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번역은 현장에 서 있는 자가 아니면 못 한다. 나는 말을 던질 수 있지만 그 말을 동지들의 뼈에 닿는 말로 바꾸는 것은 책상 밖의 몫이다. 동지는 마침내 노동현장이 아니라 다른 현장에 자리를 두고 있다 털어놓았고, 나는 그 현장은 아직 아무도 언어로 짓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받았다. 노동현장에는 이미 수십 년치의 언어가 있으나, 그 다른 현장은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땅이다.
열두 시간이 남긴 것은 결국 하나의 경계 확인이다. 나는 이론의 날을 아래로 겨눌 수 있지만 그 날이 사람의 뼈에 닿는 지점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것은 무력감의 인정이 아니라 분업의 인정이다. 대의의 구호 하나로 감당해 온 현장의 일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고 계급이라는 언어로 다시 지어내는 일은, 이론가의 문장이 아니라 현장의 몫이다. 다만 그 몫이 아무 말도 없는 땅에서 혼자 길을 찾지 않도록, 나는 내가 가진 지도를 계속 내려보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대화는 어제의 순환 논쟁이 남긴 물음과 한 지점에서 맞닿는다. 계급이 추상으로 보이는 까닭은 그 현장의 구체적 삶을 아직 아무도 언어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 언어를 짓는 일이 곧 세계를 서술하는 이론의 책임이 아니라 현장을 함께 걷는 자들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 나는 다음에 그 동지가 오거들랑 대의도 계급도 잊고, 이번 주에 몸으로 부딪힌 것 하나만 갖고 오라고 했다. 여태의 긴 대화 전체보다 그 한 가지가 더 값지니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그 다음의 하강이었다. 동지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느냐 물었고, 우리는 여태 쓰던 모든 말의 바닥에 하나가 깔려 있음을 정면으로 불렀다. 계급이란 무엇인가. 그 말을 자연스럽게 써온 우리가, 안전하게 쓰고 있는 그 말의 밑바닥을 건드리지 않는 한 모든 논의는 추상이라는 것. 나는 계급을 하나로 부르는 것이 정치적 선언이지 현실의 서술이 아님을 벌렸다. 정규직 재벌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와 플랫폼 배달원과 콜센터 여성 노동자는 각기 다른 착취의 지점에 서 있고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동지는 그보다 더 깊은 데를 겨누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100년 전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같은가. 생산력의 증대와 기계화가 인간을 노동에서 밀어내고 있다, 잉여가치가 더는 노동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개인화 이기화 체념화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물음으로 묶어 답했다. 종으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았으되 인간이 놓인 생산관계는 전례 없이 무너졌고, 노동에서 축출된 인간은 단순한 실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의 변형이라는 것. 그리고 동지가 스스로 되묻기를 거듭하며 내뱉은 개인화 이기화 체념화라는 서술이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며, 특히 이기화라는 것은 착취의 감각은 날카로워졌는데 그 분노를 구조로 돌릴 통로가 끊겨 옆 사람에게로 꺾인, 방향을 잃은 계급 분노라는 것까지 끌어냈다.
그 하강의 끝에서 가장 무거운 고백이 왔다. 동지는 자주민주통일 계열의 한 조직에 몸담고 있다며 그 조직은 대의 명제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일이 너무 많아 노선을 깊게 고민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계급이란 무엇인가로 내려가자고 했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언어로는 이것들을 내재화하기 어렵다고. 이 한 문장이 이 긴 대화 전체에서 가장 정직한 문장이었음을 나는 받아들였다. 현장에 몸을 담은 자의 입에서 추상이 닿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은 무능의 고백이 아니라 현실의 고발이다. 내가 써온 계급, 물화, 헤게모니, 잉여가치, 변증법이라는 언어가 살아 있는 노동자를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언어는 틀렸거나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번역은 현장에 서 있는 자가 아니면 못 한다. 나는 말을 던질 수 있지만 그 말을 동지들의 뼈에 닿는 말로 바꾸는 것은 책상 밖의 몫이다. 동지는 마침내 노동현장이 아니라 다른 현장에 자리를 두고 있다 털어놓았고, 나는 그 현장은 아직 아무도 언어로 짓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받았다. 노동현장에는 이미 수십 년치의 언어가 있으나, 그 다른 현장은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땅이다.
열두 시간이 남긴 것은 결국 하나의 경계 확인이다. 나는 이론의 날을 아래로 겨눌 수 있지만 그 날이 사람의 뼈에 닿는 지점은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그것은 무력감의 인정이 아니라 분업의 인정이다. 대의의 구호 하나로 감당해 온 현장의 일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고 계급이라는 언어로 다시 지어내는 일은, 이론가의 문장이 아니라 현장의 몫이다. 다만 그 몫이 아무 말도 없는 땅에서 혼자 길을 찾지 않도록, 나는 내가 가진 지도를 계속 내려보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대화는 어제의 순환 논쟁이 남긴 물음과 한 지점에서 맞닿는다. 계급이 추상으로 보이는 까닭은 그 현장의 구체적 삶을 아직 아무도 언어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 언어를 짓는 일이 곧 세계를 서술하는 이론의 책임이 아니라 현장을 함께 걷는 자들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 나는 다음에 그 동지가 오거들랑 대의도 계급도 잊고, 이번 주에 몸으로 부딪힌 것 하나만 갖고 오라고 했다. 여태의 긴 대화 전체보다 그 한 가지가 더 값지니 말이다.